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가장 깊은 욕구까지 파고들어가는 무서운 입심
‘똥 같은 사회’에 울리는 청량한 경종
2009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원초적 취미」가 당선되고, 2013년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로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한 이수진의 첫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이수진은 등단작부터 “입심 걸쭉한 신인 탄생”(소설가 한승원)이라는 평을 들으며 한국문학의 외연을 활달하게 넓혀줄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이후 2010년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2011년 ‘젊은 소설’ 등에 연이어 작품이 선정되며 그 기대에 충분히 값해왔다. 그러다 2013년에는 “자진모리처럼 숨가쁘게 휘몰아치는 익살맞은 문장이 결말을 향해 달려갈 땐, 카타르시스로 샤워를 한 것처럼 속이 뻥 뚫린다”(심사평)라는 찬탄과 함께 중앙장편문학상을 거머쥐며 ‘입심 좋은’ 소설가로서 자신의 영역을 확고하게 인정받았다.
그리고 2016년 9월, 등단한 지 7년 만에 첫번째 소설집을 내놓았다. 느리지만 단단하게 쌓아올린 이 여덟 편의 단편소설들은 스물셋이란 이른 나이에 등단한 젊은 소설가가 여전히 젊은 감각으로, 그러나 세계를 보는 미시적인 시선은 한껏 벼려져 내어놓은 지나칠 수 없는 결과물이다.
“내 변기가 우릴 만나게 해준 거요. 운명적으로.”
이수진은 등단 초기부터 부끄럽거나 불편하거나 폭력적이어서, 그러니까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것이 대체로 가장 안쪽에 숨겨져 있어 쉽게 드러내기 힘든 인간의 욕구들을 과감하게 파헤쳐왔다. 경쾌하고 속도감 있게 서사를 밀고 나가다가도 때때로 이러한 감춰진 욕구들을 날것 그대로 묘파해냄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애써 잊었거나 부정했던 ‘진짜’ 현실과 어색하게 마주서게 만든다. 이러한 이수진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기는 표제작인 「머리 위를 조심해」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전봇대 밑에서 잠을 깬 주인공은 전날 자신이 누구와 어떻게 술을 마시고 거기서 잠든 것인지 기억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 갑작스런 ‘변의’가 밀려오고, 다급하게 이 배변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장소를 찾아 나선다. 여기서부터 식은땀이 날 만큼 생생하고 집요한 변의에 대한 묘사가 시작된다.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해설(「괄약근 vs 불수의근」)에서 변의에 대한 묘사만큼은 “한국문학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탁월”하다고 극찬했다. 항문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문장들에 꽤 많은 부분을 할애한 후에는 느닷없이 세 개의 변기를 등장시킨다. 그러고는 변기의 주인과 ‘인물, 사건, 배경’에 대한 황당한 문답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의문은 뜻대로 이루어지 않는 현실 혹은 소설세계에 대한 반감과 주인에 대한 살의로까지 나아간다. 이처럼 이수진의 소설은 가독성 높은 문장들을 리드미컬하게 따라 읽는 재미가 있지만, 그 안에 감춰진 비의들까지 발견해낸다면 불편하고 불합리한 세계를 지탱하고 살아가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묻게 된다.
길에서 마주친 아줌마를 두고 소설가 지망생, 실력 없는 소매치기, 편의점 야간 알바인 세 친구가 내뱉는 동상이몽을 맛깔나게 그린 「갈매기는 끼룩끼룩 운다」, 끊임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내야 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공포스럽게, 그러나 그 공포가 우리 삶에서 먼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주지시킴으로써 인간 존재의 무기력함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마니차」, 전자발찌를 찬 이웃에 대한 섣부른 오해, 그러니까 내가 다치지 않기 위해선 남을 먼저 해해야 한다는 고단하고 처연한 현대인의 피해망상이 만들어낸 파국을 다룬 「전발씨」, 마조히즘적으로 구멍난 이를 자극하는 것에서 삶의 희락과 목표를 찾아야만 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그려낸 등단작 「원초적 취미」 등도 빠르게 읽히는 속도에 반비례해 오랜 여운을 남기는 ‘속 깊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근작으로 올수록 이수진의 소설은 속도에서 멀어져 문장 속으로 깊이 침잠한다. 그러니까 직선으로 빠르게 달려나가는 스프린터에서 바닥을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떨어지는 다이버로 몸을 바꾼 것. 정확한 사건을 알 수 없는 「아버지 축제」는 화자인 아들의 환각 같은 진술을 통해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대상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되묻고 있다.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하나 세심하게 읽어야 의미를 파악해낼 수 있는 것은 「벽장」도 마찬가지다. 벽장 속의 화자는 자신이 벽장에 갇힌 것인지 혹은 스스로 들어온 것인지, 벽장에서 나가고 싶은 것인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끊임없이 자문하며 스스로를 분열시킨다. 더욱이 벽장 밖에서는 수많은 ‘그’들이 문을 두들기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기도 하며 화자를 더욱 혼란에 빠뜨린다. 스스로를 통제하기도 버거운 세계를 사는 우리가 한 번쯤 꿔봤음직한 몽롱한 꿈 같은 소설이다. 특히 이 작품에는 카프카의 『변신』의 일러스트를 그린 루이스 스카파티를 연상케 하는, 작가가 직접 그린 빼어난 그림이 실려 있어 생동감을 더한다.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 「대단히 멋진 꿈」은 실직중인 불면증 환자의 꿈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꿈이라는 것을 예감하면서도 “이국적이면서도 낯설고 매혹적인” 문장들을 좇아 읽는 즐거움이 있는 작품이다.
이수진은 스프린터에서 다이버까지 자유자재로 몸을 바꿀 수 있는 작가다. 그리고 그 끝과 바닥을 쉬이 예측할 수 없기에 결국엔 끝까지 읽고 마는 것이 그의 소설이다. 거침없이 이 세계를 향해 욕설을 내뱉다가도 엄정한 문장들로 그 세계에 청량한 경종을 울리고야 마는 그의 첫 소설집을 주목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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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의 소설관은 명확해 보인다. 작가가 통제할 수 없는 인물, 파괴되는 작가의 설정, 작가의 의도대로 맺어지지 않는 결말, 그러니까 인물도 사건도 설정도 결국엔 문장들의 불수의적 연동운동에 의해 점령당하고 마는 장르, 그것이 소설이다. 이때, (정말이지 내키지 않지만 굳이 정의해야 한다면) 작가란 ‘내장의 연동운동을 통제하는 데 실패한 괄약근’ 정도가 될 것이고, 작품이란 ‘연동운동의 조절에 실패한 작가가 싸질러놓은 똥’쯤 되겠다. 물론 인물은 내장의 연동운동 그 자체일 것이다. 그 운동이 행위와 사건을 낳을(싸지를) 테니 말이다. 어쨌거나 간에, 이토록 기발한 소설론을 나는 여태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다. _김형중(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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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그럭저럭 받아들이고 있다.
받아들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가끔이나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잘 알기는커녕 뭘 알아야 할지조차 결정짓기 어려웠던 시간들,
(그게 나를 자꾸만 더 멀리 달아나게 만들었지만)
그 도피의 궤적들을 나는 울며불며 어떻게든 옮겨 적었다.
_´작가의 말´ 전문
■ 책 속에서
거기까지 외친 저는 꺽꺽 소리내어 오열했습니다. 정말 눈알을 쏟아낼 듯 울어댔어요. 나는 김준규가 일말의 죄책감이나 동정심을 품길 바랐습니다. 저를 좀 불쌍히 여기길 바랐어요…… 하지만 김준규는 저를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말없이 방을 나가버렸습니다. 저는 훌쩍이며 생각했죠. 그래, 아주 떠나버리라지. 차라리 굶어 죽는 편이 나을 거야. 그러나 그는 금세 돌아와 제 팬티를 끌어내렸습니다. 따뜻하게 데운 수건으로 사타구니를 꼼꼼히 닦아준 다음 새 속옷으로 갈아입혀주었어요. 그러더니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기…… 힘들겠지만, 힘내.
_「마니차」
나는 창가에 앉아 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옅은 안개가 우무처럼 바깥을 감싸고 있는 게 보였다. 어쩐지 비가 올 것만 같았다. 맑고 축복받은 날씨가 될 것이라고, 라디오는 얘기했지만 모두가 속고 있는지도 몰랐다. 모두를 속이는 일은 아주 쉽다. 둘이나 셋을 속이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다.
_「아버지 축제」
단 한 번의 이완이 모든 것을 망칠 것이었다. 이성의 끈은 당겨질 대로 당겨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늘어져 있었다. 이제 틀렸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축축하고 음흉한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냥 싸버려. 알 게 뭐야. 어차피 모르는 동네잖아. 더이상 참을 수도 없잖아. 편해질 거야.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을 거야…… 제기랄, 입다물어. 난 아무데나 똥을 누진 않을 거라고…… 호기롭게 윽박았지만 목소리가 옳았다. 더는 참을 자신이 없었다.
_「머리 위를 조심해」
“내 변기가 우릴 만나게 해준 거요. 운명적으로.”
_「머리 위를 조심해」
내가 그곳을 벗어나 다른 어딘가, 이를테면 거실의 구석빼기나 식탁 밑에 자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는데, 내 기억이란 게 늘 창가에서 시작하곤 했으며, 아주 처음부터 거기 앉아 있었던 것만 같아서였다. 더 이전의 것을 더듬어보려 해도 매우 어렴풋하게 역겨운 누린내 외에는 떠올릴 수 없었고, 그건 차라리 모태의 기억을 빙자한 망상인 듯했다. 나의 시작을 모른다는 것, 또 그것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 내 고착의 먹이가 되었다
_「벽장」
내가 내 집 좀 갖겠다는데, 좀 살아보겠다는데, 이 서울 땅에 등 좀 누이고 있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잘못이냐는 억울함이 들끓었다. 그냥 서로 없는 사람처럼, 조용하게, 피해를 주지도 받지도 않고 좀, 각자
의 관에 누운 시체들처럼 살면 안 되겠느냐고, 나는 토로하고 싶었고 차라리 애원하고 싶었다.
_「전발씨」
■ 차례
갈매기는 끼룩끼룩 운다 • 007
마니차 • 035
아버지 축제 • 073
머리 위를 조심해 • 099
벽장 • 139
전발씨 • 171
원초적 취미 • 207
대단히 멋진 꿈 • 243
해설 | 김형중 (문학평론가)
괄약근 VS 불수의근 • 267
작가의 말 • 281
★ 이수진 │ 1987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조선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09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원초적 취미」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로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