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등단 이후 활발한 작품활동으로 두 권의 장편소설 『아크로폴리스』『모리슨 호텔』과 창작집 『바그다드 카페에는 커피가 없다』를 냈던 신세대 작가 김경욱의 두번째 소설집.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와 독특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여덟 편의 중단편을 모았다.
작가는 PC통신과 록 음악 가수들,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들을 자유자재로 소설에 도입하며, 섹스와 마약, 죽음의 세계를 현실 안으로 거침없이 끌어들인다. 영화와 록 음악, UFO는 물론 화성에 이르기까지 거침없는 상상력을 펼쳐 보이며 새로운 소설 문법을 시도하고 있는 김경욱의 두번째 소설집은 지금-이곳과는 다른 공간과 시간의 존재에 대한 열망과 믿음의 차가운 변주이다. 그의 소설은 섹스와 마약과 죽음 그리고 의식의 분열과 상실이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 완벽한 익명성이 존재하는 곳을 끊임없이 손짓한다. 무기력한 삶과 파편화된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는 그의 소설은 독특한 상상력과 범상치 않은 주제로 인한 전혀 다른 차원의 운명을 경험케 한다.
표제작 「베티를 만나러 가다」에서 주인공 나는 매일 아파트 창문을 통해 그녀를 주시한다. 그리고 익명의 공간 PC 대화방을 통해 매일 밤 그녀와 접속한다. 누군가와의 연결을 갈구하는 나는 현실에서 그녀를 만나기를 원하지만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또 다른 소설 「변기 위의 돌고래」의 주인공 나는 직장에서 잘 나가는 아내와 결혼 7년째. 승진에서 탈락하고 성적으로 불완전한 가운데 주눅든 삶을 살아간다. 무기력이 찾아올 때면 화장실 변기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삼류영화를 보러가는 버릇이 생겼다.
그는 침대에서 만나는 아내의 등을 보며 갑자기 등푸른 돌고래를 연상한다. 예전에 사랑했던 광고 모델을 찾아가지만 허탕치고 만다. 결국 그의 휴식처인 화장실 변기에 앉아 삼류극장의 <그랑부르> 포스터를 떠올린다. 자유롭게 푸른 대앙을 헤엄치는 한 마리 돌고래가 바로 자신이 아닌가 하는 착각과 함께.
현실이 강요하는 고립과 상실감에서 주인공들은 무엇인가와 접속하고, 어디엔가 연결되고 싶어하는 극도의 갈망을 느낀다. 그것이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아웃사이더로서의 인생이다. 그것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면 통신을 통해, 영화를 통해서라도 그것을 느끼고자 하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누구나 베티를 만나러 갈 수 있다. 그리고 누구도 베티를 만날 수 없다. 베티는 애인이면서 창녀이고 삶이면서 죽음이고 희망이면서 절망이고 천사이면서 악마이고 과거이면서 현재이고 지구이면서 화성이고 찰리 채플린이면서 올리비아핫세고 영웅본색이면서 천국보다 낯선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_김경욱
김경욱은 영화적 비유가 없으면 답답해하고, 팝 뮤직의 소음이 없으면 상상력의 한계를 느끼는 문화인이다. 그의 소설 속에서는 수혈받은 피나 군살이 아니라 자생적인 피나 속살로 영화나 음악이 존재하고 있다. 그는 영화처럼 슬퍼하고, 음악처럼 외로워한다. 그래서 영화나 음악은 인용이 아니라 체험이 된다. 김경욱은 그것들을 보거나 듣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함께 산다. _김미현(문학평론가)
이 소설집에서 김경욱은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뚜렷한 양상은 영화나 록 음악이 소재나 취향이 아니라 그 차제가 소설의 문법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나 록 음악의 문법 자체가 소설 문법과 얽히고 서로 침범하여, 소설 문법을 파괴하고 변형시키는 동시에 그 결과로 하나의 새로운 소설 문법을 발견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시점에서 영화나 록 음악은 현실을 반영하는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이제 현실의 일부가 된다. 그것은 삶 속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을 인식하는 동기이며, 나아가 그것 자체가 사건들이 되기에 이른다. _손정수(문학평론가)
지은이_김경욱
1971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99년 같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 아웃사이더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4년 단편소설 장국영이 죽었다고?로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바그다드 카페에는 커피가 없다」「베티를 만나러 가다>,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장국영이 죽었다고?>와 장편소설 <아크로폴리스>, <모리슨 호텔>, <황금사과>, <천년의 왕국> 등이 있다.
•초판 발행 | 1999년 1월 20일 | ISBN 89-8281-1567 03810
•210*148 | 364쪽 | 1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