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군과의 교전 장면이 폭스뉴스 카메라에 잡히고 이 3분 43초짜리 짧은 전투 영상으로 국민적 스타로 떠오른 빌리와 브라보 대원들은 국방부 지원으로 이 주간의 승전여행에 오른다. 전쟁 지지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마케팅 전사로서 미디어 투어라는 임무를 수행중인 이들 여정의 종착지는 댈러스 카우보이스 스타디움. 추수감사절, 미국 풋볼을 대표하는 일명 ‘미국의 팀’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홈경기가 열리게 될 이곳은 ‘미국의 영웅’ 브라보 대원들의 승전여행 그 클라이맥스를 장식할 장소로 더할 나위 없다. 소설은 브라보 대원들이 리무진을 타고 스타디움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해 스타디움을 떠나는 데서 끝나며, 그곳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중심으로 고향집 방문 같은 에피소드나 공포의 전장 장면이 플래시백으로 섞여든다.
알안사카르 운하 전투에서 살아남은 빌리 린과 다임, 데이, 로디스, 어보트, 크랙, 맹고와 사이크스, 이 여덟 명의 브라보 대원은 전국을 순회하는 동안 대중에게 영웅으로 치켜세워지며 끊임없는 관심과 박수갈채, 응원과 지지를 받아왔다. 열광적인 분위기는 스타디움에서 절정으로 폭발한다. 하지만 상관의 눈을 피해 술 마실 궁리를 하고 거친 성적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시덕거리고 시비가 붙어 몸싸움을 벌이는 브라보 대원들은 실상 애국심 고취나 국민적 영웅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이날 그들의 관심사는 하프타임 쇼에 출연하는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비욘세와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을지, 브라보 대원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할리우드 제작자 앨버트가 A급 배우를 섭외해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을지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유머러스한 대화와 농담, 웃음 아래에는 자괴감과 비애가, “높으신 분들의 졸”에 지나지 않는 소모품 같은 처지에 희망 따위 느낄 수 없는 무력감이 짙게 깔려 있다. 스타디움의 열기 속에 영화 계약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치어리더에게 한눈에 빠져 사랑을 나누고, 카우보이스 구단주 노먼 오글스비와 그의 부자 친구들을 만나는 와중에도 빌리의 기억은 작은 실수 하나로 생사가 갈리고 전우의 죽음을 경험한 공포의 전쟁터로 끊임없이 되돌아간다. 그리고 그의 상념은 여기 후방에서의 전쟁과 이라크에서의 전쟁 사이에 놓인 메울 수 없는 심연에 가닿는다. 아무도 살인자라 욕하지 않고 되레 훌륭한 본보기라며 장황한 찬사를 늘어놓는 사람들, 확신에 차 전쟁을 강력히 옹호하면서 정작 자신은 참전을 기피한 허풍쟁이와 허세꾼, 우리 군대가 자랑스럽다며 지지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돈 문제가 걸리면 인색해지는 부자들 사이에서 빌리는 위화감을 지우지 못한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미국인이되, 여기 있는 미국인들은 나와 다르다!’
전쟁과 엔터테인먼트가 뒤섞여 충돌하는 블랙코미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하프타임 공연이 시작되자 스타디움의 열띤 분위기는 극에 달한다. 고적대 여러 팀이 필드를 도는 가운데 섹스 쇼 안무가 펼쳐지고, 깃발 든 소녀들과 응원단이 도열한 사이 데스티니스 차일드, 의장대, 브라보 대원들까지 등장한다. 디스코 섬광등, 선정적인 댄스, 조명탄과 불꽃이 한데 뒤섞인 아수라장의 한복판에서 버텨내기 위해 빌리는 이를 악문다.
실제로 2004년 댈러스 카우보이스와 시카고 베어스의 풋볼 경기일에 데스티니스 차일드가 공연하고 군복 차림의 미군들이 행진하는 이벤트가 열렸다. 이를 TV로 보게 된 벤 파운틴은 “팝음악과 흡사 포르노 같은 안무, 행진하는 밴드들, 깃발을 든 수백 명의 소녀, 의장대와 ROTC 대원들, 흩날리는 성조기들이 뒤섞여 초현실적으로 폭발하는 듯했다”고 당시의 경험을 전했다. 그때 등장한 마르고 검게 그을린 군복 차림의 군인들, 사선을 넘나드는 전투 현장에 있던 그들이 광란의 한복판에 떨어진 그 상황은 너무도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이었다. 결정타는 섹스와 애국심의 히스테릭한 결합을 아무렇지도 않게, 완전히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었다. 벤 파운틴은 머릿속에 각인되었던 그 이미지를 바탕으로 2009년 봄 하프타임 공연에 등장하는 군인들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이 년여의 집필을 거쳐 완성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당시 그를 강하게 사로잡았던 하프타임 공연, 전쟁을 한낱 오락거리로 소비하는 행태와 군인들이 느꼈을 혼란과 절망은 소설에 고스란히 담겼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하프타임 공연이, 남들은 모두 그걸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소름끼친다. 자리를 빠짐없이 메운 관중이 모두 일어나 환호하고 있다. 오늘 모든 것이 그들을 행복하게 해준다. 좋아, 행복해해라. 그것이 빌리의 입장이다. 그들은 얼마든지 환호하고 소리지를 수 있다. 하지만 이 공연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시간 때우기용 저질 오락거리일 뿐. 빌리와는, 그가 전쟁터로 돌아가는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340~341쪽)
『빌리 린의 전쟁 같은 휴가』는 인물의 혼란스러운 내면, 스타디움의 들뜬 분위기, 예의 하프타임 공연 장면 등을 구체시와도 같은 형태와 다양한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시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대단히 ‘비주얼한’ 소설이기도 하다. 전쟁의 광기가 최고치를 갱신한 후방의 맹목적 지지와 참혹한 전쟁의 기억이 뒤섞인 혼돈의 소용돌이, 그 안에 휩쓸린 빌리와 브라보 대원들의 시간이 그와 같은 효과적인 장치를 통해 독자들에게 감각적 현실로 육박해온다.
추수감사절 동안 댈러스 카우보이스 스타디움에서 브라보 대원들이 보내는 몇 시간에는 미국의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 스포츠, 유명세, 전쟁에 대한 집착. 무엇보다 후방에서 무수히 많은 ‘기본적으로는 좋은 사람들’이 꾸는 순진한 꿈이야말로 전쟁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어리석고 잔혹한 진실을 조소와 비애를 담아 소설로 승화시킨 작가는 진지하게 묻고 있다. 군대를, 군인을 지지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결말에서 독자들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빌리 린을 잃는다는 건 멋지고 소중한 무언가를 잃는 것이라고요. 텍사스의 작은 동네 출신 열아홉 살 병사 빌리 린, 특별한 게 아무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모든 게 특별합니다. _벤 파운틴
▶ 본문에서
오늘 전 세계에서 이보다 큰 스포츠 대회는 없다. 브라보 대원들은 그 거품 낀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 그들은 이틀 후면 이라크에 재배치되어 남은 11개월의 복무를 마쳐야 하지만, 지금은 온갖 미국적인 것이 자궁처럼 안전하게 그들을 감싸고 있다. 풋볼, 추수감사절, 텔레비전, 여덟 종류는 되는 경찰과 보안요원, 그리고 3억 명의 호의적인 국민. 클리블랜드에서는 한 노인이 몸을 떨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들이 바로 미국이야.” (38쪽)
브라보 대원들은 이따금 찬양과 과도한 칭찬 세례에 녹초가 되는 준準 유명인으로 살고 있다. 집회나 쇼핑센터 행사 때, TV 촬영이나 라디오 녹음이 진행될 때는 고마움을 전하려는 열의에 찬 국민들이 떼 지어 달려드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지만, 그럴 때가 아니면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다. (……) 자신들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얼마간의 우월감을 느끼며 웃을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걸 당연히 안다. (……) 높으신 분들의 졸卒이 되는 것 말고 군인의 일이 무엇이겠는가? (49쪽)
미국인.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미국인이야―그건 입안의 혀를 갑자기 의식하는 것과 같다. 너무 당연해서 생각거리가 된 적도 없는. 하지만 여기 있는 미국인들은, 다르다. 이들은 성공한 사람들이다. (……) 모델이나 영화배우처럼 완벽한 미남 미녀는 아니더라도 활력과 품격을 갖추었다. 말하자면 비아그라 광고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브라보 대원들과의 시간은 그들에게 주어진 무수한 즐거움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니 빌리는 씁쓸해진다. 질투가 난다기보다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이라크로 돌아가는 두려움은 지독한 가난과 같고, 지금 그가 느끼는 건 가난이다. 백만장자 무리 속으로 불쑥 떠밀려들어온 초라한 꼬마 노숙자가 된 기분이다. (169쪽)
후방에 오니 모두 전쟁에 확신이 대단하다. 절대적인 확신에 차서 꽤 타당해 보이는 견해를 밝힌다. 이곳에서의 전쟁과 이라크에서의 전쟁 사이에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고, 빌리는 그 심연을 뛰어넘을 때 발을 헛디디지 않는 요령은 더듬거리지 않는 것임을 깨닫는다. (287쪽)
이따금 빌리의 눈에는 미국이 과잉의 악몽으로 보인다. 군생활을 하다보니, 특히 전쟁을 치르다보니 수량에 극도로 민감해졌다. 전쟁은 고도의 지능이 요구되는 일이 아니다. 고난도 수학 같은 건 필요 없다. 전쟁은 순전히, 절대적으로 무식한 수량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어느 편이 가장 많은 죽음을 만들어내는가? (321쪽)
지난 이 주 동안 그는 전쟁을 통해 배운 모든 것 때문에 자신이 대단히 똑똑하고 우월하다고 생각해왔지만 그렇지 않다. 칼자루는 순진하고 바보스러운 이들이 쥐고 있다. 이들이 후방에서 품고 있는 꿈이 지배적인 힘을 이룬다. 그의 현실은 그들의 현실의 불쾌한 부분이고,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그가 아는 모든 것보다 강력하다. (……)
그들의 현실이 세상을 지배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목숨까지 구해주지는 못한다. (442쪽)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재미있고 절묘한 모던 클래식. 영혼이 숨쉬는 이 책은 압도적으로 공감을 이끌어낸다. 나는 빌리 린 때문에 마음 아팠고 여전히 그를 생각한다. _닉 혼비(소설가)
신랄하고 아름다운 언어와 면도날처럼 예리한 통찰의 결합. 벤 파운틴의 재미있는 이 소설은 스포츠와 스펙터클,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강박을 꿰뚫는 비평을 제시한다. _허핑턴 포스트
거장처럼 능수능란하다. 소설의 결말에 이르면 우리는 ‘군대를 지지한다’는 말의 의미를 재고하게 된다. _워싱턴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