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지어준 자야(子夜)라는 이름은 이 세상에서 우리 둘만이 알고, 오직 우리 둘만이 서로 통하는 나의 애칭이 되었다. 이 세상에서 그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분은 오직 백석, 당신뿐이다.
1. 시집『사슴』(1936)의 시인 백석(白石), 그의 연인 김자야가 50여 년 만에 털어놓는 백석의 삶과 사랑
백석은 자야의 노래에 묻혀난다 자야는 백석의 시에 묻혀난다 황토색 짙은 서정으로 30년대 우리 시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시인 백석(白石:1912∼?). 베일 속에 싸인 그의 20대 시절을 회고한 김자야(金子夜:1916∼)여사의 회고록 『내사랑 백석』이 출간되었다. 백석시인과 자야 여사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백석 시인이 아끼고 사랑했던 김자야야 여사가, 백석과의 러브 스토리를 애틋한 어조로 복원한 것이다. 현재 팔순 가까운 노구인 자야 여사는 백석시인의 영원한 연인으로서, 시인 백성의 꾸밈없는 인간적인 품성과 자상하고 섬세한 마음씨, 30년대 문우들과의 교우관계, 그리고 그의 시가 발산하는 애틋한 정조의 이면 등과 함게 반백년을 넘어서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자야 여사의 백석 시인에 대한 긴긴 그리움을 물속처럼 투명하게 보여준다.
2. 미스테리로 남아 있는 백석의 삶 복원!
한국 현대문학사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시와 산문, 그리고 소설과 번역물을 남긴 백석은 애당초 소설가로 출발하여 시인으로 돌아선 당대 최고(最高) 시인이었다. 오랜 세월 국토분단이라는 수렁 속에 월북작가가 아니면서도 월북작가 이상으로 부당하게 취급되어 오다가 해금된 지 어언 8년, 이미 시중에는 『백석시선집』(1987)을 비롯하여 백석의 일댁를 종합적으로 추적 복원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1994)이 간행되어 독자들이 자유롭게 백석의 시를 읽고 백석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sfur 가운데서도 미진한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왜 만주로 갔는지, 멋쟁이였던 모던 보이가 어떻게 토속적인 시를 쓸 수 있었는지, 그의 시에 나오는 나타샤, 당신, 고흔 당신, 허준 같은 이는 누구인지, 어떤 친구가 있었는지, 함흥 영생고보는 왜 그만두게게 되었는지, 그의 성격은 어떠했는지, 이 모든 궁금증은 그의 시를 연?는 데 귀중한 단서가 되는 것들인데 지금까지 상당 부분이 미스테리로 남아 있어서 뜻있는 독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같은 궁금증에 대한 답변이 될, 『내 사랑 백석』은 애틋한 러브 스토리로서 뿐만 아니라 백선 연구의 보조 텍스트로서의 그 의의는 각별하다.
3. 이 책이 집필되기까지 이 책의 산파역을 담당했던 이동순 시인에 따르면(「아름다운 인연, 아름다운 족적」), 원고 집필 경위는 한편의 소설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1987년, 이동순 시인은 『백석시전집』을 펴낸 지 얼마 안 되어 연구실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발신자는 단정하고 기품있는 음성의 할머니이었는데, 자신은 "20대 초반, 어여쁘던 처녀 시절에 함경도 함흥에서 시인 백석과 처음 만나서 뜨거운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이후 3년간 서울 청진동의 한 작은 집에서 혼례를 치르지 않은 부부로서 함께 산 적이 있노라."고 말했다. 대뜸 모든 내력을 알아차린 이 시인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곧 상경하여 그 할머니를 만난다. 자신을, 백석 시인이 지어준 아호 자야(子夜)로 불러달라고 말한 그 할머니는 백석 시인과 관련된 한많은 생애을 조용히, 상기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그녀가 구구절절이 쏟아놓는 지난 시절의 반작이는 사연들을 보면서, 그녀의 추억 속에 너무도 큰 부피로 깃들어 있는 백석 시인을 흠뻑 느낄 수 있었다며, 이동순 시인은 그 당시 심정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동시에 함흥 시절에 쓴 백석 시의 애틋함과 고뇌와 갈등 따위가 일시에 정돈된 풍경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토록 존경하고 흠모하던 한 선배시인의 풍모와 채취를 새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회에 나는 몹시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버렸다." 그는 일차로 자야 여자가 굽이굽이 펼치는 백석 시인과 관련된 생애를 엮어서 『창작과 비평』(통권 59호)에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다. 이 글이 발표된 이후에도 이동순 씨는 미진한 감과 함께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특히 자야 여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 백석의 인간적인 풍모에 관한 기술이 생기를 얻지 못해 미흡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다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야 여사에게 틈틈이 백석의 3년 동안을 정리해보기를 강권하다시피 권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야 여사는 이미 1930년대 중반 파인 김동환이 발간하던 잡지 『삼천리』지에 수필을 발표한 바가 있었고, 한 때 기생의 신분이긴 했으나 일본 유학까지 갔다온 인텔리 여성에다가 1953년 만학으로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까지 졸업한 학구파였다. 자야 여사가 이 원고에 쏟아부은 고공력과 노고는 대단한 것이었다. 1992년 봄부터 이후 4년간이나 쉬지 않고 틈틈이 계속된 집필이었다. 그렇게하여 이동순씨는 200자 원고지 앞뒤에 종서로 빽빽하니 써내려간, 낭군 백석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의 원고를 받아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자야 여사는 이미 팔순이 가까운 노구였다. 그녀는 이 글을 쓰면서 때때로 밤을 새우기가 여러 번, 심지어는 건강에 무리가 왔고, 이로 말미암아 두어 차례 입원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내 사랑 백석』은 그야말로 난산(難産)이었다.
4. 내용, 그리고 가치
26살 청년 시인 백석을 만났을 때, 자야 여사는 22살이었다. 그로부터 3년간이 사랑의 절정기였다. 그러다가 백석이 돌연 만주 신경으로 떠났고, 자야 여사는 짝잃은 외기러기 신세가 되었다. 백석을 향한 순정을 온전히 간직한 채 어느덧 팔순의 눈앞에 둔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었다. 생사조차 확인할 길 없는 북녘 땅의 낭군을 그리는 이 팔순 소녀의 마음은 그때 그 시절 그대로 순수하고 맑다. 그러나 그녀의 순정은 단순한 순애보로 취급해버릴 수만 없는 애틋한 곡절이 있다. 자야 여사의 삶을 주(主)로 하면서 백석과의 살가운 애정행각을 집중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은 크게 새부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1부 자야 여사의 성장기, 2부 백석과의 행복했던 3년, 3부 팔순에 가까운 현재의 자야 여사가 그것이다. 그리고 말미에는 시인 이동순의 발문과 백석 연보가 덧붙여져 있다.
1)문학 기생진향 먼저 <1부 운명>에서는 자야 여사 자신의 성장기를 들려준다. 어린시절, 불우한 집안사정, 기생으로의 입문, 일본 유학, 귀국, 함흥에서 백석과의 운명적인 만남까지가 애절한 필치로 그려진다. 1916년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나 일직 부친을 여의고 할머니와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한 그녀의 집안은 금광을 한다는 친척에게 속아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되자, 1932년 당시 열여섯살의 나이로 조선 권번에 들어가 기생으로 입문했다. 기명은 진향(眞香)(그래서 그녀의 이름을 김진향이라고도 함). 그곳에서 조선 정악계의 대부였던 금하 하규일 선생 문하에서의 여창가곡, 궁중무 등을 배운다. 그런 가운데 그녀는 『삼천리』지에 수필을 발표하여 문학기생으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1935년, 조선어학회 회원이었던 해관 신윤국 선생의 후원으로 일본 유학을 떠난다. 그야말로 주경야독을 하면서 공부하던 중, 해관 선생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면회차 서둘러 귀국한다. 하지만 면회가 안된다는 말을 듣고 근는 함흥땅에 주저 앉는다. 1936년 가을, 근는 궁리 끝에 자신이 그렇게도 싫어했던 기생복색을 입고 함흥 권번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오로지 은인이신 옥중의 해관 선생을 만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한 그녀의 생각은 의외로 단순하다. 기생이 되면 큰 연회 같은 곳에 나갈 수 있고, 그러면 함흥 법조계의 유력한 인사들을 만나서 해관 선생님의 특별면회를 신청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해관 선생은 만나지 못하고, 1936년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와 있던 백석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그 사이사이에 당시의 시대상황, 풍속, 일본 인상, 그리고 기생의 ?를 다룬 기생약전이 언급되어 있다. 특히, 기생 사회의 흥망성쇠, 일제하의 기생들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인 기생약전은 왜곡된 인식에 근거한 우리네 기생상을 바로잡아준다. 비록 일제의 말살정책에 의해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기생은 바로 한국의 전통 궁중 가무의 개척자요, ?자였다고 그녀는 힘중 말한다. 주산월, 이난향, 김수정 등의 명인이 모두 기생이었다. 스승 하규일 선생의 일대기와 악보를 채록한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을 출간하기도 했던 그녀 역시 생존해 있는 가무의 명인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일제에 의해 기생 사회의 미풍양속이 깡그리 압살되어버리기까지, 역사의 명암을 낱낱이 지켜본 그녀의 충정어린 외침은 곳곳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2) 백석과의 만남, 사랑, 그리고 이별 <2부 당신의 자야>는 백석과의 사랑, 그리고 이별의 슬픈 기록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백석이 지어준 아호 자야에 얽힌 이야기, 백석 제자의 회고를 통해 본 당시 영생고보 영어교사 시절 모던 보이 백석의 풍모, 청진동 시절, 백석의 세 번에 걸친 결혼, 자야 여사의 방황, 영생고보를 그만두게 된 경위, 백석의 세 친구들, 문단풍경, 만주 신경으로 떠나가는 백석, 백석의 시 속에 투영된 그들의 애절한 사연 등이 자야 여사의 고풍 스런 문투에 실려 감칠맛을 더한다. 백석 시 속의 자야 / 시인 백석의 면면들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에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함흥영생고보의 영어교사로 부임하는 백석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때 약관 26세인 백석은 일본유학을 다녀온 준재로, 그해 초 『사슴』이라는 시집을 발간한 신진 시인이었다. 한 번 당겨진 그들의 사랑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다. 함흥에서 서울 청진동으로, 다시 명륜동으로 두 사람은 거처를 옮겨가며 절절한 사랑을 나눈다. 사실 그들은 혼례만 안 치렀지 부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1938년 백석은 부모와의 불화, 봉건제도에의 염증 등으로하여 자야에게 함께 이 땅을 떠나 만주로 가자고 제의한다. 하지만 장는 갈등 끝에 서울로 도망친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교직을 그만두고 뒤따라온 백석과 재회하고 청진동에 살림을 차린다. 그런 가운데 백석이 부모의 강권에 의해 강제 결혼을 하게 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녀는 방황한다. 자신이 백석의 앞길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한 장는 백석으로부터 떠나고자 결심한다. 그녀는 또다시 집을 옮겼고, 1939년 백석은 홀로 만주 신경으로 떠난다. 그러나 이같은 사랑의 이야기는 단순한 러브 스토리 차원을 뛰어넘는다. 독자들은 그들의 사랑과 고뇌와 갈등 따위를 통해, 백석 시에 관해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 분의 시작품 가운데는 꽃답고 영롱한 두 침자가 고스란히 살아 있고, 청순한 순정과 격렬한 정열의 너그러운 미소가 변함없이 남아 있습니다."(「지은이 말」)는 자야 여사의 회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백석의 시 「바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등에 흐르는 애틋한 정조의 실체는 바로 그들의 애정행각을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했다 백석의 자야를 그리는 마음은 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 「바다」에서,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같이 당신을 생각하고 싶구려"나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같은 구절에서의 당신, 「이렇게 외면하고」 중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흔 당신을 사랑한다"에서의 살틀하던 동무, 잠시 자야와 떨어져 지낸 백석의 자야를 향한 심정을 잘 보여주는 시「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중의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라든지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 /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 /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같은 구절에서 의문의 인명 나타샤 등등은 다름아닌 자야 여사를 두고 한 말이다. 또한 마지막 발표시인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이런 구절,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에서도 아내는 자야 여사를, 아내와 살던 집은 그들이 동거했던 청진동집을 두고 한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외면하고」의 시구절 중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에서 넥타이는 자야 여사가 사준 넥타이를 말한다. 그리고 그는 억양이 짙은 평안도 말씨를 썼는데, 이러한 그의 말씨는 시집 「사슴」에 그대로 쓰이고 있어서, 자여 여사는 "이 시집을 읽으면 꼭 당신의 음성을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는 사실이라든지, 매사에 깔끔한 성격이었던 백석이 육류보다는 나물 반찬을 좋아했고, 심한 결벽증에, 남에게 신세지기 싫어하는 반면, 일단 문학에 관한 화제애서만큼은 눈빛을 반짝이며 이야기했다고 한다. 또한 자야 여사는 백기행(白夔行)이라는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백석의 이름 외에 또하나의 이름을 제시한다. 한동안 시골에 가 있던 백석이 청진동으로 부쳐온 편지의 겉봉에는 늘 백기연(白基衍)으로 씌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의사이며 수필가인 정근양, 소설가 허준 등의 친구 이야기, 친구 허준을 시화한 시 「허준」에 얽힌 사연,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복잡한 가정사와 봉건적 관습"을 피해, 그가 만주 신경으로 옮겨간 이유하며, 함흥 영생고보를 그만두게 된 사연이 결국 자야 때문이었다는 것, 예컨대 조선축구학생연맹전 대표선수 인솔교사로 서울에 왔다가 학생들은 여관에 투숙시켜놓고 인솔교사인 그는 정작 청진동 자야 여사의 집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 일로 학교가 발칵 뒤집혔고, 그는 그해 여름방학을 때맞춰 사직하고 자야가 사는 서울로 옮겨왔다는 등의 진술 역시 흥미를 더한다. 자야(自夜)는 당시선집(唐詩選集) 『자야오가(子夜吳歌)』를 보고 당시 백석이 그녀에게 지어준 아호.
3) 팔순 소녀의 애절한 순정 <3부 흐르는 세월 너머>에는 백석의 시를 어루만지며 그들의 젊은 시절과 지금 생사조차 알길 없는 백석을 그리워하는 자야 여사의 애틋한 정이 흥건하게 고여 있다. 여든살의 청년 백석을 꿈꾼 이야기, 백석의 시를 통해 백석을 그려보는 그녀으 살들한 그리움, 백석은 월북 시인이 아니라 재북시인이라는 것, 제 손으로 백석의 시선집을 펴내겠다는 신념으로 동분서주했다가 뜻밖에도 한 후배 시인에 의해 발간된 『백석시전집』을 가슴에 안고 느꼈던 감격, 그리고 백석의 고희를 맞아 쓴 그녀의 편지는 이제 팔순에 가까운 골?이지만 아직도 영롱한 그때 그 시절 그대로의 순정을 보여준다. 5.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그리고 백석 연구의 보조자료 한 인간에게 있어서 지난 시절의 추억을 다시금 돌이켜 되새기는 일이란 얼마나 가슴 쓰리고도 아름다운 일인가. 백석의 영원한 연인 자야 여사가 반세기의 세월을 거슬러올라가 복원한 이 회고록은 자야 여사와 백석 시인과의 살가운 러브 스토리도 자못 흥미롭지만, 자신이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슬픈 이야기도 우리 가슴을 진한 감동으로 몰고 간다. 그리고 백석 시인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그녀의 관찬을,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백석의 인간적인 면모와 시 속에 깃든 그들의 사랑을 통해 백석 시가 발산하는 애틋한 정조의 비밀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어서, 이 책은 백석의 시 연구에 필요한 보조자료로서으도 그 가치는 만만찮다. 노년의 시간이 한가롭고 무료해서 그 옛날 정다웠던 백석의 시를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는 자야 여사, 백석의 시는 자신의 "쓸쓸한 적막을 시들지 않게 하는 맑고 신선한 생명의 원천수"라고 말하는 그녀는 이 책을 내는 것이 일생일대의 큰 기쁨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자야 여사 자신만의 기쁨이겠는가. 이 책의 출간은 시인 백석과 백석 시에 대한 새로운 연구 자료를 얻게 된 우리 모두의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이동순 시인은 "자야 여사의 문체는 1930년대식 어법과 문형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당시의 진기한 어휘나 고전적 문투 등의 이채로운 언어습관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며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를 짚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