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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의 탄생 - (우록리 할매들의 분투하는 생애 구술사)
최현숙
글항아리
2019년 6월 17일 발행
472쪽 | 145*210 | 무선
978-89-6735-639-2
정상
19,800원

박근혜 탄핵을 위한 촛불 정국이 이어지던 2017년 1월,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은 경상북도 대구시 우록리 산골짜기로 내려가 구술사 작업을 시작한다. 전작으로 <할배의 탄생>을 냈고 태극기 부대 노인들 속으로 들어가 이야기 나누며, 노인 돌봄이로 생계를 이어왔던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할매, 할배들이다.

이번에 만난 이들은 농촌·젠더·노년·비문자 생활자라는 이슈가 겹겹으로 둘러싸인 분들이지만, 작가는 여기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힘을 발견한다. 한국전쟁도 비껴간 그 깊은 산골에서 할머니들은 가난과 고생으로 일군 ´깡치´로 삶을 꾸리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우록리로 시집와 시어머니와 남편의 눈치를 보며 농사를 짓고, 식구들 밥해 먹이고, 아이를 키우면서 이제 지난 삶을 되짚어보는 그들의 말은 짙디짙다.

저자는 ´나이듦´에 대한 이야기를 할머니들의 구부러진 손가락으로 대신하려 한다. 그들의 사투리와 정제되지 않은 말을 책에 고스란히 녹였다. 이 책은 힘겨웠던 고생의 경험과 가난의 상처를 헤집자는 것이 아니다. 할머니들의 삶을 긍휼의 시선으로 보자는 것도 아니다. 그 가난과 고생이 어떻게 그들을 더 강하고 전략적으로 만들었으며 그렇게 축적된 힘이 어떻게 할머니들에게 주체성을 가져다주었는지 들여다보려는 것이다.
구술생애사 작가. 저서로 『할배의 탄생』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왔어』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가 있고, 공저로 『이번 생은 망원시장』이 있다.
천주교로 인해 사회운동을 시작했고, 민주노동당 여성위원장과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이후 요양보호사와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로서 노인 돌봄노동에 몸담아왔다.
노인들을 만나면서 구술생애사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근간으로 어머니의 노년을 지켜보며 그 생애사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 나올 예정이다.
머리말
첫 번째 삶: "내 살은 거를 우예 다 말로 합니꺼"_조순이(대촌댁), 1937년생
두 번째 삶: "나 살아온 거야 좋지도 안 하고 나쁘지도 안 하지 뭐"_유옥란(안동댁), 1942년생
세 번째 삶: "글씨는 머리로 안 드가고, 베 짜는 거만 머리로 드가고"_이태경(각골댁), 1935년생
네 번째 삶: "나는 담배 따는 기계였지만 이젠 편케 생각한다"_김효실, 1954년생
다섯 번째 삶: "죽은 사람은 죽어도 산 사람은 모를 숨궈야 하는 거라"_곽판이(창녕댁), 1928년생
여섯 번째 삶: "허리 주저앉으면 맘도 주저앉는 기라"_임혜순(수점댁), 1942년생
부록: 1. 이름은 붙이지 않기로 한 그녀들의 말
2. "여자 일생이라는 게 사람 사는 게 아니지"_김성진의 우록리 이야기
에필로그: 기억과 말을 들여다보기

나 살아온 거야 
아주 좋지도 안 하고 나쁘지도 안 하고 그렇지예
학교예? 시간이 흘러가뿌이께네
글자 몬 익히고 몸무데기만 다 커뿌랬어예

우록리 산골짜기 할머니들의 생애 경험
그들의 삶과 언어, 기억과 해석, 보람과 상처
 
박근혜 탄핵을 위한 촛불 정국이 이어지던 2017년 1월,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은 경상북도 대구시 우록리 산골짜기로 내려가 구술사 작업을 시작한다. 전작으로 <할배의 탄생>을 냈고 태극기 부대 노인들 속으로 들어가 이야기 나누며, 노인 돌봄이로 생계를 이어왔던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할매, 할배들이다. 이번에 만난 이들은 농촌?젠더?노년?비문자 생활자라는 이슈가 겹겹으로 둘러싸인 분들이지만, 작가는 여기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힘을 발견한다. 한국전쟁도 비껴간 그 깊은 산골에서 할머니들은 가난과 고생으로 일군 ‘깡치’로 삶을 꾸리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우록리로 시집와 시어머니와 남편의 눈치를 보며 농사를 짓고, 식구들 밥해 먹이고, 아이를 키우면서 이제 지난 삶을 되짚어보는 그들의 말은 짙디짙다. 
저자는 ‘나이듦’에 대한 이야기를 할머니들의 구부러진 손가락으로 대신하려 한다. 그들의 사투리와 정제되지 않은 말을 책에 고스란히 녹였다. 이 책은 힘겨웠던 고생의 경험과 가난의 상처를 헤집자는 것이 아니다. 할머니들의 삶을 긍휼의 시선으로 보자는 것도 아니다. 그 가난과 고생이 어떻게 그들을 더 강하고 전략적으로 만들었으며 그렇게 축적된 힘이 어떻게 할머니들에게 주체성을 가져다주었는지 들여다보려는 것이다. 
누군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애 이야기를 구술하여 세상에 내놓는 것이 ‘고통의 전시’가 아니냐고 묻는다. 그러나 저자는 구술사 작업이 세상의 온갖 정상 이데올로기로 인한 자괴와 낙인을 거둬내고, 사람 안에 있는 힘과 흥을 끄집어내 한바탕 즐기기 위한 일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의 힘과 흥으로 희망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우록리 할머니들의 사투리는 희망이 되어 독자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우록의 삶은 그렇게 우리 모두의 삶으로 치환된다. 
 
올개는 밭에 별로 안 숭굴 거라예 
 
“내 살은 거는 마 고생한 거 말고 없어예. 모내기해가 이삭 올라오마, 어떤 해는 그 이쁜 걸 물이 확 쓸어가뿟고 이삭이 시꺼멓게 썩어들어가는 거라. 어떤 해는 잘 자라가 대가리를 숙일마 해가 통통하이 그래 이뿐데, 또 홍수가 나가 꼬꾸라지고. 그래 쓸어가뿌마 나중에 벼가 말라도 아무것도 건질 기 없는 거라.”(조순이 할매)
 
자식들의 탈농과 성공을 위해 평생을 노동으로 일군 할머니들의 삶은 가부장적 환경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노동이란 그들에게 자부심이자 정체성,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한편 자식을 먹이고 가르치는 보람으로 그 고된 노동을 견디며 살아온 할머니들에게 “정신없이 씽씽 변하는 세상”은 야속하게도 상실감의 원인으로 자리 잡았다. 
사회의 변화는 농촌의 모습을 도시보다 더 빠르게 바꾸고 있다. “아아들 우는 소리조차 듣기 힘든” 농촌에서 노인들의 평생 노동은 자본의 힘에 눌려 그 가치가 절하되어간다. 일생의 결과이자 자부심인 땅이 돈 몇 푼에 거래되는 현실과 성공할수록 찾아오지 않는 자손을 기다리며 그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회와 격리된다. 우울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한 할머니에게 저자는 “자식들도 다 잘하는데 왜 아픈 걸까요” 하고 묻는다. 
 
“자꾸 아프이께네 이리 살아가 뭐하나 싶고, 살아왔는 기 허프고 허전코 그렇다 카이. 몸이나 안 아프마 어디 훨훨 내 맘대로 나다녔으면 싶고. 넘이 들으마 다 그러고 사는 걸 그런 거 갖고 그러냐 카지만도, 내는 마 사는 재미가 없어예. 아아들 잘 사는 건 좋지만도 거는 마 지들 일이고, 내랑은 지네랑은 다른 거지예. 다행은 다행이지만도, 그기 내 사는 재미는 아니지예.”(임혜순 할매) 
 
그럼에도 할머니들은 올해도 “콩 쪼매 숭구고, 들깨 쪼매 숭구고, 상추, 배치도 좀 숭구”며 살아간다. 꼬부라진 허리와 망가진 무릎으로 밭을 매는 할머니들의 터전이 자식들 사회에서는 별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지만, 세상에 대한 섭섭함과 상실감을 외면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농촌의 마지막 세대라는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나 죽으면 이제 제사도 농사도 끝이라 카이”라는 말은 노인들의 자조와 수긍을 잘 드러낸다. 
 
자고 나면 일하고, 묵고 나면 일하고 그기지 뭐
 
노래 가락을 좋아하는 대촌댁 조순이 할머니는 우록리와 가까운 대구 달성군 대일리가 친정이다. 오남매 중 외동딸이었던 그는 친정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열한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체증에 걸려 죽자, 동생들을 키우며 살림을 도맡아 하다가 우록리로 시집을 왔다. 와보니 손이 큰 시어머니와 시형제 일곱이 그를 맞이했다. 갈등 끝에 첫아이를 낳고 친정으로 ‘내뺐다가’ 젖이 불어서 그 아픔을 못 이기고 다시 우록으로 돌아왔다. 시어머니와의 갈등은 아직 마음 한켠에 상처로 남아 있다. 
 
“아 놓고 일주일 만에 모 숭구러 가는 거럴 안 말긴 거도 글코, 마 빚내서 남 퍼주는 거도 글치만도 젤 서러분 기 한동네 바로 저 있는 시동상네 사논 집으로 나가뿌신 거, 거거가 내는 제일로 그캅디다. 서럽고 화나고 우세스럽고…… 온 동네에 우세시키자는 거제예, 그기. ‘몬된 맏미누리가 시오마이 쪼까냈다’ 방 붙이는 거라예, 그기. 그카고도 사람들 붙들어 앉혀놓고 큰미누리 흉을 윽씨 봤어예, 그카니 동네 사람들이 낼 어띃게 보겠으예. 그런다고 보선 속마냥 모가지를 화딱 까뒤집어 비이줄 수도 없고. 내는 지금도 그게 제일로 서러버예.”
 
하지만 지금은 손주들이 잘되는 이유를 ‘시어머니가 손이 남달리 커 많이 베푼 덕’에서 찾는다. “그때는 모맀는데 내가 이자 시오마이가 돼보이 알겠더라고예. 미누리 때는 모릅디다.” 
각골댁 이태경 할머니는 경북 청도군에서 시집을 왔다. 열다섯에 어머니를 잃은 그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할머니에게 받은 애정은 이태경 할머니의 어린 시절을 가득 메운다. 열여덟의 나이에 집을 떠나서는 없는 살림에 시어른, 시조모까지 모시며 살았다. ‘맏이 짓’을 하던 남편 덕에 없는 고생도 사서 한 셈이다. 이태경 할머니는 그 옛날, 홍역으로 여섯 살 난 딸을 잃었다. 그래서 지금 아들만 다섯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애지랑을 떨던 그 ‘가스나’가 눈에 선하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이태경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들에 비해 다양한 노동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진술한다. 여러 작물을 키우고, 메주를 쑤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명주실로 옷을 해 입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한다. 이런 노동 이야기는 농촌 할머니들의 주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부분이다. 
 
내가 어리석어가 우록에서 안 나간 거제
 
유옥란 할머니는 경북 안동이 고향이다. 위로 오빠가 하나 죽고, 밑으로 남동생 셋이 “문지방 기 넘어댕길 만하이 죽고 죽고 해서” 외동딸이 되었다. 화병으로 앓아누운 어머니를 살리려 한 굿이 독이 되어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계모 두 분 밑에서 파란만장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첫 남편의 죽음 뒤에 우록리 남성과 재혼했는데, 그에게는 딸이 있었다. 시어머니는 다시 들인 며느리가 도망갈까 겁이 났던지, 혼란스러워하는 손녀를 서울로 보내버렸다. 
 
“넘들은 마 달린 입이라 말을 하겠지. (…) 지도 새오매 밑에, 계모 밑에 자랐으믄서 전처 아를 쫓가냈다 카마 별 억지가 많더라. 내 젊어서는 지랄지랄을 했지만도 이자는 뭐 괘않다. 나이 들어보이 딱 말 나게 생겼더라 마. 안 글나? 계모 아래 커놓고 지도 못된 계모 되는 딱 그거 아니가? 그래 마 지금은 내 죄구나 그칸다. 내 그리 태어난 게 죄고, 갸 어려서 서울 가는 거 안 막은 죄다. 마 우야겠노… 이제는 넘들 말질은 마 아무치도 않다. 갸가 젤 불쌍코, 어려서 오매 죽어뿐 내가 불쌍타. 우야겠노…….” 
 
어른이 된 그 아이는 ‘계모’ 유옥란 할머니를 지금까지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할머니는 아이가 아버지의 제사에라도 와주기를 바란다. 계모들 밑에서 학대받으며 자란 당신이 남편 전처의 아이와 화해하게 된다면 그동안의 서러움과 한을 모두 녹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록1리에서 태어나 환갑이 넘도록 이 산골에 살고 있는 김효실은 꿋꿋한 성미의 소유자다. 어릴 적부터 도시로 나가 살고 싶었지만, 같은 상처를 가진 외지 남성과 결혼해 결국 마을을 떠나지 못했다. 그는 빨치산에게 총을 맞아 불구가 된 아버지와 아픈 어머니를 두고 도저히 우록을 나갈 수 없었다고 말한다. “친정서 14년을 꼬박 하고, 여 와서도 5, 6년 했지. 나중에는 담배 따는 거도 기계라. 다다다다닥, 다다다다닥. 손이 뭐, 기계 한가지라.” 스스로 “담배 따는 기계”라 부를 정도로 담배 농사를 많이 지어 동생들을 가르쳤지만 지금은 그들과 등 돌리고 산다.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모든 형제가 한자리에 모여 툭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우록을 떠나지 못했던 한도, 식구들에게 받은 상처도 자연에 살다보니 누그러진다는 김효실은 이제 ‘담배 따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제사도 하지 마라 칸다 
내 죽고 나가 그거 하믄 뭐하노
 
창녕댁 곽판이 할머니는 우록 마을의 ‘큰형님’이다. 올해로 만 91세가 된 그는 스무 살에 혼인해 우록리로 들어왔다. 이 산골에서만 70년을 산 셈이다. 마을의 그 누구보다 긴 세월을 살아와서 곽판이 할머니는 죽음에 초연한 태도를 보인다. 시댁 식구들과 남편의 제사를 꼬박꼬박 챙기면서도 “나 죽으면 화장해라. 제사도 지내지 말라”고 한다. 맛있는 건 제삿밥으로가 아니라 살아서 먹어야 한다는, 죽음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여유가 넘치는 그의 말을 따라가다보면 넘어설 수 없는 대범함이 느껴진다. 
 
“‘화장해가 뿌리뿌라. 산에 떤지뿌라. 영감 졑에 갈 필오 없다’ 내 만날 그칸다. 죽어뿠는데 영감 마누라가 어딨노? 살아서 영감 마누라지, 하하하. 인연은 살아서로 끝나는 거라. 그라이 살아서 서로 잘해야 되는 기라. (…) 혼이 죽으마 삼혼칠백이라. 사람이 죽으마 나무둥치라 그 말이다. 아무 소용이 없고 나무둥치랑 한가지라 그기야. 내 숨 떨어져봐라. 죽어가 태우니 뜨겁다 카나, 떤지이 아푸다 카나. 죽으마 아무것도 모린다.” 
 
수점댁 임혜순 할머니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육이오 피란 때 찰밥을 대소쿠리 하나를 해가 가가고, 떡도 쪄가 가갈” 정도로 친정이 잘살았다. 그런데 열여덟이 되던 해에 우록으로 시집을 와보니 지독히도 가난한 일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농사도 안 되는 산골짜기에서 죽어라고 일해 긴 세월을 견뎌내며 느낀 보람은 나이 들어 몸이 망가지자 허탈감으로 바뀌었다. 결혼할 당시 일곱 살이었던 남편의 막내 여동생도 친동생처럼 키워 시집보냈건만, 얼마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살아온 게 다 한심하고 속에서 불떡증이 난다”는 그는 지금이라도 자유롭게 펄펄 날아다니며 살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친다. 그러나 괴로운 과거를 더듬으며 우울의 요소를 찾아내려는 그의 구술에는 조금이나마 상실감을 해소하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산골 할매들의 공동체성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는 게 너무 시장스럽고 허프다”가도 “경로당 가마 우리 또래가 여럿이고, 나이 많은 할마이는 팔십 넘기도 하고 (…) 두 시만 되마 다들 모이니께네. 지끔 내 귀가 근질근질하네요. 보자, 하마 세 시 넘었네예. 얼른 가야는데” 하며 웃는다. 그렇게 그들의 역사는 톱니바퀴처럼 함께 맞물려 서로가 삶을 견뎌낼 수 있도록 조금씩 힘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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