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자 ‘夷’는 왜 구미의 제국 질서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는가?
국제법의 번역은 19세기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제국 통치에서 ‘젠더’는 어떻게 하나의 특수한 기호가 되었나?
“제국이 충돌할 뿐, 문명은 충돌하지 않는다”
19세기 서구 근대 문명은 어떻게 중국을 파고들었는가
이 책은 19세기 영국과 중국이 어떻게 서로 조우하고 충돌했는지에 대한 총체적인 재검토다. 저자는 영국의 도래 이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있었다는 점에 유의하면서, 상호 조우의 중요한 순간을 역사적 흔적에 따라 추적해나간다. 이를 위해 각국 자료를 비교·분석하고, 외교적 의례와 외무부의 보고서, 번역 행위, 문법서까지 샅샅이 살펴본다. 문명의 충돌이란 제국의 실질적인 욕망을 문명 간의 차이로 투사한 것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정치·경제의 이해관계에 기반을 둔 ‘제국’ 간의 충돌이라고 지적하는 이 책은, 국제법, 기호학, 번역문제, 문법서, 제국 간의 선물 교환, 식민지 사진 촬영 등 각기 다른 연구의 요소를 한데 융합시키며, 근대 제국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공한다.
『충돌하는 제국』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제1차 아편전쟁은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가 된 첫 번째 전쟁이었다. 그 결과 1842년 홍콩은 영국에 영구 할양되었고, 제2차 아편전쟁 이후 1860년에는 카오룽九龍 반도마저 영국령이 되고 말았다. 홍콩은 대영 제국의 무역 중심지로서 무역 거상들에게 많은 부를 안겨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후 시간이 한참 흐른 1997년 7월, 150여 년 만에 드디어 영국령 식민지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는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 책의 저자 리디아 류(중국 이름 류허劉禾)는 중국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은 여성 학자다. 미국으로 건너가 중국 현대문학, 문화 간 번역, 젠더 문제 등을 연구했고, 현재 미국 컬럼비아대 비교문학과 사회연구소 소장이자 같은 대학 동아시아학과의 인문석좌종신교수로 재직 중이다. 우리나라에는 『언어횡단적 실천』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 『충돌하는 제국』은 『언어횡단적 실천』의 문제의식을 한층 확장시킨 저술로, 한국어판 번역본은 영문판을 저본으로 삼되 중문판도 참고하여 번역했다. 저자는 2004년 영문판을 먼저 출간하고, 2009년에 수정과 보충이 적잖이 덧붙여진 중문판을 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던 1997년 여름, 저자는 런던에서 문서 자료를 연구하던 중이었다. 본래 19세기 선교사의 성경 번역을 연구하고자 했던 그의 계획은 이 획기적인 사건으로 인해 대폭 수정되었다. 홍콩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공식 문건을 직접 눈으로 보고, 영국에서 머물면서 그 반환의 순간을 직접 목격하면서 그의 관심은 한 세기 남짓 중영관계를 괴롭혀왔던 ‘제국과 주권’이라는 주제로 확장되었다. 저자는 공문서보관소 열람실에 머물면서 아편전쟁 당시의 각국 자료를 비교·분석하고 다양한 문헌을 조사하는 데 매진했다. 뿐만 아니라 외교적 의례와 외무부의 보고서, 번역 행위에 대한 자료, 문법서까지 연구했다. 그 과정에서 19세기 조약 협상에서 적절한 용어의 사용이 아편무역 사업만큼이나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핵심 사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톈진조약에서 쓰인 용어와 그 번역을 둘러싼 문제(중국어 ‘夷’ 자와 그에 대한 대응어 ‘야만인barbarian’이 어떻게 서로를 지시하게 되었는가)에서부터 시작해 19세기 국제법의 번역이 어떻게 구미 열강의 완전하고 긍정적이며 충실한 주권 형상을 주조하는 과정에 관여하는지, 부제에서 드러나듯이 서구 열강이 어떻게 중국이라는 거대한 코끼리를 넘어뜨렸는지를 이 책을 통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제국은 종종 문명의 이름으로 충돌한다.”
19세기 대영 제국과 청 제국의 ‘충돌’은 근대 세계질서의 형성에서 전환적인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이는 동양과 서양의 질서 체제의 충돌인 동시에 서로 다른 문명권의 충돌이기도 하다. 19세기에서 냉전 시기까지 길지 않은 2세기 동안 세계사는 끊임없는 제국 간의 충돌로 새로운 제국의 대두와 쇠약이 반복된 특수한 시대였다. 특히 이 시기의 충돌은 정면적이고 다면적인 것으로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제국 연구는 주로 국제관계사의 측면에서 단순히 정치·경제·군사적 충돌에 초점이 맞춰져온 것이 사실이다. 바로 이 지점이 리디아 류의 연구가 독창적인 이유다. 지금까지 많은 역사가가 중영 간의 충돌을 서로 다른 문명 질서의 충돌이자 서구 문명의 승리로 간주해왔다. 하지만 저자는 충돌하는 것은 문명이 아니라, 제국이라고 이야기한다. 문명의 충돌은 제국의 실질적인 욕망을 문명 간의 차이로 투사한 것일 뿐, 실제로는 정치·경제의 이해관계에 기반을 둔 ‘제국’ 간의 충돌이 맞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세기 제국의 기록물을 연구하면서, 1990년대 미국의 여론을 들썩이게 했던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다방면으로 여론을 오도하면서 제국의 지정학적 역사를 왜곡시켰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내가 여기서 제시한 증거들은 문명은 충돌하지 않지만, 제국은 종종 문명의 이름으로 충돌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따라서 항상 문명과 제국을 주의 깊게 분별하는 의식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핵심이 되는 주제는 19세기 ‘주권 상상Sovereign thinking’에 있어서 ‘이질문화 간의 유산hetero-cultural legacy’에 대한 연구다. ‘주권 상상’이란, 명확한 주권이 있어서 이에 대한 자각을 통해 주권·주권의식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국가나 민족 구성원이 타국가나 타민족에 대해 생각하고 상상하는 방식에 의해서 주권이 형성된다는 의미다. 동시에 이렇게 상상으로 구성된 주권이 바로 현실적인 주권으로 자리잡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로 다른 기호sign와 의미는 항상 순회하고 유통되고 이동한다. 이 책은 주권 상상의 문제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측면을 중심으로 법률, 외교, 종교, 언어에 관한 텍스트와 비주얼 텍스트 속의 담론 정치를 중점적으로 분석한다. 국제법, 기호학, 선교사의 번역, 문법서, 제국 간의 선물 교환, 식민지 사진 촬영 등 각기 다른 연구의 요소를 한데 융합시키며, 근대 제국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공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이 이 글을 쓴 목적에 대해 밝히고 있다. “나는 제국 정치학의 본질, 그리고 그것의 다양한 형식과 동시대에 대한 지속적인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그러나 나의 목적은 19세기 중국에 대한 새로운 역사 서사를 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제국의 기록물에 대한 인식론적이고 윤리적인 문제 제기를 통해 근대 세계를 더욱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문제들은 주권 상상의 실천으로서 식민 조약 체결, 국제법 번역, 문법연구서, 그리고 제국의 대결에서 “야만인barbarian”의 위치와 연관된 담론 실천discursive practices에 집중되어 있다.”
근대 제국을 읽는 방법: 각 장의 내용 살펴보기
1장은 19세기 후반 기호학 이론 및 기호 관념과 전보 통신이라는 새로운 군사 기술의 상호 추동관계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국제정치의 기호학적 전환’을 분석한다. 이후 이어질 각 장을 위한 이론적·역사적 좌표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퍼스, 푸코, 바타유, 아감벤, 파농, 스톨러, 파그덴 등 이론가들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2장에서는 “야만인barbarian”이라는 개념이 대영 제국과 청 제국의 군사적 충돌과정에서 어떻게 이질적인 문화와 언어를 가로지르는 매우 특수한 간문화적이고 간언어적인 지위를 점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논한다. 아편전쟁 전후, 대표적으로 톈진조약에서 중국어 “이夷”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단일 언어를 넘어서는 초기호super-sign “夷/barbarian”이 영국인에 의해 탄생했다는 점을 밝히고, 19세기에 “夷” 자가 어떻게 구미의 국제법과 당시 형성되고 있던 제국 질서에 심각한 위협으로 자리잡게 되었는지, 이러한 한자 사용 금지를 이끈 불안감의 근원은 무엇인지를 살핀다.
3장에서는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이夷”가 중국어 속에서 어떻게 변화·운용되었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18세기 청 제국의 보편주의 이데올로기에서의 夷 자의 위치 및 배치와 그것이 2장에서 살펴본 ‘야만인’ 문제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영국의 도래 이전 만주족 통치자들은 夷 자 사용을 금하지 않았지만 대신 그들의 제국적인 기획을 추진하기 위해 유가儒家 개념에 지정학적 해석을 적용했다. 夷 자는 단지 이민족이나 외국인에 대한 명명일 뿐 아니라 통치자 주권의 경계가 되었다. 특히 유가 경전 『춘추』에서 보이는 夷 자 개념은, 유학의 주소注疏 전통에서부터 청조의 영토 확장과정에서의 정체성 변화 문제와 연관된 제국의 민족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 분야의 광범위한 범위를 포괄하고 있다.
4장에서는 19세기 국제법의 번역과 전파를 다룬다. 문서 자료와 관방 기록, 출판물을 통해 헨리 휘턴의 『국제법 원리』를 중국어로 번역한 『만국공법萬國公法』(1864)을 중점적으로 분석한다. 이 책의 번역은 19세기 청조, 서구 열강, 일본과 조선 사이의 관계에 형식적 틀을 제공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또한 이 책의 번역자이자 통역관·외교관 신분으로 활동한 미국 선교사 마틴의 역할을 살펴봄으로써 근대 주권 이념과 국제법을 한층 더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다.
5장에서는 19세기 주권 상상에서의 젠더의 기호가 하는 역할을 살핀다. 빅토리아 여왕과 자희태후의 장기적이고 동시대적인 통치에 초점을 맞추어 제국 간의 성경 교환이 갖는 의미, 19세기 여성참정권 운동의 식민지적 조건 등과 같은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독법을 탐색하고 이들이 어떤 통로를 거쳐 특수한 기호의 의미를 얻게 되는지를 탐구한다. 동시에 구훙밍의 ‘주권 콤플렉스’를 통해 젠더와 제국, 식민지 피지배인의 유동적인 주체성을 한층 더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다.
6장에서는 19세기 언어학에서 문법의 ‘주권 주체sovereign subject’를 집중 분석한다. 19세기 미국 언어학자 윌리엄 휘트니의 저서에 대한 분석을 통해 주류 언어이론과 비교문법에 영향을 미친 언어학과 국제법 사이에 밀접한 공생관계가 있었음을 밝힌다. 또 중국 최초의 비교문법학자 마건충이 『마씨문통馬氏文通』(1898)을 저술함으로써 인도유럽어에 대한 중국 고대 한어의 ‘주권 지위’ 문제를 해결하려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결론에서는 주권 상상에 대한 이 연구가 현재의 새로운 제국 질서에서 갖는 의미를 사고한다. 청조 황제의 보좌寶座에 대한 주물 숭배, 그리고 보좌의 시각적 이미지가 순환적으로 유통된 것을 사진과 영화를 통해 분석함으로써 제국의 무의식이 어떻게 과거의 유령에게 계속해서 사로잡혀 있는지를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