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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책 - (전쟁의 신 왕양명의 기이한 생애)
傳奇王陽明
둥핑
이준식
글항아리
2019년 5월 3일 발행
332쪽 | 149*211 | 무선
9788967356224
정상
16,000원

루터의 종교개혁에 비견되는 양명학의 출현!
그 뒤엔 참혹한 전쟁과 정치의 경험이 있었다

무장, 관료, 철학에서 삼불후를 이룬
철학자 왕양명의 평생 사적을
둥핑 교수의 CCTV 교양강좌 백가강단의 강연으로 만나본다

"사상과 실천, 이 두 측면에서 두루 찬란한 업적을 쌓은 인물로는
중국 역사에서 왕양명이 유일하다."
_두웨이밍(하버드대 교수 겸 베이징대 고등인문연구원장)

이 책은 양명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왕양명의 삶과 사상을 한 편의 소설처럼 쉽게 풀어냈다. 지금까지 나온 왕양명에 관한 책 중에 왕양명의 생애에 관해 가장 일상적이고 인간적으로 접근해 서술했지만 그 내용의 깊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가 흔히 사상가로 알고 있는 왕양명은 사실 많은 전쟁터를 누빈 군사 전략가이자 백성의 삶을 돌보는 행정가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왕양명이라는 한 인간의 삶을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치밀하게 파헤치면서 그의 사상과 철학을 재조명한다.
저장성 취저우 출신으로 저장대 철학과 교수 겸 학과장. 저장대 중국사상문화연구소장, 불교문화연구센터 주임 등을 겸하고 있다. 연구 분야는 인도 철학, 송명이학, 중국 불교철학 등이다. 미국 하버드대 옌칭 연구소, 캐나다 요크대, 파리어언 동 방문화학원INALCO, 인도 푸네대 등에서 연구 및 강의를 맡았다. 주요 저술로 『천태종 연구』 『중화불교학 정신』 『왕양명의 생활 세계』 등이 있고, 중국 CCTV 인문학 교양 강좌 "백가강단"에서 「명재상 관중管仲」 「전기傳奇 왕양명」을 강연했다.
제1장 특출했던 소년
제2장 유별났던 청년
제3장 나만의 길
제4장 "호랑이" 때려잡기
제5장 구사일생
제6장 용장龍場에서 도를 깨치다
제7장 지행합일知行合一
제8장 위기 속에서의 특명
제9장 강서江西 전투
제10장 이두?頭 평정
제11장 영왕寧王의 반란
제12장 영왕 생포
제13장 황당무계한 황제
제14장 치욕 속에 받은 사명
제15장 양지설良知說
제16장 새로운 임무
제17장 최후의 전투
제18장 광명정대한 세상
후기
옮긴이의 말
왕양명 일대기
찾아보기
 변방을 누린 군사 전략가이자 
애민 정신을 실천하는 행정 관료
 
중국 자금성 남문 밖, 한 관리가 바지까지 내린 채 곤장을 맞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조정 관리로서 사람들 앞에서 곤장을 맞는다는 건 엄청난 치욕이자 인격 모독이었다. 그 관리는 흠씬 두들겨 맞은 뒤 감옥으로 보내진다. 다행히 살아남아 유배지로 향하게 되지만, 가는 길 내내 자객이 따라붙어 목숨을 위협받는다. 이 불행한 이야기의 주인공인 관리가 바로 중국 역사에서 위인으로 손꼽히는 왕양명이다. 그는 입바른 말로 당시 황제의 총애를 받던 환관 유근의 심기를 거슬러 그러한 곤욕을 치르게 된 것이다. 말단 관리였던 왕양명은 정계를 어지럽히고 백성의 삶을 고달프게 하는 환관의 전횡과 횡포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다가 곤장형에 처해지고 감옥에 갇힌 후 급기야 귀주 용장으로 귀양살이까지 떠나게 된다. 
 
용장으로 향하는 길에 자객에게 쫓기던 왕양명은 기지를 발휘한다. 「절명시」를 짓고 자살로 위장해 강으로 뛰어든 후 추격을 따돌린 것이다. 이렇게 어렵사리 용장에 도착하긴 했지만, 그곳은 척박한 땅인 데다 생활 여건도 열악했다. 그럼에도 그는 ‘양명 동굴’에 기거하며 학문 연구를 계속해나갔고, 서원을 지어 제자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왕양명은 현실을 등진 채 학문에만 심취한 선비는 아니었다. 그는 애민 정신을 가진 관료였고,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용장에서 사는 소수민족 주민들을 돌보았다. 유배 생활을 백성들의 삶을 가까운 곳에서 살피는 기회로 삼아 불합리한 조세 제도를 해결하는 등 불편을 해소했다. 그리고 주거 환경이나 낡은 풍습을 개선하면서 마을 공동체를 발전시킨다. 
 
왕양명이 살았던 명대 중기는 정치적·사회적으로 불안정했다. 곳곳에서 재물을 약탈하는 도적 떼가 창궐했고, 조정 대신들의 탐욕과 전횡으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갔다. 그러던 중 왕양명은 조정으로부터 도적 떼와 반란 세력을 토벌하라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는 호구 조사제와 유사한 ‘십가패법’을 도입해 민가와 도적 간의 내통을 막는 고립화 전략을 취했다. 
 
또한 기존의 낭병에 의존하던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민병을 양성해 관군을 정예화했다. 어릴 때부터 병법과 무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실제로 전투에 나서서 지식과 지혜를 활용했다. 그는 오늘날 정보전이라 할 만한 전략인 적을 속이는 작전을 활용해 승승장구한다. 명 황제가 친정을 나설 정도로 골머리를 썩게 하던 ‘영왕의 반란’ 세력을 소수의 병력으로 진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을 시기한 세력의 모함으로 인해 그의 인생은 또다시 난항을 겪게 된다. 
 
강학을 즐겼던 교육자이자 
새로운 사상을 창시한 철학자
 
왕양명은 절강성 여요에서 왕화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이’하고 ‘특출’났으며 열두 살에 이미 자신이 성인聖人이 되고자 공부한다고 밝히곤 했다. 열다섯의 나이에 군사 정세를 살피러 혼자 변방으로 나가 기마와 궁술을 익혔고, 당시 사상계의 주류 학문인 주자학에 몰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타고난 재능을 시기하는 이가 많았던 탓인지, 당시 관료의 자리가 꽉 차 있던 탓인지 왕양명이 과거에 급제해 정계에 진출하는 것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여느 위인전에 나오는 장원 급제 이야기와 달리 왕양명은 과거 시험에 두 차례 이상 낙방했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는 것이었으므로 실패에 개의치 않고 실천적 자세로 학문을 탐구하는 데 열중한다. 
 
이후 유학을 성학聖學으로 삼고 이에 집중하긴 했지만, 왕양명은 학문을 수양하는 데 도교의 양생술, 불교의 선종 사상을 포괄하기도 하는 등 그 경계가 없었다. 과거 시험에 합격한 후 백성을 돌보는 관료로, 전장을 지휘하는 장수로 바쁘게 지내는 동안에도 학문 연구와 강학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서른네 살부터 제자를 받아들여 숨을 거둘 때까지 성인의 도를 가르쳤다. 유배지인 용장에서 왕양명은 주자가 이야기한 격물치지설 즉, 사물을 관찰한 후 지식을 얻은 후에야 천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관점이 세상의 이치와 맞지 않음을 깨닫는다. ‘용장에서 도를 깨쳤다’고 하여 이를 ‘용장오도龍場悟道’라 한다. 
 
용장오도 이후 왕양명은 자신의 사상 체계를 공고하게 다져갔다. 그는 앎과 행동이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인간 본연의 마음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이를 정리해 ‘심즉리心卽理’ ‘치양지致良知’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는 자신만의 새로운 학설을 주창하기에 이른다. 여기에는 골방 철학자가 아닌 현실에 두 발을 디딘 채 정치와 전장을 누빈 그의 경험이 녹아 있다. 그의 사상 체계를 간단히 말하면 ‘양지良知’라고 할 수 있는데, 왕양명은 ‘양지에 이른다’ 혹은 ‘양지를 다한다’라는 뜻의 치양지를 통해 ‘지’와 ‘행’의 합일을 이뤄야 한다고 했다. 
 
주자학 일색이던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학풍을 일으켜
개인적 수행과 사회적 실천을 동시에 이끌어내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사명을 주려고 할 때는 먼저 그의 심지를 고통스럽게 하고, 그 힘줄과 뼈를 지치게 하고, 그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궁핍하게 만들어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어지럽힌다. 이는 그의 마음을 흔들어 인내심을 키움으로써 지금껏 할 수 없었던 사명을 감당케 하려 함이다.” 이 말은 왕양명의 일생에 그대로 투영된다. 일찍이 성인이 되고자 마음먹고, 공명정대한 태도로 관료직을 수행한 그에게 암울한 현실 정치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파란만장하고 고달픈 인생 역정은 그 길을 의연하게 걸어간 그에게 사상과 철학의 정신적 동력이 되었다. 왕양명이 고결한 인품으로 불세출의 위업을 달성하고, ‘기이하고 특출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런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는 ‘입덕立德’ ‘입업立業’ ‘입언立言’ 이 세 측면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뤄 후대에 ‘삼불후三不朽’라 평가받았다.
 
이른바 이치만을 따지는 이학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마음에 주목하는 왕양명의 심학心學은 많은 지식인에게 논쟁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세간으로부터 주목받았다. 그의 학문과 사상 체계는 하나의 학문이 되어 한 시대를 풍미했고, 명 중엽 이후로 ‘양명학’으로 불리게 된다. 양명학은 누구나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마음을 어떻게 수양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 철학이다. 그의 철학은 종교의 장벽을 넘나들며 유儒, 불佛, 도道 3교의 일치론을 낳았다. 또한 양명학은 주자학 일색이던 동아시아 사상 체계의 흐름을 바꾸고, 근현대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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