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지 두 달도 안 되어 엄마 품을 떠나게 된 강아지 수호. 훌쩍 박스에 실려 일곱 시간이나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어른 개 두 마리가 사는 집. 조막만 한 덩치지만 수호는 큰 개들과 친구로 지내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알아간다. 동그란 눈에 호기심을 꾹꾹 눌러담은 수호는 이웃 개에게 물려 큰 고비를 맞기도 한다. 엄마와의 헤어짐, 예고 없이 찾아온 친구의 죽음, 길과 숲을 헤매는 떠돌이 생활 등을 겪으며 수호는 점점 성장해 간다. 자기를 지키고 서로를 지키는 어엿한 개가 된 것이다.
★작고 여린 발이 가슴에 꾸욱 새긴 뭉클한 자국
어린 강아지가 개가 되기까지의 시간을 담은 사진 이야기책
이 책은 아기 개 수호가 어엿한 개가 되기까지의 굽이굽이를 사진과 함께 담은 이야기책이다. 진도 팽목항을 오가다 만난 수호는 늘 생명의 소중함을 상기시켰다. 그래서 수호가 어엿한 성견이 되는 게 작가에게는 매우 중요했다. 2015년 5월 수호를 데려오던 날부터 줄곧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자라는 모습을 기록했다. 엄마를 떠나 낯선 곳에서 새 친구들을 만나던 순간, 멋모르고 남의 개껌을 먹다 혼나던 날, 폐까지 난 상처를 봉합한 뒤 회복해 가던 모습, 사나운 이웃 개로부터 수호를 지키려는 친구 돌돌이, 안타까운 친구 흰둥이의 죽음, 보름이 넘게 길을 잃고 헤매던 수호를 기적처럼 다시 만난 날 들. 1년 동안 수호가 겪은 이 모든 일들을 기록한 사진은 의도된 연출이 아니기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뭉클함을 안긴다.
★어떻게 수호를 만나고 어떻게 수호는 이야기가 되었나
임정자 작가는 20년 가까이 어린이책을 써 왔다. 실천적으로 어린이들의 삶을 존중하고 격려해 온 그가 처음으로 낸 사진책은 소박하지만 진실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지금까지 세월호 아이들을 잊지 않기 위한 일에 쉼 없이 앞장서며, 동화작가인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오래도록 고민해온 그. 어린이문학인들과 팽목항 〈세월호, 기억의 벽〉 작업이 끝난 뒤 작가는 그곳에서 선물로 만난 수호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수호를 비롯해 함께 사는 개들에게 닥친 일들은 어떤 시련을 겪더라도 아이들은 꿋꿋하고 당당하게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져 주었다. 이후 어린 독자들과 만날 때면 수호의 사진을 이야기와 함께 보여 주었다. 아이들은 기대 이상으로 몰입했다. 수호와 돌돌이가 아줌마 방에 몰래 들어가 자는 장면에서는 마구 웃어 댔고, 수호가 개껌 때문에 돌돌이에게 혼나는 장면을 보면 재미있어했다. 그러나 어린 수호가 다친 모습에선 안타까워하고, 걱정 가득한 탄식을 하기도 했다. 어떤 아이들은 수호가 죽는 줄 알고 슬퍼했다. 이야기가 끝나면 질문이 쏟아졌다. 가장 많이 묻는 건, 수호가 지금도 살아 있느냐는 것. 수호를 보러 오겠다는 아이들에게 작가는 꼭 놀러 오라고 대답했다. 힘든 일을 이겨 내고 당당히 어른 개가 된 수호를 보여 주고 싶어서였다. 살아가면서 겪게 될 시련에 굴하지 말라고 수호를 통해 말해 주고 싶어서였다.
물론 아이들은 날마다 태어난다. 어떤 아이는 무사히 어른이 되고, 어떤 아이는 별이 된다. 그날은, 수많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눈부신 봄 바다에서 강제로 별이 되었다. 다섯 살 소녀는 부모 형제 없이 홀로 구조되었다. 그 누구도 ‘소녀’들이 어른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수호는 강아지였지만 끝내 개가 되었다. 곁엔 늘 동무 흰둥이와 돌돌이가 있었다. 세상 모든 아이들 또한 그러하길 바란다 ._임정자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아픔을 지닌 자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출간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기에, 이 책에 실린 사진은 의도된 것이 아니다. 개들에게 특별한 상황이 벌어지는 걸 목격하면 그 자리에서 휴대폰을 꺼내 셔터를 눌렀다. 수호를 찾으려고 돌돌이와 무작정 산을 헤매 다닐 때, 사람이 다니는 산이 아니다 보니 자꾸 방향을 잃어 고생을 했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작가가 한 것은 사진을 찍어 두는 것. 그렇게 사진을 찍다 기진맥진해 엎드린 돌돌이가 눈에 들어왔고 가엾은 마음에 사진에 담았다.(53쪽 사진) 한밤중에 이웃 개 행복이가 마당으로 들어섰을 때 돌돌이가 수호를 막고 짖는 사진 역시, 행복이 주인에게 상황을 알리고자 급히 찍은 것이다.(31쪽 사진) 책을 만들어 나가면서 이야기에 필요한 사진은 더 찍기도 했다. 주로 성견이 된 이후의 모습이 그것이다.
인쇄하기 전까지도 이 이야기를 책으로 낼 것인가에 대해 작가의 고민은 깊었다. 단지 사진의 질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누구나 어른이 되는데 제 의지와 상관없이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 벗어나기 힘든 트라우마 때문에 많은 시간을 힘겹게 보내야 하는 아이들이 생각나서였다. “수호는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 죽다 살아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성견이 되었다. 모든 종의 아이들은 스스로 성장하고, 어른이 된다. 누구도 자연을 거슬러 아이들의 삶을 막을 수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고민의 끝에 찾아왔다.
한 마리 강아지가 지나온 시간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작은 발로 디뎠던 땅, 찢긴 폐로 숨 쉬어야 했던 고통, 포도 넝쿨을 헤집던 까만 코의 호기심, 반짝이는 눈망울에 담긴 기대와 두려움……. 그것은 사진 기록 이상의 의미이다. 그것은 살아 있다는 것의 증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