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사회의 방향이고 우리의 미래다
역사는 역진하지 않는다
민중은 반드시 역사를 진전시킨다!
“우리는 통일을 이룩하고 민주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사를 알아야 할 책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사가 상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쉽고 간결하게 쓴 우리 역사
이 책은 역사학자 이이화가 서기전 옛조선부터 1987년 6월항쟁까지의 한국사를 한 권에 담은 것이다. 우리 역사를 사회에 널리 알린다는 신념으로 평생을 역사 연구와 집필에 매진해온 저자가 쉽고 간결한 문체로 우리 조상들의 장구한 삶을 들려준다. 특히 우리의 역사를 시대적 혼란과 무수한 외침 속에서도 한걸음씩 전진해온 것으로 보면서 민중사적 관점에서 지역주의 및 사대주의 타파, 정치사회 개혁, 신분제 철폐 등에 대한 일관된 역사관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2007년에 출간된 『역사』의 개정판으로, 기존의 오류를 바로잡고 또 시대별로 중요한 기록물 17편을 뽑아서 각 장 말미에 읽을거리로 추가했다.
발해사를 복원하고 근현대사에 비중을 두었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저자 특유의 생활문화사적 서술이 돋보인다. 또한 기존의 통사류나 교과서에서 소홀히 다룬 발해사를 복원하였고, 4·19혁명과 광주민중항쟁,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두어 서술했다. 저자는 또 일부 역사용어에 대해서도 입장을 달리한다. 예컨대 ‘선덕여왕’을 ‘선덕왕’으로, ‘견훤’을 ‘진훤’으로, ‘임진왜란’을 ‘조일전쟁’ 등으로 썼다. 이는 저자가 역사학자로서 견지해온 자주민중사관에 입각한 것이다.
★ 추천사
이이화 역사책은 특별한 맛이 난다. 이 개설서는 문체가 간명하고 평이할 뿐만 아니라 톡톡 쏘는 묘사와 풍자가 많아 각 시대의 문화나 생활상을 아주 친근감 있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또한 감칠맛까지 나서 빨려들어가는 기분으로 다음 장면까지 얼른 보고 싶게 만든다. 장대하게 펼쳐지는 민족사의 큰 줄기나 각별히 마음을 써서 서술한 민중의 삶과 항쟁도 쉽게 가슴에 와닿는다. 한국사의 다양한 쟁점들에 대해서도 근거를 제시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설득력 있게 펼친다. 오늘을 돌아보고 미래를 열어나가는 데 직결된 근현대사에 큰 비중을 둔 것도 이 책이 갖는 특징이자 장점이다.
_서중석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어릴 적 할머니께서는 녹두장군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셨다. 일전에 이이화 선생을 만났을 때, 잊고 있던 할머니의 그 얘기가 떠올라 짧지만 긴 대화를 나눴다. 역사 연구에 대한 열정과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평생을 한국사 연구와 집필에 매진해온 사학자답게 우리 역사를 한 권으로 쉽고 재밌게 풀어주셨다.
역사는 역진하지 않는다. 잠시 반동기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길게 보면 민중은 반드시 역사를 진전시킨다.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녹두장군 이야기처럼, 이 땅의 주인인 보통 사람의 관점에서 역사가 서술됐으면 좋겠다. 이이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월 항쟁 이야기처럼 말이다.
_안희정 충청남도지사
요즘 역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 책은 한국사의 맥을 따라가면서 역사학계의 여러 논쟁점들을 간략히 서술하여 독자에게 생각하는 역사 인식을 가능케 한다. 특히 발해사는 다른 통사류에서는 접할 수 없을 정도로 자세히 다루고 있어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경각심을 안겨준다. 또한 역사 속의 민民의 역동성과 민주주의 운동사 부분이 돋보여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확인하게 해준다. 대안 한국사 교과서로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된다.
_김정남 대진여자고등학교 역사 교사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온고지신’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를 통해 현재를 통찰할 지혜를 얻을 수 있어서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역사 교육은 어떤 길을 가고 있을까요? 이이화 선생님은 단일 시각을 강조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에 일침을 가하며 그동안 교과서 혹은 일반 교양역사책에서 놓쳐온 역사에 주목합니다. 그동안 소홀히 다루었던 발해의 역사를 생생하게 되살려놓았고, 현대사를 세밀하게 서술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굴곡진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해방 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이 꼭 풀어야 할 과제를 제시하였는데, 그것은 민주화의 가치를 실현하고 분단된 한국을 통일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입니다. 이 책을 통해 한국 사회를 올곧게 바라볼 혜안을 얻으시길.
_최현희 염경중학교 역사 교사
♣ 책 속에서
이 책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내다보아야 한다는 소박한 관점에서 쓰였습니다. 또 딱딱한 역사책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구수한 이야기를 들려주듯 재미를 주려 힘을 기울였습니다. _9쪽
단군은 서기전 2333년에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일컬었다. 평양은 어떤 특정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도읍과 같은 큰 취락聚落을 뜻한다. 따라서 단군이 도읍한 평양은 요동지방이나 압록강 서북쪽에 있었다고 한다. 근래에 이르러 단군조선의 영역이 단지 대동강과 평양 주변이 아닌, 만주와 한반도를 포괄하는 광대한 지역이었다는 설이 유력하게 등장하고 있다. _21쪽
비록 오늘날의 민족의식과는 구분되지만 언어와 풍속이 같은 한 핏줄이라는 의식이 없었다. 눈앞의 통일만을 위해 외세를 끌어들인 역사적 폐단을 만든 것이다. 이후 우리나라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남의 힘을 빌리려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_37쪽
고구려 사람들이 지배계급이 되어 다스린 진국은 고구려 부활에 뜻을 두면서 신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당시 당나라 황제였던 현정은 어쩔 수 없이 713년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봉하고 국교를 맺었다. 이때부터 발해라는 이름을 썼다. _56쪽
고려가 발해의 역사를 편찬하지 않은 것은 고려의 세력이 떨치지 못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예전 고씨는 북쪽에 살면서 고구려라 불렀고 부여씨는 서남쪽에 살면서 백제라 불렀으며 박씨, 석씨, 김씨는 동남쪽에 살면서 신라라 불렀는데, 이것이 삼국이다. _82쪽(유득공의 「발해고서」 번역)
신라 말기 사회가 혼란한 틈을 타 호족들은 함부로 토지를 점유했고 그 경계도 확실하지 않았다. 이를 중앙에서 거두어들여 새롭게 분배했다. 5대왕인 경종은 전시과田柴科를 실시하여 지위에 따라 벼슬아치들에게 일정한 토지와 임야를 나누어주고 그 토지를 직접 경작하는 농민들에게서 조세를 거두어들였다. 토지를 받은 벼슬아치는 살아 있을 때에만 조세를 받을 수 있었고 죽으면 토지를 다시 국가에 반납해야 했다. _101쪽
태종은 열여섯 살 이상의 남자는 호패를 차고 다녀야 한다는 호패법號牌法을 실시해 전국의 인구 동태와 호구를 명백히 파악하는 한편, 의정부와 6조 제도를 중심으로 한 관제 개혁을 단행했다. 대궐 문 앞에는 신문고를 두어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자유롭게 청원할 수 있게 했고 국가에 해가 되는 반란 음모 등을 신속히 고발하게 했다. _145쪽
서원과 향약은 사회에 공헌한 바가 컸다. 그러나 후기에 이르러 서원은 당쟁의 소굴이 되었고 향약은 민중을 압제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_184쪽
그들이 주축이 된 세력들은 곳곳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그들은 명화적이나 민란떼가 되었다. 명화적과 민란떼의 역사는 조선 초기부터 이어져온 뿌리 깊은 것이었다. _231쪽
일본군은 동학농민군 토벌을 구실 삼아 조선 땅에 상륙하여 농민군의 섬멸작전에 나섰으며 청일전쟁을 벌여 한반도뿐 아니라 동아시아 정세를 바꾸어놓았다. 조선이 식민지가 되는 첫 단계였다. _302쪽
조선총독부는 식민통치의 총본산이었다.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조선의 최고 통치기구로 규정되었고 총지휘자인 총독은 천황이 임명하되 의회의 간섭을 받지 않으면서 천황의 권력을 대신하는 최고 수반으로 군림했다. _353쪽
과도내각이 들어선 뒤 4·19혁명 당시 시위 군중에게 무차별 발포를 한 책임자나 선거 부정의 배추 지휘자들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했는가 하면, 4·19혁명의 궁극적 배경인 사회·경제적 모순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_440쪽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고 민중은 압제에서 성장한다. 6월 항쟁에 참여한 이들은 이 땅의 역사를 이끈 민중이었으며 시민, 학생, 민주지사, 정치가들이 이루어낸 선물이었다. 한편으로 따지면 1894년 반봉건·반외세를 내세운 동학농민혁명과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어난 3·1운동 등 줄기차게 이어진 민족운동과 이승만 독재정권 아래에서 반독재 타도를 외친 4·19혁명과 군부독재 아래에서 벌어진 부마민주항쟁과 5·18광주민중항쟁 등의 전통과 저항의 맥을 이은 결실이었다. _777∼7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