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기억을 잃고 날마다 똑같은 단편만 써내려가게 된다면?
작가들을 집어삼켜 무덤이 된 책들이 갑자기 그 시체들을 토해낸다면?
평범함을 거부하는 희한한 책들의 총집합, ‘아주 특별한 컬렉션’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 중 ‘아주 특별한 컬렉션’이라는 큰제목이 붙은 아홉 편은 키리니의 전작에도 등장하여 다독가의 면모를 보였던 굴드의 서가를 다룬다. 굴드가 전 세계를 돌며 수집한 기기묘묘하고 이상야릇한 장서들의 내용과 그에 얽힌 사연을 보잘것없는 작가인 ‘나’에게 소개하는 형식이다.
그중 첫번째 작품인 「글쓰기와 망각」은 자동차 사고로 중상을 입고 기억력이 크게 손상된 뒤 매일 똑같은 단편만 써내려가게 된 로베르 마르틀랭의 이야기다. 사고로 입은 신체적 외상이 너무나 심각한 나머지 요양원에서 여생을 보내는 마르틀랭은 취미로 소설을 쓰며 소일한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그의 괴이한 기억장애가 드러나게 된다. 요양원에서 상영해주는 영화와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들의 내용은 정확하고 완벽하게 기억하면서도, 자신이 직접 쓴 작품들은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잊는 것이다. 매일 아침 책상에서 자신의 필체로 끄적거린 원고를 발견하고도, “원고가 썩 괜찮긴 하지만 자기라면 이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라며 구겨버리고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기 위해 백지를 꺼내든다. 천재성이 완성하지도 못할 작품에 소진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요양원장 페르디에는 그가 하루 만에 완성할 수 있는 단편을 쓰도록 유도한다.
페르디에의 도움으로 사십 편 남짓한 단편을 완성한 마르틀랭에게 그즈음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가 매일 쓰는 단편들이 점차 비슷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정밀검사 결과, 마르틀랭의 증세가 호전되어 전날 쓴 원고의 내용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몇 문장이 몇 주가 지나면서 하나로 굳어지더니, 급기야 나중에는 아예 문단 전체가 고정된다. 하루하루 점점 흡사해지는 마르틀랭의 글은 페르디에가 ‘최종 텍스트’라고 이름 붙인 일종의 이상, 작가 본인도 의식하지 못한 채 지향했던 이상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르틀랭은 그저 요양원에 수용된 환자가 아니라, 머릿속을 맴도는 이상적인 텍스트에 이끌려 완전무결한 형태의 작품에 다가가고 있는 진정한 작가였던 것이다. 그런데 ‘최종 텍스트’를 찾아낸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 마르틀랭은 글쓰기를 멈출 것인가? 이 이상적인 텍스트는 접근 가능할 것인가, 혹은 불가능할 것인가? 키리니는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도록 독자들을 독려한다.
마르틀랭의 일화에서 단편소설에 대한 키리니의 철학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르 피가로>는 “글이 짧을수록, 다른 방식으로 쓰는 것이 불가능해야 한다. 표현들은 하나하나 계산되고 선별되어야 한다. 세심하게 다듬어진 금속 공예품처럼”이라는 키리니의 말을 인용하며, 그것의 빛나는 본보기가 『아주 특별한 컬렉션』이라고 단언한다.
이외에도 굴드의 컬렉션은 놀랍고 기이한 작가와 작품들로 넘쳐난다. 달걀을 책상에 올려놓고서 매일 묵묵히 관찰하는 내용을 천이백 장 분량에 담아낸 지루한 이야기 『달걀』의 작가(그는 자신의 책을 쓰는 것보다 다시 읽는 것이 고역이라고 말한다), 어떤 글자를 치더라도 걸작이 써지는 타자기, 늘어지는 문장 교정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작가와 그가 죽은 뒤에도 스스로 줄이고 삭제하고 교정하는 책, 잘 차려입어야 읽히는 책, 전기에너지나 열에너지를 방출하여 주변을 환히 밝히는 전지책, 작가가 책 속에서 실종되는 바람에 문자 그대로 작가의 무덤이 된 책 등등. 그야말로 실천적이고 열렬한, 책을 향한 사랑 고백이라고 할 만한 이야기들의 향연이다.
빠른 속도로 사막화되어 사람들을 지구 끝으로 내몰아가는 도시가 있다면?
암으로 사망했던 경찰서장이 히치하이크하여 집으로 돌아온다면?
섹스를 할 때마다 상대방과 몸이 서로 뒤바뀌게 된다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통렬한 풍자,
‘열 개의 도시’와 ‘우리의 시대’
‘열 개의 도시’라는 큰제목을 단 열 편의 단편에서는 일체의 소음 없이 침묵만이 감도는 미국의 볼산, 건물이며 도로며 할 것 없이 도시 전체가 붕괴되는데도 주민들이 속수무책으로 방관하는 볼리비아의 오로메, 이틀 중 하루는 밤이 장악해서 밤이 장악한 하루는 잠만 자고 격일로 살아가는 프랑스의 생테르미에, 빠른 속도로 사막화되어 사람들을 지구 끝으로 내몰아가는 러시아의 쿠르모스크 등이 소개된다. 「시칠리아의 리보니」는 겨우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단편으로, 하이쿠를 연상시키는 간결함의 절정을 보여준다.
세번째 범주인 ‘우리의 시대’에서는 매일 새로운 현상이 발생하면서 더한층 미쳐 돌아가는 우리 사회의 대변혁들이 묘사된다. 그중 「사후에」는 죽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부활할 수 있다면, 마치 저축해둔 돈처럼 두번째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키리니의 기발한 상상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단편이다. 그 밖에도 섹스를 한 후 상대와 몸이 뒤바뀌거나(보건복지부 주재로 긴급 소집된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두 번 연속으로 섹스하면 본래의 몸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사람들은 정상적인 성생활이 가능해진 것에 안도하며 환호한다), 젊어지는 묘약의 발명으로 원하는 대로 젊어지는 것이 가능해진다는(회춘할 자유의 본보기를 보이느라 묘약을 마신 국회의원들 때문에 국회는 졸지에 아동들이 득시글거리는 “금박 지붕의 유치원”으로 둔갑한다) 등의 기발한 설정들과 예측불가의 결말로 가득한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이 작품들은 마냥 환상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욕망과 또다른 비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죽은 사람이 부활할 수 있다면? 삶을 제로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정체성 변경의 자유를 누린다면? 어떤 사생활도 보장되지 않는 투명한 감시사회가 된다면? 젊어지는 샘물이 있다면? 키리니는 그런 세상을 창조해내고 그 결과들을 상상하면서 질문의 해답을 구한다. 역설적이게도 죽음이 없다면 덜 부조리할 것만 같았던 삶이, 죽음 없이 더욱 부조리해지며, “너도나도 회춘하는 젊음의 시대에는 제 나이대로 보이는 것이 특별해지는 방법이요, 우아함의 한 형태”가 되고 회춘이 외려 촌스러워진다.
『아주 특별한 컬렉션』은 기상천외한 제2의 현실을 해학적으로 그려낸 소설이지만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환상의 세계를 통해 깨닫게 되는 현실의 멜랑콜리와 블랙 유머로 점철된 이 소설은 삶과 사회에 대한 수많은 철학적인 질문들을 던지며, 그 질문들은 세상에 대한 통렬한 풍자로 이어진다. 이 ‘아주 특별한’ 소설집을 통해서 키리니는 전 세대의 환상소설 작가인 에드거 앨런 포와 보르헤스의 전통을 성공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증명해냈다.
◆ 언론평
그의 상상력엔 한계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풍성하게 잘 차려진 소설. _라 리브르 벨지크
진지함과 유머가 뒤섞인 저항할 수 없는 이야기. _르 수아르
환상적인 서사, 철학적 대화, 문학작품에 대한 오마주와 시대의 패러디를 통해 키리니의 단편들은 현실의 이야기인 양 우리를 가뿐히 속인다. _텔레라마
여름에 마시는 민트 디아볼로처럼 재미나고 통통 튀는 이 작품은 문학이라는 장르에 보내는 찬사이며, 독서의 즐거움을 일깨우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_레 제코
요절복통 익살 가득한 불경한 판타지. _르 피가로
◆ 책 속에서
권태는 귀족적인 겁니다, 아세요? 독서에서 오는 위대한 권태에는 식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고급스럽고 진귀한 맛이 있다고요. (52쪽)
제가 말하는 책들은 유한한 동시에 무한해요, 겉보기엔 짤막한 듯해도 실상은 분량이 어마어마하다고요. 보기보다 더 많은 것을 품고 있는 러시아 인형처럼 책 속에 다른 책들이 겹겹이 들어 있는 다단식 책이랄까요. (97~98쪽)
이중으로 분열되는 현실이라니, 멋지지 않은가? 과거의 어느 순간에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펼쳐졌을 삶에 대해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155쪽)
언젠가부터 거리의 공간이 팽창하고 있다. 다른 모든 것은 변함없는 상태에서 매일 건물들 간의 간격이 벌어지고 길거리는 길어지며 도시 근교는 도시에서 멀어졌다. 모든 것이 고무줄을 잡아당기듯 늘어나고 확장되었다. (183쪽)
제가 원하는 건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잊는 겁니다. 네, 그래요, 잊는 것. 기억이 수그러들고 지나간 삶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기억상실의 도시에 살고 싶군요. (200쪽)
연극계와 영화계에서는 예전의 유명 배우들이 새롭게 경력을 쌓고 있다. 그들은 묘약을 마시고 회춘한 다음, 현재 잘나가는 감독들의 연출 아래 예전에 찍었던 영화들을 현대식 버전으로 다시 촬영한다. 소위 캐스팅 불변의 리메이크라는 것으로, 요즘 새롭게 유행하는 장르다. (213쪽)
가끔 우리가 인생을 탕진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다른 지역 사람들은 우리의 두 배를 사는 거니까요. 또 어떤 때는 반대로 존재의 절반이 제거된 셈이니 우리가 복 받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혹시 사흘에 하루, 혹은 일주일에 하루만 산다면 더 좋지 않을까요? (2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