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편집자가 북디자인을 알아야 할까?”
책의 구조로 읽는 독자의 마음
서점에 들어서면 책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를 낸다. 큼직한 제목과 화려한 색채로 시선을 사로잡는 책이 있는 반면 단정한 타이포그래피만으로 점잖게 인사를 건네는 책도 있다. 원고뭉치였던 이들은 북디자인을 차려입은 채 모두 한 마음으로 독자에게 간택되기만을 기다린다.
“독자는 ‘좋은 책’을 구매하기보다 ‘좋아 보이는 책’을 구매한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기 전까지는 그것이 좋은 책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독자는 ‘좋아 보이는 책’을 통해 ‘좋은 책’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좋은 책’은 ‘좋아 보이는 책’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좋아 보이는 책’이란 ‘이 책에는 이러저러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가 아니라 ‘이 책에는 진짜 맛있고 알찬 이러저러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라는 점을 화사한 문안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암시하는 책을 말한다.” 자, 그럼 질문의 답은 간단해졌다. 편집자와 디자이너는 더 많은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북디자인의 매혹적인 구매 단서를 만들어야 한다. 더불어 텍스트의 시각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편집자도 책의 구조를 감각적으로 살피는 눈이 필요하다.
‘사각의 링’에서 만난 편집자와 디자이너
책이 나오는 과정, 또 그 책을 독서라는 경험으로 이끌기까지 책의 뒷면에는 저자,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 등의 지난한 협업 과정이 배어 있다. 이 중 북디자인은 책의 판형, 표지 ‧ 내지 디자인, 앞뒤날개, 책등, 종이의 재질, 인쇄, 후가공 등 책의 외형을 모두 총괄하는 일이다.
편집자가 책의 콘셉트와 예상 독자를 고려한 북디자인을 의뢰하면 디자이너는 책의 정체성에 맞는 디자인 흐름을 살피며 작업에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나누는 대화는 주로 크기, 색깔, 서체 그리고 일정 등으로 모아진다. 편집자는 작업된 디자인에 대해 설명할 길이 어려워 “바꿔 주세요”라고 외치고, 디자이너는 수정되어야 할 명확한 이유를 몰라 난감하기만 하다. 애매한 느낌은 확실하지만 적확한 표현을 찾기란 어렵다.
“모르면 볼 수 없고, 제대로 볼 수 없으면 말할 수 없다. 또 말하지 못하면 그만큼의 북디자인이 될 수밖에 없다.” 디자이너와의 즐거운 소통을 위해 편집자도 디자인적 사고를 갖추면 작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선을 줄일 수 있다. 더불어 책에 구현된 디자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더욱 짜임새 있는 책을 만들 수 있다. 편집자는 언어의 틈에서 시선의 길을 찾아야 한다.
편집자의 눈으로 바라본 북디자인
이 책은 출판 현장에서 25년째 책을 만들어온 지은이의 경험을 기초로 하고 있다. 오늘 장서를 처분하고 내일 다시 책을 살 만큼, 책 중독자인 그에게 북디자인은 ‘건축’과 다름없는 행위다. 책은 지면에 쌓은 공간이자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내 완성한 결과물인 탓에 책의 물성(物性)으로 생명력을 갖는다. 그래서 책의 물성에 중독된 지은이는 지독하게 책을 모으고 또 책의 몸매를 탐한다.
미술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미술책을 기획해온 그가 이번에는 책이 나오는 과정 전체를 굽어보았다. 책 만드는 이들이 무심코 지나쳤을 각 면의 존재 이유를 찾고, 각 요소의 당위성을 시시콜콜 의문에 부쳐 한 권의 세밀화를 그린 것이다. 왜 책의 형식은 독자의 심리를 닮았는지, 왜 판면에 양지와 음지가 존재하는지, 표지-약표제면-표제면은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는지, 도판과 여백은 지면에서 어떻게 호흡하는지 등 책의 조형 원리를 통해 구석구석 편집자가 알아야 할 북디자인을 꼼꼼히 따졌다.
편집자는 낱장으로 된 평면의 교정지로 작업한다. 그러나 최종 결과물은 입체로 된 한 권의 책이다. ‘원고 마케터’인 편집자는 이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떤 책의 꼴을 그리고 작업하느냐에 따라 책의 운명이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텍스트가 갖게 될 ‘책꼴’을 그리다
한 권의 책에서 책 만드는 이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뚱뚱한 원고뭉치를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독자와 저자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그저 한 발짝 물러서 흐뭇하게 바라보기 위해 책 만드는 사람들은 한정된 지면 안에서 사투를 벌인다. 문장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씻고 마르기를 세네 번, 다시 맥락을 다듬어 본문에 담긴 감정과 논리에 따라 책의 몸짓과 표정을 만든다. 책을 읽고 ‘보는’ 이의 호흡을 고려하여 책장을 계속 넘길 수 있도록, 편집자와 디자이너는 수많은 결정의 순간을 만나 판단의 근거를 찾는다. 이렇게 저자가 건네준 원고는 만듦새와 쓰임새를 갖춰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한다.
“편집자는 저자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독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로 풀어주는 사람이다.” 이 책을 통해 작업된 북디자인에 대해 그대로 믿고 넘길 것이 아니라 먼저 왜 그런지 생각해보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보고’ ‘읽는’ 책의 탄탄한 체형을 섬세하게 익혀 “독자의 마음을 디자인”하기를. 그리하여, 책장을 다 넘기고 나서 처음 책 만들었을 때의 두근거림이 남아있기를. 그랬으면 더없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