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시대는 갔다. 오늘날 각종 스크린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사람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신조어로 이야기를 나눈다. 디지털 뉴스, 스마트폰, 사회관계망서비스 시대에 뉴스는 어디에든 존재한다. 뉴스는 우리를 늘 지켜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뉴스는, 오늘날 미디어를 통해 제공되는 각종 정보를 포함하여 문화산업 전반에서 제공되는 지식, 공공재로서의 뉴스까지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오늘날 ‘뉴스의 시대는 끝났다.’ 미디어의 위기다. 역설적이게도 정보 생산자가 넘쳐나는 요즘, 미디어는 가장 쇠약해져 있다. 뉴스의 품질 저하, 발행 부수의 감소, 수익성 확보가 되지 않는 신문사 웹사이트 등 이 책은 이러한 미디어의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방법을 제안하기에 앞서 먼저 1장에서는 미디어가 처한 현재의 구조적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통계자료 등을 통해 뉴스의 생산자와 소비자, 뉴스 소비 과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2장에서는 우리가 미디어에 대해 갖고 있는 ‘허상’을 다룬다. 경쟁의 허상, 미디어가 지원을 받는다는 허상, 미디어의 새로운 도금시대가 도래한다는 허상과 더불어 광고의 허상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및 미국의 연구를 기반으로 미디어를 위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미디어는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가
프랑스에서는 벌써 2012년 전국 일간지 프랑스수아르와 라트리뷘이 시장에서 사라졌다. 법정 관리를 겨우 면한 리베라시옹은 2015년 직원 3분의 1을 해고했고, 르피가로는 희망퇴직 신청 규모를 늘렸으며, 쉬드우에스트는 감원을 결정했다. 미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 2007년 이후 사라진 지역일간지는 12개에 이르며, 시카고트리뷴과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여전히 발간되고 있기는 하나 모두 2008년에 파산했고, 같은 해 미국 신문사에서는 기자 1만5000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
위기에 봉착한 건 비단 신문사만이 아니다. 프랑스 국영방송 프랑스텔리비지옹, 국영 라디오 라디오프랑스 등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이러한 위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신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종이언론은 위기에 처했고, 늘 사라질지 모른다고 떠들어댔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이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기존 미디어는 위협받고, 뉴스는 무한으로 반복되고 복제된다. 미디어는 무너지고 휘청거리며 죽음으로 향하고 있다.
미디어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 역시 점점 하락하는 추세다. 2014년 갤럽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디어에 대한 미국인의 신뢰도는 22퍼센트 미만이다. 신문, 신문기자, 언론사주에 대한 불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파나마 스캔들과 차르 국채 스캔들로 인해 일부 프랑스 신문의 비리가 세상에 알려졌으며, 19세기 내내 미국 신문은 정치인들의 공적 관계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민주주의를 꿈꾸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언론사는 여전히 민간 기업으로 간주되고, 대다수 미디어는 이윤을 추구하고 시장 원리에 따르며, 절대 권력을 지닌 주주를 위한 영리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디어를 매매하거나 헐값에 팔아넘길 수도 있다는 소리다. 실제로 1970년대까지 프랑스 대표 신문이었던 프랑스수아르는 에르상 그룹에 넘어갔고, 우여곡절 끝에 백만장자 알렉상드르 푸가체프의 손에 넘어갔으나 그는 이내 흥미를 잃었다. 이는 미디어에 대한 자본주의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뉴스의 시대? 기자라는 직업의 대변화
그렇다면 어디까지를 뉴스로 볼 수 있는가? 유명 연예인이 남긴 트윗을 뉴스라고 할 수 있을까? 이는 결국 언론이 어떤 이야깃거리를 선별해서 뉴스의 형태로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를 생산하는 사람은 결국 기자다. 기자는 오늘날 큰 변화를 겪고 있는 직업군이다. 프랑스와 미국 모두 신문기자는 점점 줄어드는 반면 다른 매체에서 일하는 기자는 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세계 금융위기나 인터넷 보급 때문을 떠나 언론사의 감원 때문이다. 또한 최근 인터넷사이트에 기사를 싣는 일에 점점 더 많은 수의 기자가 투입되고 있다. 영국의 데일리텔레그래프는 2013년 종이신문 기자 80명을 해고하는 대신 온라인 전문기자 50명을 채용했다. 인쇄판에서 인터넷판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시 인쇄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아니라, ‘양질의 뉴스’가 생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신문사들은 ‘뉴스의 품질을 포기하면서’ 비용을 줄이고 있다.
주요 종합일간지의 인터넷사이트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온라인 콘텐츠 중 뉴스통신사가 생산한 뉴스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온라인에서의 핵심은 수십 년 전처럼 누가 먼저 특종을 잡느냐가 아니라, 누가 먼저 기사를 올리는가, 즉 AFP통신, AP통신 또는 로이터통신 기사를 누가 먼저 재빨리 복사해 붙여 넣는가가 되었다. 일부 사회평론가에 따르면, 이런 걱정스러운 상황은 미디어가 최근 몇 년간 수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뉴스는 오늘날 겪고 있는 위기를 분석하지 않고 여전히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광고라는 허상의 종말
그렇다면 왜 미디어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위기를 고스란히 맞고 있을까? 대부분 미디어의 위기를 ‘종이’라는 매체형식과의 관련으로 몰아가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매체가 아니라 콘텐츠다. 미디어는 혁신적인 가격 정책을 통해 새로운 광고 수입을 짜내려고 애쓰지만 이를 통해서는 수입은커녕 원래 있던 수입마저 소진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광고의 허상’이다. 신문사들이 광고를 통해 신문 가격을 상당히 낮출 수 있었고 좀더 넓은 지역에 신문을 배포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미국에서 발간된 뉴욕선의 경우, 불과 몇 달 만에 뉴욕에서 가장 많이 발행되는 신문이 되었는데, 그 성공 요인은 초저가 정책에 따른 대량 발행과 광고 수입이었다. 미국 신문의 황금기(도금시대)라고 부르는 이 시기에 미국 신문은 광고 덕분에 독립성을 얻었고, 정당이나 대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광고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가? 이후 모든 미디어는 광고의 허상에 현혹되었는데, 오늘날 문제는 더 이상 광고가 미디어를 먹여 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광고 시장은 무한 확장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최근 수년 전부터 광고 시장의 성장세는 대다수 선진국에서 급격히 둔화되었다. 미국의 GDP 대비 광고비는 2000년부터 감소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00년을 제외하면 이후에는 1987년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의 광고비는 GDP 대비 0.5퍼센트포인트 감소해, 2010년부터는 광고비가 안정된 것처럼 보이나 광고비 지출이 다시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광고의 비중이 줄어든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신기술이 발전하면서 등장한 ‘다이렉트 마케팅’으로 친숙하지만 효율성은 낮은 광고가 등장했다. 또한, 사용 가능한 광고 공간이 많아지면서 광고비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많은 공간을 광고에 할애함에도 광고 수입이 줄자 미디어는 광고의 혁신을 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게 되었다. 이 혁신의 부정적인 측면은 ‘네이티브 광고’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네이티브 광고란 사용자 경험을 기반으로 소비자에게 광고 콘텐츠를 제공하는 광고 포맷으로, 구글 스폰서 링크에서 착안해 광고 콘텐츠가 편집국에서 작성된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다른 콘텐츠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온라인 광고 시장의 약세뿐만이 아니라 소수 대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점점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위기 극복을 위한 새로운 모델, 비영리 미디어 주식회사
고로 이 책에서는 뉴스미디어가 운영과 재원 마련의 두 가지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저자 줄리아 카제는 미디어가 부호들의 취미생활이 되게 놔둘 수 없으며, 진정한 민주주의는 극소수 부유층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만으로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주주제를 다양화하고, 소수의 개인이 의결권을 장악하지 못하게 하는 미디어 소유의 ‘다원주의’가 강조되고,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혁신적이면서도 현실을 반영한 중간 형태의 기업 모델이 필요하다. 이는 새로운 방식의 출자, 경영권, 의결권 분배를 제시하고, 미디어에 적합한 민주적 주식회사 모델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21세기에 적합한 새로운 미디어 기업 모델을 제시한다. 재단과 주식회사의 중간 형태인 ‘비영리 미디어 주식회사’다. 최근 수십 년간 미디어 부문의 성공사례와 영리성과 비영리성을 적절히 조화시킨 세계 유수 대학의 성공 사례에 착안해 개발한 기업 모델로, 이 모델은 자기자본을 보존하면서 재원 마련을 가능케 해주고, 외부주주에게 제한된 의결권을 부여한다. 독자조합과 기자조합에는 새로운 자리를 마련해주고 크라우드펀딩을 장려하는 법적 규제와 세제를 마련한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이를 통해 기존의 언론 지원제도를 개혁할 수 있고, 이로써 프랑스 등지의 복잡한 언론 지원제도를 대폭 단순화할 수 있다. 또한 미국처럼 국가의 언론 지원이 부족한 곳에서는 미디어에 할당하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늘릴 수 있다. 카제가 제시하고 있는 비영리 미디어 주식회사는 거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독자, 청취자, 시청자, 기자에게 큰 대항력을 부여함으로써 뉴스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다시 한 번 뉴스의 민주화를 실현할 기회를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