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사람!”
보니것식 휴머니즘의 시원을 만나다
★이동진의 빨간책방 추천 작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휴머니스트이자 유머리스트,
커트 보니것 미발표 단편소설집
“바로 이게 보니것의 매력이다.”
_생선 김동영 작가
“보니것의 간결하고 직설적인 문체와
설득력 있는 스토리, 절제된 위트는
초기작에서 이미 무르익었다.” 워싱턴 포스트
“커트 보니것을 잃었을 때 우리가 잃어버린 건 무엇인지 많이 생각해보았다. 자꾸 떠오르는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도덕적인 목소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도와주던 아주 합리적이고 믿을 만한—그러나 고루하거나 이빨 빠진 노인 같지는 않은—목소리를 잃어버렸다.” _데이브 에거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휴머니스트이자 유머리스트, 하루키가 존경하고 박찬욱이 사랑한 작가 커트 보니것의 미발표 초기 단편소설집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세상이 잠든 동안』은 보니것의 미발표 초기 단편소설 중에서도 보니것식 휴머니즘의 시원을 볼 수 있는 작품들을 선별해 묶었다. 『제5도살장』『고양이 요람』 등 다수의 작품에서 휴머니스트적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 보니것은 미국휴머니스트협회 명예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 단편들을 쓸 때 보니것은 이미 드레스덴의 대량 살상을 목격하고 독일 포로수용소에 갇혔다 풀려난 뒤였고, 아내와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생업에 뛰어든 상황이었다. 그는 <콜리어스>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같은 잡지에 단편을 팔았고, 당시의 <콜리어스> 문학 에디터는 후에 보니것의 모든 작품을 담당하는 문학 에이전트가 되었다. 『세상이 잠든 동안』의 단편들에는 흔치 않은 경험을 통해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을 막 이해하기 시작한 젊은이의 초롱초롱한 눈에서 보이는 명징함이 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던 아주 합리적이며 믿을 만한―그러나 고루하거나 이빨 빠진 노인 같지는 않은―”보니것만의 목소리, 특유의 블랙유머, 유쾌한 풍자, 뜻밖의 반전과 함께 찾아오는 분명한 메시지가 빛을 발한다.
“어딘가에는, 어딘가에는, 한 청년이
총에 맞거나, 굶주리거나,
짐승처럼 갇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아가씨가 있을지도 몰라요.” 본문 중에서
『세상이 잠든 동안』에 수록된 단편들은 우리를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메시지를 보니것 특유의 직설적인 문체와 군더더기 없는 구성으로 전달한다. 「제니」의 천재 공학자는 자기가 만든 기계 여인에 반해 아내를 버린다. 「100달러짜리 키스」의 남자는 남성 잡지 속 여인의 사진에 빠져 정작 그 여인의 마음을 보지 못한다. 「스로틀에 손을 얹고」의 남편은 모형 기차 만들기 취미 때문에 아내를 등한시한다. 「루스」의 젊은 과부는 시어머니의 죽은 아들에 대한 비뚤어진 사랑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린다. 「탱고」의 모범생 소년은 전통과 관습 앞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외면한다.
한때 신이 당신에게 사랑하라고 주셨던 불완전한 사람을 봐줘요.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신이 허락하신다면,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고 조금이라도 좋아해보도록 해요. 그리고 여보, 제발, 다시 불완전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불완전한 사람이 되어줘요. _「제니」 중에서
“여기 있는 모두가 유령이에요. 아침이면 연기와 추위를 뚫고 나타나서, 하루종일 보일러와 실리콘 개스킷과 몰리브데넘 걱정을 하며 바쁘게 돌아다니다가, 다섯시가 되면 사라져요. 말 한마디 없이 서서히 사라져버린다고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결혼을 하거나, 사랑에 빠지거나, 웃을 만한 좋은 일들을 찾아낼 수 있는지, 전 알 수 없어요.” _「여성인력팀」중에서
등장인물들은 뜻밖의 사건으로 인해 깨달음을 얻는다. “사람, 사람, 사람!”그 무엇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돈과 명예와 전통과 기술과 사진이 아니라 그 속의, 혹은 그 뒤의 사람을 봐야 한다는 것을. 특히 그 누구보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눈앞의 불쌍한 이를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보니것은 우리가 더 넓은 마음으로 인간과 세상을 품게 하면서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다. 휴머니스트이자 유머리스트로서의 그의 면모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올라갈 줄만 알고 내려올 줄 모르는 사람들,
모든 게 너무 지나치게 많아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유행병」은 가족에게 헌신적이고 야망이 있으며 성공한 기혼남들 사이에 ‘자살’이라는 유행병이 번지는 이야기다. 표제작 「세상이 잠든 동안」에서는 짐승 같은 돈과 짐승 같은 킬로와트 경쟁으로 변질된 크리스마스 전구 장식 콘테스트에 미지의 인물이 신선한 일침을 날린다. 「돈이 말한다」에서는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은 여자가 끊임없이 귓속을 맴도는 돈의 속삭임 때문에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된다.
“난 저 사람 같은 미국인들이 전부 어떻게 될지 궁금했소. 자기 인생이 가족을 점점 더 부자로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그건 인생이 아니라고 믿는, 이 똑똑하고 빛나는 새 인류가 어떻게 될지 궁금했단 말이오. 만약 다시 불경기가 찾아온다면 그들이 어떻게 될까, 똑똑하고 빛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순자산이 줄어들고 있다는 걸 갑자기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종종 생각했소.” 브리드는 바닥을 가리켰다. 그리고 천장을 가리켰다. “올라가지 않고 내려간다면.”_「유행병」 중에서
보니것은 어린 시절 대공황을 겪었고, 성인이 되고 제2차세계대전에도 참전했다. 이후 미국 경제는 승승장구했고 금리는 나날이 오르며 내려올 줄 몰랐다. 사람들은 이내 현대 자본주의의 상승곡선을 당연하게 여겼으며 오히려 더 높은 상승을 기대했다. 그러나 호황의 거품은 점점 꺼져갔고 사람들은 약간의 하락도 참을 수 없어했다. 보니것은 과거보다 훨씬 풍족한 삶을 영위하면서도 돈에 대한 집착과 성공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진 현대인들의 모습을 뻔하지도 우울하지도 않은 방식으로 그려낸다. 돈이 당장의 불행을 감춰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돈 때문에 예상치 못한 비극을 맞게 된다.
짜릿한 블랙유머, 강력한 한 방이 있는 반전
믿고 읽는 커트 보니것
『세상이 잠든 동안』에 수록된 단편들은 모두 짜릿한 블랙유머와 절제된 위트로 유익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한 방이 있는 반전과 깔끔한 결말을 제시한다. 보니것은 늘 그렇게 썼다. 초기 단편소설에서도, 후기 장편소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보니것 특유의 문체와 스타일은 초기작에서 이미 무르익어 있었다.
보니것의 작품이라면 그게 어떤 이야기든, 그 이야기의 끝에 우리가 어딘가에 다다라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보니것이 무언가를 분명하게, 탁 터놓고 말해줄 것이라는 걸 말이다. 괜찮은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가 실현 가능하고 바람직하다는 것. 신뢰는 가치 있다는 것. 부유하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별로 없다는 것. 단순한 메시지들이지만 보니것은 이 메시지들을 교묘하면서도 애매하지 않게 풀어낸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 끝에는 항상 보니것이 숨겨놓은 덫, 강력한 한 방이 있는 반전이 있다. 덫이 있다는 걸 알아도 상관없다. 보니것의 재치 있는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기꺼이 그 덫에 걸리고 싶어질 테니.
책 속에서
“사랑에 꾸준히 노출되어 일종의 면역성을 키워두지 못한 남자는,” 그가 말했다. “처음으로 사랑에 노출되었을 때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죽음을 제외한 온갖 일을 당할 위험이 있소.” _「제니」
“이 세상에 아이를 낳아놓고는 아이에게 아무런 특권도 줄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심정을 상상해보세요!” 자학과 수치에 취한 목소리였다. “저 불쌍한 꼬마는 사는 내내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싸워야 한다고요!” _「유행병」
“한 가지밖에 모르는 사람들이오, 올라갈 줄만 아는 사람들.” 브리드가 말했다. “신이시여……” 그는 창가로 가서 겨울의 하트퍼드를 내다보며 말했다. “이제 이 나라의 주요 산업은 살기 위해 죽는 것이군요.” _「유행병」
Q: 이 세상의 문제가 뭡니까? A: 모두 사진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아무도 피사체 자체에는 관심을 갖지 않아요. _「100달러짜리 키스」
“하지만 저 바깥세상은 엄청나게 바쁘고, 자기 나름의 거창하고 대단한 생각을 가지고 빠르게 돌아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해. 완벽한 날이 되리라 예상하고 우리가 그 첫 잔을 마시기 무섭게 누군가 이 안으로 뛰어들어와서 완전히 잘못된 말이나 행동을 할지도 모르는 거야.” _「후견인」
“여자들은 늘 남자들이 자신들의 심리를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면서, 남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데는 일 년에 십 초도 안 쓰는 것 같아.” _「스로틀에 손을 얹고」
“어떤 어머니들은 자기 아들을, 자신을 제외한 모든 여자들에게 타인으로 만들려고 하죠.” _「루스」
그녀가 지금껏 깨달은 바, 남편들이 가끔 형편없을 때는 있어도 남편 없는 인생은 더 나쁠 거라는 극적인 증거를 이웃 부인들에게 제공해주는 게 자신이 과부로서 할 의무 중 하나였다. _「꺼져라, 짧은 촛불」
“제가 예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줬어요.” 애니가 말했다. “이제 전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알아요.” _「꺼져라, 짧은 촛불」
그들은 조직 내에서 큰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는 닫혀 있는 유머의 영역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메리칸 금속가공 회사와 회사의 제품, 임원들, 주주들을 가지고 농담을 할 수 있었다. _「보마르」
“정말 은퇴할 때가 되긴 했네요. 자기 스스로를 보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더는 아무도 없는 것 같으니까요.” _「보마르」
“스위니병을 앓는 사람은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이 내장 주머니에 불과하다는 걸 상기시켜서 정신적인 삶을 불가능하게 하오!” _「키들리가 없는 남자」
“사람을 가지고 과학을 한다고요? 분명 정말 미친 과학이겠군요.” _「미스터 Z」
그녀는 화를 낼 정도로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그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온 세상이, 화를 낼 정도로 관심을 가져달라고, 그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_「미스터 Z」
“기관차와 냉동 오렌지주스를 파는 사람들은 수십억을 버는데,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아름다움을 가져오고, 인생에 조금이라도 의미를 주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은 굶어.” _「일 년에 1만 달러는 거뜬하지」
돈은 세상에 있는 남자와 여자만큼 다양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항상 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들은 모두 돈에 갇혀 지낸다. _「돈이 말한다」
그는 자기 그림이 형편없다는 걸 알았고, 좋은 그림이 무엇인지, 좋은 화가가 어떤 것인지 알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결코 그 사실을 아내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다. 코닐리아가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한다는 건 그녀의 취향이 형편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스테드먼이 가진 가장 귀중한 것이기도 했다. _「사기꾼들」
그는 위험해 보이는 걸 즐겼다. 깡패가 될 뻔했었고, 깡패처럼 보이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위험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두려웠다. 자기가 최고의 사기꾼일까봐 두려웠다. _「사기꾼들」
그는 자신이 예술적으로 실패한 것을 알면서도 여러 해 동안 즐겁게 살아왔다. 수중의 현금으로 실패를 덮으며 잘 지내왔다. 하지만 이제 자신의 실패가 아주 노골적이고 극적으로 드러날 것이고,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_「사기꾼들」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여기 커트 보니것이 초창기에 썼던 열여섯 편의 글들이 있다. 걱정 말고 읽어보길 바란다. 아무 페이지를 펼쳐 눈에 보이는 문장부터 읽어도 전혀 상관없다. 어떻게 읽든 이내 그의 이야기 안으로 빨려들어갈 테니까. 마치 웜홀로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바로 이게 보니것의 매력이다. 여행을 안 좋아하는 여행 작가, 생선 김동영
이 단편들은 그것들이 쓰인 수십 년 전에도 좋았지만, 그중 많은 것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준다. 커트 보니것의 목소리는 지금껏 한 번도 휴머니스트이자 유머리스트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시애틀 타임스
보니것의 시선에는 분명 시간을 초월하는 어떤 것이 있다. 미니애폴리스 스타 트리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간결하다. 각각의 단편들이 모두 단정한 속도로 시작해 단숨에 전개되며 같은 속도로 마무리된다. 보니것이 자신의 작품 구성과 풍자 스킬을 어떻게 연마했는지 보여주는 책.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보니것의 간결하고 직설적인 문체와 설득력 있는 스토리, 절제된 위트는 초기작에서 이미 무르익었다. 보니것은 도덕주의자였고, 그의 신념과 우려는 각각의 작품들 속에 잘 녹아 있지만, 그는 설교 같지 않은 몹시 매력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보니것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는 품위와 동정심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사람들은 이미 익숙해져버린 외로움과 개인의 무의미함에 맞선다. 세상일이 다 그렇다. 그러니 이 이야기들을 읽고,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목소리를 들어보라. 활력이 넘치고 감동적이며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 작품들을 읽는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워싱턴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