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자신을 위해 자유롭게 쓴
위대한 철학자의 가장 내밀한 기록
불평등이 해소되는 이상 사회를 구상한 『사회계약론』, 이상적인 공동체와 이에 적합한 인간이 갖춰야 할 미덕을 제시한 『누벨 엘로이즈』, 근대 교육론의 효시가 된 교육론을 치밀하게 정립한 『에밀』의 저자 장자크 루소는 18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제적 사상가다. 괴테가 언급한 대로 “볼테르와 더불어 하나의 세계가 끝나고, 루소와 더불어 하나의 세계가 시작”되었지만, 루소의 학문적 성과에 대한 당대의 평가는 공정하지 못했다. 학문과 예술을 비난하는 『학문예술론』으로 학계에 이름을 알리나 작가로서의 진정성을 실천하기 위해 귀족들의 후원을 거부하고 악보 필경사로서 생계를 이어나가기도 했고, 연극이 대중의 마음에 허영심을 조장하고 내면을 도외시하게 만든다고 비난하면서도 낭만적 연애소설인 『누벨 엘로이즈』를 썼으며, 교육론 『에밀』의 저자이면서도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모두 고아원으로 보낸 루소의 이력에 여론은 가혹한 비난과 조소를 퍼부었다. 급기야 1762년 파리 고등법원이 『에밀』을 금서로 지정하며 체포영장을 발부하자, 이러한 사회적 판결이 제네바로까지 확산되어 루소는 스위스로 피신해 고립된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루소는 세상의 비난에 맞서 자신을 해명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전적 산문인 『고백록』(1770년 완성)과 『대화: 루소, 장자크를 심판하다』(1776년 완성)를 집필하며, 현시대에서는 불가능할지라도 후세는 자신을 정당하게 평가해주리라고 미래를 향한 희망과 기대를 피력하나 이 또한 현세의 여론에 꺾이고 만다. 결국 루소는 1776년 가을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서 떨어져나와 완전히 혼자가 되었음을 선언하며, 자신을 탐구하고 자아를 향유하는 고독하지만 자유로운 글쓰기를 시작한다. 1778년 뇌출혈로 사망하게 되면서 미완성 유작으로 남게 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루소가 평생을 탐구하고 추구한 ‘나 자신’이라는 주제에 대한 내적 성찰을 비롯해 삶에 대한 회환과 관조, 명상의 체험이 온전히 담긴 위대한 철학자의 가장 내밀한 기록이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빛을 향해 나아가는
열 번의 산책과 몽상
자아를 회복하는 것만이 맞닥뜨린 불행에 대한 보상이 됨을 깨달은 루소는 산책을 기록하기로 한다. 산책을 통해 느낀 영혼의 자유로움과 자연과의 일체감을 기억하고, 그 기쁨을 언제든 되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명상은 자신의 심리에 대한 분석, 아직 남아 있는 회한에 대한 성찰, 즐거운 시절의 회상, 감미로운 자연과의 교감에 자신을 내던지는 초월적 체험인 몽상으로 이어진다. 어리석고 유한한 인간에게 행복의 갈망이 얼마나 덧없는 일인지를 밝히며, 이보다 스스로 만족하는 상태를 깨닫는 것이 진정 실현 가능한 행복임을 역설한다.
「첫번째 산책」에서 루소는 고독한 명상의 당위성을 밝힌다. 글의 목적이 마음의 평화를 구하는 데 있으며, 어떠한 제약도 없이 자유롭게 써내려갈 것을 다짐한다.
「두번째 산책」은 거대한 개와 부딪친 사고로 자신의 사후에 벌어질 일들을 미리 경험하게 된 작가는 다음 세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버리고 체념하고도 최후에는 모든 일이 순리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을 피력한다.
「세번째 산책」은 “나는 늘 배우면서 늙어간다”는 솔론의 말을 빌려 배움의 태도를 성찰한다.
「네번째 산책」은 앞서 『고백록』에서는 의도적으로 배제했던 자신의 정직성을 말해줄 어릴 적 경험들을 들려주며, ‘거짓말은 표명해야 할 진실을 감추는 일이다’라는 명제에 대한 반론을 검증해본다.
「다섯번째 산책」은 생피에르 섬에서 지내던 때를 회상하며, 몽상의 황홀한 행복과 충일한 실존감을 표현하고 자연과 일치하는 고독한 삶을 찬양한다.
「여섯번째 산책」은 자선에 관한 고찰을 담았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선과, 의무감으로 변질된 자선의 경험을 들어 타인을 향한 인간 행동의 동기에 대한 회의를 표한다.
「일곱번째 산책」에서는 식물학에 대해 논하고 자연 속에서의 몽상을 예찬한다.
「여덟번째 산책」에서는 마음의 평정을 찾게 된 과정을 기술하며,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고 필연의 멍에를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 대해 말한다.
「아홉번째 산책」에서는 자녀들을 고아원으로 보낸 일에 대한 회환이 서린 해명과 더불어 진정한 행복이란 이기적 이해 추구와는 무관하며 타인과의 공명에 직결되어 있음을 설파한다.
「열번째 산책」은 바랑 부인과 함께했던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회고로 시작되지만 미완으로 끝난다.
1776년에서 1778년까지 2년에 걸쳐 루소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써나갔다. 그 기간 동안 그가 끊임없이 갈망한 것은 단 하나, 행복이었다. 그는 그 행복을 산책중 자신과의 대화로 되찾을 수 있었다. 루소가 대화한 자아는 자기 안으로 몰입하는 폐쇄적 자아가 아니라 자연의 삼라만상과 결합해 조화를 이루면서 성장하고 도약하는 자아다. 또한 루소는 글쓰기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나 자신을 앞세울 때 새로운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 문학사적으로 큰 의의를 갖는 이유도 이 때문으로, 내적 자아에 대한 루소의 새로운 인식은 문학사적으로 풍요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19세기 낭만주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추천사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누구인가 물을 때, 루소에 필적하는 인물을 찾으려면 종교개혁가에까지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낭만주의, 개인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강력한 역사적 흐름의 근원지에 루소만큼 서 있는 인물이 또 있겠는가? _파울 자크만(교육학자)
루소는 그의 삶을 우리에게 이야기함으로써 그의 영혼을 묘사하고 싶어한다. 루소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진실은 전기적 사실들의 정확한 지형도가 아니라, 그가 자신의 과거와 맺는 관계이다. _장 스타로뱅스키(문학평론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듯 그를 사랑하고 우리 자신을 미워하듯 그를 미워한다. 루소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의 고백이 아니다. 우리는 루소와 의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루소를 안다. 우리는 그의 의식이다. _프랑수아 모리아크
볼테르와 더불어 하나의 세계가 끝나고, 루소와 더불어 하나의 세계가 시작됐다. _괴테
나는 루소를 숭배하여 그의 모습이 새겨진 메달을 우상처럼 목에 걸고 다녔다. _톨스토이
본문 발췌
지상에서 나의 모든 것은 끝이 났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내게 잘해줄 수도 해를 끼칠 수도 없다. 이제 내가 기대하거나 두려워할 것이 이 세상에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니, 불운하고 불쌍한 인간인 나는 깊은 심연 속에서 이렇게 하느님처럼 태연하고 평온하다. (「첫번째 산책」, 13쪽)
자신을 성찰하는 습관은 마침내 내 불행에 대한 느낌과 그 기억까지도 거의 잊게 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진정한 행복의 원천이 우리 안에 있음을, 또한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을 정말로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을 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 (「두번째 산책」, 20쪽)
청년기는 지혜를 배우는 시기이고, 노년기는 지혜를 실천하는 시기다. 경험은 언제나 가르침을 준다. 나도 그 점을 인정하지만, 자기 앞에 남아 있는 삶의 기간에만 유익할 뿐이다. 죽어야 하는 순간이 과연 어떻게 살았어야 했는지를 배울 적절한 시기인가? (「세번째 산책」, 33~34쪽)
젊어서부터 나는 마흔을 성공을 위한 내 노력을 끝내는 시기, 온갖 포부를 마무리하는시기로 정해두었다. 그 나이 이후로는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 거기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 않고 더는 앞날을 염려하지도 않고 여생 동안 그날그날의 하루를 살기로 단단히 결심했었다. (「세번째 산책」, 38쪽)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의무를 그토록 세심하게 가늠하는 내가 나 자신에 대한 의무도 충분히 검토해보았던가? 남에게 정당해야 한다면 자기 자신에게는 진실해야 하며, 이는 성실한 인간이 자신의 존엄성에 마땅히 표해야 할 경의다. 내 대화가 빈곤하여 어쩔 수 없이 악의 없는 허구들로 그것을 메우곤 했을 때 남을 즐겁게 하느라 자신을 비하해서는 안 되었는데, 내 잘못이었다. (「네번째 산책」, 74~75쪽)
공격은 가끔 과녁을 빗나가기도 하지만 의도는 반드시 상처를 입힌다. 물리적인 고통은 운명이 가하는 타격 중 고통이 가장 덜하다. 불운한 자들이 자기 불행을 누구 탓으로 돌려야 할지 알지 못할 때, 그들은 운명을 인격화하고 거기에 눈과 지능까지 부여해 자기를 일부러 괴롭힌다고 생각하며 운명을 원망한다. 그런 식으로, 돈을 잃고 씩씩거리는 노름꾼이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화를 내듯 원망하는 것이다. 자신을 괴롭히기로 마음먹고 악착같이 따라다니는 운명을 상상하며, 화낼 거리를 찾아내 자신이 만들어낸 적에게 격분을 쏟아낸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불행에서 맹목적인 필연의 공격만 보는 현명한 사람은 그렇게 무분별하게 동요하지 않으며, 고통 속에서 소리를 지르지만 흥분하거나 화내지 않고, 자신을 집어삼킨 불행에서 물리적인 타격만 받을 뿐, 그 공격들은 그의 인격을 훼손시키려 해도 소용없고 결코 그의 마음에까지 미치지 못한다. (「여덟번째 산책」, 1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