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나자 삶이 시작되었다!
영화와 영화 사이에 삶이 있고 삶과 삶 사이에 영화가 있다!
조선일보 이동진 기자가 보내는 영화 사랑의 전언!해박한 인문학적 지식과 상상력, 시적인 문체
조선일보에 인기리에 연재중인 「이동진 시네마 레터」가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e-mail 전화 편지 엽서 등을 통해 연일 팬 레터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이동진 시네마 레터」의 출간은 신문 기사를 꼬박꼬박 스크랩하며 애독하던 고정 독자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동진의 시네마 레터』는 흩어져 있던 기사들을 한 곳에 모았다는 점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의 출간을 위해 그 동안 연재했던 기사들을 기초로 “완전히 새로운 글을 낸다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다시 썼”다고 밝히고 있다. 연재한 글들을 분량과 내용 면에서 대폭 수정·보완하였으며, 새로이 쓴 글들도 여러 편 추가하였다. 또 영화의 잔상들을 생생히 되살릴 수 있도록 소개되는 영화마다 인상적인 장면의 사진을 함께 실었으며, 사진마다 캡션을 달았다. 짧으나마 촌철살인의 글맛을 느끼게 하는 이 캡션들은 잔잔한 여운과 함께 장면 장면의 의미를 되새김질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그 동안 제한된 지면 탓에 마음껏 펼쳐지지 못했던 이동진 기자의 영화 사랑하는 마음과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 그리고 영화를 통해 들여다보는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들이 시적인 문체와 어우러져 이 한 권의 책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영화 속에 있는 삶단순히 영화비평이라는 좁은 장르의 테두리에 가둘 수 없는 독창적인 경지
『이동진의 시네마 레터』는 주제가로 쓰인 사라 본의 〈A Lover? Concerto〉와 더불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우리 영화 〈접속〉에서부터 최근에 개봉되었던 스필버그의 신작〈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이르기까지 대략 60여 편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실린 글들에서 그의 텍스트는 영화 자체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그의 영화 읽기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자 개성은 날카로운 시선과 독창적인 사유로 영화와 삶의 이음새를 찾아 드러내준다는 데 있다. 난해한 분석틀이나 갖가지 전문 용어를 동원하여 영화를 해부하거나 아니면 공허한 미사여구로 과대포장하는 류의, 영화를 위한, 혹은 비평을 위한 영화비평들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영화는 삶의 비밀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면서 삶의 지침을 제시하는 나침반이자 인생을 밝혀주는 철학의 보고(寶庫)와 같다.
영화가 삶의 터럭 끝 하나라도 다치게 한다면 영원히 영화 ‘따윈’ 보지 않아도 무방할 겁니다. 영화가 아무리 큰 울림을 주더라도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은 꿈같은 스크린 속이 아니라 잔인하도록 생생한 삶의 현장입니다. 그 삶의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맨발로 설 때 어떤 부조리가 우리를 덮치더라도 말입니다.(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맨발로 서기―〈올리브 나무 사이로〉의 영화)
지금 이대로를 사랑하고 살면서, 가지 않은 길을 마음의 고향으로 두고 안식을 취할 수는 없습니까. 미처 가지 못해 그리움의 공간으로 아직 남아 있는 꿈이 있다는 게 위로가 되지 않나요.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게 두렵다”는 파블로의 말에 샐리는 “그래서 우리가 만난 것”이라고 대답하지요. 둘의 사랑처럼 현실과 꿈이 제 위치에서 만날 때 비로소 삶은 작은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리움의 공간으로 꿈의 자리 남겨두기―〈탱고 레슨〉의 가지 않은 길)
때로 언어는 구원일 수 있습니다. 웅변이나 격언이 아닌 잡담도 종종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지요. 언어에 수없이 절망하면서도, 그렇기에 사람들은 또다시 다른 이의 말에 조심스럽게 귀기울이곤 하는 거겠지요. (잡담도 때론 희망이 되고―〈체리 향기〉의 언어)
살아가는 동안, 고통은 바로 백신 속 약한 병균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고통은 더위와 피곤에 지쳐 죽은 듯 빠져드는 여름날 오후 낮잠에서 우리의 삶을 여지없이 흔들어 깨우는 자명종 같은 것이 아닐까요. 그건 우리 영혼을 순결한 불길로 태워 불순물을 없앰으로써 반짝이는 금을 만들어내는 연금술 같은 것일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고통스런 나날들이 계속된다 해도, 지나고 돌이켜보면 괴롭고 무가치한 세월만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그렇다고 믿습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고통스런 나날 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모르핀)
추억과 향수는 갈 길 바쁜 삶의 여정에서 자꾸 뒤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러나 뒤돌아보지 않는 삶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인간은 뒤돌아보는 횟수만큼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요. (되돌아보는 횟수만큼 성장하는―〈딥 임팩트〉의 시차)
영화와 삶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한 올 한 올 엮어가는 그의 글은 독자들에게 단지 영화를 올바로 감상하고 이해하는 법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혜안을 밝혀준다. 그는 영화가 내보이는 삶의 모습들에서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짚어내고, 대면하고 싶지 않은 그 속내까지도 똑바로 응시하고 보듬어안는다. 삶 죽음 사랑 언어 영화 사회 역사 시간 공간 등 우리 삶의 무게를 형성하는 중요한 면면들을 화두로 펼쳐지는 그의 영화 탐색은 영화와 삶이 한몸으로 어울려 때로는 구도의 길을 가듯 진지하고, 때로는 내려치는 죽비처럼 날카로우면서 동시에 세상사의 고통과 그 고통의 이면을 볼 줄 아는 따뜻한 시선을 제공한다. 그리하여 때리고 부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B급 오락 영화조차도 그의 언어의 그물을 통과하면 심오한 삶의 진실을 담은 경전으로 승격된다. 이처럼 영화 속에서 삶을 우려내는 그의 독특한 영화 읽기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영화에 대한 지극한 사랑, 그리고 그보다 더한 삶에 대한 사랑에서 발원한다.
세상사에 대한 겸허한 시선을 담은 한 편의 미려한 수필처럼 혹은 인간들의 사랑과 눈물, 심지어 광기까지도 노래하는 서정시처럼 읽히는 그의 영화 이야기는 단순히 영화비평이라는 좁은 장르의 테두리에 가둘 수 없는 독창적인 경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영상 매체(시네마)와 문자 매체(레터)의 행복한 결합이 제공하는 새로운 독서 체험은 독자들에게 가슴 절절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삶 속에 있는 영화삶을 향하여 성찰의 빛을 던지는 영화 읽기의 새로운 모범
『이동진의 시네마 레터』에서 영화는 극장에서 돌아서면 곧 잊혀지는, 킬링타임용 두 시간 남짓의 오락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삶에 성찰의 빛을 던지는 예술의 반열에 올라 있다. 기실 영화가 예술로 격상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영상 매체들이 활자 문화의 자리를 대신하여 지배적인 의사소통 매체와 예술 표현방식으로 떠오르면서 영화가 종래에 문학이 차지하던 위치를 위협할 정도로 엄청난 파급력과 대중적 호소력을 지니게 되었음은 주지하는 바이다. 이제 영화는 단순히 대중적인 오락의 차원을 넘어 문화비평의 한 영역으로 당당히 자리를 잡았다. 열광적인 매니아 군단을 지원 세력으로 등에 업고 각종 영화제가 성공리에 진행되고, 심야 영화제가 기획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등 영화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확대일로에 있다. 『이동진의 시네마 레터』에는 이 같은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애정 어린 비판이 담겨 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일단 환영하지만 그것이 영화 예술을 발전시켜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데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일시적인 거품 현상으로 사라져버릴 것을 경계한다. 그는 영화를 제대로 사랑하는 관객의 영화 읽기의 새로운 모범을 이 책을 통해 보여준다.
그의 영화 읽기는 막강한 자본의 힘을 바탕으로 한 할리우드의 천편일률적인 오락 영화, 난해함 때문에 외면되어왔지만 새로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영화사적 고전들, 한때의 영화(榮華)를 뒤로 하고서도 여전히 관객 동원력을 지니는 홍콩 영화, 다소 지루하긴 하지만 독특한 예술적 분위기를 풍기는 유럽 영화, 그 틈에서 고군분투하는 한국 영화 등 국적과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펼쳐진다. 너무나 잘 차려진 성찬을 앞에 두고 어느 것에 먼저 손을 대야할지 몰라 망설이는 독자, 혹은 자기 입맛도 모르고 남들이 좋다는 대로 따라가는 독자, 아니면 오로지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편식하는 독자들이야말로 이 책의 진정한 독자들이다. 저자는 그들에게 권위를 과감히 무시하고 영화에 대한 독특하고 개성 있는, 자기 나름의 감식안을 발전시킬 것을 조언하고 있을 뿐더러 그 실례를 생생히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동진의 시네마 레터』는 독자들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영양소를 편견 없이 골고루 섭취하는 방식을 발견할 수 있도록 충실한 안내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