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깊은 바다”
익숙하기보다는 낯설고, 정상이기보다는 비정상이고, 평범하기보다는 특이하고,
사실적이기보다는 허구적이고, 실체적이기보다는 허상적이고,
현실적이기보다는 비현실적이거나 초현실적이고, 일상적이기보다는 일탈적이고,
중심적이기보다는 주변적이고, 설명 가능하기보다는 불가사의한 이야기의 세계
중국 고대 소설의 집대성이자 문학사에서 ‘소설’ 관념의 획기적 진보를 가져온 책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고전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야기의 백과사전 『태평광기』!
탄생부터 전파까지 이 책의 역사를 조망하고, 엄선한 핵심 이야기 31편을 통해
그 기이하고 환상적인 세계를 탐험한다.
비록 패관의 야사野史일지라도 당대의 풍속을 치료하는 훌륭한 약이 아닌 것이 없으니,
『태평광기』는 약상자 속의 대단한 약제藥劑가 아니겠는가!
― 명나라 풍몽룡
고래로 숨은 이야기와 자질구레한 일, 보기 드문 책과 없어진 문장이 모두 여기에 있으니,
대개 소설가의 깊은 바다이다.
― 청나라 기윤
우리나라 문인들은 모두 『태평광기』를 공부했다.
― 조선 유몽인
나는 『태평광기』의 장점이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육조六朝에서 송나라 초까지의 소설을 거의 전부 수록하고 있으므로 대략적인 연구를 한다면 많은 책을 따로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요괴, 귀신, 스님, 도사 등을 한 부류씩 매우 분명하게 분류하고 아주 많은 고사를 모아놓았으므로 우리들이 물리도록 실컷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루쉰
이야기의 백과사전, 이야기의 역사
『태평광기』는 ‘태평흥국太平興國(송나라 2대 황제 태종의 연호) 시대에 편찬된 광대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송나라 초에 이방李昉 등이 태종의 명을 받아 978년에 편찬하고 981년에 판각한 중국 고대 소설 모음집이다.
『태평광기』는 한나라부터 송나라 초(기원전 2세기~기원후 10세기)에 만들어진 소설, 주제와 형식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기록한 필기筆記, 야사 등 각종 서적에 수록된 이야기들을 폭넓게 채록한 이야기 백과사전이다. 내용에 따라 92개의 큰 부류와 155개의 작은 부류로 나누고, 총 6965편에 달하는 이야기를 무려 500권에 담았다. 각 부류에 실린 이야기는 시대순으로 배열되고, 대부분 등장인물 이름을 제목으로 삼았으며, 각 이야기 끝에는 원 출처를 밝혀놓았다. 여기에 인용된 책은 거의 500종에 가까운데, 그중 상당수가 이미 소실되어 『태평광기』를 통해 많은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이처럼 중국 고소설 작품을 방대하게 보존하고 고소설의 변화와 발전을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태평광기』의 문헌학적 가치는 대단히 높다.
그렇다면 10세기 후반 중국에서는 왜 이런 ‘이야기의 백과사전’을 만들었을까? 주로 기이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모아놓은 방대한 책을 왜 국가 주도로 편찬했을까? 어떠한 기준에 따라 이야기를 분류하고 배치했을까? 어떤 매력이 있기에 천 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을까? 우리나라에는 언제 전해졌을까? 왜 조선시대에 그토록 많은 문인이 애독했으며, 일부 이야기를 가려 뽑아 상절본詳節本(선집)을 편찬하고 한글로 번역한 언해본諺解本까지 나왔을까?
1998년 처음 『태평광기』 번역에 착수한 뒤 번역팀을 꾸려 2005년 마침내 완역을 이루어낸 김장환 교수(연세대 중문학과)는 이 책 『태평광기: 동아시아 이야기 보고의 탄생』에서 『태평광기』라는 놀라운 책의 비밀을 소상히 밝힘과 동시에, 「왕도」 「규염객」 「앵앵전」 「위고」 「판교삼낭자」 「장수국」 등 대표적인 단편 31편의 전문을 실어 고대 중국인들이 일구어낸 문학적 상상력의 진면목을 맛볼 수 있게 해준다.
소설 관념의 진보
중국의 전통 시기에 ‘소설小說’은 우리가 익히 아는 근대적 의미의 소설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자질구레한 이야기’로 이해되었다. 유가 경전이나 역사서, 문인들의 전아한 문학적 글쓰기가 아닌, 한가한 시간에 자신이 보고 들은 이야기를 손 가는 대로 자유롭게 기술한 사소한 글쓰기가 곧 소설이었다.
당나라 멸망 후 오대십국의 혼란기를 딛고 중국을 통일한 송나라는 그때까지 전해오던 수많은 역사적 일화와 민간전설, 괴이한 이야기를 기록한 지괴志怪소설과 실제 인물의 일화를 기록한 지인志人소설, 당나라를 대표하는 문언소설인 전기傳奇소설과 다양한 주제를 수필식으로 자유롭게 기록한 필기잡록, 도교와 불교 설화 등을 두루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 결과물이 바로 『태평광기』다. 『태평광기』에서 설정한 범주(부류)는 그때까지 소일거리로 쓴 ‘자질구레한 이야기’로 치부되어온 ‘소설’ 관념의 외연을 확장시킴과 동시에 ‘소설’에 대한 인식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태평광기』의 편찬자들은 수많은 문헌을 모아 정리하는 과정에서 어떤 것이 ‘소설’이고 어떤 것이 ‘소설’이 아닌지를 명확히 구분해야 했으며, 그러면서 ‘소설’에 대한 공통 관념을 도출해낸다. 그들이 인식하고 있던 ‘소설’ 관념은 지괴와 전기 같은 기이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면서 역사서, 지리서, 필기, 불교와 도교 관련 서적, 문집 중에서 ‘이야기’의 속성, 즉 ‘기이함’을 특징으로 하는 ‘서사’를 모두 포괄한다.
분류체계와 ‘기환奇幻’의 세계
『태평광기』의 특징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송나라 초 황실의 도교 숭상 기풍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도교 이야기를 맨 앞에 상당한 비중으로 배치한 데서 잘 드러난다. 아울러 도교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함께 발전해온 불교 이야기가 도교 다음에 배치된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둘째, 『태평광기』는 전통적인 유서類書(체계적으로 분류해서 정리한 백과사전)의 분류체계를 따른다. 유서는 다양한 분야의 자료를 종합적으로 편집한 ‘정종正宗’과 한 분야의 내용만을 전문적으로 편집한 ‘별체別體’로 나뉘는데, 고금의 이야기만을 편집해 수록한 『태평광기』는 유서의 ‘별체’에 해당한다. 또한 일반적인 유서는 천지인 ‘삼재三才’ 사상을 바탕으로 천天-지地-인人-물物의 구도 속에서 세계를 범주화하여 각각의 항목을 분류하는데, 『태평광기』 또한 이와 같은 원리에 따라 구성되었다.(40~46쪽의 표 <『태평광기』의 분류체계> 가운데 ‘분류 사상’ 참조)
셋째, 『태평광기』의 세계는 ‘기奇’와 ‘환幻’의 개념으로 개괄할 수 있다. 『태평광기』와 거의 같은 시기에 편찬된 유서로서 ‘백가百家의 학설’을 대규모로 정리한 『태평어람』이 당시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세계상을 규정짓고 있다면, 『태평광기』는 정상적이고 공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세계와는 다른 기이하고(기奇) 환상적인(환幻) 이야기의 세계를 다룬다. 『태평광기』가 표방하는 이야기의 세계는 익숙하기보다는 낯설고, 정상이기보다는 비정상이고, 평범하기보다는 특이하고, 사실적이기보다는 허구적이고, 실체적이기보다는 허상적이고, 현실적이기보다는 비현실적이거나 초현실적이고, 일상적이기보다는 일탈적이고, 중심적이기보다는 주변적이고, 설명 가능하기보다는 불가사의한 세계다.
동아시아 서사의 원류
『태평광기』에 수록된 이야기 중에서 줄거리의 완성도가 높고 대중성을 갖춘 이야기는 이후 명나라의 『전등신화剪燈新話』, 청나라의 『요재지이聊齋志異』 같은 소설에 소재를 제공했고, 남송에서 시작되어 명나라와 청나라 때 대표적인 통속문학으로 자리잡은 백화소설白話小說(구어체 소설)로 개작되었으며, 금․원․명․청 시대의 희곡작품으로 각색되었다.
『태평광기』는 판각된 지 백 년도 지나지 않아 다른 나라에까지 전해졌다. 한국에는 고려 문종 34년(1080) 이전에 전래되어, 고려와 조선의 문인들이 시문을 창작할 때 참고할 만큼 널리 읽혔다. 또한 고려와 조선의 설화와 소설 등에도 폭넓게 수용된다. 고려의 일연과 이규보, 조선의 김시습, 허균, 김만중의 작품들에는 『태평광기』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상당수 발견된다.(249~250쪽 표 참조) 조선 전기인 15세기 후반에는 수필집인 필기筆記 저술이 유행하는데, 그런 분위기에서 조선 세조 8년(1462)에 성임成任은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 50권을 편찬했고, 성종 때인 1469~1494년에 다시 『태평통재太平通載』 100권을 편찬했다. 『태평광기상절』은 『태평광기』에서 일부를 선별하여 엮은 책으로, 총 6965편의 이야기 가운데 839편을 골라 수록했다. 『태평광기상절』 간행 이후 김시습의 『금오신화金鰲新話』라는 걸출한 전기소설이 출현한 것은 문학사적으로 결코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다. 선조 이후에는 일반 서민과 여성 독자들을 위해 한글로 옮긴 태평광기 언해본까지 등장한다. 조선 설화문학을 대표하는 『어우야담』의 저자 유몽인이 “우리나라 문인들은 모두 『태평광기』를 공부했다”라고 말할 만큼 『태평광기』는 조선시대에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일본에는 가마쿠라 시대 초기인 1200년경 전래된 것으로 보이며, 중세에 한문 입문서와 사전류 등에 기록되고 한문 작품에 대한 여러 주해서와 일기문학, 그리고 『가비자伽婢子』를 비롯한 괴이문학怪異文學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태평광기』는 베트남에도 전해졌는데, 1520~1530년경 지어진 완서阮嶼의 『전기만록傳奇漫錄』에는 『태평광기』의 고사가 자주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동아시아 전기소설은 중국 『전등신화』의 영향 아래서 한국의 『금오신화』, 일본의 『가비자』, 베트남의 『전기만록』을 논하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지만, 이들 전기소설의 원류로서 『태평광기』를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태평광기』 편찬자들은 ‘전기’의 문학적 특성을 일찍이 인식하여 ‘잡전기’라는 부류를 따로 설정했으며, 후대 각국의 전기소설은 『태평광기』에 수록된 전기 작품의 구성과 문체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전등신화』 21편 중 16편, 『금오신화』 5편 중 3편, 『가비자』 68편 중 31편이 『태평광기』에 수록된 전기 작품을 전거로 삼았음이 밝혀졌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태평광기』는 영화나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여전히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당나라 전기소설을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인 「왕주王宙」(일명 「이혼기離魂記」) 이야기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왕주와 천낭의 사랑을 천낭의 혼을 통하여 이룬다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훗날 많은 소설과 희곡 등으로 재탄생했는데, 현대에는 <천녀유혼倩女遊魂>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처럼 『태평광기』가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까지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이야기의 보편성과 다양성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