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의 새 관찰, 그리고 6년간의 호사비오리 기록!
백두산 정상에서 천 번의 기다림 끝에 만나다
천연 기념물 제448호, 멸종위기동물 2급
지구상에서 천만 년 이상을 살아온 산화석종
그 첫 만남에서 번식, 이소까지 야생의 경이로움을 담다
호사비오리라는 이름의 ‘호사豪奢’는 호사비오리의 화려한 생김새에서 비롯되었다. 머리의 긴 댕기와 선명한 붉은색의 부리, 옆구리의 용을 닮은 비늘 무늬는 호사비오리만의 특징이다. 제3기의 빙하 기후에서 살아남은 화석종인 호사비오리는 현재 지구상에 1000마리도 채 남지 않았다. 지구상에서 천만 년 이상을 살아왔으나 지금은 인간에게 밀려 멸종위기종이 되어버린 호사비오리를 찾아 한 사진가가 백두산을 올랐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에 걸쳐 솟아 있는 백두산 영봉은 중국을 경유해서만 오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나는 호사비오리는 봄이 되면 번식을 위해 백두산으로 돌아간다. 다큐멘터리 작가 박웅은 분단된 남북을 자유로이 넘나들고 백두산을 고향 삼는다는 점에 이끌려 호사비오리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연길공항으로, 연길에서 다시 백두산까지 수 시간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사람의 길과는 달리 호사비오리는 한반도를 가로질러 백두산을 자유롭게 오갔다. 이것은 호사비오리의 매력에 홀린 한 사진가가,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담기 위해 6년간 백두산에 올랐던 기록이다.
호사비오리 새끼가 첫 발을 내딛다
북쪽에서 백두산을 오를 때 백두산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이도백하. 이곳에는 댐을 막아 작은 호수를 만들어 호사비오리의 번식을 돕는 호사비오리 자연보호지구가 있다. 파괴되지 않은 서식지를 찾아 이곳으로 날아든 호사비오리는 높은 나무의 수공에 알을 낳고, 사람들은 둥지가 있는 나무 그루 주변에 천적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담장을 치고 24시간 감시를 하며 보호한다. 저자는 호사비오리의 새끼들이 알에서 깨고, 둥지 밖으로 나오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이곳 백두산 이도백하를 찾았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호사비오리의 어미가 꽥꽥대는 소리에 놀라 쳐다보니 길이가 2미터는 될 법한 구렁이가 호사비오리의 둥지를 향해 기어올라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위장 텐트에서 대기하던 저자와 보호지구 직원들이 황급히 구렁이를 내쫓았지만, 멀리 내던져진 구렁이는 몇 시간이 안 되어 또 호사비오리의 알을 노리고 돌아왔다. 저자 일행은 결국 구렁이를 포획하여 가두기로 한다. 아직 새끼들이 알에서 깨지도 않았는데 구렁이라는 위험천만한 난관에 맞닥뜨렸다.
호사비오리 새끼를 만나기까지 도사리던 난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알이 부화하기를 기다리던 며칠 사이 장대비가 쏟아져 강물이 불어나 다리가 잠기고, 그사이 강 건너의 둥지에 있던 알들은 이미 부화해 새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보트를 타고 건너려 해도 물살이 거세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다. 새끼가 둥지에서 뛰어내리기 전까지 강물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심정은 초조하기만 하다. 6년이나 기다려온 호사비오리 새끼의 이소 모습을 놓칠 수는 없었다.
마침내 호사비오리 둥지 근처까지 다가가 은신 텐트에 몸을 숨기고 관찰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어미는 텐트 속의 사람을 의식한 듯 몹시 경계하며 푸드덕거렸다. 그런 어미의 뒤로는 둥지에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새끼가 보인다. 테니스공만 한 작은 새끼는 너무 작고, 날개도 다 자라지 않았으며, 솜털이 보송보송하기만 해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그런 새끼 앞에서 어미는 마치 뛰어내리는 시범을 보이듯 땅바닥을 향해 곧장 떨어져내린다. 땅바닥에 내려선 어미는 새끼를 부르듯 목청을 높여 꽥꽥거린다. 어미를 향해 대답이라도 하듯 삑삑 소리를 내던 새끼는, 어느 순간 둥지 밖으로 훌쩍 몸을 내던진다. 호사비오리 새끼가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호사비오리를 최초로 관찰하다
호사비오리는 주로 유라시아 북부에서 번식하며, 중국의 동부와 중부 지역에서 월동하는 새다. 우리나라에는 월동을 위해 찾아오는 것이 드물게 관찰되는데, 경기 북부의 한강 유역과 북한강 상류, 한탄강과 섬진강 등에서 발견되었고 최근에는 대전 갑천과 전남 화순에서도 서식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물오리인 호사비오리는 큰 저수지나 강 하구 등 물이 가까운 곳에 서식한다. 특이한 점은 여느 물오리와 달리 물가가 아니라 물이 가까운 곳의 산림에서 번식한다는 점이다. 호사비오리는 지상으로부터 10미터 이상 높이에 있는 나무의 수공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따라서 새끼들은 부화한 직후 하루 이내에 10미터 이상의 높이에서 뛰어내려 물가를 향해 이소移所하게 된다.
성격이 몹시 예민한 호사비오리는 천적이 근처에 있다고 판단되면 재빨리 몸을 숨기기 때문에 관찰하기가 매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천연기념물 제448호’로 지정되었으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2009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고, 중국에서는 국가 1급 보호 동물로 규정되어 절대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 용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호사비오리의 옆구리에 난 비늘 무늬가 용을 닮았다 하여 선호하는데, 특히 이도백하 근처에는 호사비오리 보호지구가 조성돼 그 번식을 도모하고 있다.
관찰이 어렵고 개체 수가 적은 데다 최근에는 서식지 훼손으로 점점 살 곳을 잃어가는 호사비오리는 아직 국내에서 면밀하게 연구된 기록물이 없었다. 또한 북쪽에서만 번식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번식활동을 관찰할 수 없었는데, <백두산 새 관찰기>는 그런 호사비오리의 번식을 기록한 국내 최초의 기록물이다. 호사비오리의 짝짓기, 번식활동, 먹이활동과 육아에 이르기까지 호사비오리의 다양한 모습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백두산에서의 20년간의 다큐멘터리 기록
호사비오리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것은 1993년 철원에서이다. 저자는 호사비오리가 관찰되었다는 보도를 듣고서 호사비오리가 전 세계적 멸종위기종이라는 사실보다도 호사비오리가 월동을 위해 우리나라를 찾았다가 봄이 되면 다시 백두산으로 돌아간다는 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비록 지금은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다지만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혼이 서린 산이다. 저자는 겨울이면 남쪽을 찾고 봄이면 북쪽을 찾는 호사비오리에게서 우리 민족과 통하는 어떤 운명적인 것을 느꼈다.
그로부터 머지않은 1995년, 저자는 처음 백두산을 오른다. 원래 풍경 사진을 찍던 저자는 백두산 천지의 풍경을 찍기 위해 매년 백두산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꼬박꼬박 백두산을 올랐지만 호사비오리가 백두산의 어디에 언제 번식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없어 가슴속에 품은 채로 시간만 흘렀다.
결국 저자가 호사비오리를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1월이다. 한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여러 시간 위장텐트 속에서 기다린 저자는 인내 끝에 물살을 헤치고 다가오는 호사비오리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휘날리는 갈기와 붉은 부리, 선명한 비늘 무늬에 홀딱 반해버린 저자는 결국 호사비오리의 둥지를 찾아 2010년, 다시금 백두산에 오른다. 호사비오리를 가슴속에 품은 지 10여 년 만이었다. 풍경 사진을 찍기 위해 백두산에 오르며 인연을 맺었던 한족 사 사장(사준해)이 호사비오리 보호지구를 만들어 호사비오리를 관찰·보호하고 있다는 소식이 운명처럼 그에게 찾아든 것이다.
백두산 아래 첫 번째 동네인 이도백하는 한족과 중국인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이다. 본래 한국인 관광객의 통역과 안내를 했던 사 사장은 지금은 백두산에 찾아오는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하는 어엿한 사장님이 되어, 사비로 호사비오리 보호지구를 만들었다고 한다. 사 사장은 이도백하 인근의 댐에 물을 막아 작은 호수를 만들고 호사비오리가 둥지를 트는 나무 그루 근처에 천적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24시간 감시를 하고 있었다. 호사비오리의 사진을 찍겠다고 결심하기도 훨씬 더 전부터 사 사장과 연을 맺어온 저자에게는 이야말로 운명적인 연인 셈이었다.
호사비오리는 매년 4~5월경 이도백하로 찾아와 번식을 한다. 5월 중순에서 말경, 호사비오리 새끼들이 알에서 부화해 둥지를 떠나기까지는 채 이틀이 되지 않는 아주 짧은 순간이다. 저자는 일 년 중 그 단 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2010년부터 매년 백두산을 찾았지만 매번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이미 둥지를 떠난 새끼들만을 만나야 했다. 강한 모성애를 가진 호사비오리는 어미를 잃고 다른 둥지에서 온 새끼라 하더라도 자기 새끼처럼 거두어 함께 기른다. 십 수 마리의 새끼를 데리고 강을 헤엄치며 물고기를 잡는 호사비오리를 찍으며 몇 번이나 아쉬움을 달래야 했던 저자는 햇수로 꼬박 6년째, 다시 백두산 자락 이도백하를 찾았다. 매년 통역을 책임져주던 영춘 씨가 없어 급하게 새 사람을 소개받고, 갑자기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백두산을 오르며, 강물은 불어나 호사비오리가 있는 건너편까지 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저자는 호사비오리의 새끼를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알에서 깨자마자 거센 빗줄기를 만나야 했던 호사비오리 새끼들은 과연 7미터 높이의 둥지에서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
백두산과 더불어 살아가는 새들
저자는 호사비오리를 찾아 백두산을 찾을 때마다 틈나는 대로 호사비오리뿐만 아니라 다른 새들의 생태 또한 관찰해왔다. 그중에는 물론 백두산에서 처음 보는 새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친숙한 새들이었다. 수리부엉이나 노랑때까치, 후투티와 파랑새, 새호리기 등은 모두 저자가 한국의 새를 관찰하며 만났던 새들이다.
그러나 이미 습성을 잘 알고 있는 새라 하더라도 사는 지역이 달라지면 살아가는 모습에도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가 발견한 수리부엉이는 이도백하에 사는 사 사장의 집이 있는 절벽 바로 아래 둥지를 틀고 밤마다 부엉부엉 울어댔지만 수년째 주민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다. 나무의 수공에 둥지를 트는 후투티는 적당한 수공을 찾지 못해 이도백하 폐허의 잔재 사이에 둥지를 만들었다. 무너진 콘크리트 사이 바닥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으나 용케도 천적에게 들키지 않고 무사히 새끼를 기르고 있었던 것이다. 물까치 역시 원래는 10미터 이상의 높은 나무에 둥지를 틀지만, 어쩐 일인지 이도백하 인근에서는 바닥에서 두 뼘 높이밖에 되지 않는 곳에 둥지를 만들어놓았다. 새끼를 공격할 들개나 고양이가 없다는 추측을 하게끔 하는 대목이다.
호사비오리와 습성이 궤를 같이하는 새들도 여럿 소개된다. 호사비오리와 비슷한 시기에 번식을 하는 파랑새는 호사비오리처럼 수공에 둥지를 틀기 때문에, 서로 둥지를 차기하기 위해 시끄럽게 울며 쟁탈전을 벌인다. 마찬가지로 호사비오리와 비슷한 시기에 번식하여 새끼를 기르는 청둥오리도 새끼들을 데리고 물가로 먹이를 잡으러 나올 때면 호사비오리와 새끼가 섞이지 않도록 서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어미가 단속을 한다. 갓 부화한 새끼를 사냥하기도 하는 새호리기는 호사비오리의 천적인데, 원래는 우리나라에 여름 철새로 찾아오는 새지만 백두산 자락까지 올라와 번식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야생의 새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새의 습성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습성을 모르는 낯선 새를 관찰하려면 새를 뒤따라다니면서 관찰해야 하는데, 날개가 있는 데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새를 두 발로 쫓아가며 관찰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그토록 힘들게 야생의 새들을 찾아다니고, 그들의 생태와 야생 그대로의 모습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배려하고, 단 한순간의 사진을 찍기 위해 몇 시간이고 심지어는 몇 달 몇 년이고 기다리는 것이 오히려 즐겁다고 말한다. 원하는 한순간의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무한한 기다림 말고는 수가 없다. 저자는 새를 찾아 자연을 누비는 과정에서 인간 역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족일 뿐이라는 겸손함을 배웠고, 이제는 우리에게 그 소중한 깨달음을 나누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