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는 김홍도와 신윤복 풍속화로 옛사람들의 삶과 풍류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한 ‘옛 그림 학교’ 시리즈를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옛 그림 가이드 전문 저자로 이름을 얻었다. 그가 이번에는 우리 옛 그림 속에 숨겨져 있거나 이제껏 잘 알려지지 않은 수수께끼를 들고 찾아왔다. 이번 책에는 1권 격인 『우리 옛 그림의 수수께끼』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이야기가 한가득 들어 있다. 옛 그림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의외로 다양하고 흥미롭다. 그저 그림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천체현상까지 꼼꼼하게 기록했던 조상들의 기록문 화나 화폐를 장식하고 있는 그림들에 얽힌 이야기들, 조선시대 임금의 하루 등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옛 그림에 얽힌 수수께끼는 풀린 것들도 많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도 많다. 수수께끼가 많다는 말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옛 그림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한 미술관 전시에는 큰 인파가 몰려들어 뉴스가 되기도 했고 옛 그림에 대한 새로운 책도 많이 출간되는 등 우리 옛 그림에 대한 관심은 해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런 만큼 우리 옛 그림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지만 또 새로운 논쟁거리도 생겨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최근 밝혀지거나 논란이 된 이야기들까지 다뤄 시의성을 높였다.
크고 시원하게 그림을 배치해 보는 즐거움을 더하고자 했고, 필요한 경우 세부도를 따로 실어 그림에 담긴 깊은 의미를 충분히 느끼고 배울 수 있도록 했다. 각 꼭지마다 ‘훈장님에게 더 배워 보아요’ 코너를 실어 그림에서 뻗어나가는 이야기들을 곁들여 흥미를 높인다.
위로 볼록하게 뜬 이상한 달, 화가의 실수일까?
「달 아래 연인」은 한밤중에 몰래 만나는 두 남녀의 모습을 담은 신윤복의 풍속화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재미있는 점이 있다. 왼쪽에 뜬 눈썹달이 위로 볼록한 모양으로 그려진 것이다. 이런 달 모양은 한밤중에는 볼 수 없다. 실제 달 모습을 관찰하지 않고 되는 대로 그린 화가의 실수일까? 흥미롭게도 한 천문학자가 이 달은 부분월식 중의 달을 그린 것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200년도 더 전에 그려진 그림인데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바로 왕의 바로 옆에서 그날그날 벌어진 중요한 일을 모두 기록해둔 『승정원일기』 덕분이다. 『승정원일기』의 첫머리에는 어김없이 날씨와 그날 근무한 관리의 명단, 임금의 동정이 기록돼 있다. 이 기록을 뒤져본 결과, 신윤복이 이 그림을 그렸을 무렵 두 번의 부분월식이 있었고, 그중 하루는 비가 왔기에 달을 관찰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까지 추측이 가능해진 것이다. 조상의 뛰어난 기록문화 덕분에 밝혀진 옛 그림의 수수께끼라 할 수 있다.
천원 권 화폐 속 집의 정체
2007년 새로운 도안을 얻게 된 천원 권에는 퇴계 이황의 초상과 함께 그림이 한 점 들어 있다. 이황이 머물던 ‘계상서당’의 풍경을 그린 정선의 「계상정거도」다. 이 그림 속에 그려진 건물이 ‘계상서당’이냐 ‘도산서당’이냐를 두고 한바탕 논란이 있었다. 제목을 보아도 ‘계상서당’을 그린 것임이 확실한 듯한데 왜 ‘도산서당’이라는 이야기가 돌았을까? 우선 새 도안 전에 그려져 있던 그림이 ‘도산서당’이었고, 「계상정거도」 속 건물이 현재 남아 있는 도산서당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또 기록에 따르면 계상서당은 초가집으로, 그림 속 기와집과는 달랐다고 한다. 이황 사후에 「계상정거도」를 그린 정선도 도산서당을 보고 이 그림을 그렸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결국 그림 속 집이 계상서당인지 도산서당인지는 확언할 수 없는 셈. 아직은 확실하게 풀리지 않은 그림 속 수수께끼다.
신라시대 「천마도」 속 동물은 말일까 기린일까?
경주 대릉원에는 유명한 무덤이 많다. 그중 천마(天馬) 그림이 발견되어 ‘천마총’이라는 이름이 붙은 주인 모르는 무덤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무덤에서 발견된 ‘천마 그림’은 말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하는 마구(馬具) 말다래에 그려진 것으로 모두 세 쌍이 출토되었다. 얼핏 봐도 말의 형상을 하고 있어, 이것이 천마를 그린 것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지만 적외선 촬영으로 말 머리에 뿔이 솟은 것이 발견된 후 상상의 동물인 기린(麒麟)을 그린 것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최근 첨단 감식 기법으로 말갈기와 말머리 형상이 좀 더 뚜렷하게 드러나게 되었고, 이제는 여기 그려진 것이 기린이 아니라 천마라는 것이 확실히 밝혀졌다.
조선시대에 카메라를 써서 그린 그림이 있다는데?
조선시대 초상화는 겉모습이 똑같은 것은 물론 인물의 정신까지 담아내고자 한 것으로 유명하다. 화가들은 이를 위해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 서양에서 신식 문물이 수입된 후에는 요즘 쓰이는 카메라의 원형이라 할 ‘카메라오브스쿠라’를 사용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화원 이명기가 그린 「유언호 초상」의 오른쪽에는 “얼굴과 몸의 길이와 폭을 원래보다 절반으로 줄였다”라는 뜻의 한자가 적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카메라오브스쿠라를 활용해 초상화를 그렸다는 증거. 초상화 속 유언호의 키는 84센티미터다. 정확히 절반으로 줄여 그렸다고 했으니 실제로는 168센티미터였을 것이다. 그림을 통해 옛 사람의 실제 키까지 알아낼 수 있다니 흥미롭지 않은가.
왕이 있어야만 완성되는 그림은?
만 원권 지폐에 세종대왕 뒤쪽으로 그림 한 점을 볼 수 있다.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는 이상한 그림. 사극에서도 종종 왕의 뒤를 장식하고 있는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그림이다. 그림의 제목은 「일월오병봉」으로, 해와 달,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있는 병풍이라는 뜻이다. 이 그림에 그려진 해, 달, 산, 소나무, 물, 언덕은 조상들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물로 여겼던 것들이다. 여기에서 유독 사람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람, 즉 임금은 그림 앞에 앉음으로써 실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그림은 왕이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완벽해지는 것. 1829년에는 순조가 나이 마흔이 됨과 동시에 왕위에 오른 지 30주년이 된 날을 기념하는 잔치가 열렸다. 이 날을 기록한 그림이 남아 있는데 바로 「순조기축진찬도」다. 재미있는 것은 이 그림에서 왕이 있어야 할 자리에 왕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대신 「일월오병봉」이 왕의 존재를 상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가짜 그림에 관한 논란, 옛 그림 속 개와 고양이의 의미, 그림에 도장(낙관)을 찍는 이유, 문자 그림 속에 숨은 상징 등 흥미로운 이야기 14개가 들어 있다. 이처럼 우리 그림에 담긴 각각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우리 옛 그림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