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찾으시라!
시시때때 펼치시라!
‘슬기로운 모듬살이를 위한 지혜의 모음서’
『매일매일 명심보감』
명심보감. 사전을 찾아보면 이렇습니다. “고려 시대, 어린이들의 인격 수양을 위해 중국 고전에서 선현들의 금언(金言)과 명구(名句)를 편집하여 만든 책. 주로 한문을 배우기 시작할 때 『천자문(千字文)』을 익힌 다음 『동몽선습(童蒙先習)』과 함께 기초 과정의 교재로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어린이들의 필수 교재란 얘기인데 과연 우리가 그 텍스트를 통과했느냐 하면 씁쓸하게도 입을 다무는 이가 적잖을 겁니다.
물론 명심보감, 하면 지혜의 말씀이겠거니, 제법들 안다고 고개들 끄덕입니다. 그러나 그 명심보감, 읽었니? 하고 물으면 당당하고 자신 있게 답할 이가 몇이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저는 그랬습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제대로 읽은 적 없이 자랐습니다. 한자 학원이나 서예 학원에 가지 않으면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집에서도 한 챕터씩 넘겨가며 읽고 외우라 지침을 하는 어르신이 안 계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지요. 물론 기본 교재로 읽고 배우고 자란 분들 또한 꽤 될 겁니다. 그럼에도 다시금 이 기초다 싶은 텍스트를 끌고 나와 재구성한 책을 여러분들 앞에 내놓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기본이라는 것이, 그 상식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 무너져버렸다는 상실감이 큰데다 책을 만드는 한 사람으로 흔히 고전이라 불림직한 책들을 어떤 식으로든 읽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엇비슷한 감정이 마음 깊이 심지를 박았기 때문입니다.
『매일같이 명심보감』. 이 책은 단국대학교 한문교육과 윤채근 교수가 새롭게 풀이해서 쓴 새로운 스타일의 명심보감입니다. 1년 365일 52주라 할 때 한 주에 한 가르침씩 놓치지 말고 새기라 하여 총 52가지의 주제로 책을 구성했습니다. 사는 일에 어려움이 밀어닥칠 때 답을 몰라 답답하기보다 그 답을 몸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 고뇌하는 게 우리들이잖아요. 따지고 보자면 살기 위해 죽고 또 죽기 위해 사는 우리들인데, 이 자명한 현실을 모를 리 없음에도 평생 안 죽을 사람처럼 평생 살아낼 사람처럼 욕심을 부리는 게 우리들이잖아요. 그러니 점집 깃발들 얕은 바람에도 신이 나게 나부끼고 주말마다 온갖 종교 단체 곳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우리들 참, 힘이 듭니다. 매일같이 이런 순간들을 맞닥뜨리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욕하는 상대에게 웃어야 할 때, 거짓말 없이 살고 싶을 때, 남을 탓하려는 마음을 다잡을 때, 누가 오래갈 친구인지 궁금할 때, 누군가를 비방하고 싶을 때, 지도자로 성공하고 싶을 때, 홀로 남을지 판단해야 할 때, 초심을 잃었을 때, 패자라고 느껴질 때, 부부 사이의 의리가 희미해질 때, 인간관계가 시들어졌을 때, 이럴 때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매일같이 명심보감』은 첫 장부터 끝 장까지 작정하고 서사를 파악하기 위해 읽어나가는 책이 아닙니다. 학생들의 책가방 속 도시락 통처럼, 여성들의 핸드백 속 파우치처럼, 남성들의 서류가방 속 아이패드처럼, 나아가 이 모든 사람들이 눈만 뜨면 손에 잡는 휴대폰처럼 늘 몸에 지녀야 할 개인 개인의 마음사전입니다. 저마다 마음의 응어리를 그때그때 풀어줄 지침서야말로 고전의 정석이자 고전의 미덕 아닐까요.
[원문]
萬事分已定(만사분이정), 浮生空自忙(부생공자망).
-順命篇(순명편)」
[번역문]
모든 일에 분수가 이미 정해져 있거늘, 덧없는 인생이 부질없이 저 혼자만 바쁘구나.
『명심보감』은 성공적인 삶에 필요한 처세에 대해 주로 많이 언급한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구태여 성공에 목맬 필요 없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분수로 알고 유유자적 살아가라는 언급도 적지 않다. 서로 모순적인 두 충고가 하나의 책에 공존하는 이유는 이 책이 지닌 혼합적 성격, 즉 세상의 모든 부류들에 두루 통할 지혜를 다 모은다는 취지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생에 있어 성공과 실패가 갖는 의미를 깊이 따지다보면 이와는 다른 생각에 도달한다.
[원문]
景行錄云(경행록운), “責人者(책인자), 不全交(부전교), 自恕者(자서자), 不改過(불개과).”
-「存心篇(존심편)」
[번역문]
『경행록』에서 말했다. “남에게 책임을 돌리는 자는 사귐을 온전히 못하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자는 허물을 고치지 못한다.”
『명심보감』의 다른 곳에서 북송 때의 재상 범순인范純仁은 ‘人雖至愚인수지우, 責人則明책인즉명, 雖有聰明수유총명, 恕己則昏서기즉혼’이라 말하고 있다. 풀어보면 ‘사람이 아무리 어리석어도 남 탓하는 데는 똑똑하고, 아무리 총명해도 자기를 용서할 땐 멍청해진다’가 될 것이다. 사람의 본성이 자기 잘못은 제대로 못 보고 남의 허물은 기민하게 잡아낸다는 뜻이다. 과연 남 탓하기는 인류의 천성인 것인가?
[원문]
馬援曰(마원왈), “聞人之過失(문인지과실), 如聞父母之名(여문부모지명), 耳可得聞(이가득문), 口不可言也(구불가언야).”
-「正己篇(정기편)」
[번역문]
마원이 말했다. “남의 잘잘못에 대해 듣게 되거든 자기 부모님 이름을 들은 것처럼 하여 귀로는 들을지언정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되느니라.”
남에 대해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비방꾼들을 측근에 두고 남 험담 듣기를 즐긴다는 점이다. 이처럼 남의 약점 들추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정보를 주고받는 동시에 새로운 소문도 생산한다. 소문의 소비가 곧 생산에 연결되고 듣기가 곧 말하기로 이어진다. 마원은 이 점을 분명히 숙지하고 있었다. 황제의 총애를 입으며 많은 정적들의 눈초리에 노출돼 있었던 그로서는 자칫 누군가의 독한 혀에 온 집안이 풍비박산날 수도, 하지도 않은 짓에 연루되어 비명횡사할 수도 있음을 알았다. 어찌해야 했겠는가?
‘마음을 밝혀주는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뜻의 명심보감의 새 풀이버전으로 이 책을 제시하는 데는 매일매일 시시때때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한 순간들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자칫 빤할 수 있는 바른 말이 눈가에서 귓가에서 바로 보이고 바로 들리기도 해야 안심의 한숨을 내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 윤채근 교수는 ‘명심보감을 부르는 52가지 순간들’을 예리하게 포착해서 정확한 원문과 아름다운 풀이와 친절한 설명으로 미로 같은 우리들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보고자 했습니다.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한 어른으로 아직 인생의 많은 경험이 없는 후배들을 위해, 때론 인생의 경험은 더 다양하다 해도 실수를 반복할 수 있는 선배들을 위해 이 책은 쓰였다고 할 수 있겠지요. 다시 말해 내 자화상이자 네 자화상이기도 한 우리들 모두의 책. 인간 사이의 ‘예’라는 기본부터 새로이 짚어나가야 할 시기에 정말로 필요한 책이 아닌가 하여 이렇게 권해보는 바입니다.
작가의 말
아들이 태어나 품에 안긴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 의미를 깨닫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더 필요했으나 그 순간이 무언가를 바꾸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미미하고 작아 보이지만 점점 커질, 세상 모든 부모가 목울대 아래 가시처럼 아프게 다스리고 살아야 할 무거운 비밀, 도려낼수록 저만 고통스러울 환부. 그 순간을.
『매일같이 명심보감』의 연재 청탁이 왔을 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승낙했다. 미로처럼 혼란스러운 인생을 헤쳐나갈 젊은이들에게, 아들에게 말 건넬 유일한 수단이었다. 미욱하여 심란했던 지난날 나의삶을 해부용 표본으로 삼아 그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싶었다. 그러니 책 속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인격들은 모두 나의 자화상인 셈.
2015년 4월
윤채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