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망명가’이자 ‘난민’ 생활을 해야 했던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담긴 작품
아프리카 문학에서 보기 드문 새로운 유토피아 소설에 관한 또하나의 시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1948년 입법화된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한창 극렬해지던 1960년 전후 시기, 이십 대 초반의 베시 헤드는 이 현실에 맞서 아프리카 사회에 만연한 여러 문제를 중점적으로 살피는 일에 열중했던 기자였다. 당시 남아공 흑인사회 문제를 널리 알린 급진적 신문들 『골든 시티 포스트』『드럼』『콘택트』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한편, 범아프리카회의(PAC)에 가담해 활동하다 체포되어 나온 다음에는 홀로 『더 시티즌』이라는 독립 신문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남아공의 정치적 소용돌이로부터 벗어나 작가로서 첫 명성을 알리고 새로운 길을 열게 된 계기는 보츠와나로 넘어가면서부터다. 그 물꼬를 튼 작품이 바로 이 소설 『비구름이 모일 때』다.
1962년 무장투쟁중이던 넬슨 만델라가 체포된 그해, 작가는 점점 자신의 모국 남아공과 2년 남짓한 결혼생활에 회의와 절망을 느끼기 시작해, 1964년 당시 영국 보호령이던 베추아날란드(현 보츠와나)로 아들만 달랑 데리고 망명했다. 남아공에 다시는 발을 들이지 못한다는 조건으로 동료 작가 패트릭 컬리넌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보츠와나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나, 그녀는 난민 신분으로 시민권 없이 15년간 그곳에서 방황해야 했다.
이런 이력은 이 소설의 주인공 마카야에게 고스란히 투영되어, 남아공의 국경 철조망을 넘어 보츠와나로 망명해 새로운 삶을 꿈꾸는 현실로 나아가게 한다. 흑인을 ´보이, 개, 캐퍼(깜둥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증오와 분노로 얼룩진 투쟁으로 죽음과 폭력에 지친 마카야는 ´마음의 평화´를 갈망하며 낯선 나라에서 전혀 다른 백인 길버트 밸푸어라는 인물을 만나 새로운 땅을 일구는 역사에 동참한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려는 노력은 현실에 맞지 않는 그들만의 구습과 편견,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정치인, 흑인 공동체 내의 또다른 폭력과 음모 등의 현실과 맞부딪힌다.
마카야로 대변되는 흑인과 가장 대척점에 있던 백인 길버트와의 뜻밖의 대면, 마을의 현인 디노레고와 음마디펠레디가 보여주는 흑인사회의 정체성과 앞날에 대한 비전, 진취적이고 생활력이 강하나 구습에 얽매여 가뭄 때 소 방목지에 아들을 방치했다 잃게 된 여인 폴리나와의 미래, 흑인 부족 내 또다른 폭력의 얼굴을 보여주는 세코토 및 마텐지 추장 세력들과의 관계는, 마카야라는 인물을 통해 그간의 해묵은 아프리카 역사에 대해 급진적으로 재고하게 하는 작가의 뛰어난 서사 전략이다. 남아공에서 폭력적인 인종차별에 펜과 총으로 맞서야 했던 피비린내나고 절망적인 혁명가의 현실은, 보츠와나 땅에서 가뭄과 무지와 선입견에 맞서 흙과 씨앗을 들고 비구름과 지식을 좇는 생산적인 노동자의 현실로 급변한다. 죽은 자를 묻기 위해 파야 했던 구덩이는 빗물을 모아두는 생명의 저수지로 바뀐다. 정치범으로 몰려 언제 죽을지 모를 동료들과 함께 갇혀 있던 감옥의 가시철조망은 가축들을 보호하는 아늑한 농장 울타리로 바뀐다. 죽음이 난무하던 세계에서 삶을 향한 조화와 평화의 텃밭으로 옮아간 것이다.
베시 헤드는 이 작품에서 아프리카가 어떻게 기술과 경영의 진보를 통해 화합하고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있을지, 어떻게 그들 스스로 정치적 압제로부터 풀려나, 마침내 인간의 존엄을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탐구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이 소설은, 하나의 유토피아를 꿈꾸면서도 섣불리 속단하지 않으면서 정치와 경제의 구조적 폭력에 무감각해진 공동체가 어떻게 그들 스스로 진정한 해방을 이끌어내고 미래를 모색할 수 있을지, 그 길을 찾아나가기 위해 아프리카 공동체뿐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미래에 대해 던지는 질문의 책이자 대답의 책이라 할 수 있다.
영문학사에서 아프리카인의 시선으로 그곳의 자연과 현실을 포착해내어
새로운 아프리카 현대 문학사의 흐름을 만든 베시 헤드의 첫 소설,
‘여성이 뽑은 20세기 위대한 영문학 100선’ 중 하나 『비구름이 모일 때』
이 작품의 또다른 매력은 시대가 부과한 올가미와도 같던 의식에서 벗어나, 서구 중심의 영문학사에서 지배와 착취와 학대 대상으로만 다뤄진 흑인 사회의 중층적이고 다층적인 새로운 시각을 견지해낸 베시 헤드 문학세계의 독창적 이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헤드는 ‘컬러드(백인과 토착민의 피가 섞인 유색인)’이자 여성으로서 겪은 인종 및 성 차별, 잦은 실직으로 인한 극심한 가난과 고립으로 정신적으로 누구보다 불안정한 삶을 살았던 작가다. 그런 작가가 문제삼은 건 정치현실을 넘어, 보편적으로 인간 본연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존재에 관한 질문이었다. 그리하여 당시 아파르트헤이트를 집중적으로 다룬 동시대 작가들과 달리, 아프리카 문학세계가 눈 돌리지 않던 아프리카의 자연과 부족 내 전통, 자유와 화해의 서정을 노래하는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개척해나갔다. 온 인류가 함께 꿈꿀 수 있는 미래의 토대를 닦는 데 주목했던 작가 베시 헤드, 그녀는 영문학사에서 아프리카인의 시선으로 아프리카의 자연과 현실을 포착해내어 새로운 아프리카 현대 문학사의 흐름을 만든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흑인 작가, 아프리카 작가, 여성 작가, 페미니스트 작가, 혁명 작가로 불리길 결단코 거부했던 헤드, 그녀는 오직 ‘사람’을 위해 글쓴 작가로 기억되길 소망했다.
베시 헤드에게 작가로서의 길을 터준 본격적인 계기는, 1966년 우연찮게 『뉴 스테이츠먼』에 발표한 글 「미국에서 온 여자」가 뉴욕에 있는 사이먼&슈스터 출판사의 한 편집자 눈에 띄어 소설을 청탁받고서였다. 그렇게 해서 1968년에 탈고해 이듬해 발표한 이 첫 소설 『비구름이 모일 때』는 영미권에서 엄청난 호평을 이끌어냈다. 집 없이 가난한 난민으로 떠돌던 그녀는 이 소설을 판 돈으로 처음으로 지상에 자기 집을 짓게 되고, 그 집에 ‘비구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작가는 "나는 별들에 이르는 계단을 만들고 있다. 나한테는 인간 전체를 데리고 저 위에 갈 권리가 있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이 책은 베시 헤드가 온 인류를 데리고 별로 가는 계단을 엮어놓은 아프리카 현대 문학사 속 첫 집이다. 세로웨에 정착해 써내려간 자전 소설 삼부작 『비구름이 모일 때』『마루』『권력의 문제』 가운데 첫 작품인 이 소설은, 페미니스타 저널에서 ‘여성이 뽑은 위대한 영문학 100선’에 꼽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