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 그들과 우리
모든 관계는 하나의 빛나는 세계다!”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레이먼드 카버의 미발표 단편과 에세이
카버는 여러 재능 있는 작가들이 이루지 못한 것을 성취했다. 그는 자신만의 나라를 창조해냈다. _뉴욕 타임스
“이 책은 그렇게 하늘에서 곧장 떨어진 것을 통에 모아둔 빗물과도 같다.
우리는 언제라도 그 안에 손을 담가 기운을 주고 격려를 해줄 뭔가를,
레이먼드 카버의 삶과 작품에 다시 가까이 가게 해줄 뭔가를 찾을 수 있다.”
_테스 갤러거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 ‘미국의 체호프’로 불리는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 레이먼드 카버는 1988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0여 년 뒤, 그가 남긴 자료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생전에 발표되지 않은 단편소설 다섯 편이 발견되었다.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는 이 미발표 단편들을 모은, 카버가 남긴 ‘마지막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려주는 책이다. 카버 자신의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와 문학에 대한 견해뿐 아니라 자신의 작품에 대한 해설과 체호프, 헤밍웨이, 바셀미, 브로티건 등의 작가들에 대한 소견까지 포함되어, 항상 소설 속 캐릭터를 거쳐서 간접적으로만 들어왔던 카버의 목소리를 1인칭으로 접할 귀중한 기회를 마련해준다.
이 책에는 레이먼드 카버의 초기 단편들과 그가 시도했던 장편소설의 일부가 실려 있다. 초기 단편은 우리가 익히 아는 카버의 작품들과는 무척 다른 인상으로, 윌리엄 포크너, 제임스 조이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초창기 카버에게 영향을 끼쳤던 작가들의 느낌이 역력해 흥미를 더한다. 카버는 생전에 단 한 편의 장편소설도 남기지 않은 터라, 이 책에 실린 장편소설의 조각은 독자들로 하여금 장편소설 작가로서의 카버의 모습을 짐작케 할 기회가 될 것이다.
카버의 배우자이자 문학적 동반자였던 테스 갤러거가 쓴 서문은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가 출간된 배경과 그 맥락, 이 책의 가치와 레이먼드 카버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어 또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레이먼드 카버의 ‘새로운’ 단편소설, 그가 남긴 마지막 선물
“잘 있어.” 낸시가 말하고 내게 다가왔다. 우리는 서로 껴안았다. 낸시가 말했다. “지난밤 좋았어. 말들, 우리가 나눈 대화. 모든 게. 도움이 됐어. 우린 그걸 잊지 못할 거야.” 낸시는 울기 시작했다.
“편지해, 알았지?” 내가 말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그 오랜 세월 동안,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단 일 분도 생각하지 않았어. 이런 건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어.”
“편지할게. 긴 편지를 쓸게. 고등학교 때 내가 당신에게 쓰곤 했던 편지 이후 당신이 보지 못했던 가장 긴 편지들을 써 보낼게.” 낸시가 말했다. _「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중에서
레이먼드 카버가 생전에 발표하지 못한 다섯 편의 단편은 우리가 익히 아는 카버 문학의 진수를 다시금 느끼게 한다. 더 나은 삶을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상적이지 않되 따뜻한 시선. 그들은 방황하고 흔들리며, 심지어 지금까지의 삶을 모두 떨쳐버리고 떠나는 게 최선이 아닐까 고민한다. 카버는 이 인물들에 대해 최소한의 정보만 드러내면서도 최대한의 연민과 애정을 느끼게 한다. 그는 사람들의 삶의 한 장면, 말 한마디만으로 독자들의 공감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이끌어낸다. 또한 지극히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언어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남녀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욕망과 두려움을 보여준다.
표제작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는 카버가 즐겨 다루는 테마인 결혼의 종말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자 연인이 있지만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는 부부가 여름 동안 별장을 빌려 단둘이 지내며 결혼생활을 회복시켜보려 애쓴다. 「무엇을 보고 싶으신가요?」는 비슷한 테마를 다루지만 좀더 다양한 이미지(부패한 생선과 같은)와 에피소드를 통해 간접적이고 암시적으로 부부의 상황을 전달한다. 「불쏘시개」는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났지만 결혼이 파탄난 한 남자가 완전히 낯선 곳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외적으로는 전혀 특별한 사건이나 관계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중에 주인공 내면의 흔들림을 담아내는 솜씨가 두드러진다. 한편 「꿈」과 「방화」에서는 화재라는 비극적 사건이 일어나지만, 주인공은 거기에 직접 연루되는 대신 제3자로서 자신 내면의 감정을 불길에 투영한다. 카버는 등장인물의 작은 언행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모든 인간관계 속의 소소한 순간을 새롭게 발견한다. 아내와 남편, 아내의 친구들, 함께 식사를 하는 부부들, 그 모든 관계가 카버에게는 하나의 세계와도 같다.
마침내 1인칭으로 듣는, 카버의 삶과 문학 이야기
나는 앉아서 금방, 오늘밤 또는 적어도 내일 저녁까지는 끝마칠 수 있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흥미를 잃기 전에 마칠 수 있는 뭔가를 써야만 했다. (…) 장편소설을 쓰려면 작가는 그 자체로 이치에 맞는 세상을, 작가가 믿을 수 있고 완전히 이해하고 정확히 묘사할 수 있는 세상을 살아야만 한다. 적어도 한동안은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세상 말이다. 이와 더불어, 그 세계가 본질적으로 옳다는 믿음이 있어야만 한다. 작가가 아는 그 세계가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으며 그에 대해 쓸 만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연기처럼 사라지지 않아야만 한다. 하지만 내가 살던 세상은 날마다 법칙과 방향과 속력이 바뀌는 듯했다. 다음달 1일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들이 이어졌고, 어찌어찌해서 돈을 마련해 간신히 집세를 내고 아이들이 학교에 입고 갈 옷을 사 입히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_「정열」중에서
이 책에 실린 에세이, 서평, 작품 해설 등은 카버라는 한 인간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보게 해준다. 카버는 따로 자서전을 남기지 않았으므로, 이 논픽션들은 그와의 가장 내밀한 만남이라 할 수 있다. 카버는 열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결혼하고 스물한 살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제재소 목공, 병원 수위, 교과서 편집자, 도서관 사서 등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실직으로 실업수당을 받고 알코올중독까지 겹치면서 그는 매우 힘겨운 삶을 보냈고, 부부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밥벌이를 위해 전쟁처럼 살아갔던 카버에게 글쓰기는 삶을 견디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중에도 그가 단편소설을 택한 것은 최대한 짧은 시간에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지극히 실제적인 이유에서였다.
「글쓰기에 관해」와 「존 가드너: 선생으로서의 작가」에서 카버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작가가 된다는 것, 창작한다는 것에 대해 간명하고도 유용한 조언을 들려준다. 특히 「정열」에서는 가장이자 생활인으로서 어떻게 예술과 생계, 심지어 육아를 병행할 것인지 실용적이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내 아버지의 인생」과 「우정」에서는 아들이자 벗으로서 카버의 좀더 개인적인 면모와 인간관계에 대한 가치관을 접할 수 있다.
카버에 대해 당신이 아직 몰랐던 것들, 그의 생생한 목소리로 만나다
현대 미국 단편소설의 르네상스를 이끈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이 애정을 보내는 작가.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는 작가. 그가 바로 레이먼드 카버다.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는 그의 가장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독자들은 카버의 픽션과 논픽션을 함께 읽음으로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그에 따라 어떤 작가로 성장했는지, 어떤 문학관을 갖게 되었는지 좀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또한 작가 지망생들에게는 카버의 조언과 격려를 전하는 지침서로서도 의미가 깊을 것이다.
언론 서평
카버는 여러 재능 있는 작가들이 이루지 못한 것을 성취했다. 그는 자신만의 나라를 창조해냈다. _뉴욕 타임스
이 책에 실린 다섯 편의 새로운 단편은 오래도록 버려졌던 폐광에서 발견한 다이아몬드와도 같다. 카버의 글을 읽으면, 당신이 항상 알고 있었지만 지금껏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새삼 이해하게 될 것이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필치에 있어 카버는 헤밍웨이와 비슷할지 모르지만, 남녀관계에 대한 카버의 묘사는 그 미묘함에 있어서 헤밍웨이의 어떤 작품보다도 뛰어나다. _뉴 스테이츠맨
카버의 산문은 단순하고 감상적이지 않은 언어들로 이루어진 기도서다. 그의 글은 섬광과도 같다. _스코츠맨
카버는 진정한 현대의 거장이다. 카버의 산문은 무엇보다도 그 간결함으로 언제나 고유한 특징을 드러낸다. 그의 재기와 명료함은 감탄스럽다. _뉴욕 타임스 북 리뷰
카버의 기법은 거장답고 능란하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위대하고 지속적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이야기에 담긴 인물들이다. _타임스
책 속에서
작가가 발전하기 위해 야심과 작은 행운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너무 큰 야심과 불운, 또는 운이 전혀 없다면, 그건 치명적이다. 물론 재능은 있어야 한다. _본문 161~162쪽
재능 있는 작가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특별한 방식으로 사물을 보는 작가, 그리고 그렇게 사물을 보는 방식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는 한 시대 안에 흔하지 않다. _본문 162쪽
다른 직업군에 진입하는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분명 젊은 작가에게도 격려가 필요하다. 아니 내 생각에는 더 큰 격려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격려는 늘 정직해야만 하며 절대로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_본문 206쪽
시가 꼭 시작과 중간과 결말이 있는 이야기를 말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내게 있어 시는 계속 움직이고, 생생히 나아가고, 번뜩이는 게 있어야만 한다. 시란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여야 한다. 그 방향이라는 것이 과거일 수도 있고, 먼 미래일 수도 있다. 또는 웃자란 오솔길로 방향을 틀 수도 있다. 심지어 지구에 한정된 게 아니라 별들 속을 누비며 머물 곳을 찾을 수도 있다. 무덤 너머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연어, 기러기, 메뚜기와 여행을 할 수도 있다. 시는 정지해 있으면 안 된다. 시는 움직여야 한다. 시는 움직이고, 설사 그 안에서 신비로운 요소들이 작용할지라도,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암시하는 본질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시는 빛나야 한다. 적어도, 나는 시가 빛나길 바란다. _본문 327쪽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뭔가가 일어났다. 잠을 푹 잔 뒤, 나는 책상으로 가서 「대성당」을 썼다. 이게 그동안 내가 써온 이야기와는 다른 종류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어찌어찌 나는 내가 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쪽으로 갔다. 빠르게. _본문 341쪽
만약 우리가, 작가와 독자 모두가 운이 좋다면, 우리는 단편소설의 마지막 한두 줄을 마치고 잠시 조용히 앉아 있을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방금 우리가 쓴 또는 읽은 글에 대해 생각하리라. 아마 우리의 심장 또는 지성은 글을 읽기 전에 비해 아주 살짝 그 위치가 달라졌으리라. 우리의 체온은 눈에 띄게 올라가거나 내려가리라. 이윽고 숨이 다시 차분해지면, 우리는, 작가와 독자는 마찬가지로 정신을 수습하고 일어나리라. 그리고 체호프작의 등장인물이 말했듯이 “따뜻한 피와 신경으로 창조되어” 다음 일을 향해 전진하리라, 삶을 향해. 언제나 삶을 향해. _본문 342~3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