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차미령의 첫번째 평론집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평론을 쓰기 시작한 지 10여 년, 그가 늘 단단한 글로 널리 회자되어왔음을 생각하면 조금 늦게 도착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역시 그의 진중하고 사려 깊은 성정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일이 아니다. 늘 세심하게 동시대 문학의 현장을 관찰하고 진중하게 발언했으며, 특히나 눈에 잘 띄지 않는 희박하고 우연적인 숨결들에 집중해왔다. ‘문학의 종언’이 떠오르던 2000년대 중반부터,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에 휩쓸려 인간성이 점점 더 피폐해져가고 있는 현재까지 그가 문학에서, 또 사회 속에서 목도한 것은 무엇일까. 그 난망하지만 아름다운 기록이 여기에 있다.
버려진, 그러나 아름다운 가능성들에 대하여
삶이 무수한 선택의 연속이듯 이야기 역시 그러하다. 소설의 세계 속에서 무수히 뻗어나가던 사유의 가지들은 어느 사이 굵직한 몇몇으로 추려지고, 고된 판단과 퇴고를 거쳐 마침내 선택된 단 하나의 길은 눈부시다. 사람들은 이를 찬탄하며 ‘작품’이라 부르기도 하고, 그 길을 따라 한 시대의 궤적이나 정신을 읽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차미령은 이 과정에서 버려진 행간의 가능성들에 주목한다. 주변적인 인물들, 별 뜻 없어 보이는 대사들, 어떤 날씨와 상황들, 우연적인 맥락들…… 글쓰기의 우주에서 버려지는 이 모든 가능성들은 아무렇게나 구겨진 채 쓰레기통에 던져지거나 잘못 쓰인 편지처럼 수신자에게 닿지 못하지만, 이런 것들이야말로 서사의 보이지 않는 지층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읽기를 미완의 상태로, 끊임없는 반성적 운동으로, 생명을 거듭하게 하는 서사의 힘. 때문에 그가 동시대 소설에서 읽어낸 것도 사라지고 지워지고 버려지는 것들에서 세계성을 발견하려는 움직임이다. 어떤 가능성들이 마침내 상실되었음을 응시하고, 배제된 가능성들이 그 존재를 요구하는 세계. 차미령이 정리하는 지난 10년간의 장면들이다.
1부에서는 황정은의 소설로 시작하여 은희경, 성석제, 강영숙, 박민규, 조하형, 편혜영 등의 소설들을 중심으로 2000년대 한국문학에 나타난 다종다기한 양태를 다룬다. 그리고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로부터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도 풀어놓는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팽목항 방파제에 자리한 여러 사연들 중에는 “5·18 엄마가 4·16 엄마에게” 보낸 문장들도 있었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 그 원통함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갖출 수 있는 어떤 태도가 있다. 저마다 앎의 깊이는 다를 것이고, 누구도 모두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의와 혐오에 맞서, 슬픔의 공동체를 배려의 공동체로 전환해나가는 데에는 무엇보다 진실이 필요하다. “그럴 권리는 주님에게도 있을 수 없어요.” 신과도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 우리는 지금 그것을 시험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142쪽)
2부는 김애란, 윤성희, 손보미, 김연수 등의 작가들을 다룬다. ‘이야기꾼의 탄생과 진화’라는 제목 아래 묶인 세 편의 작가론은 이중에서도 백미라고 할 만하다. 또한 ‘실패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2010년대 문단에서 펼쳐진 장편소설에 관한 논의도 담았다.
서사 장르에서 창의적인 이야기의 힘은 그것의 내용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소를 배치하고 조율하는, 사건의 단서를 감추고 드러내는, 다시 말해 이야기를 구축해나가는 방식은 궁극적으로 삶이라는 미스터리에 어떻게 가닿을 것인가라는 이야기꾼의 질문과 결부되어 있다. 우리가 별것 아닌 이야기 앞에서 불현듯 신음을 토하게 되는 순간은, 이야기꾼이 우리가 사소하게 지나쳐온 것들을 통해 은연중 본질을 파고드는 순간이다.(164쪽)
3부에서는 김이설, 김훈, 백가흠, 천운영, 전성태 등의 소설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이와 관련하여 2000년대 한국소설에 나타나는 인간의 동물성에 대한 사유와 부쩍 늘어난 국경/경계넘기의 양상을 다룬다.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을 다시 읽으며 성(性)의 정치학에 관해 톺아보기도 한다.
세상에는 그런 일도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는 것은 소설 속의 인간과 그 삶을 존중하는 태도가 오히려 아니다. 이 내러티브가 구조화될 때, 지워진 타자가 진정 무엇일까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생존의 조건에 압도되어 고통스런 순응의 길을 가고 있는 어른들의 몸속에 갇힌 소녀, 그 소녀의 불가능한 목소리로부터 우리는 어쩌면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275쪽)
4부에서는 권여선, 김인숙, 조경란, 김중혁, 정한아, 김유진, 기준영 등의 작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순서대로 『내 정원의 붉은 열매』 『그 여자의 자서전』『혀』 『1F/B1』 『나를 위해 웃다』 『여름』 『연애소설』 등의 작품을 중심으로 펼쳐나가는 이채로운 사유는 독자로 하여금 다시 그 책의 페이지들을 펼쳐보게끔 유도한다.
머리맡에 아껴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어 읽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한 책을 읽었다. 그것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이런 말이 허락된다면, 인생의 진실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삶의 진실들은 경향에 무관하고 흐름에 구속받지 않는다. 소설이 한 철 지나고 새로 사는 옷과 같이 여겨지는 시절에, 천천히 젖어들게 하는 이야기들을 읽었다. 돌아보면, 사리를 분별할 줄 알게 된 이만이 쓸 수 있는 소설에 늘 탄복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삶의 어두움에 가까이 다가간 이가, 자신의 아픈 자리들을 담담하게 돌아보는 소설들 앞에선 늘 할말을 잃었었다.(424쪽)
‘소설의 죽음’을 말하는 시대에 소설을 읽고,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비평하는 행위는 제법 쓸쓸해 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수전 손택의 말처럼, ‘이것은 중요한 이야기’라고 발언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윤리일지도 모른다. 버려지는 모든 것들 사이에서, 그 아름다운 가능성들의 세계에서 오늘도 문학자는 읽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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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세계는 가능성의 세계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식의 자유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적으며, 소설의 세계는 그 이야기가 완성되기까지 버려진 가능성들의 세계다. 우리가 서사적 긴장을 느낄 때 혹은 판단의 압력과 마주할 때는,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이야기 안에 존재하는 다른 가능성들을 감지하거나 의식할 때이다. 선택되지 않은 그 가능성들이 서사의 보이지 않는 지층을 만든다. 결국 다른 가능성들이 버려진다 해도, 이야기는 그 흔적의 전부를 지울 수 없다. 그것은 폐기되는 동시에 생성된다. _‘책머리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