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해온 매체인 책. 디지털매체가 급속도로 우리 생활에 들어온 최근에도 여전히 책은 가장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정보 전달 매체이다. 또한 가장 손쉽게 우리의 정서를 어루만져주는 친구이기도 하다. 하루에도 수많은 책들이 세상에 인사를 하며 스테디셀러 혹은 베스트셀러로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기도 하고, 한번 마주하기도 전에 사라지기도 한다.
북커버는 소비자와 책이 처음 만나는 첫인상과도 같다. 서점에 쏟아져나오는 많은 책들 사이에서 돋보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네모난 한 뼘 공간 위에 책이 품고 있는 내용을 매력적이면서도 집약적인 시각적 요소로 보여줄 수 있도록 작업하는 북디자이너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현재 현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업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차세대 북디자이너들의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김태형 김형균 박진범 송윤형 엄혜리 이경란 정은경, 이렇게 7인이 그 주인공이다. 서점에 깔린 책들의 날개나 판권을 몇 권만 들여다보아도 이들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대부분 인하우스 디자이너를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가 되었거나 한 출판사의 아트디렉터 자리에서 활동중이다.
특히 이번 책에서는 ‘B컷’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B컷은 아쉽게 책의 최종 표지로 채택되지는 못했지만 디자이너 스스로 마음속 서랍에 고이 간직해두었던 또다른 제2 제3의 표지들을 말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던 B컷 시안들을 이미 출간된 A컷과 함께 비교해볼 수 있어 특별한 재미를 준다.
이 책을 처음 기획하고 추진했던 이경란 디자이너는 정은경 디자이너와 함께 동료 디자이너들과 같이 생각해보면 좋을 법한 질문들을 준비했다. 그렇게 북디자이너 7인은 서로를 누구보다 충분히 이해하고 속속들이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심도 깊은 질문을 던졌고, 그것에 대해 솔직하고 성심껏 작성한 답변으로 이 책은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자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책들의 B컷 표지들을 모아 화보를 꾸려놓은 것은 그 디자이너의 성향과 작업 방향을 개략적으로 이해하기에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7인의 디자이너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짤막한 즉문즉답에서도 그들의 작업만큼이나 뚜렷한 각각의 개성이 묻어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들 7인이 북디자이너로 입문하게 된 계기부터 자신만의 디자인 철학들을 면밀히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여타의 그래픽디자인 부문과는 엄연히 다른, 책이라는 물성(物性)을 지닌 북디자인의 고유 영역과 프로세스, 트렌드의 변천사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개선되어야 할 업계의 문제점과 현실적인 한계까지도 아프지만 꼬집어내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고발의 차원이 아니라 깊은 애정이 수반되지 않고서는 생겨날 수 없는,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도 같다. 출판업 종사자 모두와 함께 개선해나가고자 하는 희망의 목소리다.
또한, 개별의 디자인 콘셉트를 발전시켜나가는 과정과 작업 당시의 에피소드 등 한 권의 책이 탄생하기까지에 얽힌 이야기와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그 자체로 이미 아름다운 수많은 아이디어들까지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한데 모아 볼 수 있다는 것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일임에 분명하다.
특별히, 초판 한정으로 발행되는 ‘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점에서 더욱 소장 가치가 높다. 표지 디자인은 이 책에도 참여한 김형균 디자이너가 맡았다. 본문은 사철 무선로 탄탄하게 엮었으며 앞뒤로 타공을 뚫은 합지를 덧대어 고급스럽게 제작한 이번 특별판은 오직 초판에 한해서만 만날 수 있다. 2쇄부터는 일반 보급판으로 제작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순히 이들의 디자인 노트를 들여다보고 작업물을 펼쳐 나열하고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 출판계 전체의 문화적 분위기와 그 생리를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디자이너의 아트북이라기보다는 그야말로 우리 출판인 모두의 살아 있는, 현재진행형 역사다.
이러한 작업은 북디자이너 지망생에게는 작업 과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고, 현업에 있는 북디자이너 그리고 편집자를 비롯한 모든 출판인에게도 많은 자극이 되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토록 멋진 이들과 동시대를 살고 있어서, 함께 책을 만들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이러니 저러니 모두가 출판계의 불황을 이야기하지만, 이렇게 뜨거운 그들이 있어서 우리의 미래도 그리 어둡지만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