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시와 카툰의 신선한 결합, 『치타는 짜장면을 배달한다』
문학동네는 지난 봄, 동시와 내러티브가 있는 그림의 결합으로 시를 읽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는 책 『달에서 온 아이 엄동수』를 출간한 바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조합은 동시와 카툰이다. 『치타는 짜장면을 배달한다』는 32편의 짧은 동시와 연극적 요소가 들어 있는 카툰을 나란히 보여 주며 독자의 상상을 뜻밖의 차원으로 이끈다. ‘말놀이 동시집’ 시리즈 등을 통해 큰 사랑을 받았던 시인 최승호가 여러 모습의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동시를 썼고, 퍼포먼스를 전공한 백로라가 쓴 말풍선 글에 만화가이자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터로 독보적인 색깔을 지닌 윤정주가 그림을 그렸다.
● 터지는 웃음과 넘치는 행복 세트, 짜장 짜장 맛있다
멍게야, 또 늦었구나
어제도 늦더니
오늘도 늦었네
멍게야!
멍게야?
왜 대답이 없니?
멍게 뭐 하니?
네, 선생님
저 지금 멍해요
학교에 오면 멍해요
칠판을 보면 멍해요
_「멍게는 지각대장」 전문
어제도 늦더니 오늘도 늦은 멍게를 선생님이 다그친다. “네, 선생님/ 저 지금 멍해요” 대답도 못 할 만큼 멍한 멍게의 대답에 웃음이 나기도 하고 “학교에 오면 멍해요/ 칠판을 보면 멍해요” 하는 이야기는 마치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인 것도 같다. 카툰으로 눈을 돌리면 교실 구석구석이 생동한다. 멍게 바보 멍한 멍게, 낙서가 가득한 칠판 앞에서 집게발을 단 게가 한 마디 한다. “아! 나도 멍할 땐 멍게인데.” 그러자 강아지가 멍멍 짖고 받아친다. “누가 내 얘기를 하지?” 말미잘은 그저 바닥에 엎드려 눈만 그리고 있다. “아, 눈 갖고 싶다. 눈이 없어서 그런지 너무 졸려.”
“지네 할아버지가/ 엄청나게 많은 구두를 끌고 오네요/ 담비야, 구두 좀 고쳐 줄래?/ 할아버지, 구두 다 버리세요/ 그냥 맨발로 다니세요 (「구두수선공 담비」 전문)” 구두수선공 담비와 지네 할아버지의 대화를 지켜본 뱀1 뱀2 뱀3이 차례로 말한다. “야, 네 발 어디 있어?” “어? 나 원래 발 없는데? 넌 있어?” “나도 없지. 우리 발 없어도 잘 다녔잖아.” 그러자 뱀4가 울상을 짓는다. “앙, 그래서 싫어. 나 비 오는 날 장화 신고 싶단 말이야. 노란 장화!”
카툰은 이처럼 동시가 던져 준 탁구공을 높이 쳐 올리기도 하고 빠르게 받아치기도, 테이블 바깥으로 떨어져 통 통 튕겨 가도록 놔두기도 하면서 다이내믹한 리듬을 만들어 낸다. 동시 속 이야기를 극적인 방향으로 비틀거나 깊은 곳으로, 혹은 더 높고 가뿐한 곳으로 이끌고 가는 카툰은 겹겹의 상상을 자극한다. 아무 데나 펼쳐서 읽어도 상관없고 거듭 읽을 때마다 곳곳에 감춰진 새로운 유머를 발견하게 된다.
● 종이를 뚫고 나오는 우리 모두의 노래
몰라
나 몰라
내가 누군지 몰라
몰라
너 몰라
네가 누군지 몰라
_「철학자 코알라」 전문
동시 속 동물들은 저마다 어떤 일에 몰두하는 중이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왕눈이꼬마거미처럼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이거나, 흰수염고래 손님을 맞이한 이발사 바닷가재, 검은 땀 흘리며 검은 석탄을 캐는 두더지 아빠처럼 묵묵히 자기 일을 한다. 그런가 하면 낙엽 오리기에 열심인 톱사슴벌레나 팔이 긴 김에 신나게 농구나 하는 긴팔원숭이, 나무에 매달려 눈을 감고 자아 성찰 중인 철학자 코알라처럼 그저 본분에 충실한 모습으로 있기도 한다. 동시를 좋아하고 만화를 사랑하는 동화작가 송미경은 이 책을 읽으며 동시 속 주인공들이 풍경 안에 머무르지 않고 소실점을 뚫고 그림 밖으로 걸어 나가 노래가 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한다.
“『치타는 짜장면을 배달한다』의 동시들은 어떤 풍경들을 보여 주고, 그 풍경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려줍니다. 누구든지 이 그림 속 주인공이 되는 순간 일상의 구도와 당위를 유연하게 뛰어넘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용기를 얻게 됩니다. 완벽해지지 않아도 새로워지지 않아도 자신의 모습 그대로 어우러져 사는 풍경의 눈부심을 발견하게 되지요. 최승호 시인의 동시는 특유의 리듬감으로 우리를 흥겹게 하고, 혼자 남겨졌을 때 떠올릴 수 있는 진한 잔상으로 우리의 마음을 깊어지게 합니다. 생명의 리듬과 자유로움으로 충만한 이 동시와 카툰이 주는 웃음은 허공에 흩어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며 모여드는 강줄기처럼 우리를 가장 원초적인 공간으로 실어 보냅니다. 그 끝에서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어떤 모습이든 서로를 사랑하고 지켜봐 줄 수 있다는 우주적인 상상력과 만나게 됩니다. (읽고 나서_송미경)”
최승호는 197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이래 『대설주의보』 『고비』 『아메바 『허공을 달리는 코뿔소』 등 당대의 문학을 새로고침하는 문제작들을 꾸준히 발표해 온 한국 문학의 대표 시인으로, 수 년 전부터 다양한 포맷의 동시로 어린이 독자들의 마음속에도 성공적으로 안착한 바 있다. 숭실대학교 예술창작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연극 연출가인 백로라의 카툰 글은 동시와 훌륭한 호흡으로 상호작용한다. 그림을 그린 윤정주는 23년 동안 200권 이상의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려 온,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화가이다. 누구보다도 아이들 마음과 가까운 그림을 그리는 그는 오늘 이 시간에도 작업실 책상에서 선을 긋고 색을 칠하는 중이다. 세 작가의 공력으로 완성된 『치타는 짜장면을 배달한다』는 아이들에게 윤기 흐르는 짜장면 한 그릇처럼 완벽한 맛, 짬짜면처럼 만족스러운 맛, 깜짝 서비스로 등장한 군만두 한 접시처럼 예상 외의 맛을 모두 담아 건네는 동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