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처 따위 받지 않았어!”

예쁘장한 외모에 남다른 ‘아우라’까지 갖춘 완벽한 열네 살 소녀, 아이사와 리쿠. 친구들은 그녀를 특별한 존재라고 여겼고, 리쿠 역시 스스로를 특별하게 생각했다. 그녀에겐 비범한 특기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수도꼭지를 돌리 듯 자유자재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슬픔의 의미 따위는 알지도 못하는 메마른 감정의 소유자일 뿐, 그저 남들이 슬퍼할 만한 상황이 오면 누구보다 뜨거운 거짓 눈물을 자신의 눈동자에 고이게 하는 것에 불과했다.

메말라 있고 어딘가 구멍이 뚫려 있는 건 리쿠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세련되고 다정한데다 능력도 있는 아빠, 평범한 식재료도 갖은 신경을 써서 고르는 완벽주의자 주부 엄마. 언뜻 완벽해 보이는 가정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아빠는 회사의 아르바이트생과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엄마는 이를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 못 본 척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리쿠는 이러한 부모를 공허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 날 아빠의 불륜 상대 우치노를 집으로 초대했을 때, 리쿠는 키우던 앵무새를 손으로 쥐어 죽이려 한다. 리쿠는 이 앵무새를 사람들의 눈앞에서 죽이는 것이야말로 엄마가 바라는 일이라 여겼던 것이다. 겨우 별일 없이 소동은 마무리되지만 이 일로 엄마는 리쿠에게 이렇게 선고한다.

“당분간 간사이 고모할머님 댁에서 지냈으면 해. 너 혼자.”

도쿄를 떠나 강제로 시작된 간사이 생활. 벗어나고 싶지만 이대로 돌아간다면 엄마한테 지는 것이니 참아낼 수밖에 없다. 간사이 지방 특유의 거칠고 스스럼없는 인간관계, 수다스럽고 시끄러운 고모할머니네 가족들, 그리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간사이 사투리에 시달리며 리쿠는 속으로 다짐한다. “나는 절대로 물들지 않아!”

하지만 리쿠에게 예상치 못한 위기가 찾아오는데…

우리 마음속 어린 여자아이에게 해주지 못한 것

만화가 호시 요리코가 창조한 캐릭터, 아이사와 리쿠는 도시에 사는 예쁜 14살짜리 여중생이다. 이 만화는 새침한 아이가 대가족 친척 집에 우연히 맡겨지면서 뜨겁고도 시원한 눈물의 의미를 찾아가는 성장 드라마이다.

청소년물일까? 그렇지만도 않다. 작가가 설정한 캐릭터가 여중생이긴 하나, 만화 속 그녀의 행동을 보면 타인에게 마음을 닫고 살며, 타인에게 상처를 잘 받는 어른들이 모두 마음속에 품고 사는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 마음속의 어린아이를 우리는 혹독하게 대한다. 이 만화의 ‘하권’ 86쪽에 주목할 만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간사이 친척 집의 어린 손자 도키오가 갑자기 쓰러지자 아이사와 리쿠는 도키오보다 도키오가 앓고 있는 병이 자신에게 옮는지를 먼저 걱정한다. 놀라운 건 친척 집 할머니의 반응이다. “걱정 안 해도 된다. 안 옮는다.”라며 리쿠를 안심시킨다. 할머니 눈에는 리쿠가 못된 애가 아니라, 마음의 문을 닫은 아이로 보여서 그것이 몹시 신경 쓰이는 것이다.

고모할머니의 아들인 고등학생 쓰카사는 은근히 리쿠를 챙겨주고, 전학 간 학교에서 만난 반 친구들은 리쿠네가 망했다고 오해하는데 왕따를 놓는 게 아니라 그녀의 힘든 상황을 이해하려 한다.

리쿠는 도쿄에서 부모의 오해 속에서 살았지만, 간사이에서 무한한 이해의 세계와 만나게 된다. 리쿠가 만난 간사이 사람들의 이해는 때론 허술하다. 정확한 정보를 통한 이해도 아니며, 너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태도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이해는 일상적인 수다와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마음은 그렇게 해서 열린다는 것, 마음이 열리고 타인을 이해하고 그를 통해 내가 성장하는 것은 이 만화 속 풍경처럼 자연스럽고 따뜻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 마음속 새침한 어린아이에게 무엇을 해주지 못했는지 알게 된다. 그때 코끝이 시큰해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