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을 보다』-화가 임옥상 특집
‘우리 시대의 예술가 63명이 우리 시대의 화가 임옥상을 말하다!’
“이들은 특유의 차갑고 예리한 눈으로 임옥상의 작품을 보아주었고,
이들은 특유의 뜨겁고 넉넉한 품으로 임옥상이라는 작가를 안아주었다.”
화가 임옥상. 언제나 시대의 흐름에 붓을 담그고 그 붓을 치고 그 붓을 빠느라 분주했던 화가 임옥상. 그런 우리들의 화가 임옥상. 여기 그를 특집으로 다룬 책 한 권을 수줍게 내보인다. 그러니까 화가 임옥상을 좀 알자는 책. 안다면 제대로 좀 들여다보자는 책. 들여다보았으면 다각도로 좀 이해해보자는 책. 말하자면 이 한 권이야말로 ‘임옥상 깊이 읽기’가 아닐는지.
『옥상, 을 보다』는 1974년부터 2017년에 이르기까지 근 43년에 걸쳐 대중들 앞에 화가로 나선 임옥상의 작품 세계를 전면적으로 재조명해본 책이다. 8월 23일부터 9월 17일까지 그의 열여덟번째 개인전 <바람 일다>도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진행되고 있는바, 겸사겸사 이 책과 더불어 바로 오늘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을 훑는다면 화가 임옥상의 전 생을 함께 겪어내는 계기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시대의 예술가 63명이 우리 시대의 화가 임옥상을 말하다!’ 띠지 카피를 통해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지만 이 책의 귀함 가운데 으뜸은 아마도 다각도의 장르에서 맹 활약중인 63명의 예술가가 저마다의 개성대로 임옥상의 작품을 말하고 있다는 점일 게다. 그들은 이 책의 코너마다 특유의 차갑고 예리한 눈으로 작품을 보아주었고, 특유의 뜨겁고 넉넉한 품으로 작가를 안아주었다.
책으로 깊이 파고들어가자면 이렇다. <옥상의 글>을 통해 임옥상은 그의 그림과 삶에 대한 반추를 아주 솔직하면서도 힘 있는 필체로 해보였는데, 비유컨대 이 책을 비추는 전조등 같은 에세이가 아닐까 한다. 앞서 꼼꼼 읽고 페이지를 넘겨나간다면 시기별 작품에 대한 이해를 크게 돕지 않을까 싶다.
<옥상의 그림 보기 50선>은 임옥상의 작품을 예술가들이 직접 골라 제 감상을 덧댄 코너다. 이들은 하나같이 제가 좋아 고른 그림들에 제가 좋아 쓴 글에 최선을 다해주었는데 이 좋음의 순서를 시기별로 배치하여 임옥상의 작품 변모 양상까지 지켜볼 수 있게 했다. 이토록 다양한 그림감상법을 한 챕터에서 구경할 수 있다니, 이 재미의 쏠쏠함은 참 크다고 하겠다. 무엇보다 1983년생 젊은 소설가 정영수에서 1934년생 연륜의 이어령 선생까지 정말이지 참 크다 할 진폭 안의 예술가들이 한데 모였다는 점에서 또한 큰 의의를 가진다.
<옥상과의 만남>을 통해 시인 김민정은 임옥상의 육성을 생생히 옮기는 데 주력을 했고, <옥상을 위한 추신>을 통해 건축가 승효상은 임옥상의 진면목을 짧게 요약하여 말해주었다. 특히 <옥상의 그림 들여다보기 10선>은 이번 전시에 관한 ‘설’을 그 중심에 두되 임옥상의 작품론과 인물론이라 할 때 반드시 읽어야 할 글들만을 예 모았다 할 수 있겠다. 주제별로 흥미롭게 읽히는 데다 그 글들이 주는 묵직함이 이 책의 무게를 더한다.
그는 이렇게 쓴 바 있다. “나는 스스로를 Social Designer, 사회연출가라고 내세웠다. 사회를 캔버스로 작업하는 작가로 말이다. 지금껏 나의 행동 범위는 정해진 것이 없었다. 정치, 경제, 사회, 환경 모든 분야 모두에 개입해왔다. 나는 권력을 믿은 적이 없다. 권력은 반성하지 않는다. 권력은 행사할 뿐이다. 권력은 무너질 뿐이다. 앞으로도 나는 권력의 파수꾼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모두를 흙으로 수렴해나갈 것이다.”라고. 그는 또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지금 내가 움직여가는 것, 그게 바로 나다.”라고.
자 그렇다 하면 옥상이라는 이름의 화가 임옥상, 그를 어떤 사람이라고 이해하면 좋을까. 힌트가 될 만한 대목의 글이 있어 예 붙여본다. 60대 후반에나 책을 낼 생각이었다는 그의 나이 그때인 지금, 그는 여전히 그림으로 말하고 그림을 울고 그림으로 웃는다.
옥상을 사전에서 찾으면 이렇다. 현대식 건물에서 마당처럼 평면으로 만든 지붕의 위. 나는 그 ‘위’라는 글자에 방점을 땅, 하고 찍어본다. 옥상은 아래로는 향할 수 없고, 옥상은 위로만 향할 수 있으며, 옥상은 언제나 우리네 안락한 가정의 창밖에 있고, 옥상은 언제나 떨어지는 꽃송이와 불어오는 바람과 내리치는 비와 쏟아지는 눈을 가장 먼저 맞느라고 사시사철 문밖에 나가 홀로 서 있는 맨몸의 가장이다. 어쩌면 선생의 이름이 옥상이란 것이 그의 타고난 운명은 아니었을까. 작업실에서 흙타령을 잔뜩 늘어놓던 선생은 작업실에서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거리로 스며들어갔다. 그렇다. 그가 쏘다니는 곳곳은 언제나 그 즉시로 그의 화폭이 되어버린다. 옥상을 광장 삼아 제 목숨을 내걸어야만 했던 우리 현대사 속 아픈 이름들이 비단 과거완료형이겠는가 하면 필시 현재진행형일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에서일 거다. 빤하지 않겠는가. 붙들어 앉혀야 하니까. 붙들어 앉힌다는 건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의지니까. 희대의 옥상이자 시대의 옥상이 왜 만날 똥줄 타게 바쁘냐 하면, 그래서다!
―「자, 우리 이제 뜨겁게 흙으로 돌아가자고요.」(p161~162 옥상과의 만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