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속에 담긴 ´그날´의 비밀!
새 학년이 시작되는 날의 어빙 스쿨. 그곳엔 3학년 대표를 맡게 된 소년 덩컨 미드가 있다. 어딘지 모르게 초조한 모습인 덩컨의 머릿속엔 세 가지 생각만 있을 뿐이다. 어느 방에 배정되었을까, 그 방엔 어떤 ´보물´이 있을까, 그리고 어빙 스쿨의 전통이자 모든 3학년 학생이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문학적 비극에 대한 리포트 ‘비극 숙제’를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것.
덩컨에게 배정된 기숙사 방은 지난 학기 그 ‘비극’의 주인공 팀 맥베스 선배가 쓰던 방이다. 전통에 따라 선배들은 자기 방을 쓰게 될 다음 학년 학생에게 ‘보물’을 남겨놓게 되어 있었는데, 팀이 덩컨에게 남긴 것은 녹음 CD들이다. 가지런히 쌓아놓은 CD들 위에는 쪽지가 있다.
"(…) 네가 이 방을 쓸 거라는 말을 듣고 솔직히 믿기지 않았어.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뭔지 대충 감이 오겠지. 어쨌든 얘기할게. 중요한 건, 그날 그 모든 일이 왜, 정확히 어떻게 벌어졌는지 네가 알아야 한다는 거야. 이 정보를 활용해서 나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해—교훈이 될 수 있겠지. 아마도. 모르겠다. 일단 내 얘기를 들어봐. CD라니 형편없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내가 작년에 학교 식당에서 너에게 보인 반응을 생각해서, 물론 네 기분이 어떨지 그저 나 혼자 상상할 뿐이지만, 네가 이 CD들의 진가를 알아주면 좋겠다. (…) 마지막으로 넌 꿈에도 모를 아주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알려주지. 앞으로 듣게 될 내용—이야기, 음악, 나의 파멸, 그와 더불어 네가 인지했거나 실제로 수행했던 역할—은 네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될 거다. 실질적으로 나는 네가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최상의 보물을 남긴 셈이거든. 네 ´비극 숙제´의 글감을 제공하고 있으니."
방학 내내 ´그날´의 일이 떠오를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던 덩컨은 팀의 녹음 CD를 통해 점차 자신이 몰랐던 그날 일의 전모와 팀의 비밀에 가까이 가게 된다. 그리고 그와 함께 ‘비극 숙제’ 역시 조금씩 완성되어간다.
어느 날 다가온 운명 같은 사랑 앞에
두려워 머뭇대던 상처투성이 소년의 비극!
CD 속 이야기는 그로부터 육 개월 전, 시카고의 공항에서 시작된다. 알비노 소년 팀 맥베스가 탑승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가 조금이라도 빨리 비행기에 오르고 싶어하는 이유는 사람들 시선에서 벗어나 구석에 틀어박히고 싶기 때문이다. 몸에 색소가 없는 백색증 탓에 어디에서나 시선을 끌 수밖에 없는 그는, ´눈에 띄지 않고 사람들 틈에 섞이려고´ 안 해본 일이 없다. 결국은 실패하고 무수한 상처를 얻었지만. 지금 그는 새롭게 3학년 2학기를 보내게 될 뉴욕의 사립 고등학교 어빙 스쿨로 가기 위해 공항에 와 있는 것인데, 한 학기를 남기고 전학을 결정하게 된 것 역시 그의 상처와 무관하지 않다.
마침내 기내에 들어서자 팀의 눈에 한 소녀가 들어오는데,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느라 그를 쳐다보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공항을 떠나는구나 싶어 안도할 때 폭설로 인해 비행기 운항이 취소되고, 팀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항에서 밤을 지새워야 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다행히 팀은 공항 근처에 남은 마지막 호텔 방을 예약하는 데 성공한다. 호텔로 가려고 일어서는데 비행기에서 보았던 그 소녀, 버네사가 팀에게 말을 건다. "그 방에 침대가 두 개 있을까?"
팀과 버네사는 호텔에서 저녁 메뉴 대신 팬케이크를 먹고 밖에서 이글루를 만들고 놀며 다음날까지 열여덟 시간을 함께한다. 팀은 자신을 스스럼없이 대하는 버네사 덕분에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된 듯 행복하다. 하지만 버네사에게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을 즈음, 팀은 버네사 역시 어빙 스쿨에 다니고 있고 개학을 맞아 학교로 가던 중이었다는 것, 그녀의 남자친구 역시 어빙 스쿨 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즉시 움츠러들고 만다. 버네사가 잠깐 만나고 헤어질 사람이라 생각해 자신에게 호의적이었을 뿐 학교에서 만나면 아는 체도 하지 않을 거라고 지레짐작한 것이다.
다음날 아침, 버네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눈 풋풋한 키스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자신을 차갑게 대하는 팀 때문에 당황스러워하며 비행기에 오르고, 팀은 버네사에게 뒤늦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자신도 어빙 스쿨에 가는 길이었음을 알린다.
복잡한 심정으로 어빙 스쿨의 기숙사 방에 도착하자 거기엔 버네사가 남긴 쪽지와 ‘보물’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팀이 학교에서 처음 마주친 아이는 버네사의 남자친구이자 학년 대표인 패트릭이다. 패트릭은 "네놈이 내 여자친구랑 호텔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냈단 말이지?" 하고 으르렁거리며 팀을 맞이한다. 이제 퇴로는 없다. 패트릭과 버네사를 매일 마주쳐야만 한다.
버네사에 대한 마음을 떨칠 수 없는 팀, 패트릭 몰래 팀에게 다가가며 마음을 표현하는 버네사, 그리고 학년 대표인 패트릭의 주도하에 진행되고 있는 그해의 게임……
팀이 어빙 스쿨에서 마주하게 되는 ‘비극’은 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그의 ‘비극 숙제’는 어떤 모습일까?
"넌 최선을 다했어.
때론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전부야."
『비극 숙제』는 팀 맥베스와 덩컨 미드라는 두 명의 소년을 앞에 내세운 액자식 구성의 소설이다. 팀이 돌이킬 수 없는 ‘그날’의 일과 버네사와의 추억을 고통스럽게 복기하며 녹음해간 1인칭 시점의 CD 속 이야기와 그 CD를 들으며 비밀을 파헤치고 자신의 트라우마를 떨쳐나가는,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된 덩컨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흥미롭게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간결한 문장이 속도감을 더하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액자 속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진짜 비극의 주인공인 팀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속 맥베스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는 인물이고, 덩컨 미드는 『맥베스』의 덩컨 왕처럼 예민하고 섬세하다. 팀과 버네사의 첫 만남과 이후의 삼각관계는 구성에 있어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얼마간 빚을 지고 있다. 자신감의 결여, 의심, 죄책감 같은 일상적이고도 ´비극적인 결함´ 탓에 작은 실수를 반복하다가 끝내 운명적으로 비극을 맞게 되는 인물들에게서 명작이라 불리는 고전들 속 비극적 인물들이 언뜻언뜻 비칠 때 그것을 포착하는 즐거움이 남다르다.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비극 숙제』는 완벽하게 마음을 사로잡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독자들은 분명 이 책을 끝까지 단숨에 읽게 될 것이다. _가디언
사랑과 우정을 허락하지 않는, 그것들을 찾으려는 용기마저 허락하지 않는 비극을 연민 어린 시선으로 그려낸다. _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외모 때문에 아웃사이더가 된 한 소년이 들려주는 이 이야기에는 열정 그리고 짝사랑의 감정이 가득하다. 고등학교 시절의 슬픔과 멜로드라마가 펼쳐진다. _북리스트
■ 본문에서
출발점은 사실 다른 많은 것들의 종착점이기도 하다는 걸 이제는 여러모로 잘 알고 있으니까. _19쪽
바로 그 순간, 이 세상 어디에도 내 한몸 구겨넣을 곳이 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_26쪽
평소의 규칙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예쁜 여자애와 호텔에 체크인하고, 저녁으로 아침을 먹다니. 이보다 더 적절한 예가 어디 있겠냐? _43쪽
왜 사람이 나쁜 선택을 하면, 이 경우처럼 대재앙에 가까운 선택을 하면 왱왱 울리는 크고 새빨간 점멸등 같은 건 없을까? 돌아가서 다시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라고 알려주는 경고등 같은 거. _179쪽
하지만 더이상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의미란 건 영원히 없겠지. 버네사가 그 선생님 놀이 모험으로 뭘 얻으려 했는지는 모르지만—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그랬다 해도—내게는 오직 한 가지만이 확실해졌다. 버네사에게 늘 최우선은 패트릭이고, 나는 언제까지나 알비노에 불과할 거라는 사실—그애에게 난 항상 알비노일 뿐이었다. _259쪽
숫자 1을 커다랗게 쓰고 나서 이렇게 적었어. ‘내가 알비노라는 것.’ 그러고는 거기서 막혔다. 내 모든 것이 거기서 비롯되는 듯했다—확실히 내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을 정의하기는 하지. 그래도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인생을 바꾸고 싶은 마음 못지않게, 알비노라는 것 자체가 비극은 아니란 걸 나는 잘 알았다. 비극은 뭔가 다른 거야. _268쪽
그는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그 시간을 다시 살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절대로. 앞으로 평생 시달리지 않을까 우려되는 그 끔찍한 장면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마지막 몇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_278쪽
더이상 나 자신에 대해서는 신경쓰이지 않았다. 이미 실패한 인생이니까. _301쪽
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지 오래였다. 통증은 오히려 구원이었다. 나는 닥치는 대로 후려치고 때리고 주먹질했고, 놈은 그저 거기에 서 있었다. 아무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_3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