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밥 딜런
그림책으로 찾아오다
2016년,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사상 최초로 음악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모두가 놀랐지만, 이내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밥 딜런은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가지만 자유와 평화를 노래하며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 온 시인이기도 하니까. 지금까지 밥 딜런의 시를 귀로 만나 보았다면, 이제는 그림책 『불어오는 바람 속에』, 『그 이름 누가 다 지어 줬을까』를 펼쳐 눈으로 만나 볼 시간이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 『그 이름 누가 다 지어 줬을까』는 밥 딜런의 두 노래 가사에 각각 존 J. 무스와 짐 아노스키의 아름다운 그림을 더한 그림책이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1960년대 미국 시민권 운동에서 널리 불리며 밥 딜런에게 “시대의 목소리”라는 칭호를 안겨 준 바 있다. 그 노랫말에 칼데콧 아너상 수상 작가 존 J. 무스의 시각적 은유가 더해져 어른과 어린이 모두에게 자유와 평화, 반전의 메시지를 한층 또렷이 전하는 그림책으로 탄생한 것이다. <그 이름 누가 다 지어 줬을까>는 여러 동물의 특징과 이름을 재치 있게 노래한 곡이다. 자연을 그리는 화가 짐 아노스키의 생동감 넘치는 그림과 더불어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신나게 동물 이름을 외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으르렁대길 좋아하는 동물을 만났지
아주 널따란 등과 북실북실한 털
"아, 이 녀석은 곰이라고 불러야겠군"
곰은 왜 곰이고, 양은 왜 양일까? 『그 이름 누가 다 지어 줬을까』는 재치 있는 설명을 내놓는다. 맨 처음에, 아주 오래전에 누군가가 우연히 마주친 동물들을 뜯어보고는 그냥 가볍게 중얼거린 것이다. “아, 이 녀석은 곰이라고 불러야겠군.”
동물의 생김새와 특징을 먼저 묘사하고 다음 장에 이름이 나오는 구성은 일련의 수수께끼 놀이가 될 수 있다. 어린이 독자에게 다음 장에 나올 동물 이름을 먼저 외칠 기회를 주는 다정함은 그림책이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심각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이 이름 짓기 과정에 동참하여 동물들을 찬찬히 살피다 보면 절로 미소가 나올 것이다.
밥 딜런의 재치가 번뜩이는 노래, 독자가 함께 완성하는 피날레
『그 이름 누가 다 지어 줬을까』는 밥 딜런의 노래 <Man Gave Names to All the Animals>의 가사와 짐 아노스키의 생생한 그림이 만나 탄생한 그림책이다. 원작이 된 노래는 레게풍의 흥겨운 리듬과 가볍게 툭 던지는 듯한 밥 딜런의 목소리가 매력적이지만, 언어유희적인 가사 또한 매력적이다. ‘hair’(털) 다음에 ‘bear’(곰)가 나오고 ‘big’(큰) 다음에 ‘pig’(돼지)가 등장하는 식으로 운을 맞췄다. 『그 이름 누가 다 지어 줬을까』의 번역을 맡은 시인 황유원은 우리말의 운율과 의태어를 활용해 원어의 익살스러운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한다.
『그 이름 누가 다 지어 줬을까』에서 밥 딜런의 재치가 가장 번뜩이는 장면이 있다. 유일하게 동물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마지막 장면이다. 이름이 없어도 동물의 생김새와 움직임을 묘사한 글, 그리고 짐 아노스키의 밀도 높은 그림을 통해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생략된 한 마디를 외치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 책장을 덮기 전에 다 같이 외쳐 보자. “아, 이 녀석은 ( )라고 불러야겠군.”
시인 황유원의 유려한 언어로 재탄생한 『그 이름 누가 다 지어 줬을까』
『그 이름 누가 다 지어 줬을까』의 번역은 『세상의 모든 최대화』로 제34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황유원이 맡았다. 지금 이곳, 바로 여기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시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시구들은 부드럽고도 편안하다. 노래로 먼저 불린 시이니만큼 음악적 리듬감을 고려하여 말을 세심하게 다듬은 흔적 또한 느껴진다. 이 같은 시인의 언어에 힘입어, 그림책 『그 이름 누가 다 지어 줬을까』는 소리 내어 읽을 때 더욱 진가를 발휘할 발랄한 시로 재탄생했다.
『그 이름 누가 다 지어 줬을까』에 담긴 밥 딜런의 재치 있는 상상이 오롯이 옮겨질 수 있었던 것은 역자 황유원의 밥 딜런의 시 세계에 대한 남다른 이해 덕분이기도 하다. 황유원 시인은 밥 딜런 가사집 『밥 딜런 :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에서 387곡의 노랫말을 공역한 바 있다. 한편 『그 이름 누가 다 지어 줬을까』는 마지막 장에 영어 원문을 수록하여 원어가 주는 재미와 감동 또한 놓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