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세계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우리
민주주의란 나의 목소리를 전달하려는 개개인의 실천 속에 있다!
포스트모던 소설의 기수가 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에세이
★강상중 도쿄대 교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추천!
★2016 신서新書대상 베스트
★2016 기노쿠니야 서점 인문대상 베스트
★발간 4개월 후 10만 부 돌파
★아마존 재팬 정치사회 분야 1위
“저자의 직관은 옳았다. 민주주의는 먼 미래나 환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살아나야 하고, ‘나의 목소리를 전달하려는 개개인의 실천 속에 있다’는 강한 긍정성을 전해주고 있다.”
_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명예교수?사회학자
“무슨 일이 일어나도 금방 잊어버리는 ‘우리’는, 망각을 유도하는 ‘국가’의 압박에 수긍하기 쉽다. 저자는 ‘국가와 국민은 한 목소리를 가질 필요가 없고, 그런 의무도 없다’고 역설한다. 『우리의 민주주의거든』에서 ‘우리’는 아베 정권이 내세우는 ‘1억 총활약’의 복수형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_『아사히신문』
“문학인의 시선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현실’의 허구성을 벗겨내고, 그것이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걸 밝혀낸다. 고발하거나 냉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저자에게 ‘이야기’는 곧잘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_우치다 다츠루, 철학자?고베여학원대 명예교수? 『하류지향』 저자
“3·11 동일본대지진 이후 자신의 생각이 선거 결과에 반영되지 않은 ‘현실’에 찌든 사람과 함께해온 글이다. 원전사고를 계기로 드러난 이 나라의 민주주의의 취약성에 대한 당혹감…… 때론 비탄하지만, 저자는 절망하지 않기에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수의 논리로 평화헌법마저 변경될 것 같은 작금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시험당하고 있다. 상황은 매우 절박하다.”_『주간 아사히』
책소개
‘젊은 세대가 알아야 할 민주주의’에 대한 쉽고 친숙한 언어의 에세이
이 책은 일본의 중견 작가가 쓴 신문 칼럼을 모은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간단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리 간단치 않다. 칼럼의 주제가 모두 ‘민주주의’라는 곳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당위론이나 이론적인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작가의 눈에 비친 사회의 면면이나 일상이 ‘민주주의 사회가 이래도 될까?’의 관점에서 파헤쳐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독자는 수월하게 책의 문맥에 녹아들면서 스스로의 낡은 시각과 감성, 익숙한 오해와 마주할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가령 ‘전쟁을 모르는 세대야말로 희망인 것인가’라는 글을 보자. 오사카에 있는 저자의 아버지 친가에는 쇼와 천황의 사진과 ‘같은 크기’의 군인 사진 두 장이 걸려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알류산 열도와 필리핀 루손 섬에서 각각 전쟁 중에 돌아가신 저자의 큰아버지들의 사진이다. 8월 15일이 되면 항상 사진 걸린 이 어둑어둑한 방이 생각나는 그에게 전쟁은 일종의 벗어날 수 없는 과거의 그림자였다.
그런 저자가 어느날 「cocoon」이라는 연극을 보러 가서 작은 충격을 받았다. 전쟁의 ‘전’ 자도 모르는 젊은 세대가 만든 연극이 전쟁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었다. 함포가 터지고 병사들이 고통 속에 죽어가는 장면 중 일종의 ‘코러스’처럼 배치된 소녀들이 울부짖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무도 죽고 싶어하지 않았단 말이야”라고 외치는 그녀들의 합창은 저자에게 매우 특별한 곡진함으로 다가왔는데 그 이유는 이렇다.
“전쟁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말하는 고통의 이야기’라면, 그건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훗날 태어나 그 일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남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 아니, 애당초 그것은 전해야 될 이야기일까. 현대 여자아이들의 감수성을 통해 연기되는 무대에서 반세기도 더 전에 살았던 소녀들이 가지고 있던 번민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번민이야말로 훌륭하다.” (127쪽)
이 연극으로 저자의 상념은 이어진다. 1985년생으로 『누구도 전쟁을 가르쳐주지 않았다』라는 책을 쓴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세계의 전쟁박물관을 두루 다니며 “일본인의 전쟁에 관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결국은 ‘전쟁을 몰라도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들에게 가장 ‘큰 기억’은 지난 68년 동안 이어진 ‘평화에 대한 경험’이다. 저자는 후루이치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는 전쟁을 모른다. 거기서 시작해나갈 수밖에 없다. 기지개를 펴고 국방의 의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안이한 상상력을 동원해 전사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도 아니며, 전쟁을 자기 멋대로 재해석하는 것도 아니다. 전쟁을 모르고 평화로운 장소에서 살아왔다. 그것을 먼저 긍정해주면 되는 것이다.” (127쪽)
그렇다면 더 밑으로 내려가 1990년대 생인 일본 아이돌 그룹 ‘모모이로 클로버Z(모모클로)’에게 전쟁은 무엇일까? 그녀들은 종전이 된 해(1945)가 언제냐는 질문에 “1975년”이라 대답하는 등 한마디로 전쟁의 역사에 대해 ‘백지 상태’였다. ‘모모클로’에게는 신문에 기고하는 사람들이 지닌 상식이 없다. 그러나 모모클로와 만난 후루이치는 그녀들의 무지無知에야말로 희망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말한다. ‘전후’라는 시대는 전쟁을 체험한 사람들이 만들어냈다고. 그렇다고 한다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전쟁의 체험’이 아닌, 자기 자신의 더없이 소중한 ‘평화의 체험’을 가진 사람들이 만드는 시대가 그 뒤에 와야만 한다는 생각에 그는 공감한다.
일본 사회가 겪는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세밀화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자연재해가 인재人災로 둔갑한 원전사고는 민주주의의 중대한 결함을 드러냈다. 저자는 “이 나라는 미지의 혼란으로 빠져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작은 목소리까지 잡아내려고 노력했다. 문학의 말은 이런 때, 이런 경우야말로 그 힘을 더욱더 발휘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혼자 사는 시대, 초고령화, 하류 노인·여성의 빈곤, 인구 절벽, 지방 소멸, 가난의 대물림, ‘재특회’와 같은 극우 준동, 반한 시위, 헤이트 스피치, 국민의 알 권리를 억압하는 특정비밀보호법,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망언의 정치, 평화헌법 개정, 인텔리전스가 없는 정부, 집권당의 오만, 공교육 붕괴 등 폭넓은 주제를 낮은 시선에서 바라보는 자세로 공감을 얻으며, 민주주의 복원·정착에 필요한 유연한 사고의 뿌리를 헤아리고, 다함께 다시 만들어야 할 ‘우리의 민주주의’란 무엇인지를 일상의 언어로, 그러나 범상치 않은 사고관으로써 써내려간다.
포스트모던 문학의 기수답게 소설·다큐·사진·영화·그림이나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등으로 본질을 파고드는 비판정신은 그 예민한 촉감을 드러낸다. 또한 쓰루미 슌스케, 우에노 지즈코, 가라타니 고진, 오구마 에이지 그리고 자크 아탈리, 하버마스, 한나 아렌트, 미셀 푸코, 롤랑 바르트, 귄터 그라스, 수전 손택, 스테판 에셀 등 지성인의 말을 적절하게 인용해 저자의 메시지들에 흡인력과 신뢰성을 더한다.
민주주의의 시작은 권력(자)에게 질문 던지기!
일본은 한국의 타산지석인가, 반면교사인가? 원전사고로 드러난 정부의 정보 비공개와 원전마피아의 비리는 세월호 참사와 해수부 마피아를, 블랙기업의 불법노동은 인턴을 착취하는 ‘열정 페이’를, 비정규직을 양산해 고용신분사회를 고착하려는 세태는 노동법 개악을, 정보독점을 일삼고 표현의 자유를 무시하려는 특정비밀보호법은 테러방지법을, 혐한嫌韓 감정을 부추기는 재특회는 일베를,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천황제 파시즘을 그리워하는 극우는 어버이연합을, 애국이라는 미명 아래 “한류 아줌마는 한국으로 가라!”고 하는 헤이트 스피치는 혐오조장 세력을, 외국인노동자의 연애나 임신(휴대전화 소지)조차 금지한 ‘외국인 기능실습제도’는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떠오르게 한다. 눈물이 날 정도로 엉성한 아베의 ‘일본국 헌법 개정안’은 ‘공공질서’라는 말을 왜 남발하는지? 해외언론은 북한이 쏜 것을 로켓이라고 하는데 일본 언론은 왜 미사일이라 하는지? 왜 천황의 잘못은 잘못이라고 부르지 못하는지…… 저자는 집권 자민당이 숫자논리와 군사주의 분위기로 평화헌법마저 변경하려는 지금, 민주주의는 절박하게 시험당하고 있다며 ‘권력(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 민주주의가 시작된다’고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