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로 돌아가고 싶어』는 발군의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선보여온 작가 이누이 루카의 네번째 소설집으로, 인생의 화양연화, 혹은 쓰라린 상흔의 기억을 간직한 이들이 "그날"로 돌아가는 신비로운 시간여행을 담아낸 여섯 편의 단편을 묶었다.
인생의 분기점으로 돌아간 이들의 시공을 초월한 재회가 담긴 『그날로 돌아가고 싶어』는 시간의 잔혹함과 덧없음을 그린 수작으로, 부조리한 운명에 조금이나마 저항하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눈물을 자아내는 감동부터 격렬한 고통이 남는 비극까지 다채로운 색깔을 두루 갖춘 이번 작품집은 제143회 나오키 상 후보에 올라 심사위원들의 호평 속에 소설적 가치 또한 인정받았다.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태어나 지금껏 고장을 지켜온 이력을 반영하듯 이누이 루카는 소설 곳곳에서 설국을 연상시키는 한겨울의 매혹적인 풍광, 한여름의 바다와 들판 등 홋카이도의 이색적인 경치를 그려 보인다. 또한 홋카이도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과 사고를 숨은 모티프로 활용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소설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침체된 분위기의 타개책으로 동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행동전시’를 도입해 관광명소가 된 아사히카와 동물원의 사연(「한밤의 동물원」),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 피해로 1993년 7월 2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오쿠시리 섬의 재난(「시간을 달리는 소년」) 등은 홋카이도에 각별한 애정을 품은 작가만이 구상해낼 수 있는 이야기다.
‘그날’의 추억이 깃든 장소에서 맞이하는 구원의 순간들
아스라한 빛을 따라 찾아든 한밤의 동물원, 파도가 모든 것을 삼켜버린 바닷가 마을,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뒤 신비한 꽃이 핀 호숫가, 십오 년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찾아간 학교 운동장, 경기중 사고로 고독하게 죽어가야 했던 설원, 눈 오는 밤 두 사람을 이어준 나무가 있는 교정. 여섯 편의 이야기에서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가슴속 깊이 품고 살아온 ‘그날’은 대체로 시련과 상실이 수반되는 고통의 날이다. ‘구원받지 못할 미래임을 알고도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 아닐까?’ 수없이 반문하며 ‘그날’ 이후를 살던 그들은 우연히 신비로운 체험을 통해 인생의 분기점으로 돌아가 자신의 과거 혹은 미래와 대면한다. 그리고 충분히 기뻐하고 슬퍼하는 가운데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이 걸어온 길을 긍정한다. 누구나 돌아가고 싶은, 혹은 다시는 돌이키기 싫은 ‘그날’이 있을 터. 이누이 루카는 이 모든 순간을 아우르며 우리에게 잊어서는 안 될 순간이 있음을 환기한다. “이 세상이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다는 구원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소설집 『그날로 돌아가고 싶어』는 비일상을 통해 일상을 긍정하며 읽는 이의 마음에 따듯하고도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어떤 인생이든 반드시 분기점이 되는 순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그날’도 있거니와, 타이밍이 아주 약간 어긋나 이후의 인생이 뒤흔들리는 ‘그때’도 있으리라.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누이 루카
각 작품의 내용
「한밤의 동물원」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집에서도 부모님께 꾸중만 듣던 나는 견디다못해 여름방학 첫날밤 무작정 집을 나와 낯선 길을 헤맨다. 그러다 밤에만 활기를 띠는 신비한 동물원을 찾게 되는데…… 훗날 소년의 인생에 아로새겨질 여름 한철의 경험.
「시간을 달리는 소년」
마을에 대지진이 일어난 날, 머리를 다쳐 기억을 잃은 소년은 상처투성이가 된 채 낯선 곳에서 눈을 뜬다. 한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부모님을 기다리며 보내는 꿈같은 하루가 십오 년 뒤 누군가에게도 선물 같은 날이 된다.
「그날로 돌아가고 싶어」
자원봉사를 하러 간 양로원에서 만난 노인은 유독 나에게만 마음을 연다.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려다 모든 일을 그르친 그는 지난날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어느 날 호수에 몸을 던진다. 그 자리에 있던 나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인 아내와 그가 재회하는 환상을 보는데……
「뱀불꽃」
서른셋의 유키에는 나이만 먹은 자신이 초라할 뿐이다. 오늘은 십오 년 전 학창시절 친구들과 꽃불을 들고 학교 운동장에서 모이기로 한 날. 하지만 그들은 결코 돌아올 수 없다. 아무도 오지 않을 줄 알면서 교정을 찾은 유키에는 지난날의 모습으로 돌아온 친구들과 ‘그날’을 연기한다.
「did not finish」
국제 스키 대회 중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진 한 남자. 몸에서 의식이 빠져나온 그는 이윽고 과거여행을 떠난다. 죽을힘을 다해 스키를 탔지만 남은 것은 비참한 죽음뿐. 주위의 동정 어린 시선만 받으면서도 도대체 왜 남자는 스키를 포기하지 못했을까?
「밤 산책」
홋카이도로 이사 와서 두번째 맞이하는 겨울, 아키코는 으슥한 밤이면 학교 앞 목련나무 앞에 모습을 비치는 할머니와 친구가 된다. 할머니는 십수 년 전 눈 오는 밤 나무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다 처지가 같은 한 소녀를 알게 된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미래가 두려워 인생의 시간을 멈춘 소녀와, 교육자로서 시간이 멎어버린 여자의 이야기.
▶ 나오키 상 심사평
_장인의 세계에서 말하는 ‘솜씨’가 느껴진다. 아사다 지로
_과거와 현재, 생과 사가 모자이크처럼 직조된 이 소설에 주목했다. 미야기타니 마사미쓰
▶ 옮긴이 김은모
일본 미스터리 번역가. 옮긴 책으로 『모즈가 울부짖는 밤』 『메르카토르는 이렇게 말했다』 『애꾸눈 소녀』 『미소 짓는 사람』 『밀실 살인 게임』 『달과 게』 『조화의 꿀』 등이 있다. 드넓은 일본 미스터리의 바다에서 색다르고 재미있는 작품을 건져올리기 위해 항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