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경계의 철학 먼저 도道가 있는 곳인지를 살펴보라
- 저자
- 오용원
- 출판사
- 글항아리
- 발행일
- 2016-12-26
- 사양
- 반양장본 | 248쪽 | 217*152
- ISBN
- 9788967354053
- 분야
- 철학/심리/종교
- 정가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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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출처의 경계와 개념을 시대별로 소개하고, 이런 이론들에 대해서 원전을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고대 초기 유학에서부터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출처의 개념과 몇몇 주요한 인물의 출처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며, 우선 출처의 형성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 고대적 질서의 성립과 붕괴에서 출처와 도의 상관관계를 파헤쳐본다.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시리즈는 우리 선현들이 지난 수 세기 동안 늘 고민하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문제를 중심으로 간행된 한국국학진흥원의 교양 총서로, 은 그 열다섯 번째 책이다. 지금까지 간행된 매 시리즈에서 키워드로 던졌던 질문은 누구든 한 번쯤 관심을 가져봤던 중요한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출처도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 현철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붓 끝에 노닐며 단련되었지만 아직도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자고이래로 이름 높은 대학자부터 시골 선비들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을 재단하면서 한 번쯤 출처를 언급했고, 이를 후세에 글로 남겨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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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경북 고령에서 태어났다. 동국대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한문학을 전공하여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인문한국 교수로 재직하면서 고문서를 통해 전통시대 선인들의 일상을 연구했다. 현재 한국국학진흥원 자료부장과 유교문화박물관장의 소임을 맡고 있다. 학문적 관심 분야는 일기류 자료, 전통시대 문화원형 등이다. 『계암일록』, 오횡묵의 『총쇄록』, 『감계록』 『임재일기』 등의 일기류 자료를 통하여 옛 선비들의 일상과 생활사를 연구했다. 저서로는 『누정의 문학적 해석과 공간미학』 『수령의 사생활』(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는 『농암잡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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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머리에
1장 출처의 이해를 위한 경계境界
1 출처의 형성을 위한 요소들
2 중국 현철賢哲들의 출처관
3 우리 선현들의 출처관
2장 원전으로 읽는 출처
3장 원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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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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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행할 의지가 있는 군주인가, 그렇지 않은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유교적 출처관
천하를 바로잡으려는 사士들의 나아감과 물러남
오늘날 출처관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의는 내 마음이 처치하는 바의 마땅함이다. 일을 이렇게 처치해야 함을 보면 거기에 따라 응하여 집착함이 없어야 한다. 의리상 마땅히 부귀해야 하면 부귀를 누려야 하고, 의리상 마땅히 빈천해야 하면 빈천해야 한다. 마땅히 살아야 하면 살고, 마땅히 죽어야 하면 죽어야 한다. 의리상 합당한가의 여부를 살펴야 한다.” _『논어집주』 「이인」, 소주小註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천하에 도가 있을 때에는 도로써 몸을 따르게殉 하고, 천하에 도가 없을 때에는 몸으로써 도를 따른다. 도를 가지고 남을 따른다는 것을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_『맹자』 「진심상」
속히 떠날 만하면 속히 떠나고, 오래 머물 만하면 오래 머물며, 은둔할 만하면 은둔하고, 벼슬한 만하면 벼슬한 것이 공자이시다. 백이는 성인의 청淸한 자요, 이윤은 성인의 자임自任한 자요, 유하혜는 성인의 화和한 자요, 공자는 성인의 시중時中이신 자이다. _『맹자』 「고자하」
군자는 자기의 현재 위치에서 행하고 그 밖의 것을 원하지 않는다. 부귀에 처해서는 부귀를 행하고 빈천에 처해서는 빈천을 행하고 오랑캐에 처해서는 오랑캐에서 행하며 환란에 처해서는 환란을 행하니, 군자는 들어가는 데마다 스스로 얻지 않는 것이 없다. 위의 지위에 있어서는 아래를 업신여기지 않으며, 아래의 지위에 있어서는 위를 끌어 잡지 않으며, 몸을 바르게 하고 사람에게 구하지 않으면 원망이 없을 것이니, 위로 하늘을 원망치 않으며 아래로 사람을 허물하지 않는다. 고로 군자는 평이平易한 데 있으면서 천명을 기다리고 소인은 위험한 것을 행하며 요행을 구한다. _『중용』 「14장」
출처出處는 세상에 나아가고 물러남을 말한다. 지난날 우리 선현들은 출처, 은현隱現, 행지行止, 행장行藏, 개합開闔, 거취去就, 동정動靜 등의 이분법적 사고로 경계境界 짓고 표현했다. 삶의 행위 그 자체를 이분화한다면 출처는 자칫 흑백논리의 오류에 빠질 위험이 높다. 어떤 고고한 선비로 자칭하며 세상에 나아가지 않고 그저 은둔하며 학문을 하고 후학을 양성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유가에서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이나 수기안인修己安人을 삶의 대체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원칙 아래서 그들이 추구했던 학문적 이상은 같았다. 인간의 도리를 밝히고 도덕과 윤리를 바로잡아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대동 사회를 구현하고자 했던 그들 삶의 이상 역시 같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출처에 대한 입장은 서로 달랐다.
『출처, 경계의 철학』은 출처의 경계와 개념을 시대별로 소개하고, 이런 이론들에 대해서 원전을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고대 초기 유학에서부터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출처의 개념과 몇몇 주요한 인물의 출처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며, 우선 출처의 형성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 고대적 질서의 성립과 붕괴에서 출처와 도의 상관관계를 파헤쳐본다.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시리즈는 우리 선현들이 지난 수 세기 동안 늘 고민하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문제를 중심으로 간행된 한국국학진흥원의 교양 총서로, 『출처, 경계의 철학』은 그 열다섯 번째 책이다. 지금까지 간행된 매 시리즈에서 키워드로 던졌던 질문은 누구든 한 번쯤 관심을 가져봤던 중요한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출처도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 현철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붓 끝에 노닐며 단련되었지만 아직도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자고이래로 이름 높은 대학자부터 시골 선비들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을 재단하면서 한 번쯤 출처를 언급했고, 이를 후세에 글로 남겨 전했다.
출처를 이해하기 위한 경계境界
‘출出’이란 출사 곧 현실 정치에 참여하여 배우고 익힌 도를 실천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와 반대로 ‘처處’란 은일함, 곧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초야에 머물며 도를 연마하는 것을 말한다. 공자는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않으며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타나 벼슬하고 도가 없으면 숨어서 살 것”을 권했다. 도에 뜻을 둔 사士라면 나라가 위급하면 목숨을 바쳐야 하는데 도가 행해지지 않는 나라에 출사하면 헛된 죽임을 당할 수도 있으니, 이는 도에 뜻을 둔 자의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출사에는 도가 행해져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출사한 사에게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출사하면 자기가 섬기는 군주에게 충성을 다해야 하고, 자기 일이 아닌 분야에는 참견하지 말아야 하며, 일을 맡아서는 미덥게 해야 하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도를 행하기 위해 출사하는 사를 순자는 ‘정신지사正身之士’라 하여 이록을 위해 출사하는 ‘영록지사迎祿之士’와 대립적으로 구별했는데, 영록지사는 도의 실현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권력과 재물만을 도모하는 사를 말한다.
군주와 국가가 동일시되곤 하는 전제 군주 국가에서는, 도가 행해지는 국가란 도를 행할 의지가 있거나 현재 도를 행하고 있는 군주라는 의미로 해석해도 좋다. 즉 도를 행할 의지가 있는 군주에게는 출사해도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출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다. 바로 이것이 유교적 출처관의 핵심이다. 또 한편 도를 실천하는 군주를 만나지 못해 출사하지 않고 초야에 거처하는 사에게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데, 위급한 나라에는 머물지 말아야 하며, 인심이 후덕한 마을을 찾아 머물면서 빈천한 생활을 하더라도 남을 탓하지 말고 그 상황을 즐기면서, 도를 행할 의지가 있는 군주가 나타날 때를 대비하여 열심히 도를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도에 뜻을 둔 이는 거친 옷과 거친 음식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기를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서운해하지 않으며, 오직 도를 행하는 데 부족함이 있을까만을 근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도에 뜻을 두었다면 처한 위치에 상관없이 “덕德을 굳게 지키고 인仁에 의지하며 예藝에 노닐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이처럼 출의 개념에는 출사만이 아니라 출사에 따른 제반 사항, 즉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학식과 재주, 군주를 섬기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덕행과 품성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포함되며, 공자는 이런 학식과 덕행 및 이것을 갖추기 위한 기본 소양을 익히고 기르는 법을 가르친 최초의 선생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공문 제자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도 공자를 따랐다는데, 공자가 가르친 학이 ‘현학顯學’으로 칭해진 것으로 미루어 공자의 이름이 당시 매우 널리 알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논어』를 중심으로 『맹자』 『중용』 등 유교의 저작을 참고하여 유가의 출처관을 설명하고 있다.
출처와 도의 상관관계
출처관을 논하기에 앞서 우선 따져봐야 할 것이 바로 출처관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모든 일에는 그 일을 발생시킨 원인이 있듯이, 출처관에도 나타나게 된 원인과 배경이 있다. 먼저 도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한다. 『논어』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공자와 공문 제자들이 지향했던 것은 바로 궁극적으로 ‘도’의 실현이었다. 『논어』 「요왈堯曰」과 『시경』 「증민烝民」을 통관할 때, 고대의 선왕이나 위대한 상제가 백성을 내신 뜻을 받들어서 제정한 준칙, 규범, 정치와 관련된 지식, 바람직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대원칙과 영원한 지혜를 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곧 도는 고대의 선왕이 다스리던 이상적인 사회를 오늘날에 재현하기 위해 배우고 익히고 행해야 할 것들의 총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른바 ‘경전’은 이 위대한 선왕과 그 신하들이 나누었던 대화와 그들이 행했던 치적 및 삶의 자세들을 일종의 서사시적 형태로 논저한 저작이다. 따라서 도에 뜻을 둔 자라면 경전을 배우고 익히는 데 진력해야 하며, 이런 학습 행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자신이 살아가는 당위적이고도 본질적인 이유임을 스스로에게 납득시켰을 것이다. 도는 공동체의 성립과 질서 유지에 필요한 각종 다양한 관념들이 총망라된 복합적 관념으로, 공동체의 안위는 물론 바람직한 삶을 영위하는 데 직접적이고도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도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이것을 실행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이를 완수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도는 자연적 존재인 인간이 탈자연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에 내재한 자연성(즉 폭력성, 야만성, 반문명성)을 억제하는 등의 행위를 통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만일 인간이 이 자연성을 통제하지 못하면 자연성이 분출되어 동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늘 문명 상태에서 반문명 상태로 회귀할 개연성이 있다. 따라서 공자를 비롯한 공문 제자들은 이 도의 실현 여부에 문명과 인격이 달려 있다고 보고, 결국 이 도를 배우고 익히고 행하는 데 공력을 쏟았던 것이다.
도는 어떤 배경에서 어떻게 형성되었고 쇠락했을까? 인구는 적고 통치해야 할 지역이 매우 넓었던 고대의 중국, 통치자들은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특별한 제도적 장치를 고안해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봉건제인데, 대개 자녀라든가 가계 내의 동성 씨족, 그리고 창업공신 등을 봉했기 때문에, 국가의 실질적 주인인 천자와 봉건의 수혜자인 제후는 정치적으로는 군신 관계이지만 가족적으로는 부자 관계를 띠었다. 이것은 봉건 제후국도 마찬가지였다. 제후 또한 자신의 영지를 여러 개로 나누어 자신의 가신들에게 봉했다. 그리하여 온 나라가 군신 관계와 혈연관계로 짜이게 되었는데, 각국은 외교권이나 군사권을 포함하여 입법권까지 소유하고 행사했기 때문에 국가 형태로 보면 일종의 연합체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제후국의 군주는 천자가 임명한다. 하지만 제후의 가신인 대부는 천자가 아닌 제후국의 군주 즉 제후가 임명한다. 각 제후국의 관리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천자가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제후가 자신의 통치에 도움이 되는 자를 임명했다. 각 봉국을 둘러싸고 있는 대부의 가도 마찬가지다. 대부의 가신인 사는 제후가 아닌 대부가 임의로 임명할 수 있었다. 따라서 천자와 제후 사이에는 군신 관계가 성립하지만, 천자와 대부(제후의 가신), 그리고 제후와 사(대부의 가신) 사이에는 직접적인 군신 관계가 성립하지 않았다. 이를 ‘배신陪臣’이라고 하는데, 신하의 신하라는 뜻이다. 즉 제후는 천자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제후의 대부는 제후에게만 충성을 맹세하면 되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제후국은 정치적으로 천자국의 지휘를 받을 뿐, 실질적으로는 독립된 국가나 다름없었다. 중국 고대의 특별한 인간관계인 문생고리門生故吏나 전관前官을 예우하는 관습은 바로 이러한 봉건 정책에서 빚어진 것이다.
『서경』에 따르면 이러한 제도를 처음 창안한 사람은 바로 주나라의 주공이라고 하는데, 주공은 주나라의 봉건제를 마련하는 한편, 천자국과 제후국의 관계가 부자 관계라는 것에 착안하여 효제孝悌를 으뜸으로 하는 도덕규범을 제정하고, 이를 ‘수명受命’의 근거인 ‘덕’으로 합리화했다. 천자와 제후 사이에는 정치적 군신 관계 외에 혈연적 부자 관계가 성립하고, 각 제후국들은 서로 형제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에 종적으로 효를 다하고 횡적으로 제를 다하면 그 국가는 문란 없이 잘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주대 봉건제는 천자의 힘이 강력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제후의 힘이 천자보다 강하거나 강대한 제후들이 연합을 이루어 대항할 경우에 위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춘추전국시대의 사회 대혼란은 천자국과 제후국 간의 상명하복 관계, 제후국과 제후국 간의 유대 관계가 붕괴되면서 일어난 사회 변동이다.
결정적으로 제후국 상호 간의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 그리고 제후국 내부에서 일어난 귀족 간의 정치 투쟁을 거치면서 제후국 간의 힘의 균형이 무너져 귀목이 몰락하는 일이 일어났다. 공자는 물론, 공문 제자들 가운데 안연이나 증삼 역시 마찬가지 처지였다. 한편 확대된 영토를 손수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기에게만 충성하는 황제의 낭중 같은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때 만일 그들에게 행정에 관한 지식이 있거나 과거 서인을 지배해본 경험이 있다면 독립 왕국을 꿈꾸는 제후나 대부들에게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제후의 공경이나 대부에 임명되어 최고위직에서 국가 통치를 전담한 사도 있지만, 이런 것은 공자나 묵자 같은 부자나 대사들에게만 해당되고, 대부분은 중대부나 하대부 또는 공주의 식읍인 읍재邑宰로서 서인들을 대상으로 치안을 담당하거나 조세를 수납하는 등의 업무에 종사했다.
제후들 입장에서도 ‘도의 실현’ 같은 것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영토 확장과 사민 통제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사의 도덕성을 문제 삼지 않았다. 자신의 영토와 재산을 늘려줄 수 있는 사라면 출신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채용했으며, 능력이나 성과가 있으면 관직을 높여줬다. 양혜왕이 맹자를 처음 보았을 때 했던 말이 “당신은 내게 무슨 이득을 줄 수 있느냐”고 말한 것을 보면 이 시기에 사가 출사를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들도 이때 줄서기를 잘해야 좋은 자리로 영전되거나 출사한 자리에서 오래 머물 수 있었기 때문에 부자 선택을 잘해야 했다. 게다가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농업에 종사하면 신분 보장이 되지 않음은 물론, 풍년에는 굶주리고 흉년에는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관직을 얻으려 했다. 이로 인해 전국 중기에 이르면 공급 과잉에 따른 병목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맹자 때에는 사상적인 측면에서 타학파를 비난했지만, 순자 때에 이르면 출사 문제를 놓고 다른 학파를 비난했다. 이것은 수요에 비해 사의 공급이 지나치게 많았음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물론 제후?대부?사가 처한 어려운 면을 이용한 측면도 있다. 자신에 대한 헌신과 충성심만 보이면 능력에 상관없이 부와 권력을 보장해주었기 때문에, 사는 도에 대한 학습이나 실현 같은 것은 그다지 생각지도 않았다. 가난하고 귀족에서 몰락한 사에게 출사는 부귀와 명예, 권력을 보장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에, 출사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출사에 성공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힘들게 출사한 뒤 섬기던 군주가 전쟁에서 패하거나 정치 투쟁에 휘말리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고, 예전보다 더 못한 처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사에게는 직무 수행능력 습득 못지않게 나아가고 물러나야 할 때를 판단할 수 있는 지혜 또한 필요했다.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하는 제자諸子, 다시 말해 제자사상가는 이런 사 중에서 출사에 필요한 특별한 지식과 지혜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다. 출처관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온 셈이다.
중국 현철들의 출처관
중국 현철의 출처관을 크게 몇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먼저 살펴볼 것이 백이伯夷의 출처관이다. 백이의 출처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도를 실현할 의지가 있는 군주가 있을 경우에게만 출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를 실천할 의지가 있는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고, 도를 실천할 벗이 아니면 친교를 맺지 않고, 도가 아닌 짓을 일삼는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는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군의 아들이었는데, 아버지의 유명에 따르지 않고, 둘 다 왕위에 서지 않고 도망갔다. 그 뒤 백이와 숙제는 노인을 존경하고 도의의 정치를 실행한다 하여 주나라 문왕을 찾아갔으나, 마침 문왕은 죽은 뒤였다. 그 아들 무왕이 문왕의 위폐를 수레에 싣고 은나라 주왕을 정벌하기 위해 출친하는 군대와 마주했다. 그러자 백이와 숙제는 신하로서 군주를 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며 말고삐를 잡고 충간叩馬而諫했다. 그러나 무왕이 백이와 숙제의 충간을 무시하고 주왕을 정벌하자 백이와 숙제는 부덕한 주나라의 녹을 먹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여기고 주나라를 떠나 수양산에서 끝내 굶어 죽었다고 한다. 이에 공자는 백이와 숙제의 의로움을 높이 평가하여 ‘그분들은 천자도 신하로 삼지 못하고 제후도 벗으로 삼지 못할 정도로 위대한 분이다’라고 찬양했다. 이런 유형의 출처관은 출사하는 자가 출사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자기의 뜻에 부합하지 않으면 출사하지 않는다. 설사 굶어 죽는 길을 택할지언정 출사하지 않는다. 물론 출사하지 못하는 경우에 따른 피해는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출사하고 도가 없으면 출사하지 않았던 백이와는 달리, 유하혜柳下惠는 무조건 출사했다. 마치 천부적으로 출사의 유전자라도 지니고 있는 양, 군주가 예우를 하건 하지 않건, 관직이 높건 낮건, 봉록이 많건 적건, 불러만 주면 언제든 출사했다. 심지어 자리에서 내쳐져도 멀리 가지 않고 다시 등용되기를 기다렸다. 그는 섬길 대상의 임금이 무능해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낮은 벼슬을 줘도 탓하지 않았다. 벼슬길에 나가서도 자신의 능력을 숨기지 않았으며, 어떤 일을 맡겨도 반드시 옳게 처리했다. 버려져도 원망하지 않았으며 곤궁에 빠져도 번민하지 않았다. 그에게 출사와 은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출사와 은일을 구분하고 각각 처신의 도를 논하지만, 유하혜에게는 벼슬자리가 곧 은일 자리고 은일 자리가 곧 벼슬자리였던 셈이다. 그 둘을 나누어보는 것 자체가 모순인 것이다. 내 지식을 숨길 것도 없고 드러낼 것도 없다. 있는 그대로 보이면 되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이런 유형의 출처관은 지조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어진 정치를 펴고자 하는 군주를 만나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모두 도에 맞는 것이 되기 때문에 거리낄 게 없다. 하지만 난세에는 도를 펼치기 어려운 조건이 도처에 널려 있다. 따라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도를 추구하다 보면 도를 펼치기도 전에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그렇기에 유하혜의 출처관은 오직 도를 체득한 자에게만 가능한 출처관이 아닐까 생각될 수도 있다.
이윤伊尹의 출처관은 군주가 도를 실현할 의지가 있고 자신의 뜻을 존중해주며 예의를 갖춰 대접해줄 때에만 출사하는 출처관이다. 이윤의 출처관은 언뜻 보면 어느 분을 섬기든 내 군주가 아니며 어느 사람을 부리든 내 백성이 아니겠느냐는 점에서는 유하혜의 출처관과 같다. 그렇지만 미관말직이라도 고사하지 않고 자리에서 내쳐져도 떠나지 않았던 유하혜의 출처관에 비해, 이윤은 군주와 백성을 가리지는 않았지만 군주의 의지와 예우를 매우 중시하여, 출사하더라도 설혹 군주의 의지와 예우가 없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이윤이 이러한 출처관을 보인 것은 그만의 독특한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도의 실현을 자신의 소명으로 알고 살았던 인물이다. 유하혜는 군주의 예우라든가 관직의 고하에 관계없이 자신을 써주기만 하면 무조건 출사했지만, 이윤은 자신이 생각하는 합당한 대접과 격식을 갖추고 있을 때에 한하여 출사했던 것이다. 이윤의 출처관은 또한 백이의 출처관과도 다른데, 백이는 현재의 군주가 성군이고 그 군주가 도를 펼치고 있는 상황이 아니면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출사하지 않았지만, 이윤은 설사 현재의 군주가 성군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가 자신의 뜻을 알아주기만 하면 또 자신에게 예법에 맞는 대우를 해주고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기만 하면 그가 누구든 출사를 결행했다. 그래서 “누구를 섬기든 내 군주가 아니며 누구를 부리든 내 백성이 아니겠는가”라고 했던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나아감과 물러남
조선시대 선비들의 출처관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김극일金克一은 영남학파 재지 사족 가운데 안동 내앞김문의 일족으로, 생평에서 많은 해를 환로에서 보냈지만 작품 속에 드러난 그의 의식적 기저에는 늘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하려는 정서가 있었다. 환로에 연연하기보다는 강호로 귀래하려는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표출하며, 경락京洛보다는 강호를, 조반朝班보다는 일한日閒을 갈망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경락은 경사京師로 대중이 사는 곳이라는 뜻인데, 바로 임금이 사는 궁궐이 있는 곳이다. 경사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정쟁으로 혼란스럽게 때문에 강호로 돌아가 한가롭게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강호의 이러한 삶속에서 전원의 흥취를 찾는 것이 즐거운데 구태여 조정의 반열에서 정쟁이나 세속의 잡스러운 것에 물들 생각이 없음을 피력했다.
반면 간송당澗松堂 조임도趙任道는 처사적 삶을 살다간 인물이다. 그의 작품에는 의식적 지향이 드러나는데, 천한天寒에도 변하지 않는 소나무의 자태, 절벽에 내린 소나무의 깊은 뿌리, 위봉危峰에 솟은 소나무의 곧은 가지, 열풍烈風에 더욱 씩씩한 소나무의 외형, 엄상嚴霜에 더욱 푸른 소나무의 절조 등은 어쩌면 자신의 삶에 대한 동경의 대상 내지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그는 몇 번에 걸쳐 관직이 제수되었지만, 환로에 나아가지 않고 자연에 은거하며 평생을 창작과 저술로 보내며 생을 마쳤다.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은 조선조 후기의 문신이다. 그는 출처 문제에서 어느 누구보다 신중했고, 실지로 이러한 자의식을 주제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작품이 많았다. 병와가 인식한 가장 이상적인 행장行藏은 어느 한 곳에 집착하지 않는 시중時中의 출처이며, 중절中節에 맞는 출처인 것이다. 이렇듯 병와는 출처의 문제에서 중절과 시중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처에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선비가 때를 만나지 못해 은거한다면, 현실이 고달프고 궁핍할지라도 동하지 않고 정함으로써 은자의 진면목을 잃지 않기를 강조했던 것이다.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에 활동한 문인이다. 잠영세족簪纓勢族으로서 정치적으로는 최상층의 지위를 오를 수 있는 가문의 배경이 있었고, 그의 현달한 학식과 풍부한 문학적 소양은 양반 관료 문인으로서 최고의 학문적 위상을 정립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9년 동안의 관직 생활을 제외하고는 주로 강호에 은거하면서 다양한 층위의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도학과 창작·저술, 그리고 후학 양성에 몰두하며 일생을 마쳤다. 그는 출처의 문제에서 시중과 의리에 맞는 진정한 거취란 알기 어렵지만, 은자적 삶으로 여생을 마칠 것을 작품에서 토로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전통 사회에 비해 그 구조가 매우 복잡할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사회참여 욕구가 증대하여 누구나 계층을 초월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과거에 선현들이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시대가 변했고, 살아가야 할 환경 역시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정점에 이르면 자신을 되돌아보는 자성自省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사후에는 후대 사람들이 나의 삶을 평가해주기도 한다. 성현들도 그랬고 우리 선현들도 그랬듯이, 출처에 대한 궁극적인 판단은 이제 우리 각자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출처의 경계와 개념을 시대별로 소개하고, 이런 이론들에 대해서 원전을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고대 초기 유학에서부터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출처의 개념과 몇몇 주요한 인물의 출처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며, 우선 출처의 형성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 고대적 질서의 성립과 붕괴에서 출처와 도의 상관관계를 파헤쳐본다.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시리즈는 우리 선현들이 지난 수 세기 동안 늘 고민하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문제를 중심으로 간행된 한국국학진흥원의 교양 총서로, <출처, 경계의 철학>은 그 열다섯 번째 책이다. 지금까지 간행된 매 시리즈에서 키워드로 던졌던 질문은 누구든 한 번쯤 관심을 가져봤던 중요한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출처도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 현철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붓 끝에 노닐며 단련되었지만 아직도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자고이래로 이름 높은 대학자부터 시골 선비들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을 재단하면서 한 번쯤 출처를 언급했고, 이를 후세에 글로 남겨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