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음미하고 사유하라!
철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본
인간의 일상과 감정, 그 다채로운 삶의 결
『삶의 기술 사전』. 이 제목에 귀가 솔깃한가, 아니면 그저 피곤하게만 들리는가. 귀가 번쩍 열린다면 삶을 어찌 살아야 할지 몰라 헤매는 사람일 테고, 거부감이 든다면 수많은 처세술에 배신당해 환멸을 느끼는 사람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삶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주눅들어 있는 건 마찬가지. 하지만 명백한 건, 허둥대는 인생이든 좌충우돌하는 인생이든 끝까지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과연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은 60가지에 이르는 삶의 다양한 상황과 감정들을 화두로 던지고, 그 정체와 숨은 면모를 철학의 눈으로 차근차근 들여다본다. 이때 철학이란 막막하게 꼬인 일상의 실타래를 풀기 위한 것으로, 어려운 강단철학이 아니라 삶을 돌아보는 나날의 사유다. ‘삶의 기술’을 연구해온 두 철학자, 안드레아스 브레너와 외르크 치르파스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냉철하지만 사뭇 따뜻하다.
욕망에 대하여
‘돈과 시간’의 증식. 일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든 추구하는 목표다. 이 돈과 시간의 개념을 한 번쯤 뒤집어 생각해보자.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실 돈이란 공허한 것이다. 돈에 대해 칸트는 ‘처분을 할 때에만 쓸 수 있는 물건’이라 했다. 그것을 벌고 쓰는 과정에서 시간은 자연스레 소멸해간다. 따라서 돈을 좇는 삶은 언제나 시간 부족에 허덕이게 된다. 아끼고 불리려는 욕망이 궁극적으로 그것을 잃게 만드는 딜레마에 빠지는 셈이다.(「낭비, 돈과 시간을 놓아버려라」)
인간의 대표적 욕망 가운데 또다른 한 축은 바로 성욕이다. 매매를 통해 성욕을 해소하는 행위는 수천 년간 이어져온 가장 첨예한 논란거리 중 하나다. 게오르크 지멜의 말처럼, ‘성매매’는 인간관계의 완전한 소멸이자 가장 부적절하고 참혹한 교환관계다. 그런데 성매매에 대한 판단과 제재에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적절함’이라는 것은 공적으로 심판받을 문제가 아니기에, 개인의 도덕적 판단에 맡기는 편이 나을 수 있다.(「성매매라는 참혹한 교환관계」)
관계에 대하여
삶은 관계의 연속이다. 자의든 타의든 관계로 점철된다. 이는 ‘노동’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노동은 재산 증식, 즉 사욕을 채우려는 몸부림으로 전락했다. 노동자 자신도 임금을 늘리고자 일에 매달리고, 사용자의 부당한 노동 착취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헤겔은 말한다. “개인의 노동은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킬 뿐만 아니라 남의 욕구도 충족시킨다. 그리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타인의 노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일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게 노동의 진정한 의미이고,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곧 남을 위해 일하는 인간인 셈이라는 이야기다.(「노동, 나와 남을 이롭게 하다」)
반면 ‘패거리’라는 관계는 어떤 특성을 지녔을까. 패거리는 그들 영역 밖의 타인을 철저히 배격하며 그들만의 특별한 ‘집단 정체성’을 고집한다. 심지어 그 구성원 사이에서 오고가는 ‘이타주의’ 성향은 그들에게 고향 같은 편안함을 안겨주기까지 한다. 사이비 종교집단처럼 은밀하고 배타적인 태도로 뭉친 그들은, 결국 사회라는 큰 공동체에 등을 돌린 ‘윤리적 난민’인 셈이다.(「패거리라는 이름의 윤리적 난민」)
몸에 대하여
고대 그리스인은 ‘몸’과 구분하여 ‘육신’이란 개념을 두었다. 자기의식 같은 ‘혼’이 깃든 몸을 육신이라 불렀고, 몸이란 표현은 죽은 사람의 몸뚱이를 가리킬 때 썼다. 이후 칸트의 시대에 몸이란, 이성의 법칙을 따르는 기쁨을 무시하라고 우리를 미혹하는 존재였다. 첨단 기술이 인체 곳곳을 파고든 오늘날, 몸은 상당 부분 인공장기로 대체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죽음’에 주목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죽음이라는 분명한 소멸의 신호는,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몸을 다시금 선명히 밝혀준다. 몸은, 살아 있다.(「몸에 충실한 삶」)
몸에 관한 생각은 ‘장애’라는 문제를 떠올려볼 때 그 범위가 더욱 넓어진다. 건강의 차원을 넘어 존엄성, 윤리의 문제로 확장하는 것이다. 장애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커다란 딜레마를 내포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다며 포용하는 자세를 취하는 한편으로, ‘장애 없는 몸’을 정상적인 상태로 상정하며 장애 ‘예방’을 말한다. 장애인도 사회의 어엿한 일원이라는 말은 수사에 그칠 뿐, 실상은 장애 있는 몸을 온전한 몸으로 인정하지 않는 셈이다.(「장애인으로 살아가기」)
감정에 대하여
‘고통’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괴로운 상황에서 느끼는 불쾌한 감정일 뿐일까. 그보다는, 극한을 겪음으로써 공감의 능력을 얻는 역설적 기회일 수 있다. 고통을 통해 ‘끝까지’ 가보고 커다란 벽 앞에서 절망감을 겪을 때, 결국 인간이란 고통 앞에서 다 똑같이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고통을 마냥 두려워하며 회피하다가는 더 큰 인간으로 발전할 기회를 놓치는 셈이다.(「고통은 공감을 이끄는 끈」)
‘고통’과 상극일 것만 같은 ‘쾌락’은 또 어떤가. 기본적으로 쾌락은 인간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고 행복의 원천이자 목적이다. 따라서 추구하지 않을 수 없고, 어느 정도 추구해야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적정한 선을 넘어 과하게 추구하면 고통에 빠질지 모른다. 이 ‘적정한 선’이란 직접 겪어봐야 파악할 수 있는 것이기에, 예민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분명히 알아야 한다.(「쾌락을 안전하게 맛보는 방법」)
내 삶을 지탱하는 일상의 철학
살다보면 어찌어찌 ‘살아지게’ 마련이라지만, 그러다가는 뒤늦은 후회 속에서 삶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늦었다 생각할 땐 진짜 늦은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그저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나날의 삶에 지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한다면, 인생이라는 롤러코스터를 큰 두려움 없이 즐길 수 있다. 관건은 바로, 내 삶을 지탱하는 일상의 철학을 쥐고 있는가이다.
『삶의 기술 사전』은 고된 삶에 맞서 싸우는 강력한 무기를 쥐여주지는 않는다. 대신 매 순간 우리를 엄습해오는 상황과 그에 따른 감정들을 하나하나 파헤쳐, 그것이 닥쳤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는 철학적 자세를 귀띔해준다. 내 일상을 괴롭게 하는 사건들에 무릎 꿇지 않고 지내면, 삶은 생각보다 유쾌한 것이 될 수 있다. 그런 몸과 마음의 자세를 갖추는 데, 이 책은 진지하지만 부담 없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