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평생 1만6000권의 책을 모은 장서가이자
매일 밤 책을 읽는 독서광이었다!
히틀러의 서재를 채웠던 책 가운데
그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 10권을 중심으로 히틀러를 읽다
★ 2008년 『워싱턴포스트』 선정 ‘올해 최고의 책’
★ 2009년 『파이낸셜타임스』 선정 ‘올해 최고의 책’
책이 수집가 속에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수집가가 책 속에 살아 있다. _발터 벤야민
히틀러는 독서광으로 유명하다. 그는 그 자신이 작가였을 뿐만 아니라 특정 작가들에게 사로잡혀 그들의 책을 삶의 교과서로 삼았으며, 대단한 장서가였다. 이 책은 ‘히틀러라는 사람’을 만든 책들에 관한 이야기다. 히틀러의 상승과 몰락에 영향을 끼친 여러 요인 중 그의 독서 습관은 무시 못 할 퍼즐 조각이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으로 악명 높고, 거침없는 장광설과 끝없는 독백을 대화로 알던 그가 중간중간 멈추어 글과 교류하며 단어와 문장을 음미한 것이다. 히틀러가 남긴 책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의회도서관 희귀본 서고, 공공기록보관소, 민간보관소 등의 어둑한 선반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보관되어 있었다. 저자는 한 사람이 소장한 책들로 그의 취미, 관심사, 습관 등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벤야민의 말을 언급하며, 이 책들의 내용뿐 아니라 헌정사, 장서표는 물론, 히틀러가 남긴 연필 자국까지 하나씩 추적해나갔다. 일찍부터 정치에 열중한 야심가, 그러나 결국 쉰여섯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독재자가 남긴 1만6000권의 장서 가운데, 정서적·지적으로 그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 책 열 권을 집중적으로 파헤쳐 히틀러를 파악해보고자 한다. 이 책은 히틀러라는 대명사를 만드는 데 일조한 책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1장에서 10장까지 총 열 권을 자세히 다룬다. 이는 한마디로 히틀러가 애독한 자기계발서 목록이다. 저자는 히틀러가 그 책을 읽을 당시의 사건, 사고, 접촉한 사람, 그 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그의 말과 행동 등을 기술해 히틀러라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퍼즐 조각들을 제공한다.
1장 막스 오스보른, 『베를린』
2장 디트리히 에카르트, 『페르 귄트』
3장 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
4장 매디슨 그랜트, 『위대한 인종의 쇠망』
5장 파울 라가르데, 『독일의 에세이』
6장 알로이스 후달, 『민족사회주의의 기초』
7장 막시밀리안 리델, 미발표 논문 「세계의 법칙」
8장 후고 록스, 『슐리펜: 독일 국민을 위한 그의 삶과 성격 연구』
9장 스벤 헤딘, 『대륙 전쟁 속 미국』
10장 토머스 칼라일, 『프리드리히 대왕이라 불리는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2세의 역사』
히틀러라는 고유명사를 반유대주의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이동시키는 데 한몫한 그의 악명 높은 행적은 굳이 열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난 히틀러에 대해 새로울 것 없는 비난 하나를 추가하려는 목적으로 쓰인 게 아니다. 그를 사람 탈을 뒤집어쓴 악마라고 생각하는 이들조차 히틀러가 대중을 홀리는 데 능한 사람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연설 내용상의 비논리와 비윤리와는 무관하게, 그는 뛰어난 연설가였고 스스로도 “종이에 쓴 글보다 직접 전하는 말이 사람 마음을 더욱 끌어당긴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종이에 쓴 글을 읽고 연설에 차용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또한 히틀러가 베스트셀러 작가였다는 점, 심지어 그가 쓴 책의 (아마도 부정적인) 파급력을 걱정한 나머지 그 책이 수십 년간 금서로 취급되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촌티 나는 군인에서 주목받는 정치 신인으로
히틀러의 콧수염으로 짐작되는 털이 끼여 있었던 막스 오스보른의 책 『베를린』을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 신분이었을 때 탐독했다. 베를린 문화재를 다룬 이 책은 전장에서 폐허를 목도한 히틀러에게 간접적인 탈출구가 되어주었다. 그때만 해도 입대 원서 직업란에 “예술가”라고 기입할 정도로 예술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으니 『베를린』에 나오는 유명 삽화에 손때가 묻어 있었던 것도 당연하다. 히틀러 전기 작가들은 히틀러에게 예술을 통한 신분 상승 의지가 어느 정도 있었다고 본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그 상승을 예술가로서가 아닌 정치가로서 이루는데, 그가 정치에 입문해 차차 이름을 얻어가던 시기에 읽었던 책이 바로 『페르 귄트』다. 그의 소장본은 거의 책으로서 송장에 가깝다. 1917년 호헤나이헨 출판사가 발간한 2판으로, 표지 중간이 휘어진 채 안쪽으로 굽어 있고 리넨으로 싸인 표지는 얼룩덜룩 빛이 바랬으며, 라임색 띠지에는 금빛 제목의 흔적이 G와 T 윗부분에만 일부 남아 있다. 이 책의 저자이면서 동시에 이 책을 히틀러에게 선물하기도 한 에카르트는 히틀러의 촌티를 벗겨준 중요한 인물이다. 에카르트는 히틀러에게 친구 그 이상이었다. 처음으로 그에게 트렌치코트를 사주고 처음 비행기를 태워주었으며, 후원자이자 멘토,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에카르트는 사람들에게 “이 젊은이는 독일의 미래라네. 언젠가 전 세계가 그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고 히틀러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히틀러의 정치사상 발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에카르트가 기록한 히틀러와의 대화 내용은 그것이 꾸며낸 것이라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더라도 자못 무시무시하다. 그들은 누가 더 강한 반유대자인지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상대보다 더 악해지려고 애쓰면서 유대인을 공격하는 이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히틀러의 반유대주의는 에카르트로 인해 형태를 갖추어가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짜증나는 유대인들…”
책의 운명을 논하기에 안성맞춤인 『나의 투쟁』을 집필할 즈음 히틀러는 선동가에서 정치가로 한 단계 비상하여 입지를 굳힌 뒤였다. 쿠데타에 실패해 수감자 신세가 되자 히틀러는 대중 앞에서 연설할 기회를 잃었다. 연설 능력으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 쓰기 시작한 자서전은 말하자면 일종의 격정적인 연설문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나의 투쟁』은 그의 투쟁 삼부작 중 제1권과 제2권에 해당된다. 제3권은 초고만 완성된 채 금고로 들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출옥 후에는 다시 글이 아닌 말로써 정치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편집과정을 거치기 전의 『나의 투쟁』 초고는 틀린 철자, 모호하고 억지스러운 논리가 그득했지만 논조만은 확실했다. “유대인은 저급한 인간이다.” 히틀러는 벤야민이 “책을 수집하는 방법 중에 가장 칭찬할 만한 방법”으로 꼽은 집필로써 (혹은 출처를 밝히지 않은 문구들의 짜깁기로써) 자신의 서재를 채웠다.
이러한 그의 반유대주의 사상에 기름을 붓는 책이 등장한다. 매디슨 그랜트의 『위대한 인종의 쇠망: 유럽 역사의 인종적 기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히틀러가 품었던 인종주의적 감정과 우생학에 대한 관심, 북유럽 인종 상황에 대한 우려를 살펴볼 수 있다. “그랜트의 생각은 1920~1930년대 초 히틀러의 광적인 인종주의에 기름을 부었다. 그 여파는 사회에서의 개인의 위치, 정치와 관련된 결정, 외교관계 관리, 심지어 전투 강령에까지 구체적이고도 확실하게 침투했다.” 그랜트의 책은 히틀러가 인종을 바라보는 틀을 형성했다. 그랜트는 히틀러에게 ‘인구 변동’이 정치 지도자나 규모와 세력을 가진 정부, 정치적·군사적 동맹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각하께 바칩니다
유대인 혐오가 명백히 드러난 파울 라가르데의 또 한 권의 책 『독일의 에세이』는 히틀러가 선물로 받은 수많은 책 가운데 하나다. 수상에서 총통이 되고, 총통으로서 집권하던 시기에는 히틀러의 독서 편력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고, 따라서 책만큼 그에게 점수 따기 좋은 선물도 없었다. 히틀러는 책에 연필로 표기를 해가며 읽었는데, 히틀러가 표시한 구절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가 선택적 독서로 자신의 사상을 구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자연적 문제를 다룬 막시밀리안 리델의 미출간 논문 「세계의 법칙」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떤 책에서든 아리아 인종의 우수성에 대한 근거를 발췌할 수 있었다. 나치 운동과 가톨릭교회 간의 융합을 꿈꿨던 후달 주교의 『민족사회주의의 기초』도 그중 하나다. 이 책은 그 내용보다도 가톨릭에 대한 히틀러의 동경을 끄집어내는 수단으로 주로 언급된다. 어린 시절, 엄숙하고 화려한 교회 의식에 도취되었던 히틀러는 연설 말미에 자기도 모르게 “아멘”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소장본은 초반 몇 페이지를 제외하고는 펼쳐본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히틀러의 전쟁과 몰락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히틀러는 ‘위대한 인물’에 집착한 듯하다. 슐리펜의 주치의였던 후고 록스가 쓴 『슐리펜: 독일 국민을 위한 그의 삶과 성격 연구』와 토머스 칼라일의 『프리드리히 대왕이라 불리는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2세의 역사』는 모두 히틀러가 바람직한 지도자로 여기는 인물을 다루는 책이다. 슐리펜은 천재적인 전략가로서뿐 아니라 인간적인 지혜로도 유명했던 프로이센의 전설적인 백작이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때로는 지방 하나를 희생할 필요도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무엇보다도 슐리펜은 저지대를 관통하는 놀랍도록 효과적인 측면 작전으로 프랑스 침공을 준비한 ‘슐리펜 계획’의 고안자로 유명하다. 독일군은 슐리펜이 죽고 1년 뒤인 1914년 극적이고 신속한 진격을 위한 청사진으로 이 계획을 도입했고 1939년에도 이 계획의 수정된 형태를 채택하여 더욱 큰 효과를 거두었다. 『대륙 전쟁 속 미국』의 저자 스벤 헤딘은 어린 시절부터 히틀러의 영웅이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과 함께 다녔고 반유대주의를 받아들이진 않았으나 인종 우월 개념을 지지하며 평생 친독파로 지냈다. 그는 스칸디나비아 특사로, 아시아에서는 비밀 스파이로, 미국에서는 고립주의를 지지하는 선동가로 활약하며 독일의 더 큰 대의를 위해 기꺼이 힘썼다. 미국 국민에게 유럽과 미국을 위해 전쟁에 개입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책 한 권 분량의 호소문을 쓰기도 했다. 히틀러는 전세가 악화되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역사 속 영웅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위안을 얻고 자신에게도 기적이, 승리가, 환호성이 펼쳐지길 고대했다. 종국에는 희망을 끈을 놓고 이해할 수 없는 유언장을 남긴 채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로 생을 마감하긴 했지만 말이다.
히틀러 사후 그의 서재에 있던 책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 이전에 히틀러의 장서를 분류하고 그 책들을 통해 히틀러의 독서 경향을 짐작하려 했던 짧은 보고서들이 이 책 말미에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히틀러의 장서가로서의 면모는 1만6000권이라는 숫자로 증명된다. 벤야민의 10퍼센트 법칙(“애서가들은 자신이 소장한 책들 중 많아야 10퍼센트만 읽을 뿐이다”)을 아주 까다롭게 적용한다 하더라도 최소 1000권 이상은 읽었을 터, 그렇다면 우리는 히틀러가 아닌 그 책들에게 칼을 씌워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책의 영향력은 결국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에 달려 있다. 히틀러에게 “슬쩍 읽은 것,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것을 지적인 부끄러움도 없이 한데 엮어서 내놓는 능력”이 있었다는 요하임 페스트의 말에 비추어볼 때, 허술한 독서가에게 양서란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독재자로 단순화된 히틀러라는 인물을 ‘책’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읽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