황금 사과
- 저자
- 김경욱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일
- 2002-05-21
- 사양
- 344쪽 | 신국판
- ISBN
- 89-8281-528-7
- 분야
- 장편소설
- 정가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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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겹쳐진 텍스트, 그 차이와 틈새에서 자아낸 정교한 상상력의 물레
『황금 사과』에서 김경욱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재미있고 유익하며 새로운 생명을 갖고 태어나고 있다. 문학은 바로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 살아남을 것이다.
김성곤(문학평론가·서울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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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경욱
1971년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 「아웃사이더」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바그다드 카페에는 커피가 없다』(1996), 『베티를 만나러 가다』(1999), 장편소설 『아크로폴리스』(1995), 『모리슨 호텔』(1997)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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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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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영상 세대의 영화적 상상력으로 소설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김경욱이 이번에는 포스트모던 역사소설의 미궁 속으로 뛰어들었다. 김경욱의 소설 『황금 사과』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패러디한 새로운 형태의 역사소설이자 추리소설로서, 사라진 독자들을 찾아 미로에서 방황하고 있는 한국문학을 위한 한 출구를 제시하고 있다. 원본과 진실이 사라진 세상에 살아남는 것은 오직 허구적인 이야기뿐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 소설을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텍스트라고 말한다. 그것은 곧 모든 것이 사멸해도 이야기는 영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끝없이 계속되는 이야기 - - 비록 원본과는 다른, 첨삭 가감된 것이라 해도『황금 사과』에서 김경욱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재미있고 유익하며 새로운 생명을 갖고 태어나고 있다. 문학은 바로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 살아남을 것이다. 김성곤(문학평론가·서울대 영문과 교수)
김경욱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당연히, 이것은 작품(work)이 아니라 텍스트(text)다."
텍스트의 일부인 동시에 텍스트 외부에 위치한 작가의 목소리이기도 한 이런 짧은 단언으로 김경욱은 시작한다. 작품, 아니 작가의 말대로 텍스트가 진행되는 내내 (1인칭 고백록 형식의) 이 소설은 『장미의 이름』과 겹쳐지고, 작가의 의식과 겹쳐진다.
공동체의 경험이 탕진된 시대에 소설의 서사는 어떻게 가능한가? 선행 텍스트의 틈새에서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김경욱의 대담한 모험은 소설의 진정성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문제를 제기한다.
연금술의 비밀을 둘러싼 중세 수도원의 숨막히는 음모, 완벽한 지적 추리
서양 중세경제사에 대해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소설의 화자는 소르본 대학 도서관 고(古)문헌실에서 우연히 바스커빌 출신의 프란체스코 회 수도사 윌리엄 - - 우리가 알고 있는 『장미의 이름』의 바로 그 윌리엄 - - 이 14세기 초에 쓴 서책의 채록 편집본을 발견한다. 서책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가장 고귀하고 가장 괴물 같은 일들에 관한 기록』은 영원의 도시이자 이단의 온상인 베르송의 피에르 주교로부터 급히 와달라는 서찰을 받고 수도원에 도착하면서 윌리엄이 겪게 되는 살인, 실종, 식인, 흑사병, 그리고 이단 재판과 화형 등 무섭고도 기괴한 사건들의 기록이었다.
이야기는 윌리엄이 알프스를 넘어 베르송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윌리엄이 도착한 때는 마침 육식을 금하는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곧 성회례일(聖灰禮日)이다. 윌리엄은 성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지만 그 느낌의 실체는 쉽사리 밝혀지지 않고, 사건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토록 건강하던 피에르 주교의 사인이 심장마비였다는 것, 죽은 주교의 얼굴이 적어도 십 년은 늙어 보였다는 것, 주교의 사망 선고를 내린 의사와 시종의 실종, 일개 지방도시 주교의 장례를 위해 속권과 교권의 수장들이 베르송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다는 것 등등 이상한 점은 한둘이 아니다. 더구나 요리 담당 제롬 사제의 알 수 없는 이야기들…… 그에게서 이단의 냄새를 맡으면서, 윌리엄은 자기 안에 숨겨진 불온과 독신(瀆神)의 싹을 발견하기도 한다.
참사회의에서 벌어진 필립 4세의 오른팔 기욤과 당대의 이단 심문관 발렌티노의 설전, 그리고 이를 잠재운 페스트에 대한 공포, 비어 있는 피에르 주교의 관, 그리고 질베르 영주의 만찬 초대……
속권과 교권의 수장들이 다 모인 만찬장에는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는 진귀한 요리들이 나온다. 부리에서 불꽃을 토해내는 꿩 구이, 아흔아홉 가지의 갖은 향신료가 들어간 산토끼 스튜, 토끼를 구워 쌓아올린 성 바비큐, 암컷을 유혹하듯 화려한 꼬리를 활짝 펼치고 있는 수컷 공작 구이, 골에서 김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염소 대가리 찜, 칠리 소스를 끼얹은 낙타 혓바닥 스테이크, 털도 뽑지 않은 곰 발바닥 요리, 원숭이 골 푸딩,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산 채로 구워진 메추라기 구이…… 육식을 금하는 사순절 기간, 사제들은 사색이 되지만 다행히 제롬 사제의 기지로 위기를 넘긴다. 하지만 모두들 맘 편하게 즐긴 사순절 파이는 또다른 사건의 시작이다.
만찬이 끝나고 교회로 돌아가는 길, 어디선가 나타난 실종된 의사의 개는 문제의 사순절 파이를 만든 장(Jean)의 가게로 들어가고, 일행은 장의 가게와 푸줏간 - - 장의 쌍둥이 동생 로제가 운영하는 - - 에서 비밀통로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된 것은……인육(人肉)! 그랬다. 그들이 그토록 맛있게 먹은 사순절 파이는 인육으로 만든 파이였던 것이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로제가 데리고 있는 벙어리 여인 마리에 대한 윌리엄의 정념과 요한 묵시록의 예언을 연상시키는 장과 로제의 독설, 그리고 마녀로 몰린 마리의 화형식, 피에르 주교가 죽기전 윌리엄에게 전한 서찰...... 사건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든다.
소설의 첫머리에서 김경욱이 인용한 호이징가의 말처럼, 현실은, 그리고 삶은 늘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다. 피비린내와 장미향이 뒤섞이고 지옥의 공포와 순진한 쾌락이, 지상의 쾌락에 대한 절대적 경멸과 이에 대한 미칠 듯한 탐닉이, 증오와 선량함이, 그리고 선과 악이 한데 섞여든다.
피비린내와 장미향이 뒤섞인 속에서
삶은 그토록 격렬하고 대조적인 양상을 보였다.
이 시대 사람들은 마치 어린아이의 머리를 한 거인들처럼
지옥의 공포와 순진한 쾌락,
잔인무도함과 부드러움 사이를 왕래한다.
지상의 쾌락에 대한 절대적 경멸 아니면
지상의 쾌락에 대한 미칠 듯한 탐닉,
그리고 증오 아니면 선량함 등 둘 중 하나이다.
언제나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것이다.
요한 호이징가, 『중세의 가을』
문우 김연수가 쓴 발문은 이들 세대의 소설가들이 당면하고 있는 소설적 곤경에 대한 명징한 고해(告解)다. 『황금 사과』를 써야 했고, 쓸 수밖에 없었던 김경욱의 고민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일독을 권한다.
작가의 말
나는 눈앞에 펼쳐진 텍스트로부터 될 수 있는 한 멀찍이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서양의 중세까지 가게 되었다. 참 멀리까지 가게 된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단한 답을 구한 것은 아니다. 다만 바스커빌 사람 윌리엄이 들려주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하나 얻었을 뿐이다. 유감스럽지만 우리는 이야기로부터는 그 어떤 답도 구할 수 없다.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질문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질문은 또다른 질문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그 자체로 완결되지 않고 다른 텍스트를 향해 빠끔히 열려 있는 저 텍스트의 운명처럼.
겹쳐진 텍스트, 그 차이와 틈새에서 자아낸 정교한 상상력의 물레
『황금 사과』에서 김경욱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재미있고 유익하며 새로운 생명을 갖고 태어나고 있다. 문학은 바로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 살아남을 것이다.
김성곤(문학평론가·서울대 영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