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불행은 전부 한 가지 단순한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 사실이란, 사람들은 도무지 방에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떠나지 않아도 좋다, 이루지 않아도 좋다
계획도 목적도 없이
가장 고요한 내면의 소리를 따르는 여정
진정한 여행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시작된다
평생 전 세계를 종횡무진해온 여행자, 피코 아이어. 이스터 섬에서 에티오피아로, 쿠바에서 카트만두로 세계를 누비며 여행자로 살아온 그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왜 전 세계를 누비며 여행하는지 자문하게 된다. 그는 사방을 여행하며 만족을 찾는 자신의 행위 자체가 아무리 여행을 다녀도 결국 삶의 공허를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 느꼈고, 그러던 중 일본 교토의 작은 단칸방에서 1년간 살며 이 여행이라는 화두를 풀어보기로 결심한다. 그에게 레너드 코언, 마르셀 프루스트, 에밀리 디킨슨 같은 이들은 침묵 속에서 삶의 지혜를 발견하라는 새로운 삶의 메시지를 던지는 인물들이다. 어느새 현대인은 모두 조급증에 걸려 탐욕스럽게 삶을 만끽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여행은 이 시대의 새로운 강박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아무데도 가지 않을 것’을 권한다. 조급함을 달래고 일단 멈춰 스스로를 살피고, 고요가 선사하는 단순함을 응시하면서 삶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혹은 비울 것인가 성찰하기를 권한다. 끊임없는 움직임과 상호연결을 요구하는 시대, 조용한 삶은 진실로 그 가치를 상실해버린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면, 우리가 어디에 갔는지 보지 말고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살펴보라.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그 경험이 의미를 획득하고 내 자아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과정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 일어난다. 집에 가만히 앉아, 내가 본 것들을 오래 지속되는 통찰력에 차곡차곡 담을 때 비로소 그 경험은 내 것이 된다. _33쪽
과잉연결된 시대,
‘아무데도 가지 않을 자유’가 지금보다 더 절실했던 때가 있었던가
레너드 코언을 찾아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독보적인 음색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뮤지션 레너드 코언은 캘리포니아의 샌게이브리얼 산맥 깊은 곳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그는 30여 년간 자신이 이룬 모든 성취를 뒤로하고, 일본 선원(禪院)에서 일주일의 대부분을 좌선에 든 채 꿈쩍하지 않았다. 코언은 지금까지 자신이 한 가장 위대한 여행은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이었다고 고백한다. 오래전부터 자신을 괴롭히던 혼란과 공허함을 이겨내려 애쓰던 중 찾아낸 가장 실용적이고 효과적인 실천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디에도 닿지 않은 채 고요한 순간을 만끽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과잉연결의 시대다. 손에 쥔 작은 스마트폰을 통해 밤낮으로 소음과 세상의 이야기가 몰려든다. 전력질주를 해야 겨우 따라잡을까 말까한 일상의 속도는 영혼을 지치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무데도 가지 않기’는 단지 금욕적인 종교적 수행이 아니다. 우리가 자신의 감각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는 적극적 실천이며, 새로운 삶의 생동과 에너지를 찾아내는 하나의 방편이다. 황폐해진 영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우리에게,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은 없으리라
그러나 명상과 수행이라는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일상에서도 언제든 내면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저자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일화를 들려준다. 그는 옆자리에 앉은 여자 승객이 목적지까지 가는 12시간의 비행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책을 읽지도,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지도,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지도 않은 채 그저 눈을 뜨고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휴가를 맞아 하와이에 가는 길이었던 그녀는 몸 안에 쌓인 스트레스를 모두 배출해버리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휴가를 즐기기 위해,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을 ‘작은 정화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현대인은 휴식을 위한 여행을 가려 해도 업무를 처리하듯 동선과 할 일을 계획하며 완벽을 기한다. 그러나 저자는 ‘여행하지 않을 자유’를 실천하는 동안 나를 찾아온 생각이, 내가 의식적으로 여행을 다녔을 때 떠오른 것들보다 훨씬 더 나를 자유롭게 해준다고 말한다.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휴대폰 끄기, 퇴근 후 이메일 확인하지 않기.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번잡한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조용히 자신을 내려놓을 곳을 찾다보면 어느새 마음 한가운데 고요가 내려앉는다. 고요에 도달하는 것은, 깊은 산속이나 한적한 쉼터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고요함을 삶에, 이 번잡한 세상에 가져오는 것이다.
속도의 시대에, 느리게 가는 것보다 더 활기찬 일은 없으리라.
산만함의 시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보다 더 호화로운 기분이 드는 일도 없으리라.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시대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은 없으리라. _102쪽
“당신이 어디를 여행했는지, 얼마나 멀리 여행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당신이 얼마나 살아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결국 우리가 들여다보아야 할 대상은 나 자신이다. 우리에게 고요가 필요한 것은 이 단순하고 간명한 사실과 마주하기 위해서다. 타인과 소통하고 타인을 의식하느라 피로해진 삶에서는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놓치기 일쑤다. 자신을 향해 떠나는 여행을 통해 우리는 궁극적으로 이 세계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지은이는 비디오 아티스트인 빌 비올라의 말을 전한다. “세상에서 떨어져 있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위해 흘린 눈물로 소매가 젖어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좀더 자유로워져야 한다. 일상의 모든 부름에 일일이 응답하지 않을 자유, 관계에 속박되지 않을 자유, 자신만의 삶의 리듬을 가질 자유, 그리하여 나다워질 자유. 『여행하지 않을 자유』는 그렇게 매 순간 진정 ‘살아 있는 삶’이 무엇인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