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과 짐작을 불허하는 놀라운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는 『가아프가 본 세상』은 독자의 넋을 빼앗고 소설의 재미를 만끽하게 하는 작품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시종 무릎을 치게 만드는 소설의 웃음은 위선의 가면에 대한 냉정한 응시이며, 마침내 인간 진실의 파노라마 앞에 우리를 세운다. 놀라움과 웃음 그리고 진실은 이 소설에서 하나이다. 그리고 조금만 돌아보면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참모습이기도 하다.
욕정에 대한 혐오로 남자와의 관계를 기피하던 간호사 제니 필즈는 전쟁중 뇌를 다쳐 어린아이처럼 퇴행해버린 병상의 군인에게서 순수한 관계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 두 사람의 단 한 번의 기이한 섹스로 태어난 T. S. 가아프. 그는 레슬링 선수로, 작가로 성장한다. 그가 본, 가망 없는 환자들로 가득 찬 세상 이야기에는 어느 누구도 몸을 숨길 데가 없다. 자서전 『섹스의 이단자』를 펴낸 가아프의 어머니 제니는 여권운동의 지도자로 떠받들려지고, 강간당한 소녀를 동정하여 스스로 혀를 잘라버린 급진 여성들이 주변을 둘러싼다. 욕정 혹은 성(性)이라는 통제 불능의 괴물은 콘돔, 결혼, 외도, 질투, 사고, 죽음, 강간, 성전환, 폭력, 암살 등 숨가쁜 파노라마로 가아프를 압박한다. 소설 속의 소설가 가아프는 글쓰기로 그 압박에 저항하지만 그는 그렇게 죽을 운명이었으며, 그가 최후까지 본 세상에서는 "우리 모두가 가망 없는 환자들"이었다.
인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다면, 가아프의 눈으로!
"슬프게도 인생이란 훌륭하고 정통적인 소설처럼 구성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는 주인공 가아프. 그가 본 세상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무언가 하나씩은 결핍되어 있다. 남자를 거부한 어머니 덕분에 아버지가 없는 가아프와 어머니가 집을 나간 헬렌(이들 부부는 사고로 아들을 잃는다), 타의로 혹은 자의로 혀가 잘린 여성들, 남편 없이 혼자 아들을 키우는 랄프 부인…… 이들이 만들어가는 세상, 이들이 살아가는 삶에서 가아프는 사랑하는 누군가가 사고를 당할까 언제나 노심초사한다. 그러나 그의 이런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불행한 사건들은 다 일어난다―암살과 강간, 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그리고 그 자신의 죽음.
그렇다면 가아프가 삶에 기울인 노력, 세상에 맞서 안간힘을 쓰며 지키려 했던 많은 것들은 가아프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모두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존 어빙은 죽어가는 가아프를 통해 "걱정하지 마. 가아프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니까, 내 말을 믿어. 혹시 아주 운이 좋으면, 때로는 태어난 다음에 섹스가 있어!"라고 말한다. 가아프 이후의 삶에서도 죽음과 불행은 이어지지만 가아프가 남겨놓은 추억과 정열은 남겨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다.
우리들은 모두 가망이 없는 환자들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가능한 한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나는 비극과 희극이 상반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어떤 일이 우습고도 동시에 슬플 수 있다고 생각하며,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다고 해도 풍요하고 정력적인 삶은 손상되지 않는다고 믿어요. 죽음이란 무섭고 마지막이고 흔히 너무 일찍 찾아오기 때문에 행복한 종결이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겸손한 비웃음이나 유치한 절망의 원인이 될 수는 없고, 목적 의식을 지니고 열심히 살 강렬한 자극제일 따름이죠.
-「존 어빙과의 대화」(소설가 토마스 윌리엄스가 진행한 인터뷰, 뉴욕타임스 북리뷰) 중에서
모든 사람을 영원히 살아가게 하려는 거대한 열정!
『가아프가 본 세상』은 가아프가 살았던 33년에 대한 냉정한 기록이다. 비정한 세상에 맞서고자 했던 가아프의 열정은 우리에게 삶과 세상을 돌아보게 만든다. "저녁에 허리를 잡고 웃다가도 이튿날 아침은 살인적일 수 있"는 가아프가 본 세상은 바로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이기도 할 것이다.
『가아프가 본 세상』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는 주인공 가아프와 작가 존 어빙의 유사점을 발견하는 것이다. 1940년대 초반에 태어났다는 점, 소설가라는 점(『가아프가 본 세상』에는 존 어빙이 쓴 단편소설 두 편이 실려 있다), 레슬링 선수와 코치를 지냈다는 점에서 둘은 매우 비슷하다. 고집스러움과 괴팍함과 열정 또한 닮았다. 그러나 존 어빙은 지금까지 꾸준히 훌륭한 소설들을 발표하며 건강하고 정열적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한 <사이더 하우스 룰스>로 아카데미 각색상(2000년)을 받기도 했다.
독자의 넋을 빼앗고 소설의 재미를 만끽하게 한다!
어빙의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