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번 거절당했던 소설가
영미권 최고 문학상 맨부커상 받다!
>심사 2시간 만에 만장일치<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는 2015년 맨부커상 수상작이다. 토의 시작 두 시간 만에 만장일치로 수상작이 정해졌다. 소설은 레게 황제 밥 말리 암살 미수 사건을 키워드 삼아 자메이카의 정치사를 76명의 등장인물과 13명의 화자를 통해 켜켜이 벼려냈다.
역사와 소설은 반대되는 개념이다. 역사는 추상이다. 숫자와 몇몇의 인물들로 요약 서술된다. 소설은 구체다. 인물의 사고, 시선, 감정까지 모두 그려내야 한다. 소설의 제목에 기어이 ‘역사’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그건, 도전이다. 구체를 통해 추상을 완성하는 작업. 그 면면이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에 녹아 있다. 작가 말런 제임스는 화자들의 사고의 흐름, 심리 상태, 호흡 단위로 끊어, 즉 구체를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역사’를 만들었다. 옮긴이는 “말런 제임스의 원문은 한두 문장만 읽어보아도 어떤 화자의 말인지 알 수 있다. 전문 인터뷰어가 실존인물을 취재하고 그 내용을 녹취해둔 글이라고 믿어질 정도”라 했다. 13명의 페르소나를 빚은 것. 그 방법은 이러하다.
작가는 화자의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라 사용하는 단어, 언어를 차별화했다. 자메이카에 토착화된 영어인 파투아의 사용이라든지, 콜롬비아와 쿠바에 인접해 스페인어를 혼용할 수 있는 능력자들을 등장시켰다.
또 화자의 감정적‧상황적 상태에 따라 서사의 결을 다르게 두었다. ‘유령’ 화자의 경우 과거의 일들이 중복되어 서술되고, 마약을 투약한 상태, 무의식이 내달릴 그 상황에선 마침표를 모두 생략하는 방법을 썼다. 살해 기도 현장을 우연히 목격하고 갱들의 총구가 자신을 향한 경험을 한 트라우마를 가진 여성은 자아분열적인 신경증에 시달리는데 이 경우 자신의 발화를 계속하여 부정하는 형식으로 구술된다.
내 왼쪽에서 유령이 하나 보여서 도망치려고 해. 나는 어떤 사람의 가슴팍에 달려들어.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그 남자는 나를 느끼지도 못해, 오직 긍정적인 바이브만 느낄 뿐. 나는 뒤를 돌아봐 유령은 유령이 아니야, 흰 옷을 입은 당신의 여자야. 뿔피리 소리가 나고 당신은 가만히 서. 나한테는 당신 소리가 들리지 않아, 나는 사람들 소리를 듣고 있고 사람들은 당신 소리를 듣고 있고 나는 당신을 볼 수 있는데 당신은 나를 귀먹은 사람 취급하며 밖으로 내보내고 문을 잠가 그리고 나는 이날 밤이 귀먹은 사람들한테는 어떤 밤이 될지 그리고 그 사람들이 함께할 수 없다면 당신이 정말로 혁명을 시작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져.
[한밤의 습격_밤-밤]
넌 솔직히 알 수가 없을 거야. 몇 분 안에 이 남자들이 너를 강간할 거라는 걸 너도 이미 알고 있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신은 너를 바보로 만들 뿐. 역사 시간에 배운 그리스신화의 카산드라, 누구도 그녀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스스로도 자기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던 그 여자처럼. 남자들은 아직 너한테 손도 대지 않았는데 너는 벌써부터 자신을 탓하기 시작하지. 이 멍청하고 순진한 년, 제복 입은 남자들이 여자를 강간할 때는 바로 이렇게 하는 거야.
[한밤의 습격_니나 버지스]
작가는 각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의식과 감정의 자유분방한 흐름을 그대로 좇고 옮기는, 다소 하드코어한 형식을 취해 치열한 결과물을 냈다. 내용과 형식의 완벽한 합일을 이루어낸 것. 소설이 ‘예술’로서 기능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근거가 있다면, 그것은 작가만의 스타일, 즉 ‘문체, 스타일’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말런 제임스는 제대로된 ‘스타일리스트’가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섬광 같은 직관, 폭발하는 에너지, 걷잡을 수 없는 의식의 파고를, 책을 접하는 모든 이들이 그의 리듬을 타고 함께 느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