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예전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거나,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또한 먼 미래, 후대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른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통합된 한 권의 책 안에서 1권과 2권으로 시대 구분이 나뉘어 있다. 1권은 헤로도토스부터 마키아벨리까지의 시대를 다룬다. 이 시대에 지금 우리가 정치에서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이는 많은 개념들이 태동하고, 때로는 부정당하고, 발전했다. 저자는 자유와 시민권에 관한 아테네와 로마의 서로 다른 관념에 주목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폴리비오스와 키케로,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를 따라가며 정치에 관한 문제를 고찰하고, 14세기 공위 시대, 인문주의, 종교개혁이란 키워드로 고대 이후의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정치사상이 어떻게 변화돼왔는지 짚는다. 그리고 마키아벨리를 끝으로 1권을 마무리한다. 오늘날과는 달랐던 제한된 의미에서의 ‘시민’,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정치에 미친 영향, 지배 권력에 대한 저항권 개념이 싹트기 시작한 생각의 단초 등을 읽을 수 있다.
특기할 만한 점은, 우리가 지금 이해하는 국가의 여러 가지 특징들은 어떤 세속국가보다도 교황정치에 더 큰 빚을 진 바 있다는 점이다. 중세 유럽에서 세속국가의 발전은 적어도 일정 부분은 교회 통치의 발전에 대한 대응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정부가 인권을 침해한다면 ‘비민주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테네가 멜로스 섬에서 저지른 후안무치한 짓을 생각하면 선뜻 판단하기가 어렵다. 아테네는 분명히 민주적이면서도 나쁜 짓을 자주 저질렀다. 민주주의 강국들이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다는 것을 미래 세대가 어떻게 볼지는 알 수 없지만, 민간인을 폭격하고 일본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한 것을 알면 후손들도 선뜻 판단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민주주의국가들이라면 서로 전쟁을 벌이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20세기 내내 북아메리카, 유럽, 영국연방의 자유민주주의는 굳은 동맹을 이루었다. 그러나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민주적 아테네는 민주적 시라쿠사와 싸웠다. 투키디데스는 아테네 민주주의가 전쟁에 열중했다고 보았다. 그 이유는 후대의 로마도 그렇듯이, 고대의 전쟁이 큰 수익을 낳았기 때문이다. 약탈은 농사를 짓는 것보다 더 수지가 맞았다. 가까스로 연명하는 빈민도 부자가 되려는 마음까지는 없었지만 약탈의 이익에는 탐닉했다. 투키디데스는 민주주의의 호전성이 보편적인 특성이라고 여겼다. (49∼50쪽)
홉스에서 현재까지
이상적인 인간과 사회에 대한 사유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고대와 달리, 근대로 접어들면서 정치에 대한 생각은 점점 지금 당장 인간이 직면한 현실과 정치체를 고민하는 현실적인 것으로 변모해간다. 2권에서는 홉스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정치사상사를 다뤘다.
정치에 관한 근대적 사고방식은 홉스로부터 시작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가 무엇인지―즉 국가의 정통성이 어디에 있는지, 권력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신민의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에 관해 명확히 알려면 국가가 없는 세계를 상상해보라는 것은 신선한 발상이었다. 홉스, 로크, 루소 등 사회계약론자들의 저술에서 국가는 기본적으로 사회의 통합적인 요소로 간주된다. 국가는 인위적이고 법적인 조직이며, 입법의 관념에 함축된 하향식 권력을 뒷받침한다.
한편, 정치사회학 및 사회학의 성장의 영향으로 정치는 점점 예전보다 독자성이 약해졌다. 이제 근원적인 사회적 힘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고, 이것이 예전에는 정치 지도자가 할 수 있었고 했던 일을 최소한으로 제약하거나 완전히 결정하는 것이 되자,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낯익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생각은 어떻게 해석되든 간에 매력을 잃었다. 만약 개인적 가치, 온갖 종류의 문화활동, 국가나 국가기관의 도움 없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이 확고하게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 된다면, 또한 만약 우리가 노동자와 소비자로서 영위하는 삶이 시민과 신민으로서의 삶보다 더 중요해진다면,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소멸을 상상하는 길이 열린다. 그 열망의 좌절은 숱한 정치적 비극 중 하나로,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차지한다.
토머스 홉스를 비롯해 존 로크, 루소, 헤겔, 제러미 벤담과 제임스 밀, 존 스튜어트 밀, 토크빌과 마르크스 등 인류 정치사상의 역사에 중대한 변화를 몰고 온 사상가들의 생각과 이들이 남긴 저술의 내용이 2권에 등장한다. 또한 미국 건국과 프랑스혁명, 제국주의와 사회주의, 파시즘과 독재 등 인류 정치사를 뒤흔든 사건과 현상도 심도 있게 분석된다.
홉스의 경우에 보았듯이 정치적 의무가 자발적으로 부과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무척 매력적이다. 만약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정치적 권리나 관습적 권리의 기반이 실제든 가설이든 동의에 있다면, 그것의 구속력은 자연법에 따른다. 거기서 나오는 사상은 21세기의 사고로 아주 쉽게 번역된다. 즉 정당한 정부의 정치적 권력은 합법적으로 반포된 명령에 복종한다는 시민들의 도덕적 확신에 의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731∼732쪽)
자유는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행운도 따라야 가능하다. 그리고 지금도 자유의 미래는 안전하지 않다. 인간의 역사가 항상 보편적 자유의 성취를 향해 발전해왔다는 믿음은 설득력이 없다. (873쪽)
프롤레타리아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실현이 ‘빈곤의 점진적 심화’에 대한 유일한 처방이라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허물 방법은 있었다. 비교적 괜찮은 수준의 공공주택, 보건의료, 노령연금, 실업수당 같은 것을 제도화하는 것이었다. 공교육은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이 교육과 직업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독일에서는 그런 조치들이 지방과 국가 차원에서 도입됐다. 마르크스주의 계열 사회민주당 지방정부들은 그런 개혁이 혁명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은 진행중이라고 주장했다. 보수정부는 그런 개혁이 혁명의 기관차를 멈출 수 있다고 봤다. 개혁을 통해 대중의 반란을 선제적으로 잠재우는 것이 상책인 것이다. 어리석은 보수는 혁명을 조장하고, 똑똑한 보수는 혁명을 가라앉힌다. (1091쪽)
정치를 생각해야 하는 이유
정치는 먼 데 있는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일상적인 것이라는 명제는 되풀이되어온 말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것들을 의심하는 데서 정치에 관한 새로운 생각은 탄생한다. 저자가 보기에 현 인류가 정치에 관해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인류는 이제 전쟁이나 폭력이 아닌 정치를 통해 산적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사상의 역사를 바탕으로 그가 고민한 현재의 문제들이 책 후반부인 2권 2부(‘마르크스 이후의 세계’)에 집약돼 있다.
이 책은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우리의 목적에 맞게 새로이 고찰하는 게 가능하고 유용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 이 책의 마지막 5분의 1은 지난 250년 동안 몇 차례의 혁명이 정치가 지배하고자 하는 세계를 극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생각을 대단히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특정한 질서도 없었고, 상호 연관된 과정의 어느 한 측면에 우선순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18세기 후반 이후 일어난 산업혁명, 인구혁명, 문맹 퇴치와 통신혁명, 정치혁명은 고대, 중세, 근대 초기와는 수많은 측면에서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차이는 기술력이 크게 향상된 것이다. 거칠게 말하면, 우리는 예전의 어느 때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고 예전의 어느 때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다. (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