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 관심을 가진 후부터, 갑자기 길고양이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관심이 없을 때는 있는지도 몰랐던 존재가 집밖에만 나서면 눈에 밟히곤 하는 것이다. 어떤 대상에 관심을 갖고 애정을 품게 되면서 세상까지 달리 보이는 이치다. 그림도 매한가지다. 고양이의 존재가 그림을 보는 법까지 바꿔놓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지은이가 바로 그랬다. 우연히 친구의 고양이를 잠시 돌봐주게 된 후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진 지은이는 고양이를 키워드로 하여 미술의 역사를 다시 훑어보게 된다. “고양이에게 관심을 가지니, 세상만사가 고양이와 관련 있어 보”이고 여러 번 보았던 그림에서 처음으로 고양이의 존재를 눈치 채게 되기도 한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그림 속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색다른 미술사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류 역사에서 고양이가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었는지 파악하는 한편으로, 미술사의 흐름도 짚어본다. 또 무심코 지나쳤던 그림 속에 고양이가 숨어 있었음을 알게 되면서 그림을 새롭게 보는 시각을 또 하나 얻게 된다.
신에서 악마의 하수인까지, 고양이의 상반된 역할
고양이를 따라가는 그림 여행의 출발지는 고대 이집트다. 고대 이집트가 서양미술사의 주요 시작점이자 고양이가 인간의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점이니 만큼 당연한 선택이다. 약 700만 년 전 지구에 등장했다는 고양이는 기원전 2000년경의 묘비에 상형문자 형태로 등장하고 이후 여러 벽화와 조각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특이하게도 고양이를 여신 바스테트, 태양신 라와 동일시하며 추앙했다. 아마도 농경사회에서 식량을 축내는 쥐를 잡는 고양이의 효용 가치가 크게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숭배 문화는 고양이 미라가 다른 동물들에 비해 특히 많이 발견되는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 미술에 남은 고양이들의 모습은 의외로 무척 사실적이다. 동작은 생동감 있고, 생김새도 세세하게 표현되었다. 이는 이후 그리스와 로마 미술에서 간간히 발견되는 고양이 이미지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특성이다. 그런데 중세에 이르러서는 양상이 달라진다. 중세에 세상은 기독교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기독교의 필터를 통과한 고양이는 숭앙받던 신의 지위에서 악마와 계약을 맺은 이교도 동물로 그 지위가 급전직하했다. 고양이는 여전히 페스트 등 각종 질병을 옮기고 식량을 몰래 축내는 쥐를 없애는 유익한 동물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교회의 적으로서 피고석에 끌려오거나 산 채로 불태워지는 등 웃지 못 할 일들을 겪어야 했다. 중세에 그림 속에서 고양이는 채색사본에서 악을 상징하는 쥐를 잡아 공손하게 신에게 바치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성경 이야기를 묘사한 그림에 등장해 현실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가 본격화되면서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좀 더 인간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게 된다. 신앙에 갇혀 있던 지식은 지식 그 자체로 자리를 잡아갔고, 이런 시각의 변화는 고양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꾸어 놓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보이는 대로 그리고, 고양이는 고양이로 대한” 것이다. 르네상스의 대표적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남긴 여러 장의 고양이 스케치는 이런 태도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고양이 형상만 띠었지 제대로 묘사되지 않아 좀체 고양이 같지 않던 중세와 달리, 철저히 관찰에 근거해 그려진 르네상스의 고양이는 마치 현실의 고양이를 보는 것 같다. 한편 르네상스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고양이가 긍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게 된 것은 아니었다. 한 번 형성된 부정적인 이미지는 오래 남았다. 그리하여 마녀와 비의에 흠뻑 빠져 있던 독일의 화가 한스 발둥 그린은 악마의 동물로 고양이를 자주 등장시키기도 했다.
유럽에서 17세기 무렵부터 고양이가 광범위하게 퍼지기 시작하면서 고양이가 등장하는 그림도 늘었다. 단순히 많이 키워졌기 때문에 많이 그려진 것이 아니라, 교황에게서 절대왕정으로 권력 중심이 이동하면서 종교화의 위세가 줄어든 반면 일상을 담은 인물화, 풍경화, 풍속화가 더 많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이런 그림들에서 대개는 조연으로, 때로는 주연으로 등장하며 커진 존재감을 과시한다. 특히 풍속화에서 고양이는 그림에 현실감은 물론 재미를 더하는 감초 같은 존재로 등장한다. 하녀가 잠든 부엌에서 먹을 것을 훔치거나 시끌벅적한 거실에서 그 틈을 타 새장 속 새를 노리거나 하는 식이다. 이전 시기 고양이 그림과의 큰 차이는 인간의 친구로서 고양이가 등장하는 일이 잦아졌다는 점이다. 하녀의 피곤한 일상을 위로하듯 다리에 머리를 부딪쳐 오는 고양이나 가난한 거지의 무릎 위에 가만히 앉은 새끼고양이, 아이들의 놀이 친구로 등장하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다정하다.
고양이, 세상을 지배하다
바로크를 지나면 다음은 탐미의 시대, 로코코다. 이때 고양이는 모든 계층과 세대에서 길러지는 가정용 동물로 자리 잡고, 이에 따라 더욱 높아진 위상을 드러내는 그림들이 등장한다.18세기 중반 조반니 레데르가 그린 한 점의 그림은 그 독특함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로 ‘고양이의 초상화’이기 때문이다. ‘아르멜리노’라는 이름의 고양이는 초상화로 그려져 그 이름과 모습이 오늘날까지 남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고양이는 이처럼 그림의 유일무이한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로코코 시대에는 유난히 여성과 함께 그려진 고양이를 많이 볼 수 있다. 아무래도 귀족의 시대이자 유희의 시대였으니, 그림 배경도 이에 걸맞게 식품 저장소를 떠나 살롱의 소파나 은밀한 내실의 화장대 앞으로 변한 것이리라.
19세기에는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진 ‘고양이교’ 신자들이 대폭 늘었다. 테오필 고티에, 기욤 아폴리네르, 장 콕토 같은 문필가들이 고양이의 매력에 대해 썼고, 쿠르베, 마네, 르누아르, 베르트 모리조, 쉬잔 발라동 같은 화가들이 고양이를 즐겨 그렸다. 이 시기에는 일본에서 건너온 목판화 우키요에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이 우키요에에 흔히 묘사되곤 하던 일상 풍경 속 고양이는 유럽 화가들에게 이 이국적인 풍경을 좀 더 친밀하게 느끼게 했다. 우키요에에 많은 영향을 받은 포스터 아티스트 테오필 스텐렌은 열렬한 고양이 애호가로 고양이가 등장하는 수많은 그림을 남겼다.
오늘날 도시화가 가속되면서 현대인의 삶은 점차 고립되어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고양이는 특히 사람들에게 위안과 위로를 전달하는 존재로서 그림 속에 등장한다. 외로움을 온 몸으로 내뿜는 소녀 곁을 지키는 키르히너의 고양이부터, 기계적인 원통형으로 그려진 여성의 무릎 위를 지키고 있는 레제의 고양이까지 이 삭막한 세상 속에서 고양이는 사람의 친구로 자리 잡았다. 때로는 외롭고 불안정한 마음을 대변하기도 한다. 신경질적으로 한 올 한 올 서 있는 머리털을 한 화가의 부인 키티의 초상화에 루치안 프로이트는 그녀의 손에 목을 잡힌 새끼 고양이를 함께 등장시킨다. 커다란 눈이 서로 닮아, 왠지 그림의 주인공 키티가 제 목을 조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지은이는 고양이의 흔적을 따라 고대 이집트에서 현대까지 미술사를 좇아오면서 신, 악마의 조력자, 유용한 쥐잡이, 친구 그리고 가족의 일원으로 다양한 역할을 맡았던 고양이들을 소개한다. 우연히 맡아 길렀던 친구의 고양이 ‘구름이’로 인해 생긴 관심은 그림 속 고양이들에게 향했고, 이렇게 커진 애정은 다시 현실의 고양이들에 대한 동정과 공감으로 돌아온다. “미술은 세상을 향한 인간의 정신을 드러”내고 “미술 속 고양이는 우리에게 미술에 대한 지식과 감상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길고양이는 소외받은 현대인의 분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