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인형처럼 한없이 가볍고 유약하며
영원히 해독 불가한 존재였다
세계문학의 거장 카다레가 최초로
고백하는 ‘나의 어머니’
때로는 그의 인생을 힘겹게 만든 모든 것이 나의 창작에 요긴하게 쓰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는 그가 나에게 도움을 주고자 부러 자해를 택한 거라 여겨질 지경이었다. _본문에서
매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손꼽히는 알바니아의 대작가 이스마일 카다레가 자신의 어머니의 삶과 자신의 유년기를 중심으로 한 자전소설을 발표했다. 카다레 가문으로 갓 시집온 어머니의 새신부 시절 모습부터,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의 고부 갈등, 자신과 어머니 사이의 미묘한 갈등을 특유의 위트와 냉소로 재구성해나간다. 『인형』은 알바니아어와 프랑스어로 2015년 출간된 작가의 신작으로, 어느덧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던 나이에 이른 이스마일 카다레가 프랑스로 망명하기 전 고향 알바니아에서의 자신의 청년기와 함께 핏기 없는 ‘인형’ 같았던 어머니의 일생을 되돌아본다.
열일곱의 나이에 시집와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묵묵히 고부 갈등을 겪어내고, 언젠가 아들에게서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를 안고 살아가며 좀처럼 존재감을 드러내던 일 없던 어머니가, 어느 날 스스로 시어머니 자리에 올라 아들의 혼처를 구해오며 아들과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대작가를 키워낸 어머니의 삶은, 또 그 아들이 그려낸 어머니는 어떤 모습일까.
한 시대를 대표하는 대작가가 마침내 털어놓는
어머니에 대한, 어머니를 향한 차갑고도 뜨거운 최초의 고백
프랑스 망명 후 3년이 되던 어느 날, 이스마일은 어머니의 임종이 임박했다는 연락을 받고, 아내 헬레나와 함께 즉시 고향 알바니아로 향한다. 어머니를 간호하기 편한 친척집으로 직접 안아 옮겼다는 외사촌은 어머니가 꼭 종이로 만든 인형처럼 가벼웠다는 말을 누차 전한다. 인형놀이를 하던 어린 딸들이 인형에 대고 “할머니” 하고 부르던 장면이 그의 머릿속을 스친다. 하기야 “어머니는 걸음뿐 아니라 모든 게 가벼웠으니까. 옷도, 목소리도, 한숨까지도.” 그렇게 이스마일은 생기 없는 ‘인형’ 같았던 어머니를 회상한다.
청년 이스마일의 눈에 어머니는 늘 “목탄이나 연필로 그려놓은 사람”, 혹은 비밀이나 수수께끼를 품고 있는 새하얀 얼굴의 가부키 배우들 같아 보였다. 여간해서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항상 가면을 쓴 듯한 창백한 얼굴. 그에게 어머니란 그저 두꺼운 외피에 싸여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 “영원히 해독 불가한 존재”일 뿐이었다. ‘어머니’ 하면 으레 떠오르는 “모성 특유의 냄새와 푸근함” 같은 것들은 찾아보기 쉽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무정하다거나 “차가웠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는 더할 나위 없이 다정했다.”
친구이자 시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의 말처럼, 이스마일 카다레는 마침내 어머니라는 “이해하기 가장 힘든 존재”를 조금 더 이해해보고자, 이제 영영 좁힐 수 없을 것 같은 먼 곳의 어머니의 삶을 재구성해나간다. 하지만 어머니의 지난날을 향한 눈은 그의 아들이 아닌, 언제나 날카로운 통찰과 냉소를 잃지 않는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의 서늘한 시선과 오히려 더 닮아 있다. 소설 속에서 카다레는 ‘어머니’라는 호칭을 생략한 채, 어머니를 ‘인형’이라고 지칭하며 오랜 시간 애증의 관계로 살아온 어머니, 평생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몰랐던, 유약하고 한없이 가벼웠던 어머니에 대해 냉철하고 건조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한 어조로 이야기해나간다.
부모의 결혼 전 친가 카다레가家와 외가 도비가의 미묘한 신경전 혹은 자존심 싸움에서부터,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약혼을 했다가 정혼자를 착각하고 까무러칠 뻔했던 어머니의 웃지 못할 사연, 자존감으로 충만해 졸작에 가까운 습작품을 써내던 청년 이스마일의 일화 등이 카다레 특유의 위트와 유머로 그려진다. 특히 깐깐한 카다레 가문의 엄숙하고 삭막한 저택에 시집을 온 후 아들에게 “이 집이 나를 잡아먹어.” 털어놓던 어머니의 말은 어린 이스마일에게는 피가 얼어붙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소름이 끼칠 만한 일이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특히 카다레 집안의 ‘재판’ 장면은 먼 이국 알바니아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절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던 일이라는 착각이 들 만큼 우스꽝스럽고 낯설지 않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갈등이 깊어질 때면 그의 집에서는 일종의 재판이 벌어졌는데, 고부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아버지는 스스로 재판관으로 나섰다. 카다레는 사태를 악화시키기만 했던 아버지의 재판을 두고 아버지가 “대대로 법조계에 몸담은 집안 출신이면서도 고작 법원 경위에 머문 한 하급 공무원의 못다 이룬 꿈의 성취 욕구”를 실현한 것이라 묘사한다.
할머니와 재판 외에도 많은 것들이 어머니를 괴롭게 했다. 집안에 고립된 채 존재감 없이 살아가던 어머니와 달리, 세상에 밝은 친척 이즈미니 코코보노는 매번 어머니를 찾아와 이간질했고, 자신의 권위를 재건하려는 듯 집의 보수 공사에만 매달리던 아버지 때문에 가세가 점차 기울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아들 이스마일이 자신의 존재를 지워내는 일, 유명한 작가가 된 그에게 버림받는 공포가 ‘인형’을 가장 힘들게 했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수시로 자신의 존재를, 아들의 애정 혹은 신뢰를 확인받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스마일의 눈에 어머니는 바보 같기만 했고, 그럴수록 연민에서 기인한 화가 솟구쳤다.
모자는 어떤 경계 양편에 각기 서 있고, 아들이 보기에 어머니에게 월경이란 끝내 버거운 것이다. 젊어서는 똑똑한 시어머니에 비해서도 열등한 존재였던 어머니는 나이들어가면서는 많이 배운 신세대 아들에게도 툭하면 무시당하며, 그 사실을 엄중히 받아들여 아들과의 결별에 대한 공포에 시달린다. 결코 넘을 수 없는 경계 저편에 존재하는 아들이 자신을 버릴 거라는 공포. 하지만 무시하고 막말을 해 어머니를 울리기 일쑤이던 아들은, 결국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문학 재능과 자신이 누리는 자유의 근원이 어머니에게 있다고 털어놓는다. 어머니를 더 자라지 않는 열일곱 소녀로 설정함으로써 그를 글쓰기에 이용했다는 자각을 통해, 그리고 “우리 둘 사이의 오해가 나를 전혀 속박한 적 없고, 오히려 그 어떤 앎보다 나에게 이로웠다”는, 어머니의 지위를 단숨에 훌륭한 문학가를 낳은 기원으로 격상하는 절절한 고백을 통해. _‘옮긴이의 말’ 중에서
카다레의 소설답게 개인의 갈등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의 갈등이나 변화도 곳곳에 드러난다. 제이차세계대전, 친척의 지인으로 등장하는 엔베르 호자의 긴 공산 독재기, 스탈린의 죽음, 공산권의 분열 등 격변하는 시대상과 사회상이 한 가족의 일대기에 스며들어 있다. 또한 이스마일 카다레라는 한 작가를 형성해가는 그의 유년기와 청년기의 경험들이 가족이라는 가장 내밀한 시점에서 드러나며,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이 되어준다.
작가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감정들을 독자와 함께 깨닫는 순간, 그 감정의 온도차를 자각하게 되는 순간 똑똑하지만 미숙했던 과거의 한 청년, 그리고 세계적 반열에 오른 대작가의 진심은 더 큰 울림을 준다.
◆ 언론평
카다레는 이 짧은 작품 속에서 지극히 내밀한 어조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조국 알바니아의 혼란스러웠던 역사의 한 장면을 빼놓지 않는다. 통찰력 가득하고 신랄한 작품이다. _르 피가로
작가는 다정하기보다 신경질적이고 무례한 아들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려 보인다. 이 작품을 통해 한 작가의 생애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_베르나르 피보(문학평론가, 공쿠르상 심사위원)
◆ 책 속에서
가볍다…… 하기야 우리집 낡은 나무 계단도 보통 때는 삐걱삐걱하면서도 어머니가 걸을 때는 끽 소리도 안 냈다. 어머니는 걸음뿐 아니라 모든 게 가벼웠으니까. 옷도, 목소리도, 한숨까지도. (9쪽)
나는 커갈수록 할머니의 고통이 더 이해되었다. 지진이 일어났다 한들, 중간에서 오락가락하는 아버지보다 더 할머니를 뒤흔들어놓지는 못했으리라. (…) 당시 새로 읽은 책들에 비추어 보면, 우리집에서 벌어진 일은 상궤에서 벗어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세태의 급변을 알리는 그런 종류의 사건이었다. (38쪽)
커갈수록 나는 바로 그 지점에, 그 세상 물정 모르는 걱정 속에, (…) 줄여 말하면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그 아이 같은 아집 속에, 어쩌면 사람들이 말하는 나의 글쓰는 재능의 근원이 있는 거라 생각하는 게 좋았다. (80쪽)
하지만 나는 모스크바에서 유학하던 시절, 침묵한다고 해서 입에 담지 않는 것을 반드시 잊었다는 뜻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91쪽)
우리는 검은 미사—조이스-카프카-프루스트 삼위(三位)에 반해 진행된 강의를 이렇게 부를 수 있을 것이다—가 열리는 아침이면 저 셋처럼 쓰지 않는 법을 배웠고, 밤이면 의문에 사로잡힌 채 저들을 모방하는 죄를 짓고픈 유혹을 뿌리치느라 어려움을 겪었다. (92쪽)
나 또한 예술의 껍데기를 벗겨먹는 자요, 마치 정예부대가 훈련을 받듯 되도록 효과적으로 죽이는 법을 대학에서 수학중인 문학 강도였다. (96쪽)
인형이 새것으로만 고른 접시들을 식탁에 내려놓던 한순간, 나는 그의 얼굴에 내가 익히 아는 표정이 휙 스쳐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저 까다로운 표정! 하고 나는 하마터면 소리칠 뻔했다. 할머니의 그림자. 어쩌면 예비 시어머니의 그림자…… (119쪽)
사람의 재능이란 곧잘 그 대립항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죠. 아주 곧잘, 남는 것이 아닌 결핍된 것을 통해 사람은 돋보이기 때문이죠. (179쪽)