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과 실로 그린 군주의 권력과 영예!
올올이 얽힌 의미와 상징을 읽다
수천 년을 군림해온 최고의 예복, 면복!
동아시아 신분사회에선 신분에 걸맞은 옷과 장식이 정해져 있었다. 황제나 왕도 제복(祭服), 조복(朝服), 상복(常服) 등 평상시에 입는 옷과 격식 있는 의례에 입는 옷이 예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수놓는 무늬 또한 마찬가지였다. 군주의 옷 중에 의례에만 착용했던 중요한 옷, 가장 높은 지위와 권위, 의미를 지녔던 옷이 ‘면복(冕服)’이다. 중국, 한국, 베트남 등 동아시아 문화권의 군주 및 군주 계승권자는 모두 면복을 입었으며 그 위에 특정 무늬를 새겼다. 신분사회의 정점에 있던 사람의 옷인 만큼 화려함과 의미가 농축되었고 이 과정에서 지도자의 권위는 물론, 그가 응당 지녀야 할 여러 자질도 투영했다. 즉, 면복은 동아시아 지도자의 권위와 자질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옷이다. 문학동네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의 열네번째 책 『면복―군주의 덕목을 옷으로 표현하다』는 상고시대부터 근대까지 수천 년간 군주 최고(最高) 예복으로 군림해온 면복의 구성과 상징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이를 통해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의 세계관 및 가치관을 소개한다.
면복의 구성과 그에 담긴 이야기
면복은 글자 그대로 풀면 ‘면관을 쓸 때 착용하는 복식’으로, 면은 면관, 복은 거기에 딸리는 여러 부속품을 말한다. 면복은 관모부터 신발까지 여러 구성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에 쓰는 면관, 몸 가리개의 용도로 쓰였던 폐슬(蔽膝), 하상(下裳, 하의에 해당), 상의(上衣), 그리고 그 사이에 입는 중단(中單), 허리띠의 종류인 대대(大帶)와 혁대(革帶), 바지, 버선, 석(舃, 신발), 허리에 다는 패옥(佩玉), 손에 드는 규(圭), 목에 거는 방심곡령(方心曲領) 등 옷과 소품이 정해져 있으며 세부적인 모양과 색깔, 무늬 등은 착용자의 신분에 따라 달랐다. 황제와 왕의 면복이 다르고, 왕과 왕세손의 면복이 달랐다.
중요한 것은 모든 구성품이 각각의 의미가 있고, 지도자의 권위와 역할, 자질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모양과 숫자, 무늬 등은 임의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 음양오행을 비롯한 동양철학 및 당시의 세계관을 주도면밀히 반영한 것이다. 저자는 면복의 구성품에 담긴 의미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면복의 면관에는 열두 줄이 달려 있고 상하의에는 열두 무늬를 넣는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왜 하필 ‘열두’ 줄인지,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문화의 맥락에서 설명하고 있다.
*열두 줄, 열두 개의 구슬, 열두 무늬―왜 12일까
황제의 면관에는 열두 줄(12류)을 달고 각각 열두 개(12량)의 옥을 뀄다. 그리고 시대마다 차이가 있지만 상의와 하상을 통틀어 열두 무늬(12장문)를 새겼다. 12는 예로부터 하늘의 큰 수[大數]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황제의 지극한 권위를 표현할 때 ‘12’라는 숫자를 사용한 것이다.
*앞은 둥글고 뒤는 모난 이유
면관의 가장 윗부분에 오는 직사각형 판을 보면, 그냥 직사각형이 아니라 앞부분은 둥글고 뒷부분은 모난 것을 알 수 있다. 목에 거는 장식인 방심곡령 또한 목에 거는 윗부분은 둥글고 가슴에 닿게 하는 아랫부분은 모나다. 왜 이런 형태로 만든 것일까? 그것은 당시 사람들이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고, 이를 면복에 형상화하려 했기 때문이다.
*상의에는 그림을 그리고 하의에는 수를 놓은 이유
면복을 보면 무늬를 넣을 때 상의에는 그림을 그리고, 하의에는 수를 놓았다. 왜 상의에는 수를 놓지 않고, 하의에는 그림을 그리지 않은 것일까? 상의는 위에 있으므로 음양(陰陽) 중 양(陽)에 해당한다. 그림은 가볍고 뜨는 것을 주관하기 때문에 그림과 양의 성질이 유사하다고 본 것이다. 반면 자수는 천을 찌르는데다 천에 실의 무게가 더해지므로 무거움과 깊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음양 중 음(陰)을 주관하는 하의에는 자수의 방식으로 무늬를 넣었다.
*붉은 신에 검정 술을 다는 이유
면복의 신발인 ‘석’은 붉은색이었다. 그러나 석에 다는 술은 검은색이었는데 이는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니었다. 신발을 비롯하여 면복의 배색에는 음양오행의 원리를 반영했다. 즉 동서남북의 북쪽을 상징하는 적색(赤色)이 바탕이면 음양오행의 원리를 따라 반대편인 남쪽을 상징하는 흑색(黑色)을 써야 했던 것이다. 시대에 따라 변칙이 발생했으나 이는 배색의 기본 원리였다.
열두 무늬에 담긴 지도자의 이상과 자질
면복의 상의와 하상에는 열두 무늬를 넣었다. 이를 12장문(章文)이라 한다. 일(日), 월(月), 성신(星辰), 용(龍), 산(山), 화(火), 화충(華蟲), 종이(宗彛), 조(藻), 분미(粉米), 보(黼), 불(黻)이 그것이다. 12장문은 면복에서도 가장 특징적인 부분으로 동아시아의 세계관과 정치관이 잘 드러난다.
‘일’은 해를 표현한 것이다. ‘월’은 달을 표현한 것이다. 일과 월은 각각 양과 음을 상징한다. ‘성신’은 별이다. 성신은 땅의 만물을 상징한다. 해, 달, 별 이 셋은 광명을 비추어 어두움을 몰아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상상의 동물 ‘용’은 물을 대표한다. 용을 그릴 때는 반드시 물을 함께 그려야 한다고 여겼다. 조선시대에 용무늬는 왕만 쓸 수 있었다. 면복에 용을 그리는 것은 신묘한 변화를 취해 상황에 맞게 적절히 대처하는 것을 의미했다. ‘산’은 흙, 땅을 대표하는 것으로 앞서 말한 일, 월, 성신과 대응된다. 산 무늬는 백성이 우러러볼 수 있는 군주의 어짊[仁]을 뜻하는 동시에 백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화’는 불을 표현한 것으로 불은 오래전부터 생산력과 권력의 상징이었다. 화염은 항상 위를 향해 올라가므로 군주의 권력을 상징하기에 적합했다. ‘화충’은 꿩으로 다채로움을 나타낸다. 다채로운 문채가 군주의 인덕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종이’는 제사에 사용하는 술잔인데 하나는 호랑이를 그리고 하나는 원숭이를 그린다. 호랑이의 용맹함과, 비가 오면 꼬리를 들어올려 코를 막아 콧속으로 빗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는 황금원숭이의 지혜로움을 표현한 것이다. ‘조’는 물풀로 군주의 깨끗함과 산뜻함을 상징한다. ‘분미’는 쌀 무늬로 쌀의 깨끗함을 상징하는 동시에 백성을 먹여 살린다는 의미를 띤다. 보는 도끼를 무늬로 표현한 것으로 국가 경영을 위한 단호한 결단력을 상징한다. 마지막 불 무늬는 사물을 형상화한 것이 아니라 관념에 의한 것인데 ‘기(己)’ 또는 ‘이(已)’ 자가 서로 등을 맞대고 있어 군주와 신하가 서로 거리를 두는 동시에 때로는 힘을 합쳐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상의 열두 무늬, 12장문은 오직 황제만이 전부 사용할 수 있었고 왕과 왕세자, 왕세손은 차등을 두어 일부를 사용했다. 12장문은 자연세계를 형상화한다. 또 인간세계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덕을 모두 겸비한 이상적 황제의 모습을 그린다. 하늘의 아들[天子]이자 자연세계와 인간세계의 주인인 군주는 두 세계의 질서를 책임져야 하는 지도자의 책무를 지니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지도자임을 항시 자각하고 경계하라
면복의 유래와 구성, 용례 등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많은 것이 동아시아의 세계관, 정치관 등과 촘촘히 연결돼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옛사람들이 지도자를 어떤 존재로 바라보았으며, 어떤 덕목을 기대했는지를 읽을 수 있다. 또한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되는지에 대한 옛사람들의 사고방식 또한 엿볼 수 있다.
면복은 실용적인 옷이 아니었다. 면복은 유교적 세계관과 가치관 및 군주관을 반영하는 각종 장식과 무늬로 가득했다. 당시의 지도자는 자신이 ‘하늘의 아들’ ‘백성의 부모’임을 알려주는 면복 앞에서 권위와 책임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면복은 권력자의 자세에 영향을 끼치는 경건한 옷이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미시적인 눈으로 거시적 역사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