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 주미경의 『나 쌀벌레야』
지난 2012년 문학동네가 제정한 ‘문학동네동시문학상’이 3회를 맞이했다. 1회 대상 수상작인 김개미의 『어이없는 놈』은 유쾌한 감각과 개성 있는 문체로 아이들의 지친 마음에 유머러스한 언어를 돌게 했고, 2회 대상 수상작인 김륭의 『엄마의 법칙』은 고정관념을 뒤집는 상상력으로 시대의 구성원과 공감하는 참신함을 보였다. “1920~1950년대 동요?동시 황금기 이후 60년 만에 ‘동시의 시대’가 돌아왔다”(이안, 연합뉴스, 2015년 10월 12일)고 평가될 만큼 새로운 창작을 시도하는 시인들이 활발히 동시문학계로 유입되고 있는 가운데, 문학동네동시문학상은 작품집 출간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출판사 공모전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권오삼, 이재복, 안도현 심사위원이 89편의 응모작을 읽고, 본심작 4편을 골랐다. ‘존재의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려는 시도’가 엿보이는 본심작 속에서 세 심사위원은 “동심 파고들기”를 성공적으로 보여 준 주미경 시인을 대상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심사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거론된 기준은 ‘동심에 가장 가까운 동시’였다.
원로 동시인 권오삼은 동심적 자아와 사물을 일체화시켜 ‘들려주기’ 또는 ‘말 걸기’ 식으로 풀어 나가는 당선자 주미경 시인의 시법과 섬세하고 세련된 언어를 장점으로 꼽았고,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이재복은 주미경의 시가 품고 있는 역동적인 생명의 에너지에 주목했다. 시인 안도현은 동심에 진술로 말을 거는 시법, 아이들 마음의 결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을 미덕으로 꼽았다.
2010년 『어린이와 문학』 4회 추천 완료, 201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5년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 수상
8년 동안 시심을 응축한 오래된 신인
주미경 시인은 2010년 어지간한 공모전 수상보다 더 어렵다는 월간 『어린이와 문학』 추천 제도에서 동시로 4회 추천 완료되며 등단하였다. 당시 심사위원인 오인태 시인은 “이분(주미경)은 무릇 시란 무엇인가, 시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충분히 헤아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미 시 쓰기 내공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짐작게 한다.”고 평하였다.
시인에게 동시의 시심이 일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2년 앞선 2008년부터이다. 시에 대한 꿈을 품고 있던 시인은 우연한 계기로 듣게 된 김제곤의 동시 수업을 통해 그가 가지고 있던 시에 대한 생각과 동시가 잘 맞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시가 재미있더라고 했다. 그 이후, 『어린이와 문학』의 동시 동인들과 지금까지 8년 동안 한결같은 자세로 동시의 길을 걸어온 결과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루게 된다. 201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수상한 작품 「모과나무」를 두고 심사위원 공재동 시인은 “휠체어를 타고 언덕길을 오르는 아이의 생생한 묘사와 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모과나무의 깊은 교감이 읽는 이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동시는 이래야 한다’고 모범 답안을 제시하는 것 같다.”고 평했으며, 2015년 제3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에 이르러 아동문학평론가 이재복은 “주미경의 동시는 사람과 대상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한 공간 속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살아가는 삶의 전체성을 드러낸다. 아이들 삶에 생명의 에너지가 출렁거리게 하는 시다.”라고 평했다. 읽는 이에게 감동을 주고, 나아가 세상과 교감하게 하는 그의 동시들이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시인의 첫 동시집 『나 쌀벌레야』에는 아동문학 밭에서 자그마한 동시의 텃밭을 고집스레 지켜온 그의 집약된 결실이 담겨 있다.
시원하게 내어 주는 일, 맘도 두지 말고
“가끔, 물에 빠져 죽다 살아난 때의 발장구를 생각합니다. 살아오면서 그때만큼 용감했던 적이 있었을까. 동시를 쓰면서 그 아이를 다시 만났습니다. 나는 그 애의 발장구를 칭찬해 줬고, 그 아이는 어른인 나를 맑고 커다란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좀 괜찮은 어른이라고 말해 줬습니다. 그래서 나는 용기라고 할 만한 것을 내 볼 수도 있게 되었어요. 깊은 물속에 잠겨서 발장구를 칠 때 그 아이의 마음속에 가득했던 것들만큼 간절하다고 할 순 없지만, 내가 내 삶의 한가운데에서 나를 끌고 가게 되었습니다.” _‘시인의 말’ 중에서
주미경 시인의 동시 속에서는 아이, 노인, 노동자, 벌레, 동식물 등 세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존재들이 그 이면을 드러내 보인다. 주미경 시인으로 하여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타인의 입장에 나를 대입하는 일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그 아이”가 준 “용기”일 것이다.
너 쌀 속에서 놀아 봤니
누가 쌀독 밑으로 더 깊이 내려가나
누가 더 하얗게 쌀가루 뒤집어쓰나
쌀독이 열리고 바가지가 내려올 때
누가 빨리 피하나
참, 마지막 놀이는 위험해
아차 하는 순간 저 구멍 위로
딸려 가는 수가 있으니까
요즘은 쌀이 줄지가 않아
우리야 쌀이 넘칠수록 좋지만
사람들은 뭘 먹고 살까
얼마나 큰 독 안에서 살까
그 독은 무엇으로 가득 차 있을까
바가지를 타고 올라가 볼까
저 동그란 구멍 밖 세상으로
_「나 쌀벌레야」 전문
사람을 보고 겁먹고 도망가기는커녕 “너 쌀 속에서 놀아 봤니”라고 묻는 쌀벌레의 모습이 당차고 당돌하다. 이 동시집에는 쌀벌레처럼 작은 몸집에도 기죽지 않고 제 목소리를 돋우는 존재들이 다수 등장한다. 뻐꾸기 울음을 잠재우기 위해 큰 돌을 던져 대는 할아버지를 향해 더 큰 소리로 울어 대는 뻐꾸기들(「누가 그래」)이라든지 숲을 통째로 잘라 버릴 듯 날아와 “자, 나를 따르겠느냐”고 묻는 솔개에게 굴하지 않고 “흥!” 콧방귀를 뀌는 다람쥐와 뱁새(「흥!」), 도토리를 주울 때는 조금만 주워 가라고 경고하며 숲 속 동물들을 살뜰히 챙기는 말벌(「도토리와 왕탱이」)의 모습 등에서 독자들은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다양한 존재의 목소리를 고루 마음에 담게 된다.
빈 땅을 보면
노는 땅 아깝다 그러지 말고
딱정벌레 방 내주고
풀꽃이나 피우면서
한 해 놀게 두자
집도 짓지 말고
콩도 심지 말고
맘도 두지 말고
_「맘도 두지 말고」 전문
시인은 서로에게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내어 주자고 노래한다. 시인 정유경이 해설에서 짚었듯 ‘나’와 ‘너’의 구분을 지우고, 작은 생명들이 어우렁더우렁 살아가는 주미경 시인의 시 세계는 명랑하면서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의 동시를 읽는 짧은 순간, 독자들은 딱정벌레 한 마리, 풀꽃 한 송이조차도 나와 연결되어 있는 기분을 생생하게 느낄 것이다.
동시를 읽는 입꼬리마다 웃음을 걸어 주는 화가 서현의 그림
서현의 유머러스한 그림은 시에 흥을 돋우고 맥을 살린다. 그림의 너스레가 만만치 않아서 시에서 들리는 존재들의 목소리에도 기가 산다. 익살스럽고 천연덕스러운 표현이 동시를 읽는 입가에 내내 웃음을 걸어 놓고,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활약하는 시원한 보폭으로 시와 아이들의 거리를 성큼 좁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