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다의 >걸어본다<12 부에노스아이레스
오디세우스 다다의
『오직 땅고만을 추었다』
걷기야말로 땅고의 시작이고, 땅고의 끝이다!
시를 쓰듯 나는 땅고를 추며 함께 걷는다.
시는 영혼의 춤이고, 춤은 육체의 시다.
너 자신을 춤추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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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언저리 어디선가 본 듯한, 그러나 분명 본 적이 없는 것이 분명한 한 남자를 만났다. 때마침 난다의 걸어본다 여덟번째 이야기로 파리 편이 출간되었고 그를 필두로 조촐한 행사가 있었던바, 저자인 김이듬 시인이 잠시 방에 들어가더니 화려한 오렌지색 원피스를 갈아입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인은 한 남자와 아주 잠시 춤을 추었다. 내가 어디선가 본 듯한, 그러나 분명 본 적이 없는 분명한 그 남자와 시인은 춤에 문외한이라 한들 바로 알아볼 수 있던 그 춤, 탱고를 추었다. 김이듬 시인은 자신의 탱고 스승이라며 그를 소개했다. 그는 말했다. 저는 하재봉이라고 합니다.
그래 그 이름 하재봉. 내가 시집과 소설과 산문집을 통해 읽었던 그 이름 하재봉. 연극연출가이자 영화평론가로 무대와 방송을 통해 보았던 그 얼굴 하재봉. 그가 탱고를 춘다고 했다. 2004년에 입문해 지금껏 오직 탱고만을 추어왔다고 했다. 어라,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고 춤이라니. 그것도 탱고라니! 그리고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탱고에 관한 책을 다 썼다고 했다. 걸어본다 시리즈에 들어갈 부에노스아이레스 편이라 했다. “어쩌죠, 선생님. 저희는 ‘걸어본다’라서요.” 그는 말했다. “민정씨, 땅고는 걷는 겁니다. 걷기야말로 땅고의 시작이고, 땅고의 끝입니다.”
땅고라고 했다. 탱고가 아니라 분명 땅고라고 했다. 스포츠로 변형된 콘티넨털 Tango는 ‘탱고’로, 정통 아르헨티나 Tango는 ‘땅고’로 분류해 불러야 한다고 했다. 땅고라, 뭔가 종아리 근육에 알이 쫀쫀하게 배는 발음이었다. 그러니까 책을 통해 아는 춤이 아니라 발로 추어 하는 춤의 뉘앙스. 그렇게 이 책『오직 땅고만을 추었다』은 시작되고 오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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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자 이름은 오디세우스 다다. 이 책이 한국 저자의 기록물이 맞는지 국립중앙도서관의 바코드 센터로부터 몇 번의 확인 전화를 받았는지 모른다. 저자는 본명 대신 땅고 세계에서 불리는 자신의 이름을 책에 넣길 간절히 원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다음의 문장으로 적어 보내왔다. “서로의 몸이 만나서 춤이 이루어지는 땅고의 세계에서는 국제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이름이 중요하다. 특히 로마자를 쓰지 않는 아시아계는 스페인어나 로마자로 된 또하나의 땅고 이름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디세우스는 땅고 세계에서의 이름이다.”
오디세우스 다다, 그러니까 하재봉이 근 20년 만에 펴내는 『오직 땅고만을 추었다』는 비록 종이 위에 펜대를 세워 창작의 의지를 불태우지는 않았지만 땅고를 통해 매번 다르게 꽃을 피우는 춤을 통해 제 예술의 침잠을 흔들어대던 그의 열정을 다각도로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예컨대 이런 고백을 통해 그의 20년 세월을 잠시 이해하게도 되는 것이다.
“나는 땅고를 추기 시작했다. 어지럽게 흩어졌던 삶들이 조금씩 제자리를 잡아갔다. 땅고는 화두를 붙들고 선수행하는 것과도, 시를 쓰는 것과도, 그림을 그리는 것과도 비슷하다. 그것은 고도의 정신적 집중과 상상력이 필요한 하나의 창작 행위와 같았다. 지금 나는 생각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결정은 땅고를 추기 시작한 것이었다고. 그때부터 내 삶이 시작되었다고. 땅고를 추면서 나는, 사유한다. 깨끗한 공간에 삶의 긴장감과 변화를 설계하는 상상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땅고, 텅 빈 공간을 찾아 새로운 스텝을 옮길 때의 그 찰나가 너무나 좋다. 그것은 사유의 순간이다. 가시거리가 전혀 없는 안개 속의 생을 끝까지 응시하는 통찰력을 나는 땅고로부터 배운다. 선방에서 두꺼운 벽을 바라보며 막막한 화두를 붙잡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역동적 창조의 순간을 그것은 준다. 그것이 나의 땅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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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5부로 나뉘어 전개되는 이 책은 ‘땅고’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땅고, 바로 이 땅고의 기원에서부터 기술, 역사, 음악, 축제 등 실로 땅고라 할 때 우리가 알아야 할 기본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이야기가 거의 다 담겼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땅고라는 춤에 대한 실용적인 입문서이기 이전에 땅고라는 춤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아르헨티나 근현대사까지 총망라하고 있는 이 책은 이론적 해박함에서 오는 지식의 폭넓음과 더불어 감성적 이해에서 오는 풀이의 색다름이 뒤섞여 풍요로우면서도 유연한 책의 외연과 내연을 한껏 확장하고 있다. 읽기용 책인데 보이고 보기용 책인데 들린다고나 할까. 분명한 건 오감을 일깨우는 책이라는 점이다. 우리 몸에 내재되어 있는 저마다의 감각, 그중에서도 춤에 대한 본능을 뜨거운 모래바람에 이는 닭살처럼 도톨도톨하게 일으킨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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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고는 걷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걷는 것이다. 혼자 추는 땅고는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처럼 위험하다. 우리는 혼자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 동안 우리는 어디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는가,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한다. 모든 걸음에 꼭 목적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보르헤스처럼 같은 공간을 빙빙 맴돌며 걸을 수도 있다. 삶이란 꼭 앞으로 걷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땅고를 추며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이것은 내가 생각했던 삶이 아니야, 내가 왜 이곳을 걷고 있는지 모르겠어. 그러나 땅고는 모든 잘못된 걸음을 통해 헝클어진 세계의 미로를 스스로 발견하게 한다.
“내 삶은 실수의 백과사전이었어요. 실수의 박물관이었어요. 삶은 이미 지옥이니까요. 갈수록 심하게 지옥이 되어가니까요. 내가 원하는 것은, 이 세상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거예요. 물론 나도 사라지겠죠. 모든 건 때가 되면 사라지니까요.”
보르헤스의 묘비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쓰여 있다. 해 뜨는 동쪽을 향하고 있는 바이킹의 배가 묘비 뒷면에 새겨져 있다. 죽음이란, 새로운 세계를 향해 떠나는 또다른 모험이라고 그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내 삶의 끝까지 걷고 싶다. 그 끝에서 다시 시작하며 걷고 또 걸을 것이다. 땅고는 삶의 지평선 위를 즐겁게 걸어가는 걷기의 또다른 이름이다.
-본문 중에서
땅고를 추면 몸이 아름다워진다고 한다. 그러나 육체의 변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면의 변화다. 땅고를 추기 전에 먼저 우리는 상대를 가슴에 안고 걸어야 한다. 걷는 동안 상대의 심장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지금 땅고를 추고 있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땅고는 서로에게 집중해야만 함께 세상을 걸을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을 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점이다. 두 사람은 가슴을 맞대고 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무게중심을 갖고 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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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며 소설가이며 연극연출과 영화평론, 영화감독을 역임하며 전방위 예술가로 살아가던 그 이름 하재봉. 이 책은 그의 삶이 현재 어떤 시간 속에 시계를 맞추며 살아가는지 절로 알게 한다. 코리아땅고협동조합 이사장, 한국아르헨티나땅고협회 이사, 명지대 사회교육원 땅고 지도교수 등을 역임하며 오직 땅고에 제 삶을 오롯이 던진 채 살아가는 하재봉, 아니 오디세우스 다다. 그는 오늘도 땅고만을 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