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의 미래, 소설문학의 새로운 물결
제11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내 머릿속의 개들』
‘비범하고 충격적인 신예’, 명실상부한 신세대 대표작가 김영하,
미묘한 인간관계의 내면을 탁월한 문체의 미학으로 보여주었던 조경란,
참신한 감각과 날카로운 주제의식이 돋보였던 전혜성,
가볍지 않은 생의 무게를 겸허하게 감싸안고자 특별한 도전을 보여주었던 이신조,
통념을 깨뜨리는 신선한 발상, 개성적인 감수성과 패기가 돋보였던 이지형(이지민),
경쾌하고 짜릿한 독서의 즐거움을 안겨주었던 박현욱,
우리의 상상력의 한계를 되묻게 만드는 엉뚱하고 기발하고 유쾌한 만화적 상상력의 박민규,
가볍고 유쾌한 이야기 속를 통해 삶에 대한 만만찮은 통찰력을 보여준 전수찬,
‘코믹잔혹극’의 형식을 빌려 현실의 부조리를 직시하고 묘파해낸 안보윤,
지난 십 년 동안 매번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우리 문단의 걸출한 신예를 배출해온 문학동네작가상이 또 한 명의 우리 시대 ‘작가’를 선보인다.
새로운 십 년의 포문을 연 제11회 수상작 『내 머릿속의 개들』의 작가 이상운은 이미 1997년 등단해 장편소설 세 권과 소설집 한 권을 낸 적 있는 기성작가. “저는 이십대의 기발한 감수성에 의지해서 시작한 사람도 아니고, 일상이나 현실 속에서 사람들을 관찰해서 쓰는 것도 아닙니다”라는 그의 고백이 인상적이다. 주요등장인물은 ‘지금 실업자인 사람’ 존재A와 조만간 실업자가 될 사람 존재B. 자, 일단 머릿속에서 잠들어 있는 개들을 흔들어깨울 준비는 되셨는가?
반지하 방 백수에게 어느 날, 쿨하고도 지적인 구조조정의 손길이 다가왔다!
“너와 내가 힘을 합하여 너와 나와 내 마누라를 재배치해보자 이거지.
요즘은 국가마다 회사마다 구조조정이고, 집도 정당도 재건축이다 리모델링이다 난리고, 음식도 이것저것 마구 뒤섞는 퓨전 시대잖아.
그런데 남녀구도는 왜 안 된다는 거야?”
존재A, 수상한 전화를 받다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반지하 방에서 뒹굴고 있던 백수 고달수의 핸드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하하, 야, 반갑다. 야, 이게 몇 년 만이지? 십일 년인가?” 반갑지도 달갑지도 않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대학 동창 마동수. 과거 『악의 꽃』을 늘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화가지망생 법학도였던 그는 이제 잘나가는 유학파 팝아티스트 겸 설치미술가가 되어 있다. 놈은 “야, 달수. 그런데 너 실직했다며?” 아픈 곳을 푹푹 찌르더니 대뜸 만나자고 제안한다. “내가 너한테 기회를 주고 싶어. 잘 되면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일이야.”
존재B, 해괴한 제안을 하다
옛 친구와의 감격적인(?!) 해후 후 눈앞에 나타난 것은 ‘어마어마하고 그로테스크하고 숨막히고 처참하게 뚱뚱한’ 그의 아내 장말희. 그리고 그 뒤에는 더욱 그로테스크하고 어마어마한 제안이 기다리고 있었다. “야, 고달수. 너, 내 마누라 좀 꼬셔주지 않을래?” 말인즉슨, 서로 빈곤과 고독을 채우기 위해 ‘고도의 생산성이 보장된 탁월한 합병’으로 결혼했으나, 지나친 의부증으로 인해 설탕중독에 고도비만이 되어버린 아내를 자신에게서 떠나도록 도와달라는 것. “기가 막히는군.” 그대로 미친 놈, 하고 돌아서면 그만이겠지만 어엿한 직업과 경제능력을 갖추고 있는 존재B는 사랑과 배신의 대 구조조정을 위해 천만원이란 거금을 내놓는다. 천만원…… 존재A에게 이 얼마나 은혜로운 금액이란 말인가?
“어때, 말희를 인수할 테야?” “교육을 좀더 받아보고. 뭐가 그렇게 급하냐, 새끼야.”
존재A, 기묘한 데이트를 시작하다
“온 실존을 던져서 한번 부딪쳐보게. 그 뚱보 아줌마를 한번 사랑해보라고. 책상머리에 앉아서 실존이니 관심이니 하이데거니 하고 헛소리하는 놈들은 말짱 꽝이야.” 존경하는 선생님의 조언까지 받은 고달수는 장말희와 본격적인 데이트를 시작한다. 포대 같은 코스모스 무늬 원피스를 입고 뒤뚱거리는 여자를 사랑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젊은 커플들의 조소를 받으며 홍대 골목을 함께 걷는 모욕을 견딜 수 있을까? 그러나 취직에는 소질이 없어도 연애에는 생각보다 소질이 있었나보다. “우린 참……” “네?” “마음이 잘 통하는 것 같아요.” “아, 네. 정말 그렇군요, 말희씨.”
존재B, 교묘한 거래에 성공하다
자신에게 점점 호감을 보이는 장말희에 대한 도덕적인 자책감과 돈을 받은 대가로 그를 위해 일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 그리고 마동수를 향하는 근본적인 분노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술집에서 난동을 일으켜버린 가련한 존재A 고달수. 결국 사랑에 실패한 남자가 되어 거래를 포기하고 자신의 생활로 돌아간 그의 앞에 또 난데없이 해괴한 문자가 날아온다. ‘작전 성공! 장말희와 이혼! 고맙다 달수야!’
존재A, 막막한 기로에 놓이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말희를 접수해서 잘 가공해봐. 이제 그 여자는 내 소유가 아니야. 뜻만 맞으면 누구나 가질 수 있어. 음?” 그렇지만 남녀구도는 바뀌었을지언정 장말희의 실체와 몸무게는 변한 것이 없다. 도저히 이성으로서 욕망할 수 없는 그 지방덩어리 몸뚱이도 그대로다. 설상가상으로 이혼 후 그녀의 마음은 고달수에게로 기울어진 상태. 만만찮은 난제 속, 그는 과연 마동수처럼 성공적인 재배치를 이룩할 수 있을까?
옛 친구와의 거래는 끝났지만, 존재A의 멀고도 험한 구조조정 플랜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임시직 존재이자 비정규직 존재이고 최종적으로는 실업자이니까요.”
좌절한 한 남자가 정신과의사에게 고백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작품은 참 수다스럽다. 고달수와 장말희, 마동수와의 대화를 특별한 지문 없이 따옴표로만 묶어 서술한 부분들은 소설보다 희곡 대사에 가까울 정도이다.
작가는 이 연극적인 캐릭터와 대사 안에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온갖 모순과 가치관들을 잉여지방을 축적하듯이 꾹꾹 눌러담아놓았다. 고달수와 장말희가 데이트하는 공원 벤치에서, 고달수의 상담역이 되어주는 선생님과 대작하는 방 안에서, 신축 아파트 앞에 설치하는 마동수의 삼억원짜리 구조물 제작발표회 등에서 한 편의 콩트처럼 펼쳐지는 장면장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 비유한 경구조의 유머와 함께 종종 자조적이며 아이로니컬한 웃음을 유발하나, 그 사이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뼈 있는 풍자의 흔적은 이 작품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음을 보여준다. “저는 지독하게 한심한 최악의 불량기계였습니다. 저는 생산성이 형편없는 존재였고, 효율성이 엉망인 존재였습니다. 저는 지금 당장 극단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해야할 악성 유기체였습니다.” 뚱뚱한 여자와 돈 없는 남자로 대표되는 영락없는 사회의 패배자들이 내린, 경제적이고 미적인 가치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자학적 정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무력하게 짜증을 내고 분노하고, 머리를 싸쥐고 고민하고, 때로는 개가 되어 왈왈 짖는 가련한 실업자 존재A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근원적인 인간상이 아닐까? 우리 머릿속에도, 무리지어 이러쿵저러쿵 참견하기 좋아하면서 언젠가 한 마리씩 줄지어 뛰쳐나가 주인을 미치게 만들 기회를 엿보고 있는 개들이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희극적이며 풍자적인 우리 시대의 흥미로운 우화
현란하고 부박한 우리 사회의 온갖 기호들이 다 들어 있다. 우리 사회에 널린 이런 지긋지긋한 잡동사니들을 끝까지 뒤질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적재적소에 숨겨놓은 촌철살인의 ‘말마디’ 때문이 아니었을까. 작지만 단단한 보석을 쓰레기 갈피에 숨겨놓고 독자를 끌고 가는 솜씨는 신인답지 않게 노회하기까지 하다. _박완서(소설가)
희극적인 상황설정과 풍자적인 어법에선 시대상황을 관통해 지나가는 힘이 느껴졌다. 적당히 과장된 인물들이 벌이는 한바탕의 소란은 단순한 면이 없지 않은 대로 우리 시대의 흥미로운 우화가 되어주고 있다. _남진우(문학평론가)
비만한 여성을 사랑하는 길은 그 여성으로 하여금 살을 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상태로 비만해지는 것이라는 주장이 호소력 있다. 사랑의 불가능성이라는 경계를 유쾌하게 타고 넘나드는 작가의 세련된 문장의 힘이 돋보였다. _서영채(문학평론가)
정신과의사 앞에 선 환자의 요설처럼 줄줄이 이어지는 서술은 사실과 망상의 경계를 뒤섞으며 결국 진실이 무엇인지 혼란스럽게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 있었다. 이 소설의 달변과 요설은 사건을 구축해가기보다 그것을 해체하며 오히려 소설 바깥의 고리들, 이를테면 세상에 대한 풍자와 비판으로 이탈하기도 한다. 소설이야말로 광대무변한 자유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이 작품은 다시금 확인시킨다. _신수정(문학평론가)
* 초판발행 | 2006년 6월 27일
* 145*210 | 208쪽 | 8,500원
* ISBN | 89-546-0172-3 03810
* 책임편집|조연주, 양수현(031-955-8865, 88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