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읽기의 전범을 보여주는 김윤식 교수의 작가론 출간!
한국 근대문학 연구가이자 가장 활발한 현장비평가인 김윤식 서울대 교수의 작가론이 출간되었다. 한국 지성사에서 전무후무한 다산성 비평가로서 젊은 작가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김윤식 교수의 이번 작가론은 90년부터 95년까지 만 5년 동안 쓴 글을 묶어낸 것으로 최인훈부터 신경숙, 윤대녕에 이르기까지 총 16명의 작가들을 특유의 논법으로 분석한 비평 19편이 실려 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할 만한 작가들의 90년대 발표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씌어진 이 글들은 꼼꼼하고 날카로운 소설 읽기의 전범을 보여주는 한편 현장비평의 생생함과 활달함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작가에 대한 애정과 작품에 대한 매혹이 어우러진 비평집
『한국근대소설사연구』, 『한국현대현실주의소설연구』, 『작가와 내면풍경』, 『90년대 한국소설의 표정』, 『김윤식의 소설 읽기』 등 주요 저서만을 언급하더라도 한국문학 연구가로서 그리고 문학비평가로서 최고의 명성과 업적을 짐작할 수 있는 김윤식 교수는 매달 월평을 쓸 만큼 모든 작품을 가장 성실하고 꼼꼼하게 읽는 비평가로 공히 인정받고 있다.
작가에 대한 애정과 작품에 대한 매혹을 솔직히 밝히고 있는 머리말에서처럼 김윤식 교수는 작가는 미련한 인간과 전지전능한 신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존재라는 인식하에 세밀하게 읽은 작품 속에서 내가 인간이 되고 또 신이 되는 순간을 체험하는 가슴 설레임을 소설 읽기의 커다란 매력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매력과 설레임이 집중하여 이루어낸 이번 작가론은 최인훈, 박완서부터 최근의 젊은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따뜻한 애정과 날카로운 비평을 동시에 한데 모은, 그야말로 심해와도 같은 텍스트의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깊이 있는 평론집이라 아니할 수 없다.
16명의 작가론과 부록으로 구성된 20편의 빼어난 평글
이번 평론집은 우리 시대의 가장 주목받는 작가 16명에 대한 작가론과 부록 「전혜린 재론-60년대 문학인식의 종언」 등 총 20편의 평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최인훈론」과 「박완서론」에서 장편소설 『화두』에 대해서는 특유의 주·객 논법으로,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대해서는 소설이라는 글쓰기는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으로 각각 집중 분석하면서 장편 『화두』를 꿰뚫고 있는 기억이 나 자신이며 바로 신이라는 명제의 문학적 의미를 밝히고, 기억에 의한 글쓰기, 순전히 기억에만 의존하는 글쓰기로서의 소설의 철저한 구성으로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의의를 심도 있게 보여준다. 소설의 형식으로서의 기억과 회고를 통해 자기를 질료로 하는 글쓰기란 고백체 형식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자기 주변의 역사화로 극복해 나간 이청준의 소설적 싸움을 분석하고 있는 「이청준론」,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인 벌교라는 특수지역이 갖는 그 별난 의미공간을 엿보면서 『태백산맥』의 고유한 세계와 묘사의 전형성을 밝혀내고 있는 「조정래론」, 그리고 『달궁』에서 『봄꽃 가을열매』까지 선험적 고향 상실의 문학으로서의 「서정인론」, 기억 속에서만 구원이 가능한 세계로서의 환멸소설의 일종인 「겨울의 환」에 대한 독특한 독법을 보여주는 「김채원론」 등의 평글들은 김윤식 소설 읽기의 정수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의 문학사적 혜안과 문학이론에 관한 인식의 탁월함에 탄복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어 계속되는 「김원우론」, 관념소설의 묵시론적 기법과 신앙과 문학의 관계를 3편의 평론을 통해 집중 분석하고 있는 「이승우론」, 그리고 「윤후명론」 「최수철론」 「김훈론」 등의 평론들 역시 임윤식 교수의 집요하리만치 꼼꼼하고 날카로운 작품 읽기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데 손색이 없다.
젊은 작가들에 대한 애정과 대화적 상상력
평론집 『작가와의 대화』에서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한국문하계의 대가이자 원로이신 김윤식 교수의 30대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애정어린 글읽기이다. 발표되는 모든 작품을 다 읽어내는 김윤식 교수의 문학적 열정이야말로 비평의 가장 중요한 미덕일 것임은 말할 나위 없겠지만, 젊은 작가들에게 그것은 작가 자신의 문학적 자리매김을 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점을 또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구효서, 하창수, 신경숙, 윤대녕, 김소진 등 한국소설의 오늘과 내일을 이끌어갈 대표적인 30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그 세목마다 예리한 시각으로 읽어내려가면서 특유의 논법과 독법으로 파고든 시원스런 작가론은 한국문학의 현주소를 가늠하는 데 지침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더욱이 「不在를 견디는 독특한 문체」와 「시원을 찾아 거슬러가는 생리적 상상력」이라는 제하의 2편의 신경숙, 윤재녕과의 대담은 작가에 대한 친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에 대한 세세한 지적과 깊은 통찰을 보여주고 있어 값지다.
작가와의 대담이든 평자가 자신을 이원화(주·객)하여 대화를 나누든 간에 이 비평집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일방적이고 일관적인 해석방식을 택하지 않고 대화 형식을 통해 보다 풍요로운 해석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작품의 다성적 울림에 대응하는 비평적 다성성의 추구라고 할 수 있는 이 새로운 글쓰기 방식은 대화적 상상력이 비평에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좋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한편 말미에 수록된 부록 「전혜린 재론-60년대 문학인식의 종언」은 60년대 글쓰기의 한 전형을 보인 글로서 저자의 각별한 애정이 담겨 있음을 느끼게 한다.
김윤식 교수의 현장비평은 이 시대의 문화적 장관의 하나
박학한 지식과 총체적 인식과 화롯불처럼 뜨거운 진지성과 열정, 또한 진정한 글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두철미한 탐구, 가히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하고 날카로운 현장비평으로써 많은 작가들의 내면에 문학적 의미를 심어주고 있는 김윤식 교수. 문학평론가 권성우의 언급처럼 비평행위에 대한 민감한 자의식, 놀랄 만한 성실한 독서, 풍부한 인문학적 교양, 예리한 작품분석으로 채워진 김윤식 교수의 왕성한 현장비평은 이 시대의 문화적 장관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한 현장비평의 진수만을 골라 한데 엮은 평론집 『작가와의 대화-최인훈에서 윤대녕까지』는 명쾌하고 유익한 평론의 세계로 독자를 끌어당기고 유혹하기에 충분한 값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