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툰 더하기 동시, 우주 최초의 재미!
‘말놀이 동시집’ 시리즈로 큰 사랑을 받은 시인 최승호와 이 시대 아이들 마음을 가장 잘 읽어내는 화가 윤정주가 함께 만든 두 번째 카툰 동시집이 출간되었다. 『치타는 짜장면을 배달한다』(2016)에 이어 더욱 즐거워진 신작 『얼룩말의 생존 법칙』이다. 이 책에는 서른한 편의 짤막한 동시와, 나란한 서른한 편의 카툰이 들어 있다. 카툰의 말풍선은 퍼포먼스를 전공한 백로라 숭실대 교수가 집필하였다. 장르의 경계를 지우고 다양한 주인공들과 중독성 있는 유머를 탑재한 『얼룩말의 생존 법칙』, 우주 최초의 재미를 보장한다.
그냥 웃는 돌고래와 깜짝 놀라는 깝짝도요
인상 쓰는 상어와 노래하는 굼벵이
해 떴다 꺄르륵
바람 분다 꺄르륵
파도 친다 꺄르륵
날치 난다 꺄르륵
왜 웃니 꺄르륵
그냥 웃어 꺄르륵
_「그냥 웃는 돌고래」 전문
따라 읽으면 꺄르륵 꺄르륵 그냥 웃게 되는 이 시의 주인공은 상괭이라고도 하는 오래전부터 우리 바다에 살아 온 토종 돌고래이다. 상괭이는 ‘웃는돌고래’라고도 불리는데, 천진한 미소를 띈 얼굴의 생김새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얼룩말의 생존 법칙』 속 동시들은 이처럼 동물의 생태적인 특징과 개체 각각의 고유한 성격을 짝지어서 보여 준다. 대왕문어는 다리마다 금화를 주렁주렁 달고 하나도 놓치기 싫어하는 욕심쟁이, 큰 눈을 굴리다 혓바닥으로 곤충을 잡는 카멜레온은 정글의 전사, 바버리사자는 조그만 동물들이 귀찮게 굴어도 품위를 지켜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난 왕. 동물의 생김새나 이름, 습성 등에 시인의 상상력이 더해져 가지가지 이야기가 생겨난다. 어떤 마음이 좋고 어떤 마음은 나쁘다는 판단 없이, 우리는 모두 다르고, 모두 다른 상태 자체가 조화롭고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깜짝깜짝 잘 놀라는 깝짝도요가 사는 갯벌, 아이돌 가수 데뷔를 준비하는 굼벵이들의 땅속 연습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판다들이 사는 대숲, 성가신 것들에게 옆차기를 날리는 낙타의 사막과 동면 중인 북극곰의 꿈속까지, 지구를 한 바퀴 돌고도 남는 거침없는 여행이 책장을 넘기며 펼쳐진다.
나 같기도 하고 너 같기도 한 무지개색 친구들!
동시 옆에 놓인 각각의 카툰은 동시의 이야기를 다른 차원의 상상으로 옮겨 주는 프리즘 구실을 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 커다란 귀만 펄럭거리고 있는 「아주 예민한 코끼리」 옆에는 잠복 중인 배고픈 사자의 어리숙한 소동이 이어지고,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길어져서 괴로운 「피노키오새우」 옆에는 수족관 청소부 새우들의 기가 막힌 거짓말들이 이어진다.
새우1) 이 걸레 거북이털로 짠 거야. 닦을 때마다 알아서 엉금엉금 기어다녀.
새우2) 거북이가 털이 어디 있냐?
모두) ㅋㅋ
새우3) 이 빗자루 토끼뿔로 만든 거다. 바닥을 쓸 때마다 알아서 깡충깡충 뛰어다녀.
새우4) 토끼한테 뿔이 어디 있어?
모두) ㅋㅋ
새우5) 요새 우리 코가 너무 빨리 자라는 거 같지 않니?
새우6) 몰라. 코가 너무 무거워.
알아서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걸레와 알아서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빗자루는 생각만 해도 우습다. 왜 자꾸 코가 무거워지는지 모르는 새우들의 대화는 갑자기 등장한 노랑줄무늬돔의 한마디로 정리된다. “얘들아, 수족관 청소 끝나면 내 몸도 좀 청소해 줘.” 거짓말은 잘하지만 성실함은 누구 못지않은 새우들인가 보다.
게 등을 타고 공짜로 해저여행을 다니는 말미잘의 이야기 「말미잘의 공짜 여행」 옆에는 아예 툭툭 기사로 분한 게가 등장해 열심히 손님을 모은다. “바르셀로나 갑니다! 축구 보러 가요. 메시 유니폼도 있어요./ 나폴리 갑니다! 나폴리 피자 맛있어요./ 뉴욕 갑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보실 분~” 여행 콘셉트에 맞게 정성 들여 꾸민 툭툭 그림은 눈을 즐겁게 한다. 말미잘한테 속아 이용당하는 줄만 알았던 게는 카툰 속에서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기획력을 갖춘 전략적 가이드의 면모를 새롭게 보여주는 것이다.
와글와글 바글바글 카툰의 힘
화가 윤정주의 붓 끝에서 몸을 얻은 카툰은 우리들의 눈을 단단하게 붙든다. 동시라는 장르가 가진 매력적인 모호함, 그리고 다층성이 카툰이라는 장르를 통과하며 새로운 방식의 독서가 탄생한다. 그저 짜증이 많은 줄만 알았던 상어의 사실은 귀여운 면모(주름을 펴고 싶어서 전문가를 찾아갔지만 교통카드를 들고 가는 바람에 아쉽게도 실패.), 당근 줄 테니 어서 가자고 아무리 타일러도 땅만 보던 「고집쟁이 나귀」의 우직하고 깊은 속내(알고 보니 수레바퀴 앞에서 열심히 노동 중인 쇠똥구리들 때문에 기다리던 참이었다.)가 그림 속 캐릭터들의 몸을 통해서 독자에게 곧바로 전달된다. 동시와 카툰을 번갈아 읽으면서 생겨나는 반복적인 리듬감과 속도감 또한 새로운 즐거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