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리얼리즘 정신의 태두, 구중서 교수의 평론집 출간
우리 시대 민족민중문학 진영의 대표적인 이론가이자 실제 비평 분야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거둬온 구중서(具仲書) 교수의 평론집 "문학과 현대사상"이 출간되었다. 그간 민족 문학, 리얼리즘 등 한국 문학의 중요한 쟁점이 생길 때마다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맏대응해온 구중서 교수의 면모는 이번 평론집에서도 그 항심(恒心)의 올곧은 필치로 여실히 입증되고 있다. 이번 평론집 "문학과 현대사상"에서 구중서 교수는 90년대 들어 우리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그 여파로 운위되는 문학의 위기와 같은 새로운 변화에 대해서 시종일관한 리얼리즘의 정신으로 대응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위시한 서구 현대사상에 대한 냉철한 대응
특히 이 책의 표제이자 책의 서두에 실린 「문학과 현대사상」은 한마디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필자의 입장을 정리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구중서 교수는 알튀세르, 푸코, 데리다, 존 설, 하버마스, 월러스틴 등 포스트모더니즘과 연관되는 서구 현대 사상가들의 이론을 고찰하면서 불안정하고 해체지향적인 논자들보다는 합리적 의사소통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사회 건설을 모색하는 하버마스의 견해에 공감을 표한다. 아울러 그는 90년대 들어 우리 문학의 신예로 부상한 윤대녕과 구효서의 작품을 논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이론적 모색을 실제 작품 속에서 구체화한다. 그는 이들 작가들을 "90년대 작가 중 가장 문체가 세련된" 작가들로 평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들의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허무의식과 글쓰기의 어려움의 문제를 주제의식의 허약이라는 관점에서 약점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구중서 교수의 이러한 평가는 단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90년대 들어 회복한 문학 본연의 아름다움인 세련된 문체가 인간의 자기 긍정과 보편성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문명적 대안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그의 간절한 기대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전체 5부로 구성, 리얼리즘의 심해 탐험
평론집 "문학과 현대사상"은 전체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문학과 현실>에서는 위에 언급한 「문학과 현대사상」외에 김동리 문학의 근대성 부정을 출발점으로 삼아 사회주의 와해라는 세계사적 변동기에 우리 문학의 근대성과 탈근대성을 논구한 「세계현실의 변동과 한국문학」, 1996년 문학의 해를 맞이하여 우리 문학의 발전을 모색한 「시대를 책임지는 문학」 등 급변하는 현실 상황 속에서 우리 문학의 진로를 모색한 글들이 실려 있다. 제2부 <시를 위하여>와 제3부 <인간과 구원의 문학>에서는 한무숙, 신경림, 정희성, 구상 시인과 90년대 시인들에 대한 구체적 작품 분석이 수행된다. 제4부 <한국 소설의 전통연구>는 구중서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으로서 "금오신화" "홍길동전" "허?전" "춘향전" 등 고전소설들의 사회의식을 리얼리즘의 특성으로 보고 현대 리얼리즘 소설과의 발전적 연관을 모색한 글이며, 제5부 <부록/한국 현대 리얼리즘문학 논쟁>은 지면관계상 리얼리즘을 옹호하는 논문들만을 추려 모은 것이지만 구중서 교수가 일관되게 옹호하는 리얼리즘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일반 독자들이 잘 알 수 있게 하는 글이다.
30년의 비평 생애를 집약하는 평론집
구중서 평론 30년을 정리하는 이 평론집은 한마디로 그 동안 한국문학이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오늘은 어떠한 모습으로 있고 내일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한눈에 알게 하는 중요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구중서 교수의 이번 평론집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시대와의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얼마나 부지런히 국내외 첨단이론과 작품들을 읽어내고 있는지, 그리고 변화의 와중에서도 결코 흔들림 없는 자세를 견지하는 힘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