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조높은 스위스 문학의 정수, 스위스 비평가 협회 선정 최고 작가상 수상작!
금세기 독일어권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헤르만 헤세에서 막스 프리쉬로 이어져 내려온 격조높은 스위스 문학의 참다운 계승자로 평가받고 있는 마르쿠스 베르너의 장편소설 『아버지의 연인』(원제:본토 Festland)이 출간되었다.
독일어권의 각종 문학상을 휩쓸면서 현대 스위스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는 마르쿠스 베르너의 소설은 독자의 감동을 치밀하게 조준한 정교한 언어 선택과 차분한 절제의 문체 미학, 그리고 탄탄한 이야기 구조에 곁들여진 섬세한 내면 묘사의 탁월함으로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의 최근작 『아버지의 연인』은 1997년 스위스 비평가 협회 선정 최고 작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마르쿠스 베르너의 문학세계의 정수를 담고 있는 대표작이다.
마르쿠스 베르너(Markus Werner)는 1942년 스위스의 트루가우에서 태어나 쮸리히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했으며 1974년 막스 프리쉬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첫 장편소설『점화의 시작』으로 유르겐 폰토 문학상과 스위스 실러재단 문학상을 수상한 데 이어 주옥 같은 작품들로 게오르그-피셔 문학상, 알레마니쉬 문학상, 토마스 발렌타인 문학상, 립시 문학상, 스위스 로망 라디오 청취자가 뽑은 작가상, 국제 보덴제 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휩쓸었다. 1997년 장편『아버지의 연인』으로 스위스 비평가 협회 선정 최고 작가상을 수상했다. 그외 주요작품으로 장편『프로쉬낙트』『차가운 어깨』『재회를 기다리며』 등이 있다.
아버지와 딸 사이의 아름답고 감동적인 연민과 사랑의 드라마
장편소설 『아버지의 연인』은 한 여인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인생의 모든 것을 던졌던 아버지와, 그 아버지와 20여 년 만에 비로소 재회한 딸 사이의 이해와 연민과 사랑의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극적인 과정을 담은 한 편의 드라마이다.
대학원을 졸업한 율리아는 남자친구와의 철없는 사랑을 끝내고 심한 무기력증에 빠진다. 그런 그녀에게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아버지는 술냄새가 풍기는 목소리로 "널 보고 싶구나.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아."라고 말한다. 여섯 살 이후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아버지, 그 낯선 아버지가 20여 년 만에 딸을 보고싶어하는 것이다. 유명한 회사의 법률 고문을 보좌하는 일을 하고 있던 아버지는 지금 불편한 몸을 핑계로 시골집에서 요양중이다. 율리아는 그로부터 거의 매일 아버지를 방문한다. 때로는 아주 조금씩, 때로는 몇 시간씩 오해와 미움의 강을 건너며 길게 이어지는 아버지와 딸의 대화. 아버지가 무거운 목소리로 털어놓는 오래 전의 얘기는 율리아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바로 자신의 출생에 얽힌 엄청난 비밀이 그 속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율리아는 어떻게 하여 태어났는가? 그리고 어머니는?
천형(天形)의 사랑에 갇힌 아버지와 비극으로 잉태된 딸, 그들의 가슴 시린 사랑
아버지의 젊음은 한 여자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쳤던 고뇌와 좌절의 흔적이었다. 동시통역사인 레나와의 학력과 지식과 출신의 격차를 메우기 위해 모든 것을 배우려고 처절한 노력을 기울였건만 진정한 사랑을 얻기는커녕 딸의 잉태와 동시에 눈덮힌 숲 속으로 사라진 연인의 죽음만을 맞아야 했던 가슴 아픈 과거였다. 사랑하는 연인 레나에게 어울리는 사람으로 자신을 만들고 싶다는 아버지의 집요한 욕구는 진정 절박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결코 남편도 애인도 될 수 없는 천형(天刑)의 죄업을 안아야만 했다.
아버지를 만나기 전 레나는 프랑스 남자와 약혼 중이었다. 그러나 참으로 별다른 감정없이, 어쩌면 조금의 호기심으로 만나던 아버지와 세번째 만난 날 덜컥 임신을 해버렸고(그것은 찢어진 콘돔 때문이었다) 결국은 파혼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자살. 레나는 결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에 대한 무모하리만치 엄청난 아버지의 열정과 마찬가지로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생의 허무가 만들어놓은 운명 같은 것이려니.
율리아는 그렇게 태어났다. 맨 처음에는 아무 의미도 없이 잉태된 아이였다가 시간이 조금 지난 다음 반쪽 사랑으로 자란 아이가 되었고, 20여 년 만에야 아버지와 마주 앉게 된 율리아. 신열에 들뜬 사람처럼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아버지와의 며칠 동안 율리아는 경악과 비탄으로 다가온 자신의 출생의 비밀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인연의 소중함을 저버리지 않으면서 이젠 자신이 아버지의 변화를 모색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겁고 깊은 생의 근원적인 질문들을 담아내고 있는 소설
마르쿠스 베르너는 이렇듯 예사롭지 않은 줄거리 속에 참으로 무겁고 깊은 생의 근원적인 질문을 담아낸다. 생에 깊은 흔적을 남기는 인연이라는 것의 소중함, 존재의 승화와 추락을 동시에 안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의 불가해성,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는 육체적 쾌락의 헛됨, 그리고 스스로는 결코 목도할 수 없는 출생의 비밀. 장편소설 『아버지의 연인』은 이와 같은 엄숙한 생의 질문들을 진지하게 우리 앞에 던져놓고 있다.
현존하는 독일 최고의 비평가로 손꼽히는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이 작품을 두고 "우리 문학사에 생긴 아주 보기 드문 사건"이라는 극찬을 한 바 있다. 그의 지적처럼 마르쿠스 베르너는 그 어느 작가도 흉내낼 수 없을 만큼 대담한 문체와 정교한 어조로 엄숙한 생의 무게를 한 편의 소설 속에 담아내고 있다.
떠나자,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봄의 품속으로. 이렇게 시작하는 장편소설 『아버지의 연인』은 생의 심연을 장악하고 있는, 자신조차 미처 알지 못하는 어떤 충격적이고 아름다운 과거의 비밀 속으로 읽는이로 하여금 빨려들게 하는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옮긴이 유혜자씨는 전문번역가로서 1960년 대전에서 태어나 스위스 쮸리히 대학에서 독일어와 경제학을 전공했다. 『좀머씨 이야기』『비둘기』『콘트라베이스』 등 파트릭 쥐스킨트의 일련의 작품들을 번역해 국내에 쥐스킨트 붐을 일으켰다. 이밖에 『호프만의 허기』『한줌의 별빛』 등의 소설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