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프랑스 실험문학의 기수 조르주 페렉의 산문 13편
프랑스 실험문학의 기수로 불리는 조르주 페렉의 『생각하기/분류하기』(1985)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가의 산문집이자, 1982년 3월 3일 조르주 페렉이 죽고 난 후에 묶어 펴낸 첫 산문집이다. 1976년부터 1982년까지 여러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 글 열세 편을 묶었는데, 책 제목으로 삼은 가장 마지막 장의 「생각하기/분류하기」는 그가 죽기 몇 주 전에 출판한 마지막 글이었다. 울리포(OuLiPo, 잠재문학작업실)로 활동하며 누구보다 활발히 실험문학에 앞장섰던 작가의 자전적 경험과 작가론, 문학관, 작품세계의 일면이 산문 곳곳에 내밀히 담겨 있어 작가노트를 훔쳐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이 책은 또한 작가들이 글 하나를 완성하기 이전의 시간과 풍경에 대해, 발표된 글 바깥으로 무수히 사라지고 삭제된 문장이나 생각들에 대해 사유해볼 수 있는 특별한 책이다. 무엇이라 정의할 수 없고, 분류할 수 없고, 정리할 수 없는 찰나의 사유를 고스란히 받아적는다면 어떤 글이 나올까? 글쓰기에서 늘 시시각각 떠올랐다 사라지는 생각이 실상 바로 글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글을 기다리는 동안의 과정이야말로 작가에게 가장 고통스럽고 절박한 순간이다. 쓰기의 역사에서 ‘작품화’하지 못한 변방의 영역, 기타 등등으로 요약된 채 목록화하지 못한 영역, 하잘것없는 일상의 틈새를 페렉은 여기서 다시 조명한다. 페렉의 산문 한 편 한 편은 궁극을 향해, 미지를 향해, 언제 펜 끝에 도달할지 모를 영감의 번개를 향해, 야윈 피뢰침 하나 들고 영원히 매 순간 기다림을 운명처럼 받아들인 작가들이 글쓰기에 도달하기까지 겪는 과정이 곧 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간 글 이전의 글쓰기의 주변 풍경에 대한 조명은 언제나 문학사에서 표면화되지 못한 무관심의 지대였으나, 이제 우리는 글 한 편을 빙산의 일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삐딱한 시선으로서의 단서를 페렉의 산문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과 문학 실험을 통해 꿈꾼 작가 세계의 고민들,
삶과 문학에서 ‘기타 등등’으로 괄호 쳐진 것에 대한 자각의 조명
페렉은 평생 일상의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자잘한 문구들, 전단들, 영수증들마저 문학의 재료로 삼고, 지나는 행인들과 지나친 공간들 묘사에 진력이 날 정도로 고심했던 작가다. 일례로 『인생사용법』에서는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을 연상케 하듯 아흔아홉 개의 방에 아흔아홉 개의 각기 다른 사물과 풍경을 수학과 체스법을 도입해 배치하고, 이에 대해 지루할 정도로 세밀한 묘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뿐만 아니라 1974년 10월 18~20일 사흘을 카페에 앉아 지나치는 모든 눈앞의 세계를 목록화하고 묘사해 『파리의 어느 장소에 대한 완벽한 묘사 시도』라는 책을 펴낸 바도 있다. 또 그는 너무나 익숙해서 지각이 마비된 일상의 영역을 전혀 낯설게 바라보도록 실험하기를 즐겼다. 이 책의 「나는 밀레와 이삭을 기억한다」라는 장에서 역사 교과서의 단장을 조판된 글자만 따서 오려붙여 편집된 역사의 허구를 퍼즐 조각처럼 바라보게 하고, 「살다habiter 동사의 몇 가지 용례에 대해서」에서 무수히 다르게 내가 어디에 사는지를 말할 수 있는 차이의 가능성을 사유하게 하듯이.
페렉은 자신이 견지한 문학관이자 작가론을 첫 장 「모색중인 것에 대한 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내가 쓴 책 중에 비슷한 책은 하나도 없고, 먼저 쓴 책에서 구상했던 표현, 체계, 기법을 다른 책에 절대 다시 써보려고 하지 않았다… … 작가로서 나의 야심은 결코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거나 내가 남긴 흔적을 뒤따른다든가 하는 감정 없이, 내 시대의 모든 문학을 섭렵하고 오늘날 문인이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써보고자 하는 데 있는 것 같다.” 특히 「생각하기/분류하기」에서 한 가지 행위를 기술하기 위해 쓰이는 무수한 동사들의 차이에 대해 숙고한 흔적들은, 글을 쓰기에 앞서 언어를 고르고 분류하는 필수적인 선행작업에 있어 얼마나 작가로서 말을 단련했나를 엿보게 한다. 또한 「계략의 장소들」에서 밝혔듯, 4년간의 정신분석 경험 동안 무언가 말해야만(써야만) 하고 말이(글이) 되어 나오기를 기다리며 오랫동안 바라보던 천장을 무기력한 백지상태에 비유하는 자기분석도 놀라움을 안겨준다. 입 속의 말과 입 밖의 말 사이에서 작가는 늘 망설이고 배회하고 불안해하고 속이고 우울해하는 자다. 무슨 말이든 지껄여야 했던 분석 의자에서 일어나 말의 환영이 계략을 짜내는 불안한 생각과 분류 지대를 지나, 비로소 섬광 같이 글이 쓰이는 인화지로 오는 그 과정이 곧 분석(치료)의 과정이자 작가의 여정임을 알아챈 것이다.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 이 시간에, 내 역사의 공간, 여전히 부재하는 내 말의 공간이 될 존재하지 않는 그 공간에 틀어박히기 위해, 나는 4년 동안 그곳에 갔다”라고 페렉은 고백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생각과 분류의 작품 실행에서 그간 기타 등등으로 삭제된 장소를 글쓰기의 장소로 데려온 셈이다.
일상의 감각화, 감각의 역사화: 목록과 분류 작업을 통한 사회학적 인식론으로서의 글쓰기
페렉은 “목록을 작성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어 보이겠지만, 기타 등등이라고 써버릴까 싶기도 하지만, 기타 등등을 붙이지 않아야 정확한 목록이다. 현대의 글쓰기는 열거하는 기술을 잊어버렸다. 라블레의 목록이라든지, 『해저 2만 리』 속에 나오는 린네식 어류 열거법이라든지, 『그랜트 선장의 아이들』에서 오스트레일리아를 탐험했던 지리학자들을 나열하는 방식이라든지……”라고 말하며 글쓰기에서도 ‘기타 등등’으로 묶인 영역을 끌어온다. 분류 없이 조목조목 목록을 만들어나가며 글을 쓴 세이 쇼나곤을 빌려오는 대목도 이런 이유에서다.
순간순간 나를 구성하는 현존의 목록들을 열거하고 분류하는 것. 이는 단 한 번 사는 자로서 세상을 속속들이 공평하게 이해해보려는 작가정신이자 사회학적 인식론이다. 니콜 라피에르는 “치밀하면서도 익살스러운 작가”라고 페렉을 지칭하면서, 이 책 『생각하기/분류하기』에서 뭔가를 정리하고 분류할 때 단일한 기준이 아니라 저마다 여러 가지 분류 기준을 조합해 즐긴다는 분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페렉은 여기서 의미심장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즉 지식의 위계질서는 당대의 시대정신에 상당히 좌우되고, 관심, 취향, 호기심, 소소한 페티시즘과 익숙한 습관들은 지속적으로 퇴적 작용을 일으키면서 축적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는 페렉이 이 책 「읽기: 사회-생리학적 개요」에서 마르셀 모스의 작업을 인용하면서 체계적인 지식이나 연구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기타’ 영역이 실은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고 행위를 규정짓고 육체를 만들어나간다고 역설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가 이 글에서 ‘읽다’라는 행위에 동원되는 모든 신체감각 기관을 이 글의 장제로 목록화하여 생리적 감각과 사회학적 인식론의 세계가 맞닿는 지점을 사유하는 대목만 봐도 이런 미세한 지각작용까지 생각하고 분류했다는 것에 놀라움을 느낄 것이다.
페렉은 시공에 따라 날마다 변할 수 있는 유행과 취향(「열두 개의 삐딱한 시선」)도 분류와 생각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 변화와 양상을 지켜보며 꼼꼼히 기록하는 자, 그는 말한다. “모든 것을 적어두지 않으면 달아나버리는 이 삶에서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다는 듯, 나는 잊는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남긴 흔적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공포심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나는 광적으로 보관하고 분류하게 되었다. 나는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이처럼 소소한 갖가지 일상 용품들을 자기 생활(인생)의 증거물로 받아들이는 이 치밀한 측량사는 책상 위에 놓인 문구 용품들(「내 작업대에 있는 물건들에 관한 노트」), 시대나 용도에 따라 달라지는 안경들(「안경에 대한 고찰」), 언젠가 한 번은 잠잤고 깨어났던 방들(「되찾은 세 개의 방」)을 마치 무슨 단서나 사건 현장이라도 되는 양 기술하고 분류하고 목록화한다.
페렉은 살아남은 자, 생존자의 눈으로 쓴다. 그에게 글쓰기란 사는 족족 사라지고 있는 지금 여기의 현장을 오롯이 목격하고 기록하는 절박한 수단이다. 이러한 작가적 태도를 번역가 이충훈은 ‘감각의 역사화’라고 명명하면서, “사물들 사이의 상투적인 ‘관계’를 고정하는 대신, 그 ‘사이’를 응시하는 시선이 겪게 될 ‘현기증’이 페렉이 쓰는 글의 주제”라고 말한다. 오늘 나의 일상에 동참하고 지금 여기의 삶을 구성한 모든 물건, 도구, 공간, 취향, 생각, 감각을 망각으로부터, 일상의 마취로부터 구해내려는 이 시도는, 전쟁과 나치로부터 부모를 빼앗긴 이 유대인 고아 작가의 자전적 삶과 맞닿아 있다. “더는 기억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되찾게 해줄 유일한 가능성으로 남은 사물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물들에 대한 꿈’은, 페렉에게는 간절하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생의 마지막 수단이기도 하다”라고 옮긴이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