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989년 볼티모어 소재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후원으로 개최된 정서 혼란에 관한 심포지엄의 강연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을 좀더 늘린 이 글은 그해 12월 『허영의 시장Vanity Fair』이란 잡지에 실리게 되었다. 원래는 파리 여행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시작하려 했다. 파리 여행은 내가 시달렸던 우울증의 진행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잡지사는 나에게 예외적으로 엄청난 지면을 할애해주었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주제를 다루기 위해 이 부분을 버려야 했다. 이 글에서는 그 부분을 서두에 복원시켰다. 비교적 사소한 부분을 첨삭, 수정하기는 했지만 텍스트의 나머지 부분은 처음 실렸던 그대로이다.
『보이는 어둠(Darkness Visible)』(1990)은 영화 <소피의 선택>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윌리엄 스타이런이 경험한 우울증에 대한 솔직하고 통렬한 보고서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문학적 역량을 발휘하던 저자는 1985년 가을 극심한 우울증을 겪게 된다. 그 과정에서 통과하게 된 수많은 감정의 터널과, 그것을 극복하기까지를 담담하면서도 적나라하게 펼쳐 보인다. “시골 동네 전화국이 홍수에 잠겨드는 것처럼” 가라앉기 시작한 자신을 바라보며 느껴야 했던 절망, 또 그것과의 사투, 결국 “절망을 넘어선 절망이자 언어 너머에 있는 어둠”을 바로 보게 되기까지의 체험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우울증은 의지박약의 징후이거나 나약한 정신의 치욕이 아니라 고통으로 인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병이다
1985년 10월 파리에서, 윌리엄 스타이런은 그 동안 혼자 분투해왔던 우울증이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으리란 사실을 깨닫는다. 영예로운 상을 받는 자리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하게 되고,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제가 앓고 있답니다, 정신과적인 문제로”라고 털어놓는 자신을 발견한다. 건강에 대한 믿음과 정신적인 균형을 유지했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이런 말을 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경악하면서 자신의 우울증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낀다.
그는 우울증이 자신의 정신뿐 아니라 육체까지도 파괴시켜가는 것을 매순간 처참히 경험한다. 마침내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모두 사라져버리는 단계에 이른다. 자신의 뇌가 더이상 사고하는 기관이 아니라, 매순간의 고통을 기록하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는 차라리 죽음을 결심한다. 12월의 어느 날, 자살을 실행하려던 그는 우연히 어린 시절 어머니가 흥얼거리던 브람스의 <알토 랩소디(Alto Rhapsody)>를 듣게 된다. 모든 음악에 대해(사실상 모든 즐거움에 대해) 무감각해져 있던 그에게 지난 추억이 밀려온다. 결국 그는 그 모든 추억이 너무나 값진 것임을, 자신이 상처 입힐 수 있는 영역 너머에 있음을 깨닫고 마지막 남은 한 가닥 정신을 추슬러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스타이런은 우울증이 그토록 커다란 파괴력을 가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 병에 대해 오해하고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 우울증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아버지와 우울증으로 자살에 이르렀던 로맹 가리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을 지켜보면서도 이 끔찍한 병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음을 그는 뒤늦게 인식하게 된다. 주위를 맴돌던 우울증에 무관심하였고 그만큼 무지하였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울증이 나약한 정신에서 온다거나,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일반인들의 잘못된 믿음 역시 사람들을 이 병에 무방비하게 한다. 우울증으로 인해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을 주위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스타이런은 우울증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은 의학계 역시 마찬가지라는 사실도 지적하고 있다. “우울증 연구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에 비교한다면, 아메리카는 아직 발견조차 되지 않았다. 우리는 겨우 바하마 군도에 있는 작은 섬에 도착한 셈일 뿐이다”라는 한 의사의 말은 우울증의 설명 불가능한 성격과 치료의 난해함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나는 자기 살해자인 동시에 희생자였으며, 고독한 배우인 동시에 외로운 관객이었다
반 고흐, 버지니아 울프, 로맹 가리, 실비아 플라스, 잭 런던, 어니스트 헤밍웨이…… 자신 외에는 아무도 그 고통을 알지 못하는 치명적인 병, 우울증과 싸우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예술가들이다. 이들이 쌓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동일한 병이 타격을 가하더라도, 누군가는 자멸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
스타이런은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링컨의 경우를 예로 들고 있다. 링컨이 조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반면 그가 젊은 시절에 자살 충동의 소용돌이에 자주 휩쓸려,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을 정도로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어머니와 여동생의 죽음으로부터 파생한 상실감으로 인해 링컨은 이런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스타이런은 링컨의 수많은 업적이 죄의식과 분노와 자살 충동을 극복하게 해준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더라도 친구나 가족의 헌신적인 격려와 보살핌이 없다면 결코 이겨낼 수 없는 것이 우울증이다. 자신이 무가치하게 느껴지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이 끈질기고 열정적으로 생명의 가치를 설득한다면 자살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스타이런은 주장한다. 그 역시 심각한 조증으로 입원했던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결국 우울증의 고통은 자신만의 것이고, 스스로 헤쳐가야 하는 병이다. 동시에, 이 병과 싸워 이겨 회복된 많은 사람들이 입증하듯, 극복할 수 있는 병이기도 하다.
심각한 우울증 상태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마치 제2의 자아가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제2의 자아는 본래 자아가 경험하는 정신적 고통에서 빗겨나 있다. 마치 유령 같은 관찰자와도 같다. 그는 냉정한 호기심을 갖고, 본래 자아가 다가오는 재앙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혹은 어떻게 그 재앙에 휩쓸리기로 결정하는지를 지켜본다. 이 모든 행위에는 연극적인 요소가 있다.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이 멜로드라마 같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나는 자기 살해자인 동시에 희생자였으며, 고독한 배우인 동시에 외로운 관객이었다.(본문에서)
죽음의 올가미만큼 짧고, 죽음의 올가미처럼 마음을 잡아채는 책
쇠약해가는 영혼을 생생히 그려낸, 주목해야 할 책이다. 모든 것을 숨김없이 털어놓고 소리내어 읽어야 할 것 같은 처절한 문장들과 마주친다.―『뉴욕 타임즈』
생을 직시한 한 인간의 용기와 작가적 역량이 빚어낸 수작. 스타이런은 우울증의 심리적 풍광과 그것을 극복한 길을 모두 그려내 보인 최초의 작가이다.―『잉그램』
죽음의 올가미처럼 짧으면서도 마음을 잡아채는 책. 진지함 속에서 거대한 울림을 준다. 이렇게 짧은 글 안에서 이만한 감동을 주기란 쉽지 않다.―『뉴스위크』
윌리엄 스타이런(William Styron)
1925년 미국 버지니아 출생. 1951년 『어둠 속에 눕다(Lie Down in Darkness)』로 데뷔했다. 그후 「긴 행진(Long March)」(1956) 『이 집에 불을 질러라(Set This House on Fire)』(1960)를 발표했고, 흑인 노예의 삶을 다룬 『냇 터너의 고백(The Confessions of Nat Turner)』(1967)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아메리칸 북 어워드(American Book Award)를 수상한 『소피의 선택(Sophies Choice)』(1979)은 아우슈비츠에서 아이를 잃고 살아남은 폴란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이 인간에게 미친 잔혹한 영향을 그려내고 있다.
옮긴이 임옥희
경희대 영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여성과 광기』 『신화와 의미』『티핑 포인트』 『아름다운 선택』 『독서가 어떻게 나의 인생을 바꾸었나?』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2002년 9월 2일 발행/변형국판 양장
* ISBN 89-8281-559-7 03840
* 사륙판 양장/112쪽/6,800원
* 담당편집 : 김이선, 손미선(927-6790~5, 내선 202, 212)
죽음의 올가미만큼 짧고,
죽음의 올가미처럼 마음을 잡아채는 책
"나는 자기 살해자인 동시에 희생자였으며,
고독한 배우인 동시에 외로운 관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